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예배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0-08-10 09:59 조회2,480회 댓글0건
설교자 : 김준봉 목사
설교본문 : 골 3:12-17
설교일자 : 2020. 08. 09

첨부파일

본문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3:12-17 

 

인생의 본질을 자기 자신의 성취감 자존감. 성공. 돈. 권력. 

       아니면 인생을 즐기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인생의 본질을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에 두고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 두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내가 그런 인생의 본질을 이해나 자각을 하든 안 하든 상관 없이 

우리는 어차피 어떤 생각이나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런 자각과 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 주인이 엄연하게 살아있는데...주인 없다하고 죽여버리고?

      자기들이 주인 인 것처럼 . 그래서 좀비들이다.

      아이들은 잘 모르니까 부모들이 이것을 잘 가르쳐줄 있어야 한다.

 

종교개혁 큰 흐름은 루터나 칼빈으로 대표되는 이신칭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재세례파가 있다

그 중에서도 급진적 좌파가 아닌 메노나이트들이 있다.

메노나이트. 재세례파는 종교개혁의 큰 흐름을 함께 했지만 이들과 다르게 

. 국가 권력과의 결탁을 거부하고 이신칭의등 교리가 아닌 

. 평화를 복음의 핵심에 뒀다당시 유럽은 오스만제국과의 전쟁

    30년전쟁 등을 비롯해 끊임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었다

   종교개혁도 거의 전쟁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세례파는 평화를 종교개혁 기치로 걸고 반전운동에 앞장섰다.

   칼로 찌르고 총을 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은 No!. 

   어떤 형태로 힘이나 권력과 손을 잡는 일을 피했다

교회가 세상이라는 궁궐속으로들어가면

   . 물질적인 풍요로 인한 타락

    . 권력과 손을 잡으면 폭력과 전쟁으로 같이 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경계하고 거부한 것이다.

신약 성경의 초대교회가 국가와 하나가 된 교회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 권력으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자기 의지로 판단할 수 있는 성인이 되면 세례를 다시 베풀었다. 

     ➜이성적인 자각을 중요시 했다. 

재세례파는 카톨릭에서 받은 세레나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기때문에 

비아냥 거리는 투로 재세례파라고 한 것이다

아미쉬 학생들은 그들 스스로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17-20세 사이에 세례를 받는데

이 때에 그들은 아미쉬 공동체에 남을지 아니면 떠날지를 스스로 결정합니다.

아미쉬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공동체에 남는 비율은 평균 85%이며 

어떤 공동체는 95%까지 남는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아미쉬를 떠나는 비율은 불과 10%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공동체 의식은 끈끈합니다.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는다.

이러한 재세례파 확산이 신앙적·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가톨릭· 칼빈파· 루터파 할 것 없이 재세례파를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수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1690년대 재세례파에서 메노나이트가 분리되어 나왔다

693, 재세례파의 지도자이자 프랑스 Alsace지방으로 와 있던

Jakob Ammann 라는 지도자의 이름에서 아미쉬 Amish.  암만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이들은 기술 문명과 일체 타협을 거부하며 유럽의 각지와 신대륙으로 흩어져 정착했다.

 

2006102, 미국 펜실베니아주 니켈마인스에 있는 

아미쉬 마을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 이후 아미쉬 공동체의 놀라운 반응이 더욱 화제가 됐다

그들은 범인을 즉시 용서하고 그의 가족에게도 사랑을 베풀었다

총기 사건이 일어난 후 몇 시간 뒤 몇몇 아미쉬 사람들은 범인의 가족들과 만나

  "우리는 결코 당신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로버츠 친척들은

"아미쉬는 어떠한 원한도 없었고 이 모든 일을 그저 용서했습니다.

믿기 힘든 말이었고 알아듣기 힘든 말이었습니다"

 

아미쉬Radical 본질적인 근본적인 용서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아미쉬들이 선교 열정이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선교사 파송

그러나 아미쉬들은 "입으로 하는 전도보다는 공동체적 삶의 신실함에 집중합니다. 

선교는 용서를 비롯한 예수님의 모든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서로 부족한 것을 서로 배우면 된다.

