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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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1-04-04 08:18 조회1,865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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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인들
사도행전 3:11-18
ⅰ. 참된 사랑. 참된 기쁨. 참된 믿음.
➀.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의 세계에서 물질의 세계로✘ 다른 물질
➁. 다시 살아나셨다라는 말은 천만번으 다시 살아나도
또 늙고 병들고 죽을 몸으로? 아니다.
➂.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세계가 아닌 영원.
영원한 ✘ 시간의 무한대✘ 시간과는 다른 영원
➃. 그러면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 시간과 공간이 아니다....
그러면 에수님의 부활이 무엇인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➄. 그러면 예수님의 부활이란 지금 우리들이 알고 있고
살아가고 있는 이 목숨이 아니다. 새 사람. 새 피조물
➅. 그러면 무슨 생명? 어떤 사람?
하나님과 하나가 된 생명. 해를 옷입은 여자. 죄와 죽음이 없는 사람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더 이상 기쁨의 말이 없습니다.
다른 기쁨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사망권세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교회의 생일입니다. 오늘이 성도의 생일입니다.
우리의 기쁨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영원한 기쁨, 영원한 생명을 주고,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세세토록 찬양하며 영광 돌려야 합니다.
오늘은 주님께서 어두움의 권세를 이기신, 사망권세 이기신,
모든 저주의 세력을 물리치시고 승리하신 축복의 날이요
구원의 날이요 승리의 날입니다.
내 생일?..................
죄 죽음 마귀와 지옥..... 한 덩어리. 하나님 천국 영원한 생명 거룩
➀. 사람의 영혼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그 사랑...
다른 사랑 없습니다.
괜히 다른 것 붙들고.. 있어봐야
시간 에너지 돈 다 낭비입니다. 나만 초라해집니다.
자랑? 자존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 예수님 말고
다른 자랑. 다른 자존심은 없다.
➁. 예수님의 부활 말고 기쁨은 없습니다. 다른 기쁨은 없습니다....
괜히 다른 것들 붙들고 재미있다고
누구를 이겨먹었다고...누구를 넘어섰더고....
무슨 일에 최고 일등이 되었다고... 승리했다고.....
개인이고 가정이고 민족이나 국가간에 이 승리 이 기쁨 외에
다른 승리 다른 기쁨은 없습니다.
시62: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천한 것? 높은 것? 올무. 올가미. 미끼. 덫
대단하고 굉장한 무엇이라도 있는 것처럼 속지 마라.
전2:2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➂. 믿는 사람은 누가 믿게 하려고 안 해도 믿고 끝까지 갑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갑니다.
안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무리 지극 정성을 다해도 안 믿습니다.
믿는 척하다가 결국은.... 안 믿는 사람은 이유도 많습니다.
처음에는 내 실력이 부족하니....내 사랑이나 정성이 부족해서...
내 그릇이 이거 밖에 안되니......나를 돌아보고 했습니다.
그런데....전혀 상관 없습니다..
원수 같은 사람을 만나도 그 원수를 통해서 믿을 사람은 믿습니다.
원수 같은 그 사람이 처음에는 믿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원수는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고
전혀 안 믿을 것 같았던 그 사람이 그 원수를 통해서 믿고 구원 받습니다.
사람 일은 모를 일입니다.
너무 낙심하지도 마시고 그리고 자기 믿음 잘 챙기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➃.인간의 수치와 부끄러움은 다른 것이 아니라 죄와 죽음
죄는 그렇다하더라도
죽음은 그저 운명처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만
물론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단지 육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은 죄도 죽음도 인간의 수치와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아는 지각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챙피한 부끄러운 것이다 라는 영적인 지각이다.
십자가와 부활이 아닌 다른 것으로 행복해지고 존재감을 느끼려는 것은
예수님 믿는 것이 아니다.
✎.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
사람들이 하는 일에서 혹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기대하고 기쁨을 기대하고
내 자신에게서 무엇을 기대하시면 100% 속임수입니다.
알고 모르고 믿고 안믿고 상관없이 사실입니다. 나중에라도 무슨 말인지
생각나시거든 예수님 잘 믿으세요.
예수님이 누구? 그 죽음과 부활이 무엇? 참 된 사랑과 기쁨을 누리세요.
ⅱ. 증거 증인 순교자...............
