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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자화상 5 - 아브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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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7-21 19:36 조회2,751회 댓글0건
설교자 : 김준봉 목사
설교본문 : 창세기12:1-9
설교일자 : 2019. 07. 21

본문

 

 

                          성도의 자화상 5   -    아브라함       

                                                                         창세기12:1-9

정체성

어떤 소년이  숲속에서 놀다가 처음 보는 이상한 새알 하나를 주웠습니다. 

이 이상한 알에서 나온 새는 부리가 뾰족하게 생겼고 깃털은 검은색입니다. 

이 검은 새는 흰 거위새끼들을 따라 뒤뚱뒤뚱 걸으면서 함께 놀며 자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독수리가 나타나서 저들을 위협합니다. 

어미거위는  빨리 피하라고 난리를 칩니다. 

거위새끼들은 뒤뚱거리면서도 잘 도망가는데 

검은 새는 날갯죽지가 커서 빨리 도망갈 수가 없었다. 

 그래도 계속 뒤뚱거리다가 급한 김에 날개를 쑥 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횡하고 높이 날 수 있었습니다. 

그 새는 독수리  새끼였던 것입니다. 

독수리였으나 거위 속에서 거위처럼 살았습니다.   

➜. 오리나 거위 백조는 서로 같은 과.

그러나 독수리는 거위하고는 전혀 이질적입니다. 

미성숙하고 부족한 것과 다양성차원 다름은 서로 다른 말입니다.. 

 ➀. 사람은 자기 정체성을 안다는 것 중요

 

미성숙

 ➁. 자신의 미성숙함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자기성찰을 통해서 자신의 허물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두 아들이 엄마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다섯 살이고 하나는 세 살인데, 

엄마의 생일날이 돌아오자  동생도 형 따라서 엄마 선물을 사드린다고 부산을 떱니다. 

저금통을 깨뜨려 그간에 모아 놓았던 돈을 가지고 백화점에  물건을 사러 나갑니다. 

엄마는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큰 아이는 그래도 생각이  있어서 엄마의 루즈를 하나 사들고  왔습니다. 

엄마가 아침마다 바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둘째아이는 장난감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게 제일 좋아 보이니까 

엄마가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을 한 것 입니다. 

이게 바로 미숙이라는 것입니다. 

엄마를  위한다면 엄마가 기뻐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는 제 시각에서, 자기중심적 생각으로 사랑하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 장난감을 가지고 엄마 앞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문제는 미숙함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미숙함을 가지고는 이 험악한 세상. 악을 이기수가 없다.  

미성숙함 그대로는 늘 위험 앞에 노출됩니다.  

➀. 쉽게 유혹에 빠진다. 성숙한 자는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숙자에게는 항상 위험이 널려 있습니다. 

     스스로 하나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환경이 다 그에게는 위험합니다. 

➁. 유혹에 빠지고, 세상 풍조에 흔들리고 빠져들어 갑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미숙하기 때문에 그는 늘 세상 유행이 좋습니다. 

남들 다 하는데 왜 나다고 못하냐.....이렇게 머리가 돌아갑니다.

 남들 다해도 나는 내가 가야할 길이 있다. 

성숙해지면 그런 분별력과 용기가 생기는데.....

성숙하지 못하면 넓은 문 넓은 길이 더 좋습니다.

오히려 남들도 다 하고 다니는 그쪽에 항상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서적  성숙」.... 성숙한 인간의 생활 양식과 철학 8가지

➀. 독립적이고 책임을 질 줄 안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의존하는 게 아니요, 끌려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할 줄 아는 독립적 판단력을 가지고 특별히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내 책임은  내가 집니다. 남의 책임도 내가 집니다. 

옛날 사람들은  12살 아이를 장가보내도  책임을 질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나이는 어리지만 아주 어른다운 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나이 삼십이 넘어가지고도  스스로 분별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 힘듭니다. 

자기 성격 나빠진 게 아내 때문이라고 합니다. 내 책임은 내가 지고 남의 잘못도 내가 책임져야지요.

자식이 잘못된 것도 내 책임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서로 책임 전가합니다. ...... "너 닮았다“

책임지는 사람은 함부로 비판하지 않습니다. 

비판 자체가 남에게 책임 전가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책임지는 사람은 최소한 침묵을 지킬 줄도 압니다. 최대한 말을 절제합니다. 

 

➁. 성숙한 사람은 남에게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 

    소유의 공유성을 알고 있습니다.

    나 혼자 사용하라는 게 아닙니다. 무엇을 가졌든지, 이 소유에는  공유성이 있는 것입니다. 

    다 함께 누리고  다 함께 사용해야되는 것입니다.  베풀 줄 아는 자가 바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➂. 협력할 줄 아는 사회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도움을 받을 줄도 알고 도울 줄도 알아야  합니다. 

