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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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0-09-27 09:22 조회2,461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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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
마태5:43-48
밤이 되면 숲속에는 대합창...개구리 소리. 지렁이 소리?
마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적과 내통할 수는 없다
마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율법이나 계명으로 듣지 마시도 복음으로 들으셔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렇게 만들어 가시겠는 약속입니다.
원수를 용서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용서를 인간 역사에서 처음 가르치신 분은 최초의 발견자는 예수님......
한나 이렌트 ➜. 유대인 정치학자. 기독교인은 아니다.
왜 이런 촌스럽고 우수꽝스러운 말을 하는가?
로마인들에게서부터 특별 사면권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희랍철학이나 헬라 문명. 로마인들에게
용서란 어떠 의미로든 강자 정복자 힘과 권력이 있는 자들의 관용과 너그러움...
예수님의 용서? ✘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그런 용서란 그들의 사전에는 없다.......
석가모니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는가? 소크라테스가?
공자. 노자 장자가 원수를 사랑라고 가르쳤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읍니까?
어떤 형태로든지 용서란 강자의 덕목. 여유. 인의. 인애. 자비.....
수행의 덕목이다. 예수님의 원수를 사랑하라 그런 내용이 아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
너희 죄사함을 위해서 흘리는 나의 피...죽음이다. 최후만찬의 주제
이런 하나님의 용서를 성경 밖에서 교회밖에서 들어본 일이 있는가요?
있다면 모르고 하는 소리.
➀. 죄인들을 위해서. 원수를 위해서 저들의 죄를 속죄하시기위해서...
➁. 그것도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용서하시기위해서 자신을 희생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그런 神에 대해서 들어봤는가?
마26: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해한다고 무조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_ 한나 아렌트
하나님의 용서는 이해를 넘어 영원히 하나이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다.
용서할 수 있는 것을 용서하는 것은? 진정한 이름의 용서가 아니다.
마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아무 댓가나 보상이 따라오지 않는데도 아무 조건 없이
용서. 사랑할 수 있을 때.....진짜 용서와 사랑이다.
용서가 언제나 가능한 것만을 한다는 의미라면
사실상 용서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 용서이다.
용서란 항상 다시 새롭게 배워야 하는 것이다. 용서, 참으로 거창한 말이다.
완전한 용서가 있을까? 용서의 자격과 권한은 누구에게 있을까?
종족. 계층간의.... 민족이나 국간 간의... 그리고 개인간의 다양한 경우들이있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딸, 총기 난사 사건으로 딸을 잃은 엄마,
유대인 학살 홀로코스트 생존자들…
그리고 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고 교도소에 수감 중인 남자.....
사랑하는 남편과 세 어린 딸들이 처참하게 살해되는 것을 목격한 여자...몬테나
분하고 억울한 일들. 우울해지는 상처들
이들을 통해 용서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힘들고 또 용기가 필요한 행동인지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기브 앤 테이크’에 익숙해져 있다.
내가 하나를 주면 나도 하나 이상은 받아야 하고,
내가 손해를 보면 그 상대도 손해를 봤으면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용서도 같은 개념일까? Give and Take가 아니다.
그 댓가를 받지 못해도. 아무 보상이 없어도
나만 희생하는 것 같은데도 용서라는 것이 가능할까?
용서의 본질에는 보복과 앙갚음에 대한 포기.
대가, 보상을 포기하는 것이 들어있다.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슬픔과 상처에 대한 책임을 돌리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용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일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런 위대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 안에서 많은 일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용서는 “논리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그렇다고 공정 하지도 않다.”
이성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다.
고통에 대한 대가를 돌려받을 수도 없다.
그럼에도 우리가 용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더 이상 희생자에 머무르지 않고
당당한 주체로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는 당사자로 책임을 지고
주체자로 살아 가기위해서 용서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이름이 생기는 일이다.
용서만큼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또 있을까?
사람을 짐승과 다르게 만드는 것중에 이만한 다른 것이 있을 수가 있을까?
죽을 때까지 피해자로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살다가 죽는 일은
인생의 최대의 실수이고 무능함의 결정체가 되는 것이다.
용서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치료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치료하고 해방하는 것이다
용서는 당신의 영혼을 자유롭게 한다.
용서는 먼저 내가 사는 길이다. 나를 위해서 용서하라
내가 살기위해서 아무 조건 없이 용서하는 것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망가지고 폐인이 되는 것입니다.