원숭이 터럭보다 더 가벼운 존재의 가벼움
온천하보다 더 무거운 말의 무게.....증인
각종 수사기록이 공판 과정에서 관련된 증인들의 신변과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형태의 피해나 불이익 보복이 예상되는 경우
증인과 피해자는 비공개를 신청할 수가 있다
증인으로서 증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번거롭고 사건에 말려들어가는 일 자체가
대단한 정의를 세우는 일이라든지 무슨 큰 돈을 버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목격한 사실을 알면서도 피하려고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데 "나는 분명히 그 사실을 목격했다"
"나는 그 사건을 확실하게 보았노라!" 이 한마디, 얼마나 중요한 겁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다 없어지면 사건은 그대로 미궁으로 묻히고 맙니다.
엄연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는 종종 증인이 없고 증거가 없어요.
그래서 아주 없던 일들처럼 덮어져 버리고 마는 사건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은 사실인데 없는 일이 되버립니다. 왜요? 증인이 없어요. 증거가 없어요..
그 누구도 내가 증인이라는 사람이 없어요.
왜냐하면 이에 따르는 불이익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사실대로 목숨을 걸고 말할 수 있어야 되겠는데
증인들이 다 피하고 숨어버리고 모른다고 하고 그러면 방법이 없다.
"사실을 사실대로" 이것이 진실입니다.
사실이 사실대로 이해되면 이것을 진리 라고 합니다.
사실이 사실대로 확증되면 거기에 정의가 내려진다.
➜.증인의 증언도 세상 법정에서는 개무시당하기도 하고
거짓 증언도 밥먹듯이 하는 곳이 세상이다 . 증인 증거가 없으면
만들어서 징역 20년 40년살리고 간첩도 만들어냅니다
부활의 증인들만 생각 합시다.
그런데 부활이란 ? 물질의 세계✘
아무리 사실이라도 보이는 증거? 없다. 증인만 남았다......
그런데 증인이 되면 돈벼락? 벼슬?✘ 다른 뒷거래?✘
이 세상살이 도움은 커녕 목숨 까지 내놓아야 할 판이다.
부활에 관한 진실도. 진리도 있고 목격했고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보았다.
➜. 문제는 증인이 되는가? ........설령 원한다고 다 증인이 될 수 있을까?
한 쪽에서는 목이 잘려나가고 불에 던져지고 사지가 찢겨나가도
증인이 되는데
한쪽에서는 여전히 종교 기득권 세력으로 종교 장사하고
자기 영역을 지키기 위해서 증인들을 죽이고 협박합니다.
그리고 그냥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이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증인이 아니고 제자가 아니고서도 예수님 믿는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자신들이 서 있는 자리를 헷갈려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과학 문명이 발달되지 않은 당시 제자들의 신앙 고백적 작품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에 의하여 신화적으로 꾸며졌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역사 속에서 일어난
실제적이고 유일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가설을 만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일시 기절했을 뿐이며
장사를 한 후 정신이 되돌아와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여인들이 어두운 새벽길에 잘못 찾아서 빈 무덤을 보고
주님이 부활한 것으로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옮겨 놓고는 부활했다고 거짓을 퍼뜨렸다는 것입니다.
부활이 없었는데 돌아가신 후 죄송한 뉘우침에 부활을 말하신 것을 굳게 믿고
심히 피곤하여 머릿속에 그리다가 마침내 환상을 보고서
이것을 실제인양 퍼트렸다는 것입니다.
이집트나 바벨론 신화, 동방신화에 나오는 부활 신화를
예수님께 재탕해서 적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을 만들어낸 사람들도 목사 신학박사 교회이름으로........
기독교인들이라고 다 기독교인들이 아닙니다.......
ⅲ. 사실. 진리에 대한 믿음
제자들중 가롯 유다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순교하였는데
한결 같이 거짓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버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그리다가 그만 비몽 사몽간에 환상을 보고 헛소리 한 것입니까?
여러 사람이 일시에 환상을 보고 실제적 사건으로 오인 했다?
부활하신 후, 40일간 무려 11번 나타나셨고
한 번은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나타나셨습니다.
확실한 증거는 부활을 목격한 예수님의 가족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의 가족과 친척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요7:5)
미쳤다고 했습니다.(막3:21)
그러나 그들은 부활을 목격하고 그들의 삶은 변하였습니다(행1:14)
야고보서 의 야고 보는 예수님 친 동생
희생제사, 율법, 안식일을 기반으로 하는 유대 사회가 변했습니다.
1500여 년 동안 이어온 안식일이 예수님이 부활한 날로 예배가 바뀌었습니다.
부활을 설교한 초대교회가 십자가의 죽음을 선포하고 전하는
살아있는 교회로 불같이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 말고는 예배의 대상이 있을 수가 없는
유일신 신앙. 십계명 1-3계명이 시퍼렇게 살아있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예배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 사실입니다.