   도움을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겠다는 사람, 유치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도움을 받지 않았습니까?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으며, 어찌 주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유아독존唯我獨尊이  자기 동굴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협력을 해야 되고, 협력을 받아야 됩니다.

   그러한  사회성이 있어야 그게 바로 성숙한 인간입니다.

 

 ➃. 자기 양심과 조화하며  느낌과 행동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감정을 제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안해야  될 말을 불쑥 해버리고, 거친 행동을 해버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일생을 두고 후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감정  조절을 못하는 사람은 어린 아이다.

    성경은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것은 城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고 합니다. 

    한 도시를 점령한 것보다 낫다.

 

➄. 분노와 적개심을 구분할 줄 아는 것입니다. 

     분이  난다고 그것이 곧 미운 마음으로  바꾸어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불의한 일을 보고 잘못된 일을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것도 건강하지 못함

    그러나 그것을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으로 쌓이면 오히려 내가 죽습니다. 

 

➅. 현실을 파악하고 그 미래적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오늘을 살고 있지만 내일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내일의 양식을 주시옵소서. 오늘 살다가 죽으면 끝이다. 생각의 미성숙

   오늘 살다가 죽으면 끝이다. 나 하고 싶은대로 한다. 말 나오는 대로 감정 끌리는 데로....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말한 다음에 

   그 다음 일은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➆. 사랑과 性을 구분할 줄 알고 

     인격과 생활의 건강성을 지켜갈 줄 아는 것입니다.

    육체의 본능을 따라 살지만,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아는 그런 사람입니다. 

 

➇. 융통성이 있고 적응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부딪히면 바로 깨져버리는 사람이 아니다.

    여유와 삶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틈 사이 공간이 있습니다. 

    너무 깨끗하면 물고기가 없다.

 

 

 성숙한 신앙의 사람은 먼저 기본적으로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 그것은 방향과 목적입니다. 

성숙한 사람은방향과 목적이 정해진 사람입니다.  

내적인 안정이 있고야 성장이 있습니다.  

뿌리가 정해지고야 성장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궤도 수정을 자주하는 사람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한 번 심어놓았으면 기다려야지 

이것을 자꾸 뽑아서 옮기면  성장하지 못합니다.

목적을 변경해서는 안 됩니다. 

비교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은 외길 인생을  산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적응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변화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눈에 안 보이는 본질적인 것을 바꾸기에는 인생이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

진득하니 앉아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한다?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습니다. 성경을 펼쳐도 마음은 콩밭에 가있습니다. 

기도한다고 엎드려도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궤도 수정을 자주해서 이런 직업을 택했다가, 이런 전공을 택했다가,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몇 번 수정하고 나면 성숙할 겨를이 없습니다. 시간이 모자랍니다. 성장하지  못합니다. 

방향이 정해지고, 목적이  정해지고, 확실한 목표가 있어서 목적 변경 없이 그대로 일생을 살아야

거기에 성장이  있는 것입니다. 방황하는 생활에는 성장이 없습니다. 

안정이 없는 생활에는 경제고 정치고 무엇이고 간에 어떤 성장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는 것이 전쟁이라고 외치면서 전쟁?  진짜 전쟁일어나면 끝장.

삶의 이유와 목적...역사의 궁극적인 방향 목적....이게 확정되지 않아서 

내적인 혼란-전쟁이 있는 사람은....

엡4:13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13절"...목표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인간

그 목표를 분명히 하고 변함없이 직선적으로 살아야  비로소 성숙함이 있다 하는 말씀입니다. 

성숙은 결코 소유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식의 문제도 아닙니다. 

성숙이란 존재의 문제요 바로 그 인격의 문제입니다. 어떤 인격의 사람이 되느냐, 

그것에 대하여 바른 목표를 세우고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인생의 좋은 열매를 원하십니까? 열매를 서두르지 마세요. 

좋은 나무가 되세요. 좋은 나무가 되면   언젠가는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학생을 놓고도 좋은 성적을 내라 하고  서두르지만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닙니다. 

 학생 본인 스스로 공부하는 자세가 바로 되어야 합니다. 

공부하는 자의 인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히 공부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 됨됨이 사는 자세가 공부하는 자세가 되면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우선순위가 분명하고 

인생의 목적이 세워지면 그런 인격 자체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이래라 저래라 말이 필요.✘

 

㉯.  계속적으로 겸손한 자세를 지켜야 합니다. 

성공할 때에도 실패할 때에도 겸손해야 합니다.

     안다는 것은 모르는 것이요,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그런고로 항상 온유 겸손해야 합니다. 교만하면 바로 거기까지가 성장의 한계입니다. 

언제라도 계속적으로 성장하면 할수록 더  겸손하고 더 깊이 온유한 사람이 될 때

그 사람이 끝까지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숙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믿는 것과 아는 것이 따로따로 되면 그것은 미신입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일 수록 아주 대단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는 것은 없어요. 이 날은 좋은  날이다, 저 날은 손 있는 날이다

그러는데 이 날은 왜 좋고 저 날은  왜 나쁘냐 그 이유는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것입니다. 

