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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자화상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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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7-14 17:15 조회2,722회 댓글0건
설교자 : 김준봉 목사
설교본문 : 창세기 11:1-9
설교일자 : 2019. 07. 14

본문

 

 

                                    성도의 자화상 4

                                                                         창세기 11:1-9  고전 10:1-11

지식이 없는데 아는 것이 없는데 생각을 바르게 방향을 잡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지식이 가능하려면 본다는 것이 중요한 요소. See는 곧 안다는 말과 동의어

본다는 일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보고자 하는 분명한 대상물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로, 대상물을 보는 주체가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이 있어야 하고, 내 눈이 밝아야 합니다.  내가 눈을 뜨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상과 주체가 있다 하더라도 조명하는 빛이 없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밝은 빛으로 조명할 때에 비로소 우리는 물체를 볼 수 있고. 

그 물체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어두운 데서는 안 보이던 것이 밝은 곳으로 나가면 보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의 경우에는 문제가  다릅니다. 

내가 나를 보고자 하나, 내가 나를 볼 수 없습니다. 

내 귀와 내 눈이지만 나를 보지 못합니다. 

반사되는 물체에 나를 투사시킴으로써 비로소 보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 반사되는 대로만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나를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마음의 거울이 흐려진다든가, 더러워진다든가 깨어진다면 나 자신을 볼 수 없습니다. 

보인다 해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빗나간 자기 인식을 초래합니다.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 자기도 모르는 엄청난 과오에 빠진다는 말입니다. 

탐욕과 교만으로 자기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것들만 듣고 봅니다. 자기 감옥.

 

이천 년  전에 기록된  성경말씀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고전 13:12" 

거울이 훤하지 않고, 왜 희미합니까? 이천 년 전에는  지금 것과 같은 거울이 없었습니다. 

돌을 매끈매끈하게 갈아서 거기에 비추어보든가, 

물을 놓고 그 물에 비추어보던 것이 거울의 역사입니다. 당연히 희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유리에 수은을 칠하여  만든 오늘날과 같은 거울은 13세기부터 만들기 시작하였고, 

우리가 이렇게 사용할 수 있도록 보편화된 것은 16세기부터입니다. 

거울이 아니고는 우리 자신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거울의  이치가 참으로 신비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울의 역사가 별로 길지 않습니다. 거울에 얽힌 민담 하나가 있습니다. 

시골의 어느 선비가  과거를 보러 상경하였다가 낙방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선비는 아내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방물가게를 돌아다니다가

예쁘게 생긴  거울을 하나 샀습니다.

 생전처음으로  '거울'이라는 물건을 본 시골 선비는 신기하고 놀랍기 짝이 없습니다

. '이것으로 사랑의 증표(證票)를 삼아야겠다.  그 사람이 보면 참  좋아할 거야.' 

이런 생각으로 집에 왔는데, 때마침 아내가 방에 없어 

벽에 그것을 반듯하게 걸어두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 사이에 아내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벽 쪽을 보니 예쁜  아가씨가 있어요. 

거울을 모르는 아내는 순간적으로 '웬 아가씨야?  

이 양반이 과거 보러 서울에 가더니 첩을 하나 얻어왔나 보네. 이런 몹쓸 양반이 있나?'

 남편에 대한 원망과 불평으로 아내는 목 놓아 웁니다. 그 소리를 듣고 시어머니가 달려왔습니다

. "왜  그러느냐?" "그이가 어디서 예쁜 색시를 첩으로 데려왔어요."

 "뭐, 뭐라고?" 그러면서 시 어머니는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웬 할머니가 자기를 보고 있습니다.

 "예쁘기는커녕 어디서 할망구를  데려왔구나. 같은 값이면 젊고 예쁜 색시를 데려올 것이지, 

뭐 저런 할망구를 데려왔을꼬!" 이제는   두 여자가 같이 웁니다. 

삽시간에 소란스러워진 방으로 영문을 모르는 시아버지가 들어왔습니다. 

거울을 보는 순간, "아이고 아버님, 그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하며 

넙죽 엎드리어 절을 합니다. 자기 얼굴이 선친의 얼굴과 꼭 닮았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가능한 이야기가 아닙니까?  

생전처음으로 거울을 보았기 때문에 자기의 얼굴이 자기의 얼굴인 줄  몰랐던 것입니다.

 

나를 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 보통 말이 아닙니다.

「손자병법」에서도  '먼저 나를 알고,  그리고 적을 아는 자는 百戰百勝이다 라고 했습니다. 

나를 모르는 자는 나가보나마나 패전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인생 백년 천년이 무슨 의미?

자기 성찰    

나는 누구? 구더기 벌레. 더러운 티끌. 배설물 썩은 거름덩어리.그림자. 안개. 이슬. 연기. 하루살이

                죄인? 어디까지 어떻게 죄인인가? 죄 덩어리 거짓말 덩어리.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회개를 하지 반성문 쓰는 것이 회개인가?  