부활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사건인 것입니다.
사실은 증인에 의해 진위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많은 부활의 증인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진실성을 입증했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살지 못하였고,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 믿음도 헛것,
금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 고전15:16-19 자신이 지금 무슨 말 무슨 행동을 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켜내야 할 사실. 진실. 진리, 가치가 있습니까?
없어도 잘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까?
어쩌다가 한 두 사람이 좀 지나쳐서 순교자가 나올 수가 있다.
이차돈의 순교같이.......
이 초대교회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생각할 또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자,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마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를 한 번 보세요.
대제사장과 빌라도, 가야바, 뭐 이런 사람들이 바리새 교인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럴 때에 저들의 지식, 저들의 경건, 저들의 신앙적 상식으로는
이 예수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재판을 하고 예수를 정죄하고 십자가에 못박았고,
빌라도도 나름대로 '저는 죽어 마땅하다' 생각해서 십자가에 못박았어요.
예수는 죽었어요.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그걸 부활시켰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하나님이 그를 의인으로 살렸어요.
우리는 그를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 해서 죽였는데
하나님께서 '아니다하고 높여 의인으로 영화롭게 하셨단 말이에요.
그러면 이 순간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은
다 같이 죄인이 되는 겁니다. 의인을 죽였으니까요.
이제 제자들이 "예수 부활",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 하는 순간에
그 속에 엄청난 아니요가 있습니다.
예수는 죽어야 할 자가 아닙니다. 죽여서는 안될 사람입니다.
그를 죽인 사람들은 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하는
메시지가 그 속에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 완악한 무리들 앞에 "예수 부활!" 이렇게 말해놓고
살아남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를 죽인 사람들은 줄줄이 예수의 부활을증거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라는 말을 할 때는
한마디로 말하면 죽을 각오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각오를 하고야 그 한마디를 할 수가 있다.
예나 오늘이나 증인에게는 용기가 필요해요. 비상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요.
공교롭게도 이 증거라고 하는 말을 '증인' '증거'라고 하는 말을 그대로 옮겨서
영어로 발음하게 될 때 순교자가 됩니다.
그건 무슨 말인고 하니 증인이 순교자요 순교자가 증인이요.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누가 죽이겠다 그러면 도망가면?
예수가 부활했고 예수를 믿는 나도 부활한다, 하는 것을 믿는다면
당당하게 죽어야지. 특별히 예수의 이름으로 죽는 것은 최대의 영광이다.
그래서 순교자만이 부활의 증인이란 말이다.
그 부활의 증인은 죽음을 넘어서는 거죠. 사망권세를 넘어서는 것이죠.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이 일에 우리가 증인이다" 그랬어요.
예수 부활에 대해서 부활 사건에 대하여 내가 증인이다.
아~이 말 한 마디가 얼마나 무겁고 권세있는 말입니까?
➜. 박정희. 전두환 시대? 눈 뜨고 귀 코베어 간다.
북한에서 보낸 간첩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프락치
군대. 대학. 회사 공무원사회 어디에도 비밀 정보요원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기독교는 순교자들이 몇 십명 몇 백명의 이야기가 아니다.
피로 얼룩진 역사이다. 300년 넘게 이어진 초대교회입니다.
사실과 사실에 대한 믿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 긴장관계란 매우 중요합니다.
엄연한 사실이지마는 사실을 사실로 내가 믿지 않는다면
역사적 사실이 숨어있어도 내게는 사실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죽을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나는 죽을 병에 걸렸다하는 것을 나는 믿지 않아요. 내가 또 모르고 있어요.
그러면 나는 지금 현재는 죽을 병에 죽어가면서도
정작 본인에게는 죽어 가는 사실이 사실이 아닙니다.
그걸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차라리 모르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불신은 그냥 지옥.
양심과 비양심. 상식과 비상식. 진실과 거짓도 분간을 못하는 언론
판단과 분별력. 이성이 병든것이 아니라 악마입니다.
자기들 이익을 위해서 사람들을 바보 만드는 마귀.
이런 마귀의 거짓말에 말려드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넓은 문으로 대중을 선동하는 일은 공산당만 하는 짓들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입은 말할 것도 없고 과학에도 학문의 세계에도
종교에도 더 많습니다.
마귀가 어디 캄한한데 귀신 나오는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자체가 마귀들 세상과 구분이 안됩니다.
자기 나름대로 머리를 이성을 굴립니다.
