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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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0-06-28 16:18 조회2,33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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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ⅰ. 하나님께 사로잡힌 사람들
노예로 팔려가도 형통. 시위대장의 집에 들어가도 형통.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써도 형통
죽도록 두들겨 맞고 감옥에 들어가도 형통. 기약없는 감옥살이도 형통.
술관원장이 몰라줘도 형통. 바로 왕에 불려 가도 형통. 총리가 되도 형통.
7년 풍년이 들어도 형통. 7년 가뭄이 계속되도 형통.
아버지와 형들을 다시 만나도 형통. 그리고 애굽 땅에 죽어도 형통...
도대체 뭐가 형통이라는 말인가?
창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창39:23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창26:28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이삭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야곱
✎. 믿음의 조상들을 정확하게 읽어낸 사도 바울이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포로된 자 the prisoner of the Lord
엡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
엡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the prisoner of Jesus Christ
골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my fellow prisoner
딤후1:8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nor of me??? his prisoner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 갇힌 자 된 자. 포로 된 자. the prisoner.
자신이 사도가 된 것은 자신의 뜻과 의지가 아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me자신을 his prisoner라고 할 때
바울은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을 꺼내고 있는 것이다.
✎.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행렬에서 맨 뒤에 전쟁포로로
쇠사슬에 묶여서 끌려오는 사람들 = 자신을 늘 연상하고 있다.
➀. 하나님의 전쟁에서....하나님은 누구하고 싸우시는 분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누구하고 전쟁을? 마귀? 악?✘
그런데 나하고 전쟁을?....시68:18-19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➁.나는 포로가 되었다.... 그 전쟁에서 나는 그 분의 포로가 되었다
➜. 이것을 은혜
➂.불가항력적인 은혜
이제 나의 인생이란 예수님의 포로가 되었기때문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받아들이게 된다. 고난도 형통도 No problem.
하나님을 놓치지 않고 예배를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그것이 마음의 중심.
수 많은 형통이 아닌 불통의 현장에서
때로는 오해와 갈등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달라고 부르짖는 것이다.
하늘의 문을 여소서 이곳을 주목하소서 주를 향한 노래가 꺼지지 않으니
하늘을 열고 보소서 이곳에 임재하소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기도의 향기가 하늘에 닿으니 주여 임재하여 주소서
이곳에 오셔서 이곳에 앉으소서 이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소서....
더 이상 떨어질 데가 없는 밑바닥에서도 하늘 문이 열리는 사람들.
➃. 거꾸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사탄이 주는 미끼에 물려서 끌려가는 인생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은 아주 잘 나가는 사람이다고 착각합니다.
타고난 행운아. 로또 맞은 사람? 진짜 형통한 사람, 성공한 사람
ⅱ.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
잠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 기드온의 아들. 첩의 소생 아비멜렉...아버지가 왕이다 라는 뜻
삿9:4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 하고
삿9:5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 피신한 요담이 비유를 들어 말한다.
삿9:8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자신들 위에 왕으로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위에 왕이 되라
9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삿9:10 나무들이 또 무화과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1 나의 단 것과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삿9:12 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삿9: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삿9:14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삿9:15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 내 밑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다 죽여버리겠다.
이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이 어떻게 되는가?
감람나무. 무화과 나무. 포도나무는 왕이 될 생각이 정말 없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왕이 되려는 생각이 진짜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온갖 거짓말을 다 합니다.
그 거짓말을 겸손으로 섬김으로 희생으로 욕심이 없다면서
변장하고 포장해서자신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김일성...인민 해방 전쟁?
하나님께서 겸손하시다는 사실 앞에서 할 말이 없다. 멘붕......➜. 빌2:6-8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 정말 보이면
세상의 가짜 왕들이 무슨 말을 해도 다 속이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계획들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이
겸손한거야 아니면 가시나무 아비멜렉이야? 겸손이 뭐냐고?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ⅲ. 관용하는 사람이 잘 됩니다
마음에 맞고 서로 통하고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데 갈등이 있을 리가 없다.
세상에 그런 관계나 만남은 없다. 사람 사는 곳에 갈등이 없는 곳이 없다.
부부간에도 부모 자식간에도 형제간에도 갈등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제가 예를 들지않아도..............
서로를 감시하고 의심하고 고발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는 사회......공산당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사회는 건강한가? 교회는 천국인가?
돈권 권력이 우상시 되고 물량주의 성공주의 출세주의가
먹혀들어가는 곳은 그 어디라도 지옥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은 구성원간의 신뢰信賴- Trust이다.
경제를 살리는 일이나 보다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일이나
그 뿌리 기초는 信賴- Trust. 가정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가 대화가 되고 소통이 되고 신뢰할 수 있을 때 잘 됩니다.
정부 그리고 국민들 사이의 소통이 되고 신뢰를 쌓을 수 있다면 다 잘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국가나 구성원간의 信賴보다 더 소중한 보물 가치는 없다. Yes We Can!
죽고 사는 일이 아니면 싸우지 말자.
지옥가는 일이 아니면 내가 지고 내가 양보하고 말자.
그러면 관용은 무엇인가?
신뢰할 수가 없는 사람에게 신뢰할 수잇는 그림을 그려주고
기다려주고 잘 할 수있다고 다시 한 번 세워주는 성품을 관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以靜制動 以定制動 이정제동
고요함. 확정함으로 움직임을 다스린다....무술에서 사용하는 원리.
말을 많이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요.
말 타고 퍼득거리고 뛰어다닌다고 일이 되는 것이 아니다.
