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예배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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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0-02-02 18:22 조회2,675회 댓글0건
설교자 : 김준봉 목사
설교본문 : 마태복음8:28-34
설교일자 : 2020. 02. 02

본문

 

                          악령 惡靈

                                                                                          마태복음 8:28-34

시진핑 주석이 "우한 폐렴은 악마다. 우리는 악마가 활개 치고 다니게 놔두지 않겠다"

"내가 직접 (전염병 업무를) 지휘하고, 대응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계속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협력해 나가면서 과학적으로 대응한다면 반드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공산당 정권 자체가 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라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다.

본인이 악마의 종인데.....

. 사람들은 저마다 저울을 다 가지고 있는데 아무도 자기 것이 고장 난 저울이라고 말하는 사람 없다.

자신의 이성. 양심. 도덕이라는 저울이 고장 난 것을 잘 모른다.

남의 눈에 있는 티끌이 들보처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눈의 들보는 티끌로 밖에는 안 보인다.

그래도 자신의 저울이 고장났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고장난 정도가 아니라 악령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잘 모릅니다.

2020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저도 알 길이 없습니다. 1월이 지나고 2월 첫 주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하고 고민하면서 기도하고...말씀을 전합니다

악마는 귀신들린 미치광이로만 나타는 것이 아닙니다.

천재 위인 영웅 성인군자 대단한 지도자로 변장합니다.

레닌이나 스탈린이 천사일까요 아니면 성령의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저 평범하고 건강한 한 인간이라도?

김일성이나 김정일 김정은이 최고의 존엄

  지금 세상에 레닌 스탈린 히틀러 같은 사람이 없을까?

거짓말하는 독재자 거짓말하는 종교인들이 없을까?...

 

2007년 탈레반에 23명이 잡혀갔고 김선일 배형규목사가 죽었다.

2명만 죽은 것이 아쉽다였다.

국가에 그렇게 손해를 끼쳤는데 어떻게 살아돌아올 생각을 하느냐

화냥년...우리가 힘이 없어서 중국으로 공양보냈던 여자들을 그렇게 욕을 해대며 냉대했다.

우리 스스로 힘이 없어서 지켜주지 못해 일제에 의해 끌려갔던 위안부 할머니들...

우리 누이들. 딸들.

우환 교민들......조선족. 교려인. 탈북민들

아산 진천 주민들이 그렇게 극렬하게 반대?.....

그런 사람들이 있을 수가 있고 감정이 터질 수도 있다. 그러나

언론이 그것을 일반화해서 아산 진천 주민들 그리고 대다수 국민들이 정부를 욕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갈등과 싸움을 붙이고 그리고 권력이나 특정 반대세력을 흔들어 대고

 그리고 자기 이익 챙기는 악마들


. 성도들은 깨어서 기도하라고 신신당부

. 거짓의 영. 악령을 잘 분별하고

. 때가 악하니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5:17

.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자가 되라.

당신이 무슨 말. 무슨 논리를 가지고 입에 거품을 물고 대들어도 사랑이 없으면....

사람이 인간성을 잃어버리면......사람이 짐승으로 살아?.....

우리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 많은 일들을 보고 겪으면서

소설 악령에 나오는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이 무지하고 어리석으면 무슨 말 무슨 행동을 못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란 진리에 목마른 것이 아니라 오직 이해관계 욕망.

아니면 자신이 다치지 않는 일에는 필요 이상으로 그렇게도 예민합니다.

힘이 없어서 정말 억울한 일을 당해 악에 받친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어도 얼마나 얼마나 죄송하고 부끄러운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기적인 생각과 감정에 오버하는 사람들..

지금이 무슨 독재정권의 시대라고 자신들이 무슨 독재정권의 피해자라도 되는 것처럼

정말로 독재정권의 시절에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서 입 한 번도 벙긋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악령이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제목입니다. 당시 러시아 사회를 보면서 거울처럼 그려낸 소설

1860년대 러시아에서 마치 귀신들린 돼지 떼와도 같이 모험적 혁명운동과 서구사상을

기형적으로 받아들여 파괴적인 행동에 광분하다가 결국 스스로 파멸의 구렁으로 떨어지고 마는

당시의 사회상을 그려낸 것이다.

정신병원에 입원시켜야 할 인간들이 무슨 사상가 철학자 지도자행세 하면서 세상을 벌집 쑤시듯이....

20세기 초에 체스턴톤이 보고 있는 것을

19세기 중반 넘어서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에서 이미 목도한 것이다.

러시아의 신도 값싼 보드카 앞에서는 후퇴했다. 백성도 취해 있고, 어머니들도 취해 있고,

아이들도 취해 있고, 교회는 텅 비어 버렸다.

아직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되기 전인 1861년 농노해방 당시의 러시아가 이 소설의 주된 시대적 배경이다.

 

돈과 권력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자기 배만 불리는 기생충들과

그들의 갑질에 짓눌리고 죽어가는 또 다른 기생충들....

