니느웨와 요나......... 나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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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1-10-10 07:18 조회1,78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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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느웨와 요나
요나 4:1-11
ⅰ. 진짜 나는 누구인가?
➀. 우리들 속에 두 세상이 같이 있습니다.
아내가 죽을지 살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 달려간 기도원
강원도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눈이 허리까지 쌓이는 곳이었다
날마다 집회가 열리는 성전에서는 통곡과 아우성 눈물이 쏟아졌다
온갖 사연들과 막다른 절박감을 안고 전국에서 달려온 사람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몇시간씩이나 목이 쉬도록 기도를 했다
그러고도 집회 후 산 중턱 곳곳에 마련된 기도움막으로 갔다
일반교회의 예배 분위기나 신앙열정은 비교도 안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회개와 각오와 감사가 철철 넘치던 시간이 지나고
모두 모여 밥을 먹는 시간이면 식당은 조금 다른 모습들이 보였다
그중에는 줄도 양보하는 사람도 있지만 맛있는 반찬을 욕심내어
더 가져다 먹고 심지어 불평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며칠, 열흘 한달이 지나도록 머무는 사람도 있는데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서로들 다른 편들의 사람들 흉을 보기시작 한다
사람이 모이면 어디도 생기는 풍경. 현상이 예외가 없다.
먼저 자리 잡아놓았는데 가로챘다고 성전 안에서 집회 전에 다툼도 생겼다.
껍데기만 사람이지 속도 사람일까?
짐승들도 그렇게는 안하는 짓들을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합니다
오징어 게임 극중에 나온 어느 목사는 줄곳 기도하면서도
게임중에는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먼저 쳐죽이자고 선동한다
극중에만 나오는 우스꽝스런 설정일까? 그렇지 않다
현실의 뉴스도 드라마 못지 않다. 수시로 들리고 목격되는 일들…
두 얼굴을 가진 듯 보이는 그 목사만 그럴까? 나는??
껍데기만 목사이지 속도 목사일까?
껍데기만 성인. 군자이지 속도 성인. 군자일까?
주일예배를 마치고 거룩하게 성전을 나오다
주차장에서 싸우는 기가 막힌 반전을 더러 보았다.
패를 지어 흉을 보는 무리도 있고…
은혜받은 것은 뭣이고 사사로운 욕심에 매여 싸우는 것은 무엇인가?
내속의 욕망들을 거울보듯 볼 때면 나는 내 자신에게 구역질 난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비싼 음식만 보면 마구 먹고싶은 식탐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정도를 넘어선 칭송받고 우월하고픈 명예욕
쉴 틈도 없이 자극만 받으면 스치는 성적 충동의 욕구들
가져도 가져도 다다익선으로 꿈꾸는 재산에 대한 부자 욕망
그러는 중에도 한 여름의 물 한모금처럼 갈증을 느끼는 바람이 있다
성결하고 흰옷처럼 오염없는 감정 생각 본능 등이
아주 잔잔한 호수처럼 평온하기를.......................
새벽의 이슬처럼 맑고 깨끗한 성품을 바라는 소원도 있다
양보하고 나누고
남의 아픔을 내 마음처럼 느끼고 감싸는 사람되기를 원하기도 한다.
이런 선한 바람이
이중위선과 거짓에서 나오는 기도가 아닌 것 같이 느낄 때가 있다.
도무지 이루어지기 힘든 내 안의 더러운 그릇을 알면서도 바랄 때가 있다…
왜 하나님은 우리 속에 이 두 가지를 다 몰아 넣었을까?
계곡의 맑은 물은 손으로 떠먹어도 수도물보다 더 꿀맛인데
시궁창 속에 흐르는 물도 물인가?
➁. 도대체 어느 쪽이 진짜 나인가?
함께 살기에는 어울리지도 않고
서로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는 노릇
어떻게 이 둘이 하나가 되겠는가? 물과 기름도 하나가 안되는데......
마귀와 하나님이 하나가 된다?
사람의 가면이라도 쓰고 살으라고
이성과 양심의 그림자라도 남겨놓은 것인데......