누구 말. 설교?가 아니라 내 눈에 보여야 내가 뭘 하든지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성경에서는 우리 스스로 알 수  없다고 단정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흐려졌고 눈이 어두워졌고, 거울이  깨졌고, 거울이 변질되어서

 나 자신을 볼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전적인 타락입니다. 

내가 나를 볼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알 수 없습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무슨 회개가 나오겠습니다. 반성문 하나 쓰고 말지. 

성령의 역사로, 성경의 빛으로 성경의 가르침으로만 나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거울이십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 사람으로 오셨는데 하나님의 얼굴

예수님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해야 나는 사람도 아니구나 하는 자각이 옵니다.

예수님의 진실 예수님의 신뢰 예수님의 아버지 사랑이  예수님의 사람 사랑......

우리의 거울입니다

에수님의 그 사랑에 나를 비추어보면 

나의 사랑이  얼마나 악하고 더럽고 허위이며 거짓인가를 알게 됩니다. 

 

나의 믿음을 알고 싶습니까? 신약 성경 야고보서를 읽어보십시오. 

                 나의 믿음이 얼마나  죽은 믿음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내 인생의 현주소를 알고  싶습니까? 창세기 시편과 잠언을 읽어보십시오. 

앞으로 전개될 내 생애를  알고 싶습니까? 베드로전서를 읽으십시오. 

겸손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성경을 구구절절 읽어보십시오. 

성경이 사무치도록 읽어지는 은헤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내 얼굴, 내  마음, 내 인격, 내  과거, 내 미래를 알게 됩니다. 

 

     성경 말씀에 비출 때에

  성령이 역사할 때에 나의 참모습을 바로 볼  수가 있습니다. 

주님 앞에  무릎을 꿇어 회개함으로 거듭날 때에 

그 심령이 밝아져 비로소  나를 바로 보게 되고,   

하나님을 바로 보게 되고. 이웃을 바로 보게 됩니다. 

 

나 자신을 보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입니다

타인에게 투사된 내 모습을 통해서 나를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심은대로 되돌려 받습니다. 거울의 이치와 똑같습니다.  

가족이 내 얼굴입니다 아내가 내 얼굴. 누구를  원망할 것입니까? 

거울을 보십시오. 내  이웃이 바로 거울입니다.  100%가 아니라도 대충은.

예수님께서는 "먼저 네 눈  속의 들보를 빼어라마  7:5"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마7:3 

"먼저 네 눈 속의 들보에  관심을 가지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마 7:5"라고 하십니다.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말이 이렇게 

자신을 볼 줄 알고 자신을 살피고 자신을 고칠 줄 알며 살아가야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디다 자신을 비추어보아야 자기 얼굴이 보일까?

짐승 동물입니까? 

창조주 하나님입니까? 

귀신입니까? 

천사입니까?

 한 조각 구름입니까? 바람입니까? 연기입니까? 하루살이?

이것은 아니다. 그것부터 걸러 가보세요.  

사람에게 그런 부분이 현실적으로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것은 아니다. 하는 것부터.

가장 가까운 닮은꼴을 찾아보세요...........

하나님을 닮기는 닮았는데 하나님은 아니다.

가장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답은 짐승처럼 살아서 안 된다.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천벌을 받는 것이다

           ➜. 한조각 구름이고 바람이다. 허무주의.  

 

성경을 읽다보면 

 내 인생의 현주소를 확인하게 되고 내 자화상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안목. 영원에서 시간 역사를 보는 통찰력도 생기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이 피하여 숨어버리는 인간. 

동생을 돌로 치는 형. 

홍수로 심판 받은 사람들. 

불순종으로 버림받고 망하는 인간들

아무 일도 없이 잘 먹고 잘 살다가 지옥 가는 부자도 있습니다. 

본을 삼을 사람을 본 사아야지.

인간의 이상과 꿈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짐승같은 사람?

마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엡5:1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엡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 인간의 이상 꿈 비젼 소망 장래.........어마어마한 이야기.

 


노아 홍수 이후 역사는 또 다시 막장으로 치닫습니다....그게 바벨탑 사건입니다.

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350년을 더 살았습니다. 

홍수 후 101년 만에 벨렉이 태어납니다. 이 벨렉의 때에 바벨탑 사건과 

지구. 땅덩어리가 큰 압력으로 갈라졌다는 기록이 창세기 10장에 나옵니다. 

셈의 아홉 번째 후손이 아브라함인데 아브라함이 60살 정도까지 노아가 살아 있었습니다. 

 

창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 창11:3-4절

에녹이 이 세상이 이미 끝난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 인 줄 알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모습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명하신대로 방주를 지어가는 모습 

이에 反하여

바벨탑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말하면서 

우리 이름을 내고 우리 흩어지지 말고 우리 세상 한 번 만들자. 

하늘 꼭대기까지 올라가 보자. 어떻게 할까?

 여기는 시날 평지야 진흙을 구워서 벽돌을 만들고

아스콘으로 달라붙게 만들어서 견고하고 튼튼하게 무너지지 않게 지어보자....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뵈옵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 모세와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그 금송아지가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낸 우리 하나님이라고 하는 미친 백성들

출32: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자기들을 위한 자기들의 신을 자기들이 의논해서 만들어.