복수란 힘의 원리가 작동되는 것이다. 폭력의 악순환입니다.
그 부작용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당한 만큼 되갚아주면 내 상처가 치료되는가?
가인 아벨을 죽여놓고도 아벨이 죽었는데도
그 분노는 그대로 있고 거기에다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자기도 죽임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게되는 것이다.
혹을 떼려다가 긁어서 부스럼을 만드는. 상처를 더 악화시키는 꼴입니다.
➜.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 - 김수환 추기경
그 길 밖에는 내가 인간으로서 끝까지 인감됨을 지키는 길이 없다.
다른 선택이 없다. 다른 길은 지옥이다.
용서는 일상이고 삶의 방식이고 방향이고 포기할 수가 없는 선택입니다.
복수는 얼마든지 예측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기때문에...자연의 법칙같은 것이다.
그러나 용서는 전혀 예측불가능한 일이다.
아무에게서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예측할 수가 없는 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것이 용서이다.
이 사슬을 끊어내버리지 않으면 내일을 살아갈 동력을 얻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안되는 것이 용서.
과거에 대한 ‘용서’와 새로운 미래와의 ‘약속’은 삶에서 매우 중요한 두 요소입니다.
솔제니친은 1945년 27살 포병 대위로서 근무하던 중 친구에게
스탈린을 비판한 서신이 문제가 되어 체포당한 뒤
강제노동수용소 8년(1945∼1953), 유배형 3년형을 지냈다.
197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반체제 작가 .
1974년 2월 가족들을 그대로 놔두고 강제추방을 당하여
미국에서 20년간의 망명생활이 시작되었다.
솔제니친이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그의 영혼에 스탈린을 품고 데리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히틀러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가족을 친구를 잃고
온갖 수모와 모욕을 받았지만
그 히틀러를 마음의 한 구석데기에 싸가지고 신대륙에 갈 수는 없다.
천국간다고 하면서도 지옥같은 이 세상에서 일을 그대로 싸가지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가?
거짓말이 들통나는 것이지.
내일을 살아갈 사람들이 왜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가 감옥이 되어 있는가?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는 그래야 하는데
실제로는 복잡합니다. 사람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바로 이런 때에 딱 맞는 말씀이 있습니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일보다 더 어렵다.
부자가 천국들어가는 일도 그렇지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물질을 버리는 일보다
미움과 분노를 버리고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그게 사람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으로는 모든 것을 다 하실 수가 있습니다
마19: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마19: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With men this is impossible, but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첫째,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이기성, 교만, 욕심,
권력과 소유에의 욕구 등으로 인하여
자신은 물론 타자에게 상처를 입히고 피해를 준다.
둘째, 인간은 ‘타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상처를 안 주고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상처를 안 받고 살 수있는 인간도 없다.
인간은 출생부터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타자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
혼자 살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살아간다는 것은 긍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지극히 부정적인 경험도 하게 한다.
셋째, 인간은 다양한 제도들과 연계되어 살아가는 ‘제도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족, 학교, 회사, 종교, 국가 등 다양한 제도들과 연결된 삶을 살아야 하는 인간은
그 제도들에 의하여 보호와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기도 한다.
인간의 삶이란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집단적이고 제도적인 차원에서의
폭력과 억압이 현실이다. 한 사람이 한쪽에서는 피해자이면서,
다른 차원에서는 가해자가 되기도 하는 복합적인 현실이 세상이다.
Les Misérables............비참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면 용서하고 사랑해야.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가장 어렵다.
하나님의 용서를 알아가고 믿어져야 사람은 비참해지지 않습니다. ➜. 천국의 열쇠.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 Lord of the flies = 바알세붑.....마귀 대명사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 비참한 인간들. The miserable
작품의 내용과 주제 그리고 제목이 하나로 바로 연결이 안 된다.
작가는 왜 책의 제목을 그렇게 정했을까?
『너희 아비는 마귀. 독사의 자식들』인 인간들에게
용서와 사랑은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이 없는 인생이 얼마나 끔찍하게 비참한지를 그려내고 있다.
원수를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그 예수님은
어떻게 용서하시고 어떻게 사랑하시는가?
마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
눅22:19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눅22: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죄인들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리는 목자. 친구가 되시는 하나님을 아는가?
마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요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힘의 원리로 다스려지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 아니다.