사실 30~40년 전만 해도 미국 사회 주류 사람들은 아미쉬를 이단 취급하거나 

괴짜라고 생각했다. 과학기술을 두려워하고 마차를 타고 다니며 

소박한 옷을 입는 사람들 정도로 여겨졌다

 이 사건을 본 사람들은 경탄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현대 문명과 물질주의, 교회의 타락과 기복신앙에 지친 이들이 

연간 수백만 명씩 아미쉬 공동체를 찾고 있다. . 성지순례 비슷한 여행지

 

. 아미쉬와 성찬

아미쉬는 주일에도 보통 3시간 이상 예배하는데

·가을에 있는 성찬 주일에는 8시간 동안 예배한다

교인들은 성찬식이 끝나고 나면 동성끼리 세족식을 한다

사순절 기간에 목사는 자신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용서하고 원한을 버릴 것을 권고한다.

용서하지 않은 사람은 성찬식에 참여할 수 없다.

성찬식을 하기 전에 교인 간 용서와 화해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교회 지도부는 몇 주에서 몇 달간 성찬식을 연기한다

성찬식은 주일 오전 8시부터 휴식 시간 없이 오후 4시까지 진행된다.

점심 때는 교대로 식사한다

성찬 예배는 자신을 성찰하고 의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열쇠 구실을 한다.

. 다 했다하고 정해진 시간안에 끝내는 예배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자신을 속이는 일은 할 수가 없다.

 

. 아미쉬와 제자도 

.예수님은 우리드의 구원이자 우리들의 긍극적인 지향점이요 완성. -롬8:29

    믿음으로만? 믿음의 열매로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 약2:17

아미쉬를 비롯한 재세례파들은 예수님을 예배 대상이자 본받을 대상으로 바라본다

초기 재세례파 지도자 가운데 한 명은

 "기독교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은 누구나 예수가 걸어가신 길을 

똑같이 걸어 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아미쉬들은 이 길이 언제나 쉽지만은 않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예수를 따르는 길이야말로 영원한 삶으로 인도한다고 본다

. 제자가 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가짜 거짓

아미쉬들은 스데반과 같은 순교자들을 자주 언급한다. 

스데반은 죽어 가면서도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아미쉬 역사에서 적지 않았던 순교자들 때문에

용서는 아미쉬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돼 있다.

아미쉬들은 용서를 생각할 때 떠올리는 중요한 성경 구절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해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 3:13

형들을 용서하는 요셉. 간통한 아내 고멜을 용서하는 호세아처럼

구약에 나오는 사람들을 언급한 아미쉬들도 있었다. 아미쉬 사람들은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자신들의 능력과 연결돼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가해자에게 용서를 베푸는 일이 쉽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잘 하네 못하네. 되네 안 되네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살기위해서 다른 길이 없기때문이다.

 

. 아미쉬의 자녀 교육

아미쉬 공동체는 공식적인 신앙 교육이 상대적으로 적다

교회학교를 세운 몇몇 아미시 공동체가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는 정식으로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학교 수업 전에 하는 성경 읽기와 주기도문 암송, 아미쉬의 교훈을 담은 이야기들이 전부다

아미쉬 신앙에는 명시적 지침이 없다지도자들은 

신앙 교육 의무를 일차적으로 학교나 교회가 아닌 가정에 지운다.

아미쉬 부모들이 따라야 할 공식적인 교육과정도 없다

단지 성경과, 기도서, 여러 아미쉬 잡지만 있을 뿐이다

아미쉬 사람들에게 용서를 실천하는 법을 어떻게 가르치냐고 묻자 그들은

"우리가 배운 대로 가르칩니다"라고 말했다. 

. 신학교? 노회 총회라는 조직? 목사? 마을 공동체 중심.

     유럽처럼 어마어마한 성당 예배당 수도원 자랑 같은 것이 없다.

모든 교육은 가정에서 부모가 함을 기본으로 한다.

.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생활 속에서 자녀들에게 복종과 절제를 가르치는 것

. 밥을 먹기 전후에 조용히 두 손을 모아 침묵 기도 하는 법을 배우게 한다

. 아이들이 당신 무릎에 있는 동안 그러니까 

    아이들이 유아용 의자에 앉기 전에 가르쳐야 함

. 식탁에 앉아 맛잇는 음식을 눈여겨보는 가족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포기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운다.

다른 사람에게 존중을 표하는 일의 중요성은 노래로 배운다.

Joy, Joy for you. Jesus first, Yourself Last, And other in Between."

아미쉬 어린이들은 

타인을 향한 용서와 존중을 일상의 삶 속에서 보고 배운다.

아미쉬"부모님은 자기 자신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법을 몸소 가르치셨다.

