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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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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0-08-03 16:06 조회2,262회 댓글0건
설교자 : 김준봉 목사
설교본문 : 골3:12-14
설교일자 : 2020. 08.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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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용서

                                                                 골로새서3:12-14

. 아미쉬의 용서

2006. 10.02. 오전 10시경 펜실베이니아주 니켈 마인스에 있는 아미쉬 마을에 있는 

아미쉬학교에 무장한 32살의 청년이 침입하여 열 명의 아이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열 명의 아이들 중 다섯 명이 죽고 다섯 명이 살았습니다

범인은 현장에서 자살하였습니다.

범인은 학교 교실에 들어가 남학생과 임산부 등 성인 여성을 모두 내보냈습니다

출입구를 봉쇄한 뒤 여학생들의 다리를 묶고 일렬로 칠판 앞에 세웠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던 전원적 시골 마을에도 악몽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며 미국 전역을 충격에 빠뜨렸다.

로버츠는 총기를 들고 교실에 들어와 학생들에게 교실 앞쪽에 엎드리라고 명령했다

이때 간신히 현장을 빠져나온 교사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들판을 

가로질러 뛰었습니다. 거의 500m를 달려가 전화로

 "학교에 총을 든 남자가 들어왔어요!"라고 외쳤다.

. 銃器가 없는 마을. 총을 소지한 것조차도 용납이 안되는 사람들 마을.

로버츠는 하나님에게 복수하기 위해 너희들을 처벌한다고 말했다

그는 9년 전 딸이 태어난지 몇 분도 되지 않아 죽은 사건 때문에 

하나님에게 분노를 품고 있었다. 이때 교실 안에서 있던 학생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13살 아이는 동생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먼저 쏘라고 했다. 그러면 동생들을 보호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 학생이 총을 맞고 쓰러지자, 그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학생이

 이제 나를 쏘라고 했다고 하네요. 날카로운 권총 소리가 뒤따랐다

로버츠는 사형을 집행하듯 아이들에게 총을 쏘아 댔다

어린 소녀들이 두려움 속에서도 용기를 낸 것은 

아미쉬 역사에 수 없이 등장하는 순교자들 삶을 계속 배워 왔기 때문이었다.

사건 당일 아침에도 범인 로버츠는 자신의 자녀 3명의 등교를 도와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줄 정도로 평소와 다름없이 지극히 정상이었다고 

그의 아내는 말합니다. 범인은 아미쉬 성도도 아니며 

아미쉬 공동체에 반감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는데 

아미쉬 학교가 자신의 집과 가깝고 여학생들이 공부 하고 있으며

보안도 허술해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복수하는 것이라네요??

그런데 그 범인의 장례식에 아미쉬 사람들이 참석하였습니다

 아미쉬 사람들은 장례식이 있기 전에도 범인의 가족을 찾아 

그들을 안아주며 위로하기도 했습니다. 가장의 죽음으로 살길이 막막해진 

가해자 가족을 위해 아미쉬 공동체는 죽은 아이들을 위해 전국에서 답지한 성금을 

범인의 가족들에게도 똑같이 나누어주기도 했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사건 직후 아미쉬 마을 주민들은 범인의 아내에게 그를 용서한다는 편지를 보냈고

아이들 장례에 와 줄 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용서를 해주어 정말 고맙다는 답신을 보냈을 뿐 참석은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미쉬 마을 사람들은 범인의 장례식에 참석해 위로했다고 합니다

조문객 75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아미쉬 마을 주민들이었다고 합니다.

살인자에 의해 어린 딸들을 잃은 유가족들 중 살인자를 용서하고

나아가 사형제 폐지 운동까지 하게 된 사람들입니다

. 출산하는 과정에서 딸의 죽음을 하나님에게 복수한다고 

     아무 상관도 없는 아이들을 살인하는 이 젊은 아빠.

    사람 속에 미움과 분노가 쌓여 있을때 인간이 어떻게 될 수가 있는가를

    우리는 간과하면 안됩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는 것입니다.

. 살인에 의한 딸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과 용서, 평화와 화해는 우리가 늘 바라는 어떤 것이지만

    그것을 내 삶에 구체화하는 일은 단단한 결단과 용기, 믿음 같은 것을 필요로 합니다.

    자신의 어린 딸, 자신들 공동체의 어린 딸들이 그렇게 사라져간 데에 대해 

    어찌 슬프고 힘들지 않았을까요? 그럼에도 그 청년을 아무 조건없이 용서할 수 있었던 

    분별력과 용기 사랑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 아미쉬 그레이스

 

총기 사건이 일어난 후 몇 시간 뒤 몇몇 아미쉬 사람들은 범인의 가족들과 만나

 "우리는 결코 당신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로버츠 친척들은 "아미쉬는 어떠한 원한도 없었고 이 모든 일을 그저 용서했습니다.