그게 진짜 자기라고 착각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나는 나인데 내가 둘이요 그 둘이 하나가 된다?
나는 누구인가 ?
나는 누구인가 /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감방에서 나오는 나의 모습이 어찌나 침착하고 명랑하고 확고한지
마치 성에서 나오는 영주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간수들과 대화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자유롭고 사근사근하고 밝은지
마치 내가 명령하는 것 같다는데
나는 누구인가 / 남들은 종종 내게 말하기를
불행한 나날을 견디는 내 모습이 어찌나 한결같고 벙글거리고 당당한지
늘 승리하는 사람 같다는데
남들이 말하는 내가 참 나인가?
나 스스로 아는 내가 참 나인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그립고 병약한 나
목 졸린 사람처럼 숨 쉬려고 바둥거리는 나
빛깔과 꽃, 새소리에 주리고 따스한 말과 인정에 목말라 하는 나
방자함과 사소한 모욕에도 치를 떠는 나
좋은 일을 학수고대하며 서성거리는 나
멀리 있는 벗의 신변을 무력하게 걱정하는 나
기도에도, 생각에도, 일에도 지쳐 멍한 나.
풀이 죽어 작별을 준비하는 나인데
나는 누구인가? / 이것이 나인가? 저것이 나인가?
오늘은 이 사람이고 내일은 저 사람인가? 둘 다인가?
사람들 앞에서는 허세를 부리고
자신 앞에서는 천박하게 우는소리 잘하는 겁쟁이인가?
내 속에 남아있는 것은
이미 거둔 승리 앞에서 꽁무니를 빼는 패잔병 같은가?
나는 누구인가? 으스스한 물음이 나를 조롱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당신은 아시오니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 디트리히 본 훼퍼
➂. 출애굽을 하는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어떻게 살다가 죽어갔는지를 보시면 인간의 진실?
노예생활로 고단할 때는 탈출과 해방을 절절히 기도했고
드디어 탈출한 후 닥치는 위기나 고난앞에서는
출애굽하여 나온 것을 후회하고 원망하기조차 했다.
차라리 노예로 죽게 내버려두지 그랬다고…모세를 돌로 쳐죽이려고 한다.
배고픔을 호소해 만나를 먹게 해주니 고기를 못 먹는다고 불평했다
메추라기를 주니 더 끌어 모아 쌓겠다고하다가 썩은 내가 진동했다
일생을 불안과 불평을 놓지못하고 원망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
아무리 형편을 좋게 해줘도 그 나아진 자리에서 또 불평거리를 찾는다
제대로 된 사람은 상황이 나빠져도 나빠진 자리에서 감사 이유를 찾는다
우리 모두는 안과 밖에, 육과 영에 두 얼굴을 다 가지고 있다
무엇이 어떻게 변해도 내가 흔들리면 늘 그 자리가 지옥이 된다.
두 세계가 내 한 몸안에 진을 치고 있는 이 상태에서 내게 평화가 가능할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건너지 못할 강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사는 한
내게는 늘 메마름과 아픔과 후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나 자신이 못나고 때로는 과하게 포장을 해서 거짓되고
때로는 그런 내가 싫어 눈물로 나를 다듬어주기를 호소하고
때로는 여전히 질퍽거리는 욕망에 휩쓸려 고단해진 내가 밉고…
불행과 두려움도 소망과 평안도 우리들 주위에 언제나 맴돌고 있습니다.
➃. 우리가 어디서 구원받은 것인지를 알고
거기서 나오는 훈련을 통해서 천국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➄. 우리들 자신의 무슨 의나 경건이나
거룩. 희생. 헌신. 충성 이런 것들 들고 나오지 말고
너희는 내 사랑안에 거하라고 너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떠들지 말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불쌍히여기신 사랑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를 찾아오신 그 사랑.
십자가에 달리신 그 사랑 안에 들어와서 머물라고
요15: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요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ⅱ. 요나와 니느웨
➀. 예언자 요나는 유대민족 출신인 예언자로서 그 유대민족이 지닌
이념과 사상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상징적인 인물이었습니다.
