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자화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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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7-07 16:30 조회2,75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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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자화상 3
창세기 6:13-22
다른 사람을 잘 아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고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그 이상으로 총명한 사람이다.
그리고 남을 이기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고
자신을 이겨내는 사람은 그 이상으로 강한 사람이다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 가장 총명한 사람이요,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현대인에게 특징지을 수 있는 성격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현대인은 우주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으며,
세상에 대해서는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앞으로 점점 더 많이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앞으로 점점 더 무식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감정적인 면에서 자신을 알고 있습니다.
이성적인 자기 성찰을 통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 압니다.
우리는 자신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자기 성질이 어찌 어찌하다라고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육체적으로 자신을 압니다.
나는 젊었다, 나에게는 건강이 있다, 나의 외모는 어떻다
자신의 능력 재능을 잘 압니다. Eh 다른 사람들이 인정해주는 내가 있습니다.
남들이 예쁘다고 하면 예쁜 줄 알고,
남들이 나를 안다고 하면 정말 아는 줄로 믿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당신에게는 능력이 있다. 당신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에게 또는 그 회사에 정말로 내가 필요한 것처럼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는 자기, 그 속에서 자기를 발견한다.
그러나 사실 이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짜 내가 누구?가를 아는 것
이것이 본질이요 참된 존재의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옷을 입었다가 벗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옷을 입었건 벗었건 간에 내 몸은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는 자동차에 탔다가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는 존재는 그대로 있습니다.
우리는 학창시절 무척이나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것으로 내 가치를 높여보기도 합니다마는 나이만 들어보십시오.
건망증이 생겨서 그간에 익혔던 것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남는 것은 누렇게 절은 옛날 졸업장뿐입니다. 머리 속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추억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사는 초라한 자신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니 사람이 뭘 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1시간 전에 한 일도 가물가물합니다.
사회적 지위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지위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순간이 오면 뒷사람에게 내놓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정년퇴직을 하고 그 무료함을 이기지 못해서
퇴직과 함께 몇 달 못살고 죽는 사람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사회가 인정해주는 자기밖에 몰랐던 사람입니다.
'나'라고 하는 본래적 존재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회가 필요 없다고 하는 순간,
정말 나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되었다고 믿고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바람 빠진 축구공...끝..끝.끝
나 라는 영적 존재가 건강하고 온전하게 서 있을 때에는
남이 내게 하는 어떤 말도 사회적 지위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영적 존재입니다. 이것이 건전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 존재에 대한 자기 인식이
모든 것의 우선이요 근본이요 궁극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떠나고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내 존재는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흔들리는 자는 시원치 않은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으로 충분한 사람. 혼자라는 것을 견디어내는 정도가 그 사람의 신앙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이 말속에 들어있는 진실.
우리가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을 속이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를 가졌든, 얼마나 알든 간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먼저 정직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를 못하고 자기 자신을 번번이 속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듯 한 번 두 번 속여 버릇하면 나중에는 어디까지가 사실인지조차 모르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자기가 자기에게 속게 됩니다.
『그 여자는 숨 쉬는 것 빼고는 다 거짓말이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거짓으로 꾸며진 자신을 참모습으로 알고 살다가
어느 순간 그 존재가 펑하고 터지면서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나의 존재가 드러나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형편이 없었던가'하고 깜짝 놀라게 됩니다.
오랫동안 자기가 자기를 속여 왔기 때문에 허상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위선과 허세의 정도를 넘어 우리는 자기 앞에 정직해야 합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이를 먹어 갈수록 두 종류의 사람이 보입니다.
하나는 자신을 고쳐갈 수 있는 사람.
다른 하나는 자기 생긴 대로 밖에는 살 수가 없는 사람
사람마다 인간성 자기 됨됨이의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그 그릇으로 자기만의 기준으로 살아갑니다.
다행히 그 그릇이 넉넉한 사람들은 또 그런대로 살아갑니다.
문제는 그 그릇이 작아서 본인도 힘들고 다른 사람도 힘듭니다.