힘으로 칼로 돈으로 황제가 되는 사람들이
사면권을 행사한다고 그것을 용서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눅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면서도 조롱하고 장난하듯하는 저 사람들을 용서?
➀.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 가야바와 빌라도 총독을 용서하셨을까요?
당연하지요. 썩은 고름덩어리같은 악을 품고 있을 이유가 없다.
➁. 저들이 천국갔을까요?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둘 다 잘 되었으면 최상의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 용서를 하셨으니 저들이 회개하고 돌아와서
세리. 강도의 기도를 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 우리는 어떻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가 있을까요?
➀. 부활을 통한 영생을 알아야 용서가 가능해진다.
➁.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을 알아야 용서가 가능해진다
➂. 혈과 육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해진다.
용서란 불의한 일들에 대한 묵인이나 망각이 아니며
또한 그 불의한 일들에 대한 분노조차 없애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불의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하는데
악을 악으로 대항하는 순간 악의 먹이가 되는 것이다
『디지털 교도소』 악에서 구하려다 악에 빠진 디지털교도소...
처음 시작 의도는 선할 수 있지만
돈. 권력. 재판. 법이란 것은 재앙이될 위험성을 늘 안고 있는 것이다
어떤 폭력이든간에 폭력을 응징하기위해서 폭력을 쓰면
결국은 똑같아지는 것이고 물고물리는 아귀다툼
언어적 폭력. 성폭력. 갑질하는 권력과 지위 돈의 폭력....
무슨 이름이든지 쥐꼬리만한 힘이라도 있으면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치려고 한다. 힘이 없으면 오기라도 부리고...
이런 모습들이 다 악순환으로 그 먹이 사슬에 휩쓸려들어가는 것이다.
독재정권 타도 불의를 응징하고 정의를 세우기위해서....
목숨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투사가 되어 이기려고 싸웠는데
뭘 이긴 것일까? 보상? 보상을 생각하는 순간 이미 타락해가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무엇이 남았는가?
악만 받쳐있고 분노로 쩔어 있다면 오히려 악에게 먹혀버린 것이다.
불의한 독재정권에 저항하면 안되는가?
묵인하고 방관해야하는가? 기도만하고 있으면 되는가?
3가지 방법
➀. 격렬하게 저항하고 싸운다..... 어떻게 싸우는가가 더 중요하다.
➁. 아예 도망하고 안 보고 산으로 들어가버린다. 은둔자.......
옛날에는 벼슬을 안하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버린다.
➂. 폭력으로 저항하는 것 ✘ 방관 침묵으로 굴복하는 것 ✘
➜. 저항하되 비폭력 무저항이 십자가
예수님께서 방관 침묵으로 굴복했다면 십자가에 처형당하는 일은 없었다.
한 편으로는 성전을 헐어버려라. 기둥 뿌리째 뽑아내 버리시는 선언이다.
성전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악한 일들을 급진적이고 과격한 발언이다.
제물을 파는자들 돈바꿔주는 환전상들 그들의 뒤를 봐주는 당국자들에대한 전면전.
다 뒤엎어버렸다. 그런데도 당신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끌려가서
온갖 수모와 모욕을 당하고 처참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추호도 흐트러짐이 없이 단호하고 과감하게 예루살렘 소굴로 자기 발로 들어갑니다.
Peacekeeper✘. Peacemaker.
자신을 매달아 죽일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로 올라가십니다.
폭력을 폭력으로 응징하여 고통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폭력을 잡아먹어버리고 용서와 사랑을 뱉어내는 방식이다
들어간 것은 폭력인데 나오는 것은 용서와 사랑입니다.
나무 숲이 이산화탄소는 받아 먹어버리고 산소와 탄소를 내놓습니다.
땅속의 바테리아들이 온갖 해로운 것들은 다 먹어버리고 땅에 생명을 줍니다.
이런 일을 하나님의 아들은 하셨습니다. 십자가는 그런 하나님의 용광로이다.
스데반 집사가 야고보 베드로 바울 나머지 사도들이
다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
지옥같은 훈련으로 금메달 정상에 서는 일. 자기 성취감도 귀한 일입니다.
각 분야에서 남다른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는 일도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일로 능력을 인정받으시고 유명하신 분이 아니다.
그런 자기 성취감하고는 사실 전혀 상관 없는 분이시다.
사람들이 하는 일을 하나님의 일로 착각하면 안된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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