➜. 이름 아밋대의 아들 요나.....진리의 아들이라는 뜻
요나는 그가 믿고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니느웨라는 도시로 가서
회개의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니느웨 B.C 8-7세기를 걸쳐서
이스라엘을 거듭 거듭 침공하여 도시를 파괴하고 백성을 무차별 약탈하였던
그 잔인한 침략제국인 앗수르의 수도.
기원전 721년에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정복하여 역사상에서
북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영원히 사라지게 만든 장본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앗수르는 이스라엘사람들에게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철천지한의 원수가 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진리의 아들 요나가 감히 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동쪽의 니느웨로 가야할 것을 정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갔다는 것은
앗수르에 대한 이런 뿌리깊은 악감정과 화해 불가능의 반목감정을
문학적 과장법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나훔은 이 니느웨를
정복지로부터 약탈한 물건들로 가득찬 사자의 굴? = 도둑놈의 소굴
물론 그 속에는 궤휼과 강포가 가득하며, 늑탈이 떠나지 아니 하도다.
피血의 城성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무도 그 성읍의 멸망을
애곡하는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 나훔 2:11,3:13:7.
스바냐는 니느웨가 멸망하여 황무한 사막처럼 된다고 예언. - 습 2:13-15.
실제로 니느웨의 궤멸은 철저하여
그 폐허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 자체를 몰랐다.
여리고 성의 약 250배의 크기......성내리...성외리 다 합쳐서 사흘길
바벨은 하늘의 문. 하나님의 문....니느웨는 합의. 일치.......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하나가 되는 일에 익숙하다.
➜. 치장. 위장. 거짓으로 포장...
오늘날 휴매니즘. 인간성.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권리.....
➁. 예언자의 본질이란
본래 그를 부르신 신의 명령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지옥불속이라고 해도
뛰어드는 것이 본질인데 그런데도 예언자 요나는 적어도 니느웨 백성에게만은
회개의 복음 전하러 가고싶지 않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이러한 집요한 요구에 떠밀려서
니느웨로 갈 수밖에 없었고,
그는 거기서 예언자로서의 임무를 마지못해서 수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언자 요나의 마음은
고기 뱃속에서 삼일씩이나 지내고도 살아 남은
이른바 예수의 부활의 기적만큼이나 엄청난 기적을 경험하고서도
니느웨에 대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민족적 증오심 때문에 니느웨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그 속깊은 뜻을 아직도 여전히 거역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요나는 사흘길을 다녀야하는 니느웨 선교의 길을
단 하루로 줄였으며, 더욱이 그는 이런 하루 동안의 선교 기간에도
하루 종일 니느웨 성읍을 돌아 다녔으면서도 단지 네 마디의 말
"40일이 지나 니느웨는 뒤집어진다"라는 말만 던졌을 뿐
더 이상의 호소도 권면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to be upturned
➂. 기적중의 기적같은 일.......
요나가 발악을 하듯이 하나님에게 대들고 항의를 하는 일
저토록 포악하고 악명 높은 니느웨 백성이 화살처럼 빠르게 스쳐 가는
저 네마디의 말을 놓치지 않고 어떻게 저렇게도 온전하게 알아듣고
저 높은 왕으로부터 아래의 평민에 이르기까지
아니 왕으로부터 마굿간의 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두
회개하는 거국적 회개를 할 수가 있는지 억지를 부려도......
니느웨의 회개를 기꺼이 받아들여서 용서하시려는
여호와 하나님의 그 사랑과 그 긍휼의 속성을 오히려 적반하장격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하나님의 사람 요나가 감히 하나님을 탄핵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일입니다........
이게 오늘날 죄인들이 받은 회개와 구원가 맞습니까?
➜. 김정은이가 전두환씨가 통곡을 하면서 회개한다면...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일까요?
하나님의 긍휼의 속성은
우리의 인간 사회에서는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탕자의 회개?
탕자의 형이 아버지에게 화를 내면서 분노하는 것이나
요나가 하나님에게 대든 것이나.....