이성. 이치 판단력보다는 믿는 것만 있습니다. 좌우간 믿는 것은 대단합니다. 

결혼 주례 서시는 분들도 이렇듯 비 성수기가 있답니다. 

믿음은 있는데 지식이 없으면 미신이요, 지식은 있는데 믿음이 없으면 철학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하나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들과 함께 모리아 산에 오르는 아버지와 아들을 보십시오. 

✎. 이 한 장의 그림이 이 세상 어떤 천재화가의 그림과도 비교불가

15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엡4:15

솔로몬은 나이가  많이 들어서 두 가지 소원으로 기도....

                좋아하지도 않지만 이 기도만큼은 기가 막힌 내용

잠30:8    ➀.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➁.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그리스도인의 행복과 기쁨. 고통이란 비 기독교인과 다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소원이 바로 내 소원입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이 바로 내 고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여기시는 그것이 바로 내 영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생각하십니다.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느껴지게  하십니다. 

감히 차마 내가 예수님을 닮았다고 말을 할 수는 없지만 

              꿈에도 소원은 예수님 닮기 원함이라

감히 차마 예수님과 하나가 될 수 없는 자이지만 

              꿈에도 소원은 예수님과 하 나 될 날만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머리와 몸처럼 하나가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성숙의 끝. 마지막은 

    하나님만이 여호와 창조주 영원한 생명이시고

    우리는 그분이 있으라 하심에 있게 된 자들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음. 없음. 공허한 것. 아무 것도 아님.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이겠습니까?

우리는 이름도 없고 실체도 없는 것이다. 그분이 말씀하심으로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생긴 것입니다.

창1: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이 구도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리가 인간의 자기 자리입니다... 

그 상태를 거룩이라 하고  그 관계를 영생이라고 합니다.

 

 

어둠은? 빛이 없는 것이 어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음이 어둠이고 지옥입니다.

계명의 지켜 사랑 안에 거하는 자리. 

➜. 모리아 산 정산에 선 아브라함과 이삭의 모습

 

에녹이나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쪽으로 

지성과 영성이 움직이는 사람이 성숙해 갑니다.

아직은 미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온전함으로 방향을 찾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아브라함은 분명히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 그리고 약속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흔들립니다. 

    ㉮. 애굽 왕 바로에게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했다가 들킵니다.

    ㉯. 하갈을 첩으로 얻어 이스마엘을 낳아버립니다.....

          그로인해 사라와 갈등이 얼마나 힘들어.

 

창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 

그 후로도 15년이 더 지나 갈대아 우르를 떠난 지 40년 째에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칠 때에 하나님께서

   마침내 비로소  말씀하십니다..

 

창 22:12 ...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22: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시57: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시108: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

 

시112:7 그는 흉한 소식을 두려워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

시62:1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2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62: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하나로 확정되지 아니하고 두 마음 사이에서 늘 갈등이 있습니다.

 주저하며 마음을 주지 못합니다.

 성경은 그것은 미숙함이라고 합니다. 불신이라고 합니다. 

미숙한 善은 선으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미숙한 義人은 반듯한 의로 서지 못합니다.

미숙한 믿음은 내적인 안정과 평안이 없습니다. 

미숙한 사랑은 그 개념이 있을 뿐이지 

오히려  사랑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다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성숙해야 합니다. 믿음도 사랑도 성숙한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내가 가야 할 방향과 목적지가 보입니다. 

아들에게는 아버지만 있습니다.

하물며 피조물인 우리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하게 

창조주 만유의 주인 만왕의 왕이신  그 분만 계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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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의 생의 맛이 되시는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가난하든지 부하든지 주님만 계셔 주옵소서. 

병들든지 성하든지 주님만 계셔 주옵소서.

욕을 받거나 칭찬을 듣거나 주님만 계셔 주시옵소서.

고생스럽거나 평안하거나 주님만 계셔 주시옵소서. 

살거나 죽거나 주님만 계셔 주시옵소서.

그러면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다 의미 있고 생명이  있겠나이다.

 

세상으로 더불어 웃는 생활보다, 

주님으로 더불어 우는 생활이 그 눈물이 오히려 맛이 있나이다.

세상으로 더불어 잘 먹는 것보다 

주님과 함께 있어 굶고 주림이 오히려 저희에게  복이 되옵고,

세상과 친하여 비단 옷에 쌓여 사는 것보다 

주님과 친하여 베옷과 헌옷을 입어도 오히려 영광이로소이다.

오! 주여 당신만이 나의 구주시오니   

주 외에 달리 무엇을 구하오리이까?

주님 한 분을 얻음으로 나는 모든 것을 얻었사오니 

주님은 곧 나의 총 재산이시며

모든 것의 모든 것이로소이다.  아멘.........이용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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