어디를 가나 어느 시대에나 가진 자들과 없는 자들의 약육강식의 전쟁터 같은 세상

미국은 노예해방때문에 남과 북이 전쟁....러시아는 황제가 그냥 노예해방 선언을 해버렸다.

그러나 실상 농노 해방이라는 것도 공적인 농노제를

사적인 지주와 소작인으로 관계를 바꾼 것에 불과했다.

농민들은 형편이 조금 향상되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무거운 세금에 허덕였다.

이후 계속되는 공업화 정책으로 러시아는 브루조와 프롤레타라아를 양산하여

사회주의 혁명의 불씨를 키우게 된다. 결국은 공산주의 종주 국가가 됩니다.


악령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은 자살이든 타살이든 결국 대부분 죽음을 맞이 한다.

길을 잘못 들었어, 이제 어떡한담.

아무래도 악령이 우리를 들판으로 내몰아서, 사방을 헤매게 만들고 있다."

. 음란 살인 온갖 음모로 죽고 죽이고 서로 물고 뜯고 엉키고 귀신들린 돼지 떼들처럼

새로운 사상. 새 사람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신세계를 몽환에 사롭잡히지만

결국 자살합니다....남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아무도 벌하지 마라! 나는 스스로가 한 것이다......스스로한 것이

사람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 한다.

만약 신이 있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신의 의지에 놀아나는 꼭두각시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신이 없다고 한다면 그땐 내 의지가 모든 것이지.

자아 의지의 완성을 위해 불가역적 행위로 스스로의 의지로 자기를 죽인다.

이로써 신을 만들어내는 세상을 거부하고

스스로 신이 되는 세상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초인사상 스스로 신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등장 人神

신이 없다면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신이 된다

 인간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서

신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완전한 자유상태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의 노예에서 해방

자살이야말로 인간이 자신의 지배자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

인간의 권력을 절대화하는 자들 하나님 없는 자들의 비극적인 종말을 보여준다.

즉 인간에 대한 사랑이 인간의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없는 악령에 사로잡힌 삶은 바로 도스토예프스끼가 19세기 러시아에서 목격하는 것

20세기까지도 공산주의 종주 국가의 비참한 역사에 대한 예언적 통찰이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청년시절 인간이 이성으로 모든 것을 제어할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가 도래할 것을 기대하였으나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성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10년 가까이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생생하게 목격.....죽음의 집의 기록

인간이 무슨 일을 하든 仁義인의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利益이익을 위해서 합니다.

  =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이를 이해할수가 있을까?

원래 세계는 신에 의해 만들어졌기에 모든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인데

공산주의 진화론 유물론 허무주의는 신을 부정함으로써

모든 것에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던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모든 것에 의미가 없다면

내가 살아야 할 의미도 없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합니다

 

돈은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절반이다. 공중의 뜬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매우 현대적이다.

사람과 사회를 읽는 데 천재였던 그가 돈도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그의 문학의 다른 절반은 예수님입니다.

·치정·살인이 뒤얽혀있는 통속적인 줄거리로부터

삶과 행복의 의미를 예수님의 복음에서 건져올립니다.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거나 살인범의 누명을 쓰지만

 그로부터 구원이라는 한 줄기 빛을 만난다.

돈이라는 천박하고 치사한 토양에서 최고의 영혼 정신성을 탐구한다. 

 흙에서 어떻게 꽃? 물에서 향기?

 

 

악령의 특성     악령들이 할 수 없는 일 = 성령의 열매


첫째로, 악령은 더럽습니다. 2. 8절에 "더러운 귀신"

"더럽다" 는 단어는 단순히 위생이나 청결 상태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염치를 모르고 부끄러운 줄을 모르면 짐승이라고 말했습니다....

뇌를 다쳤거나 호르몬의 분비에 문제가 있는 것과 귀신들린 것은 전혀 다릅니다.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이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8:27.

악령은, 인간이 가장 부끄러운 모습까지 노출하면서 살아가도록 만듭니다.

손을 씻고 마스크르 쓰고 방역복을 입고 필요에 따라서 그렇게 하세요....

그러나 인간성이 더러워진 것은?

 

둘째로, 악령은 사람을 끊임 없이 방황하게 합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집을 떠나 있었습니다. 무덤 주위로

그는 일정한 주거지가 없었습니다. 그는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삶의 자리가 없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악령의 사역을 연구해 보면,

악령은 언제나 자리를 이탈하게 하는 영 위치를 이탈하게 하는 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본래 천사장이 타락하여 마귀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거절하고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14:14) 했을 때

마귀로 변했습니다. 마귀와 함께 타락한 천사들이 귀신들입니다.

. 하나님은 우리들의 거처가 되십니다. 聖殿성전

악령에 사로잡힌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와 본분을 알지 못하고 방황할 때

 그 배후에 악령의 역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셋째로 악령은 사람을 파괴합니다. 악령은 자신의 포로가 된 사람들을 파괴합니다.