이런 갈등이 어디나 다 있습니다.
이런 자기 자화상을 알고 자신을 고쳐가며 넉넉해지는 사람을 가르켜서
공부할 줄 아는 사람
죽을 때까지 자신을 고치지 못하고 생긴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공부가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달려들어 붙들고 성령께서 품고 씨름하시면 달라집니다.
➜. 토기장이의 손에 드려진 진흙
청소년의 때나 젊은 시절에는 자기답게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이상과 꿈을 가집니다. 멋!
그리고 한 참의 세월이 지나고 나면
자기답게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꿈이 결국은 자기 감옥
꿈과 소망이 되었던 자신을 고치지 못하고
어쩔 수가 없는 절망이라는 자기 감옥을 살아가는 자신을 본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생긴대로 밖에는 못산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성령의 능력이 역사Work하면
사람이 정직해지기 시작합니다.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깨지기 시작합니다.
둘째, 다른 사람들 앞에서도 내 자신에 대하여 정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동시에 자기의 유죄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절대로 자기의 우월감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특권을 인정하기보다는 거부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실수할 때에는 나도 그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사회적 지위가 높고 낮을 수는 있습니다마는
사람됨의 본질은 똑같은 것입니다.
베드로도 "다른 사람이 실수하는 것을 보면서 나 자신을 살피라"고 말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습니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목사님이라고 신부님이라고 위인 영웅 성인 군자라고 더 거룩하지 않습니다.
6․25때 그 때에 우리는 미군들이 먹다 남긴 잡동사니 음식을 모아 끓인 꿀꿀이죽도 마다않고 먹었다.
담배꽁초 같은 이물질이 들어 있어도 개의치 않고 맛나게 먹었습니다.
그것도 없어서 못 먹던 시절이 우리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어찌해서 이리도 건방져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먹는 것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이 그렇고 신앙이 그렇습니다.
욕망과 탐욕이라는 기차는 멈추는 법이 없다.
교만이라는 전차는 가속도가 붙으면 아무도 멈출 수가 없다.
개인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다. 막장 끝을 봐야 끝난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알아서 멈추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들뿐이다.
정상에 선 사람들이 밑바닥으로 내려온다.???
남의 이야기가 어떻게 남의 이야기일 수만 있으며,
남의 실수가 어떻게 남의 실수일 수만 있습니까?
수많은 사건 사고.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들.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지만 역시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살하는 사람들. 주위를 둘러보십시오.
죽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한둘입니까? 나는 아닙니까?
다른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내 얼굴입니다. 어느 순간에 나도 그럴 수가 있습니다.
세 번 째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이 말은 참 쉽지 않은 말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보여야 나의 나됨이 보이는 것이고
그 다음에 정직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 생명의 주인. 성품이 의롭고 선하시고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겸손하신 분.
사람은 첫째 물려받은 선천적인 것이 있습니다.
둘째, 얻어진 바가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노력해서 지식과 경험을 얻었습니다. 재산과 재능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물려받은 바가 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 째 여겨지는 바가 있습니다. 수고는 적었는데 댓가는 컸습니다.
내가 한 것에 비해서는 너무 과분하게 대우 받고 있습니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은혜로 주어지는 이 부분에 대해서 바른 평가를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루어진 일을 놓고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댓가가 적다고 불평까지 합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를 기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알고 보면 얼마나 과분하게 거저 얻어진 부분이 많습니까?....
그러나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고 다들 그렇게 사는데?
이런 것들과는 비교할 수기 없이 더 어려운 일이있습니다.
정작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할 부분은
자신에게 아무 생명이란 것도 의미나 목적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을 보면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해하는 이유를 알면서
거듭 거듭 확인하는 것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선언..... 이미 다 죽었다.
사람이 정직한 자기성찰을 통해서 마지막 똑똑하게 확인하는 인간이란 이미 끝난 것들이구나.