하나님도 말이지 일을 그렇게 하시면 안되시는 것이라고......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죄는 그 자손 삼사대까지 갚겠다고는 하셨지만
그 은혜를 수천대까지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본성을 요나가 걸고넘어지는 것입니다.
도대체가 이게 뭐냐고.......
앗수르와 유대민족 사이에 있는 역사적 상황과 맞물리게 되면
이것은 하나님이라도 안된다는 것이 요나의 생각. 요나의 확신이었고
요나의 격정적인 분노도 즉 자살까지도 불사하겠다는 요나의 반항도
바로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용서하시는 하나님, 무한히 관용하시는 하나님
세리와 창기들 강도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바로 그 자리에서
구원을 선포하시고 잔치를 벌이시는 예수님이 용납이 되겠어요....
이해와 설득 공감. 공정의 근거가
눈꼽만큼이라도 뭐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어떻게 니느웨가 회개를 하고
그 회개를 받아주셔서 멸망을 면할 수가 있느냐고..그게 말이 되냐고...
그 니느웨가 바로 요나고 그 니느웨가 세리와 창기 강도
바로 나...요나라면...........
사람들은 자기 사랑이라고 하는 이기주의 DNA를
아주 자연스러운 진화를 가능하게 하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한다.
오늘날 인간들은 외계인들의 침공으로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멸해버린 타락한 집단
타락이나 죽음에 대한 개념도 없는 좀비들....
이런 모습들이 아주 쉽고 재미있게 그림을 그려주고 있다
➃. 요나서의 메시지
호세아의 이야기와 요나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고멜을 데려다가 아내를 삼으라니.....
고멜같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자기 신부삼으시겠단다....
니느웨를 회개시켜서 자기 백성 삼으시겠다....
니느웨와 고멜이 겹쳐진다....나는 누구인가?
㉮. 그렇게도 싫어하고 혐오하고 회개하는 것마저도 못마땅해서
죽을라고 하는 그 니느웨가 바로 요나
㉯. 그런데도 그 니느웨가 회개하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이지요?...
요나가 설교를 잘 한 것?
니느웨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깨닫고 돌아온 것이요?......
실제로 역사는 이 니느웨성이 여리고 성처럼 망해서 땅속에 묻혀버렸습니다.
19세기까지....객관적인 역사적 사실로서 있을 수가 없는 일...
우리가 회개하고 구원 받는 일은 바로 그런 일
ⅲ.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
갈등과 분쟁. 시비 논쟁. 불신과 오해 거짓말이 없는 데는 없다.
세상에 그런 데는 없습니다.
영국......신사의 나라. 전통과 역사?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백제. 신라. 고구려는 양반
아프가니스탄...➜. 설명 불가한 나라.
종교문제. 부족간 군벌간에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거기다가 부패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 중의 하나.....
이런 문제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먹는 정치인들 언론인들...
바람에 갈대처럼 흔들리는 백성들......
여자들은 학교? 취직? 깨어있는 시민들?......
우리 나라처럼 교육열과 그 나라 문맹률이 비슷
이슬람 수니파. 공산당 독재국가. 여러 군벌들. 탈레반 이슬람 극단주의자
➜. 파슈툰족.42% 쿠르드족 타지크. 하자라............. 단일민족?
그래도 거기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북한에는 사람들이 안 사는 줄 알았다...
지역간. 국가간에. 위층 아래층간에도. 한 지붕아래서도.
한 솟밥 먹으면서도. 한 이불 덮고 자면서도 갈등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 관계 안에는 다 있습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아무리 친해도 다 갈등과 분쟁. 오해. 불신이 있습니다.
인간과 세상이란 것을 좀 알고나니 참 기가막힙니다
앗수르 니느웨. 고멜 . 전두환. 김일성 김정인 김정은 김여정.......불쌍한 애들......