그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가장 좋고 맛있는 음식이 돌아갔는지 확인하셨어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이런 자세를 다음 세대에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변질된 기독교

한국교회는 신자 중 70~80%는 보수 교회에 다닌다

이들은 말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주장 하면서도 

그에 따른 행동과 실천은 너무도 가난합니다. 이미 많이 변질된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를 믿는 게 이토록 편리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단적이고 사이비적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미쉬들에게는 용서를 비롯한 여러 신앙의 실천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한국교회가 만들어 낸 문화주일성수 잘하고, 목사 말에 순종하고

·담배에 기겁하는 등 숨 막히는 꽁생원 문화 아닌가?

 

많은 사람에게 돌팔매질당하는 교회들. 주변으로 밀려난 기독교.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는 주님 말씀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외우는 교인들

오늘날 우리가 아미쉬들과 똑같은 필요는 없지만 

아미쉬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생활의 용서와 실천적 삶을 하찮은 것을 밀어내버리면 

남는 것은 빈 껍데기. 아무리 믿음과 은혜를 이야기해도 말 장난. 주문같은 

허접한 것이 되고 만다. 용서 없이 미래는 없다..무슨 미래? 영생과 천국은 없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초대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황금의 입'으로 불린 요한 크리소스톰이 목회하던 교회 신자들이 

  주기도문을 외우다가 이 부분에 이르러서 입을 다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엄청난 긍휼을 입었음에도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용서는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일상의 문제다.

 

기독교가 배제와 증오가 아닌 포용과 화목 평화의 신앙입니다.

백성들을 진보와 보수. 자유민주주의 공산주의....이런 대결 구도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고

편가르고 분노 미움으로 가득한 것은 

공산주. 자유민주주의를 막론하고 다 마귀 새끼들이다.

성경책 들고 교회를 가고 안가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신은 하나님의 용서를 아는가?

당신이 용서받은 것처럼 다른 사람을 용서하시는가?

판단하고 심판하는 일은 사람들 몫이 아니다

사람들이 할 일은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이다.

예수님은 진짜 용서를 처음 말하신 분 탕자의 비유.......

이 땅에 역사. 사람들이 살아가는 긍극적인 의미를 말씀하신다.

자우민주주의 법치주의 의회민주주의 시장경제...다 몰라도 된다

그러나 당신이 탕자라는 것을 모르면 영원히 망하는 것이다.

. 하버드 출신 탕자들은 따로 면접을 보는가?

    황제 대통령 출신의 탕자들은 Red carpet 밟고 면접보나?

예수님은 용서가 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의무라는 것을 분명히 한다

분노와 복수는 해결책이 아니다.

분노를 계속 붙들고 있으면 우리 성장은 멈추고 영혼은 오그라들기 때문이다.

"복수가 반복되면 결국에는 두 사람 모두 

그 잘못된 상황에서 자유로워질 기회를 상실한다.

복수의 연쇄반응은 매우 파괴적 결과를 낳는다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 그들이 속한 공동체,

나아가 사회에 복수의 감정을 확산함으로써 관계의 파괴를 가져온다."...

지극히 정상적인 3 딸의 아빠? 그것은 껍데기....

그의 속에는 분노 미음 복수심이 가득하다.

 

.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

예수님은 용서의 무한성을 가르쳤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는 표현은 '셀 수 없을 만큼',

'몇 번이라고 셀 필요도 없이' 용서하라는 말로 볼 수 있다.

 "용서의 무한성을 요구하는 예수님의 용서의 원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의 원리와 동일 선상에 있다

예수님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면서

그 이웃의 범주에 원수를 포함시킨다."

 "무한하게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용서의 원리는, 나와 이웃뿐만 아니라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는 본질적인 사랑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본질적인 사랑에 대한 요구는 이미 본질적인 용서와 용서의 무한성을 전제로 한다." 

 

용서란 바로 자신을 위한 것이다

용서는 상대 누구를 용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을 용서

용서로 치유받는 최초의, 그리고 많은 경우, 유일한 사람은 바로 용서하는 자다.

진실된 용서는 포로에게 자유를 준다. 그러고 나면 

자기가 풀어 준 포로가 바로 자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용서의 성경적 근거는 내가 철저한 죄인이며

주님의 은혜로 용서받았다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 우리가. 내가 더 용서를 잘 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 아니다. 그건 불가능한 일.

용서가 없는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알고

먼저 하나님의 용서가 뭔지를 알아서

탕자처럼 온 몸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뒤집어 쓰는 자가 되라

예수님의 뜨거운 피로 범벅이 되어서 살아라.

제발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인격자나 거룩한 사람인 것 처럼 연극하지 말고

죽은 송장에 화장을 하면 뭐가 달라지는가? 자기 것으로 떡칠을 하지 말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지도록 흥건하게 적시도록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시간을 많이 가지시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