논쟁을 하고 시비를 가리고 소리를 지르고 싸운다고
이기고 평안해지는 것이 아니다. 말 많으면 진 것이다.
말 없이 잠잠히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
그리고 가만히 세상과 나를 직시해 봐.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어늘-사30:15
종족간의 갈등.....영국. 스코트랜드. 웨일즈. 아일랜드......
1994년 르완다 내전. 후트족과 투치족 80만명이 살해. 미얀마 군사정권
199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폭동이 일어나 중국 화교들이 .....러시아의 유태인들
'나이지리아의 유태인들'로 알려진 이보족은 근면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진취적인 '상인 소수집단
인도의 영국인들, 앙골라의 포르투칼인들, 페루의 스페인 상류층들
미국과 중남미국가들간의 갈등. 중동의 회교국가들과 미국과의 갈등
증오와 분노로 수많은 민족들간의 자존심이 걸린 갈등
필리핀에서 부를 축적하고 독점한 소수의 중국인으로 살다가 하녀와 하인에게 피살된 사람들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은 이 지구상 어디에나 갈등과 분쟁이 있다.
그 갈등의 본질은 돈과 권력 .민족간 계층간 개인간의 자존심을 건 우열의 싸움.
이런 국가 간이나 종족간 계층간 모든 갈등과 대립을 풀어가는 일에
핵심적인 단어가 관용입니다.
돈이 있고 자유가 있다고 사람들이 알아서 좋은 사회나 나라를 만들어 가느냐?
아무리 돈이 있고 자유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가 아니라 지옥
세계인 석학들이 써놓은 책들이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돈도 중요하고 민주주주의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과 사람사이에
수용성. 신뢰와 관용. 사랑과 친밀함 이런 성품이 없으면 그 어떤것도 도움이 안된다.
페르시아. 헬라. 로마, 당, 몽골,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과 같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전지구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국가들의 성장과 몰락의 과정을 보면 공통적인 것은
대단히 다원적이고 관용적인 특성이 있다.
이러한 제국들이 쇠퇴를 맞게 된 원인은 관용의 실종과 외국인 혐오,
그리고 인종적 ․ 민족적․ 종교적 '순수성'에 대한 외골수 편집증이 그 원인이 되었다.
자기들만 유일하고 자기들만 특별하고 자기들만 순수하고 자기들만 의롭고
자기들만 선택된 백성이고......자기들은 문명인이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다 야만인이고
다른 나라는 다 이방인들. 지옥 불에 들어갈 것들 인간 쓰레기들.....
관용의 햇불이 꺼지면 어느 시대에나 제국은 몰락한다.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불행해진다.
인종․ 종교를 따지지 않고 인재를 끌어들여 쓴 능력이
몽골과 미국을 동시대 초강대국으로 만든 비결
자기와 다른 사람들. 다른 방식들, 생각들 인정하지 않고
귀신들렸다든지 마귀새끼들 사탄의 무리들....
가장 관용하고 너그러운 종교가 기독교인데 가장 편협하고 독선적인 사람들이 된다...
불신자들에게 전하는 복음의 메시지에는 항상 지옥의 고통에 관한
무시무시한 경고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불신자들에 대하여 영원한 지옥이 예비되어 있어서 기쁘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기들 수준에 안 맞으면 막말을 해대는 사람들.....
✎. 악을 악한 자들을 방관하면 공범
죄는 미워해야 합니다. 이런 죄. 사악함이 아니라면....
상대방이 나와 생각이 다를 때 그의 성격을 뜯어고치기 위해
강제와 폭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대신 차이를 용인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관용이야말로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이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딤전 3:3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그래서 '최고의 신앙은 최상의 관용'이라는 말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내게 허용된 자유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여자와 남자는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 차이를 인정하고 먼저 배려하는 것이 신사요 남자다움입니다. 남자답다?
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 사람들은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당할 수 있는 모든 손해는 다 당하고 살았습니다.
법적으로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했습니다. 재산을 몰수당하기도 하고,
자녀들이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기도 하고,
때로는 살고 있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정처 없이 유랑생활을
해야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심지어 끌려가서 남모르게 죽임을 당하는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당할 때 자기를 핍박하고 괴롭히는 사람을 향해
적의를 품거나 분노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용서하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태도를 관용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다시 말해 오늘날 나와 마음이 잘 안 맞는 사람을 품는 그런 사치스러운 관용이 아니라,
나를 정말 괴롭히고 나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사람을 품는 넓은 마음을 일컬어
관용이라고 했습니다....정말 말이 안되는 상황입니다.
기독교인들이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할 말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을 못박는 사람들
'긍휼은 함께 살아가는 생활방식이다.'입니다.
혼자 살려면 긍휼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함께 어우러져 살려면, 서로에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온 세상을 품을 수 있는 치유의 공간으로 우리의 마음을 넓게 확장하는 것이 긍휼이다.'
모든 사람을 품고 그들의 심신을 고쳐주는 공간,
이것이 바로 긍휼로 넓어진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을 때 누구든지 관용할 수 있습니다.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 임이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초보 운전자는 뒤에다 왕초보 딱지 안 붙여도 그냥 압니다. 여유가 없습니다.
빨간 불이 자주 켜지고 속도조절이 부드럽지 못하고 양보운전이 없습니다
운전 시작한지가 10년이 다 됐어도 아직도 직진 밖에 모르는 운전자
초 혜왕이 찬 채소 절임을 먹다가 벌레가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으나
그것을 그냥 삼켰다는 것입니다.
관용은 우리 국민들이 함께 같이 살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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