논리나 일관성도 없고 윤리 의식도 없이 무슨 정치를 한다고
억지 주장이나 하는 일부 정치인들
자기들 맘에 안들거나 방해가 되면 돌로 쳐죽여버리는 인간들 가인의 후예들
자기하고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되는 것은
끄나풀 하나도 핀 하나도 다 챙기지만
자신들하고 직적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것들은 죽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여
무슨 말을 해도 옳고그름의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마저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는 인간들......돈이 안되면
뭐가 존엄하고 훌륭해서가 아니라 최소한 사람의 가면이라도 쓰고 살라고
인격을 주셨는데 그 사람의 얼굴이라는 가면마저도 벗어버리는 인간들.......
사람도 아닌 귀신들 마귀 새끼들
어떤 관계 누구라도 나를 힘들게 하면 바로 Out시켜 버리는
요나 선지자의 감정이나 생각 행동들이
여과 없이 그대로 다 표현되고 있습니다.
➀. 죽어도 못해요..... 도망가는 요나
욘4:1=2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나
욘4: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➁. 강제적으로 니느웨로 끌려왔어도.
진실도 성의도 예의도 없는 요나
욘3: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욘3:4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간절함이나 절박함은 커녕 예의도 성의도 없는 입에 붙은 4마디로 끝.
한 바퀴돌아도 3일 걸려...하루로 끝내버리는 무성의.
➂. 속으로는 저주를 퍼붓고 있는 요나
동산에 올라가서 어떻게 되나 보자 하고 지켜보는 요나는 하나님의 종?
정말 잘 되기를 바라는 거요?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바다가 되기를 바른 거요?
➃. 하나님에게마저도 항의하는 요나
욘4: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욘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➄.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이 박넝쿨 하나에는 그렇게도 집착하면서 12만명이 넘는
저 니느웨 사람들과 가축들은 지 발가락에 때만도 못한거야
"아밋대의 아들 요나야, 진리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너의 신앙 양심과 너의 그 잘난 똑똑함으로 이 일을 스스로 판단하여 보아라.
너는 이 한그루의 박넝쿨이 자라나도록 하는 가운데 아무런 수고도 아니했고
아무런 배양도 하지 않았지 않았느냐,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죽는
이 식물조차도 네가 그렇게도 사랑하고 아꼈다면
이 큰 성읍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생명이 무려 십이만명이나 살고 있고
육축도 또한 많이 있는데 그 생명들이 다 죽게 되었기에 내가 그 생명들을
긍휼히 여기고 아끼게 되었는데 이것이 어찌 옳지 않다고 하느냐?
➅. 저주받아 망해버렸으면 했던 그 니느웨가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가 몰랐던 한가지
자기 자신이 바로 니느웨 사람과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
그렇게도 싫어하고 피하고 싶고 그래서 도망가버리지만
결국은 끌려와서 대면하게 되는 그 니느웨
무슨 혐오 물건처럼 배설물이나 토사물처럼 역겹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본인이 바로 그 니느웨
잘못된 선민주의 사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우리는 너희들하고는 달라.......... 다르긴 뭐가 달라?
다른 사람들 좌익 빨갱이라하더니 느닷이 독재자라고 하고
나라 다 말아먹는다고.....이게 목사들?
삿대질하는 그 인간들이 바로 요나같은 인간들입니다. 무서운 독살입니다.
자신은 절대 선이라도 되고
다른 사람은 흑색선전한다고 되받아치고 덮어씌우는 행위
➆.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는
요나가 한 일? 니느웨 사람들이스스로 알아서 한 일?
탕자가 회개하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탕자가 한 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그냥 순종하고 헌신하고 충성하는 것이 전부가 압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갈등과 분쟁 시비와 분노가 홍수같이 쏟아지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평안을 전하는 자들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요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 자신이 바로 죄인이라는 사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시지 인간은 신이 아니요 천사도 아니요 흙
요나가 바로 니느웨.고멜. 내가 세리 창기 강도입니다.
㉯. 예수님. 내 사랑안에 거하라. 다른 길은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말고는 우리를 구원하실 자가 없습니다.
㉰. 우리도 그 길로 가고 있으면 우리가 구원 받은 것 맞습니다.
성령의 역사. 성령의 열매입니다
썩어지는 밀알로 죽는 일.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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