믿기 힘든 말이었고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습니다"라고 회상....자신들의 상식은 아니었다.

각지에서 몰려든 기자들은 아미쉬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렇게 빠른 시간에 용서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미쉬들은 "우리는 날마다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단지 평범한 크리스천의 용서입니다

크리스천이면 모두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용서와 다른가요?” 

아미쉬 마을 주변에 살았던 비 아미쉬 사람이 한 말이다.

모든 종교가 용서를 가르치지만 

  아미쉬 사람들이 그것을 실천한 유일한 사람들입니다.”

아미쉬교리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복종과 실천을 강조해 왔고,

유무상통 하는 공동생활을 통해 비폭력 평화주의를 추구해 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건 발생 2주 후 아미쉬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로버츠 가족은 한 없이 감사를 드렸다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아미쉬 공동체의 반응

로버츠 가족이 새롭게 출발할 수 있도록 자유와 희망을 주었고 

무서운 짐에서 해방되게 했다.

. 총기 집단 살인자의 딸.....트라우마와 같을 그 어둠을 가지지 않도록 

   용서하고 사랑하고 평강을 함께 나눴다.

   아미쉬 사람들은 "용서를 거부하는 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용서는 자연스러운 우리 삶의 일상입니다.

   용서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 실제로 그런 일이 우리들에게 발생했을때

그렇게 행동하고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그런 교회. 성당. 절. 마을이 있을까?

죽고 부상당한 10명이 다 동의하고 함께 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 유가족의 한 사람이었을 때

그렇게 행동할 준비가 된 사람들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

보상?........................................

인도자가 결정하면 피해자들이나 유족들이 동의하고 따라줄까

그런 신뢰와 연대감으로 하나일까?

 

.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용서와 사랑. 평강

십자가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다...이 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이단입니다.

십자가가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다...이렇게 설교하시는 분은 많고도 많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드러내놓고 계속해서 말하는 설교자는 너무 적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구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다양한 구원론 속죄론이 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는다.....

      종교개혁의 큰 흐름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구원을 용서와 사랑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와 사랑. 화해와 평강으로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도 

인생의 본질을 사랑과 용서로 이해하고 살려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

.믿음과 은혜로 구원 

. 하나님의 구원을 용서와 사랑으로 이해

. 이렇게 말하든 저렇게 말하든 결론은 나 잘되는 것.....미신. 우상숭배

 

   설교자. 전도자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 하나님의 구원을 본인이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는가?

. 똑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어디다 강조점을 두고 

      이해하고 살아가는가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다.

. 어디다 쓸 것인가? 결론. 목적이 어디로 향하는 것인가?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하고 어떻게 작품을 만들고 

      어디다 쓸 것인가에 따라서 결론을 다양....

     성경이 그렇고 십자가 복음이 그렇다...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아미쉬들이 오래동안 지켜오는 것중의 하나가 성막입니다

이 성막을 통해서 십자가의 복음을 이해 하는 것입니다

여기 가서 성막을 처음보고 연구해서 한국에 성막 세미나로 대 히트를 치신 목사님

저도 그 세미나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정말 성막에 대해서 신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그 목사님 표 성막 공부였습니다. 아미쉬들이 배우는 성막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틀렸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관점을 본질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믿고 살아가는 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렇게도 우리 하나님되시려고 너희들은 나 없으면 죽어! .....

너희들은 나 없으면 죽은 송장들이야 하시면서

하나님의 믿음으로 하나님의 열심으로 끌고 가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이야기성막이야기입니다.

전혀 상관이 없는 짐승이나 다름 없는 그를 제물로 삼고 

번제재단에서 죽어서 다시 살게 하시고 물두멍에서 씻기시고 

떡상과 등대로 말씀과 빛으로 먹이시고 인도하시고 

결국은 그 지성소를 가리고 있는 휘장을 찢어버리시고 

그 거룩한 지성소로 데리고 들어가셔서 

자신과 하나되게 만들어버리시는 영원한 사랑과 용서 이야기

 

믿음이란 무슨 신념이나 철학 교리 지식이 아니라 

beloved에서 변형된 단어 believe

라틴어 Credos는 심장을 내어주는 것.....

믿음이란 내 심장을 내어주고 자기 자신을 다 내어주는 사랑이 아니면

그런 믿음은 그냥 빈 껍데기 믿음 허수아비 믿음

아무 감동도 아무 생명도 없는 믿음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란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 야곱과 요셉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믿음

성경이 말하는 꿈이란 

   아브라함과 이삭의 꿈 야곱과 요셉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

성경이 말하는 열심이란 

아브라함과 이삭의 열심 야곱과 요셉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

하나님께서 자기 심장을 우리들 속에 집어넣어 버리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믿음의 조상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으로 그려지고 있고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출애굽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으로 연출되고 있고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성막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어떻게 마른 막대기에서 싹이 새 순이 납니까?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것이다.