자기 생각으로 자기 합리적 이해능력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이해가 되든 안 되든 사실은 사실이고
내 마음에 들던 안 들던 사실은 사실대로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그것을 인정하느냐 안하느냐 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자기 이성의 제한 속에서 만사를
이해하려고 들고 때로는 긍정하고 부정하고. 이게 얼마나 한심한 생각입니까.
또한 오판이 문제입니다.
판단이 빗나갈 때 사건 자체가 빗나가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자기 집착과 자기 경험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 경험에 그런 일 없다. 들은 바도 없고 본 바도 없다. 그런고로 없다.'
그래서 없는 일입니까. 내가 못가본 세상은 없고 내가 못 본 세상은 없고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없다? 절대로 그럴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경험과 지식에 집착해서
진리의 엄연한 것, 사실 자체의 놀라운 진리를 우리가 부정하며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미련하게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 일본 사람들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
그래서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그 엄연한 사실 됨과
진리 됨을 모독하면서 사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 엄연한 사실? 거짓말?...실제로 우리가 사는 것은?
여러분, 사실을 사실대로 믿을 때만 사건이 됩니다.
특별히 사랑에 대해서 소중한 사랑을 받고 있어요.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내가 믿지 않으면 그 사랑은 나와 상관이 없다.
한평생을 기뻐하며 감사 찬송을 할 만큼 엄청난 사랑을 내가 받는데
사랑 받는다는 사실을 내가 믿지 않고 있어요.
그러면 그 사람과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
사랑은 소통이 되고 서로가 받아들이고 함께 기뻐할 수 있어야지
어느 한 쪽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효입니다.
독처하는 것이 보시기에 선하지 않았더라
그런데 하나님 사랑 안 믿으면 누가 불쌍해지는 것이지요?
지구가 둥글고 자전을 하고 공전을 하고 있어요
해가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어요.
그 사실은 내 믿음이나 지식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사실입니다.
하나님 사랑 부활 영생 천국 아무리 말해도
내가 안 믿으면 나하고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과녁을 빗나간 화살처럼 나만 헛간데로 삼천포로 빠져서
마귀가 주워 먹어버리는 것이다
어떤 사건이든 믿는 자가 있고 안 믿는 자가 있어요.
예수님의 부활사건에 대한 기록들을 성경에서 자세히 보면은
이상하게도요 성경은 '그가 믿었다'고 하는 말보다는
'오히려 의심하는 자가 있더라' '오히려 의심하더라' 그렇게 돼있어요.
당연하죠 나도 의심할텐데. 누군들 그걸 의심 안 하겠습니까?
의심했다고 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 부활 사건에 접하면서 믿음을 가지게 되면
부활에 관한 사실들이 아침 해살처럼 눈부시게 내게 보여지는 것입니다....
억지로 못합니다. 내게 보여지는 것이 선물 은혜
그러나 믿지 않을 때는 이 엄연한 사실도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스1ㅂ니다.
ⅳ. 부활과 성령 강림은 하나가 된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부활하신 예수님이 만나주셔요. 감사, 감격, 깜짝 놀라구요.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래서 그날부터 베드로는 새사람이 되어 살았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를 않아요.
그 사람, 예수님 몇 번 만나고 나서 부활한 건 확실하다'
거기까지 생각한 것 같은데 그 다음에 하는 말이 뭐냐 하면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하고 갈릴리로 돌아갑니다.
이게 무슨 말인지를 우리가 잘 알아들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날 그 점을 깊이 생각을 둬야 됩니다.
예수님 부활, 그 객관적 사실과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내가 믿었다고 합시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 관계가 있습니까?
부활하신 후, 40일간 무려 11번 나타나셨고
한 번은 500여 형제에게 일시에 나타나셨습니다.
이 40일간의 시간에 제자들에게 많은 변화가 일어 났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적어도 120명은 흩어지지 않고
10일동안 함께 모여서 집중적으로 기도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강림절 마가의 다락방에 .....교회가 시작됩니다!
그래서 부활절과 성령강림절은 아주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강림절이 없는 부활절은 객관적 사건, 객관적 진리로 남고,
부활절이 없는 오순절이라고 하면 이거는 덧없는 신비주의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합니다.
다정하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꾸짖지 아니하시고 사랑으로 용납해주시는 주님 앞에 감격했습니다만은
그 감격만 가지고는 별 도리가 없었어요.
문제는 성령 충만하게 될 때
그 부활하신 예수께 대한 부활 신앙을 가지게 되고
부활신앙의 사람이 될 때 부활의 증인으로 새로운 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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