➀. 하나님의 명령. 말씀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없고 하나님이 주신 꿈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들의 생각과 

       『서로 말하되 자』 자기들끼리 의논해서 결정하면 그만입니다.  

       하나님 그림자도 없습니다.

 

바벨탑이 지어질 때 노아는 살아있었습니다. 

바벨탑 사건이 일어날 때 노아도 살아있었고 셈도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이상 노아와 셈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창 11:2-4절을 보면 바벨탑을 쌓는 사람들이 

더 이상 노아와 셈의 말을 듣거나 의견을 묻지 않습니다. 

영적 지도자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서로 말합니다.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창 11:3. ...

➜.예수님을 떠 올리면 정 반대.

 

그러나 자기들끼리 서로 말한다고 해도 언제나 주동자가 있는 법입니다. 

그 사람은 니므롯이었다. 함의 아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창 10:8~10. 

니므롯은 바벨탑 사건이 일어날 때 사람들에게 위인 용사 영웅 취급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의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아와 셈의 말을 듣지 않고 니므롯의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 없이 자기들 맘대로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인간이 - 약 10억으로 추정. 

물에 빠져  죽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불과 100 년이 지나자 

      또 다시 자신의 후손들이 큰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없이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6・25 전쟁이 끝나 60여년이 지난 지금 세대들은 벌써 6・25 전쟁을 잊어버렸습니다. 

출애굽의 그 거대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전쟁을 40여년이 지나니까 

다음세대는 우리는 몰라요그런일이 있었대요? 에이 무슨 말씀을.....

➜. 삿3: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하나님의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➁. 자기들을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뜻 같은 것은 안중에 없습니다.

    우리 이름을 내자.....

   예수님의 이름은 생각도 안하면서 자기들 이름 석자는 그렇게도 중요합니다.

 

➂. 하늘 꼭대기까지 닿아보자고.....

   사람이 어리석어지면 만용이 생깁니다. 니므롯이 그렇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100층이 넘는 건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돌기둥 하나 세워 놓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벽돌을 쌓아서 하늘에 닿으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유치한 생각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벗어나면 인간의 모든 종교와 철학 사상들이 

바벨탑의 사상과 똑같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독교라는 이름표를 달고도 인간이 뭘 잘 할 수 있다고 선동하는 설교들 홍수를 이룹니다.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창 11:5.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창 11:7. 하나님께서 우리가.....

   ✎.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복음은 바벨탑 사건과는 정 반대입니다. 

   지렁이가 길을 지나면서 코끼리한테 너 나를 밟기만 해봐라.

    코끼리는 지렁이를 밟은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갑니다.

    피조물이 창조주를 거역하는 것은 어리석은 정도가 아니라 그냥 끝. 

   하나님이 무슨 장난인줄 아나?

 

➃. 흩어지지 말자고......

니므롯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 히틀러....

철저한 내부결속이 없으면 체제  유지가 불가능. 

독재자나  전체주의 국가가 다 그렇습니다. 

창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행1:8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마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땅 끝까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 아담 노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같은 그림이다.

  가서 생명을 나누고 희생하고 사랑하고...서로 돌보고 섬기는 것입니다.   

 때려잡고 노예를 삼고 착취✘

  

사이비 이단. 사이비 종교 사교.  

우리 시대는 이단만큼 무서운 또 이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중심의 인본주의입니다. 하나님 죽었다 아예 처음부터 없었다. 

하나님이란 인간의 유아기적인 행태이다. 

이제는 이렇게 발달한 인류 문화 과학 문명의 건설자이다. 

고대 원시시대의 퇴행적인 모습을 왜 또 반복? 

이제는 인간이 주체이고 인간이 하나님이고 인간이 초월자이다. 

진리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인본주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불가능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자기들을 위해서. 자기들의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공산주의가 그랬고. 과학주의가 그렇다.

인본주의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격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이것을 믿음으로 포장해서 변장한다.

믿음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하늘의 보좌도 움직인다.  

이런 말들에 많은 사람들이 이끌립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잘 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게 만들고 힘이 되고 내일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니므롯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 히틀러에게 사람들이 괜히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 중심의 생각들이. 이 시대의 정신이  고대의 바벨탑보다 더 무서운 바벨탑입니다.

 

염려가 많은 것도 바벨탑을 쌓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상처를 잘 받고 절망을 잘하는 것도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나가다가 결국은 교만한 사람이 되어 망하는 것이 바벨탑을 쌓는 것입니다. 

바벨은 혼란이라는 뜻 . 

창세기의 바벨탑은 계시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의세력의 총칭입니다. 

요한 계시록 18장 전체가 바벨론의 심판입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과 계 18장을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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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18: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18: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18: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18: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18:7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8: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고전10: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고전10: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고전10: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10: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고전10:9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고전10:10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고전10: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고전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리들끼리 하나가 되어서 성공하는 것이 영생이 아니다.....

12: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7: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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