이미 하나님의 심판이 작정되어 있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것 외에 아무 소망이 없다는 사실.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 므비보셋
죽은 개만도 못한 자< 죽은 개 같은 자 <살아있는 개 < 왕의 식탁 < 왕의 아들
옳고 그름의 분별이나 어떠한 깨달음도 없이 막연하게 무작정 믿어버리는 盲信맹신
이성을 잃고 덮어놓고 믿는 광신狂信도 있습니다.
혼미하게 무엇인가 찾아헤매는 미신迷信도 있다.
참된 믿음은 사실에 근거하고, 역사성에 근거하고, 진리에 근거합니다.
이성과 지성이 함께 가는 믿음이 정상적인 믿음이다.
하나님 앞에서 내 실상을 내가 알면서부터 믿고, 믿으면서부터 인정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참된 자기 존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상태인지.
죄인이란 말의 내용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구원을 알겠습니까?
죄와 허물로 이미 죽은 나입니다. 세상도 나도 이미 끝났고 죽은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보면서 참 인간 참 생명을 보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아, 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요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11: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라는 구원의 방주를 짓는 일.
이 일밖에는 우리가 해야 할 진짜 일은 없는 것이다.
라멕이 777년을 살면서 자식을 낳았다고 써져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노아 외에 다른 이름이 없다
창5:29 이름을 노아라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유일한 위로 안식 소망입니다.
에녹이 300년을 므두셀라와 함께 살았고
므두셀라라는 600년을 노아와 함께 살았다.
노아는 할아버지에게 증조할아버지 이야기를 들었다.
창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창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다 끝난 것. 아무 의미도 소망도 생명도 없는 것을
붙들고 씨름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에녹에게는 므두셀라를 통해서 심판을 알게 하셨지만
노아에게는 에녹에 주시지 않았던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방주 설계도면입니다. 길이 300m 넓이 50m 높이 30m 상중하 3층으로 50cm 창문
방향키도 없고 동력도 없는 상자 같은 멍텅구리 배. 뚜껑을 덮어버린
자세한 내부 설계가 아니다.
언제 어디에다 얼마동안의 제작기간이 걸렸는지 언급이 없다. 왜?
중요한 사항이 아니니까. 수많은 이론이나 설명이 아니다.
아주 단순한 사실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노아가 방주를 지었고
홍수로 심판이 있을 때에 구원받은 유일한 가정
창7: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창7: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 창6:22
창7:7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창7: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창7: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창7: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 노아가 평생에 한 가장 중요한 일 방주를 지은 일....
내 인생을 한 마디로 압축요약하면?
오늘날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성경을 품고 ..................
노아는 방주 설계도면을 품고 사는 것처럼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그려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고 새 하늘 과 새 땅이라는 방주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 성경은 글자로 써져 있습니다.
그러나 글자로 써진 것만 읽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침묵하고 있는 것도 들려집니다.
보이고 들리는 느껴지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홍수로 심판하시고 노아는 방주를 짓고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
글자로 써지고 들려지고 보여 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을 듣고 보고 느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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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4: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마24: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24: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마24: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마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24: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마24: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벧전3: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로마서 6:6-11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골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빌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3:7 그러나 내게 유익하던 그 모든 것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다 버렸습니다.
빌3:8 더구나 내가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여기는 것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훨씬 더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내가 그 모든 것을 배설물 쓰레기처럼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3:9 그분과 완전히 하나가 되기 위한 것입니다.
에녹의 눈에 무엇인가가 보이고
그 보여지는 것이 에녹의 눈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오늘날도 에녹의 후예들은 어디론가 그곳을 향하여 뒤도 안돌아보고 다들 가고 있습니다.
장차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알고 있습니다.
지체하지 않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 정체성이 있습니다. 방향감각이 살아있습니다.
생명은 살아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살아있습니다.
세상과 시간이라는 온갖 사슬과 결박을 끊어내고 영원을 향해서 날아오르는 것입니다.
그게 방주를 짓는 노아의 모습입니다.
창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계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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