악령은 처음부터 누군가를 파괴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영광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악령의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악령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방해했던 어떤 유대인들을 향해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8:44고 말씀하셨습니다.

. 파우스트

네가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게 해줄께 네 영혼만 가져 간다.

자신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개념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세상은 보이고 대단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  신의 능력을 가진 남자가 맨 처음 하는 일?  아래 층 여자 훔쳐보는 일

    사람이 그거 밖에 안 되는데....

"나에게 절하면 천하 만국의 모든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4:8,9

"만약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네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3: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 -5

삼상16:14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을 번뇌케 합니다

 사울 왕은 그 때부터 사람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를 파괴하고 학대하고 심지어 자살까지 하게 됩니다

현대에도 이런 악령의 역사는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넷째로, 악령은 대단히 종교적입니다. 대단히 무당적입니다.

성경은 기독교를 종교라는 차원에서 제시한 일이 없습니다.

종교를 영어로는"religion"이라고 하는데

  "렐레게레"(releger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

그것은 본래 우리를 "속박한다", "묶어 버린다"는 뜻.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리를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유케 합니다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8:32

악령은 때때로 종교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옵니다.

악령은 우리가 가진 신앙의 내용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5: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5: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성경에는 악령이 성경을 인용하고 있는 장면이 많습니다.

마귀는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

악령이 성경을 인용하는 부분을 보면

보통 전체를 다 인용하지 않고 부분만 인용합니다. 섞어버린다.

이단이나 유사 종교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성경 말씀을 적당히 왜곡하는 것입니다.

문맥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발췌해서 논리를 세웁니다.

부정확하게 성경을 인용하면 자칫 악령의 수제자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가 가지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다거나,

주님을 사랑한다거나, 섬긴다거나 하는 차원의 믿음의 지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 지식입니다.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7.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 지식, 정말 주님을 섬길 의도 없이 단순한 지식만을 취할 때

그 배후에 악령의 역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어떤 마음으로 성경 읽고 공부하고 예배드리는지 이 시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악령은 더러운 영. 염치도 모르게 만드는 영. 방황하는 영. 사람을 망가지게 인간성을 파괴하는 영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 지식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거짓의 영.

예수께서 악령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을 때 악령은 "군대"라고 했습니다.

 "레기온"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본래

삼천 명 내지 육천 명으로 편성되어 있는 군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악령은 숫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별별 귀신이 다 있습니다.

귀신이라는 단어는 미신과 무당에 뿌리 박혀 있어서

악령이라는 말이 성경의 의미에 더 가깝다.

육천 명쯤 되는 악령이 한 사람을 포로로 하여 그를 다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이 이런 심각하고 극단에 다다른 상태에서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며 파괴하고 있는 것입니다

 . 사람들이 제어할 수가 없는 어마어마한 힘이 있다....삼손

 

성령의 특성은?

방언하고 입신하고 귀신 쫒아낸다고 하고 병고치고 은사받고 기적과능력을 행하고....

은사주의에 빠지는 사람들........성령님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예수님 같은 사람이 되는 것

 

첫째로, 성령은 사람을 깨끗케 하고 거룩하게 합니다. .....

     ​이게 얼마나 큰 복인지를 간과합니다.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들렸던 자 곧 군대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15).

귀신들이 나가자마자 이 사람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졌습니다.

악령이 이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고 더렵혔으나

주께서 역사하시어 거룩하게 하고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둘째로, 성령은 사람을 안정시킵니다.

성령은 방황을 중단시키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게 하십니다.

귀신 들렸던 자가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모습을 보십시오.

 전에는 무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던 그였습니다.

그는 비로소 자기의 삶의 자리를 찾았습니다. 싸돌아다는 사람들은 좀 조심하세요


셋째로, 성령은 사람을 세워 갑니다. 

 자기를 파괴하던 사람이 이제 자기를 건설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주님을 만났을 때 진정한 의미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온전한 인격 회복이 주님을 만남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넷째로 성령은 참된 삶을 살게 합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 하였으나"(18).

예수님을 만나 온전하게 된 이 사람은 주님과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주님을 따라가기를 원합니다.

그는 단순히 어떤 종교 지식을 갖추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삶, 주님을 따르는 삶을 열망합니다. 성령은 거룩하게 하는 영입니다.

 

악령에 사로잡혔을 때와 정반대의 삶을 삽니다.

악령과 주님은 절대로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사람을 변화시키실 때, 동네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세요

"저희가 예수께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5:17.

왜냐하면 그들은 주님의 위대하신 권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쫓겨났을 때 돼지 2천 마리가 바다에서 몰사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예수가 이 마을에 계속 있다가는 돼지가 남아 나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돼지에 대한 집착 때문에 사람을 새롭게 하고 인간을 구원하는 주님을 거절했습니다.

세상에서 얻는 아주 사소한 유익 때문에 주님을 거절하고 있습니다......악령에 사로잡힌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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