그 마른 막대기가 바로 십자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통해서 

영원한 생명이 하늘의 별처럼 많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을 만나고 알면 

이 땅에서 되어지는 어떤 일에도 어떤 관계에서도

아미쉬 사람들처럼 아무 조건이나 보상도 없이 

그냥 용서해버리고 사랑해버리는 것입니다.

뭐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다 몰라도 되.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니까

우리들이 하나님한테나 사람에게나 감내놔라 감자내놔라 

           왜 이러냐 저러냐 따지고 시비할 일이 없다.

그냥 우리가 할 일은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용소와 사랑받은 자녀들이란 것을

아무 말 없이 살아버림으로 드러내 버리는 것이다.

 

. 작은 것이 아름다운 이유가 있습니다.

큰 일은 욕심으로도 할 수 있고 돌려받는 보상이 상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명예든 물질이든, 혹 높은 자리나 자기 만족이든.

하지만 작은 일은 그 모든 것들이 보장이 없고 

특별한 장소와 시간에 준비를 하고 시작하는 큰 일과 달리 

수시로 아무 곳이나 아무 때나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큰 일과 비슷하게 대하기란 쉽지가 않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그것은 늘 진심이고 늘 겸손하고 늘 욕심이 없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自己否定자기부정이 되어야 可能가능!

살인자를 용서하고 원수를 사랑할 수 있었던 그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사소한 이웃과의 다툼을 용서하는 것이었습니다

 

번역하신 목사님...아내와 늘 싸우는 제겐 범인을 용서했다는 사실보다 

그 내용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내와의 다툼이 일상인 제겐 정말 위로가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건 참 아무리 노력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아니 불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오늘도 그 불가능에 도전해서 또 실패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제가 큰 믿음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

그럴 수가 있을까요? 자기들의 자녀를 비명에 잃고 고통스러운데 

복수를 하지 않는 것만도 사람으로 힘든 것인데 그 살인자를 용서하고

더 나가 그 가족들에게 성금을 나눠주고 이후로도 지원을 해나간다는 일이 가능할까요

그 어려운 일을 아미쉬공동체는 해냈습니다. 

그런 그들도 이웃과의 다툼, 미움은 속히 털어내지 못하고 시달리는 것이 참으로 괴로웠고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니... 

참 사람이 뭐고 인생이 뭔지 멍먹해집니다.....

그런 시간들이 짧게든 길게든 그런 터널을 지나고 나면 

사람이 거들먹거리거나 고집을 피우거나 비난하는 일에 

조금은 더 자유로와지게 됩니다

나도 짐승이고 벌레고 배설물에 불과한 

차라리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티끌에 불과하니까요......

 

사회에서는 온갖 놀라운? 교육법을 강의도하고 감탄을 자아내면서

정작 자기의 집 자녀들은 대화도 없고 문제가 많은 사이로 지내는 사람,

어떤 갈등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듯 상담의 전문가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달변을 쏟아내면서도

정작 자기 부부는 갈등과 성격차이를 극복못해 이혼하는 소식을 들으면서 황당했던 일,

적지 않은 꽤 많은 목사님들이 설교에서 용서와 사랑을 선포하면서

자녀들이 빗나가고 존경을 받지 못하며 

배우자에게도 권위로 군림하며 일방적인 태도로 살아

사모가 상처와 억눌린 우울증이 걸리기도 하는 경우 등등......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고전 11: 1,3

우리는 우리 재산을 다 기부하면서도 좋은 말 못들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면서도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소리 높여 사랑을 외쳐도 빈 깡통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큰 일도 

중심과 속 사랑이 없이 하는 것은 무용지물 Nothing이라고.............

 

아미쉬 공동체 구성원들은 분명 사랑을 바탕으로 용서를 했을겁니다.

적어도 내키지 않을지라도

옳다는 믿음과 따르겠다는 순종의 결단으로 그렇게 살 것입니다.

사랑없는 위선의 경우는 분명 아닙니다

단지 사랑의 마음에서 사는 일상은 늘 그래야하고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고 우격다짐이 아닌 흐르는 강물처럼 살아져야하는데 

그게 힘들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큰 가르침은 기를 쓰고라도 할 수 있으나 24시간 누가 보거나 말거나 해도

빛나는 칭찬 따위가 따르지 않는 일에는 잘 안되는 한계를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간절하고 절박하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9: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17:20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11:4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 누구 믿음? 하나님의 믿음. 

    그 하나님의 믿음이 내게 작동 될 때 내가 믿음이 있어 보이는 것이다.

 

용서의 은혜로 살면서도 용서에는 인색한 인생들입니다

모든 용서는 우리의 그릇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적! 

일상의 기적이 흐르는 강물처럼 흐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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