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자화상 6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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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7-28 17:16 조회2,7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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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자화상 6 ....야곱
내게 주신 은혜의 선물
창28:15-16. 49:15-16
사람들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그 가치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남이 가진 것만 좋고 귀하게 보여 불행을 느끼는 것입니다.
똑같은데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
결혼한 지 몇 년 된 어느 남편이 자기 아내가 보기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밉게 생겼고 구질구질한 것 같아
하루는 아내를 불러놓고 친정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요즘 같으면 큰 일 날 소리이지만 옛날인데다가
또한 그 부인이 착해서 아무 소리도 안하고 짐을 쌌습니다.
그리고 옷을 곱게 갈아입고 화장을 정갈하게 한 다음 남편에게 하직 인사를 합니다.
정말 가고 싶지 않지만 가라고 하시니 떠난다고 말하면서 슬프게 자리를 떴습니다.
이 때 남편은 곱게 단장한 아내의 모습이 새롭고 아름답게 보여 그만 붙들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소중한 사람과 살고 있으면서 그 가치를 모르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보물을 가지고 살면서도 그 가치를 모르면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➀. 그 중에 특히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정말 불행한 사람입니다.
인간이 가진 언어 중에 가장 신비한 단어가 은혜라고 합니다.
이 단어 안에 인간과 역사와 하나님의 비밀이 담겨져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도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는 사람들.
그러고는 그 사랑을 잃어버린 뒤에야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것입니다.
죽거나 잃어버린 다음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빼앗긴 다음에 억울해 봐야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것, 받은 것, 되어진 것 등,
내게 처한 모든 것이 소중한 것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➁.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아왔고 사랑받고 있고 사랑받게 될 것인지를 모릅니다.
인간의 불행 중 가장 불행한 날마다 피부로 느끼는 현실 하나가 바로 고독입니다.
고독은 착각입니다. 사람은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신세를 지며 태어나고,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다가, 죽은 다음에도 많은 사람들의 신세를 져야 땅에 묻힐 수 있습니다.
즉 혼자서는 존립할 수 없으므로 고독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고독은 어디까지나 자기 착각입니다.
철없는 자식들은 그들을 사랑하며 헌신하는 부모들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독하며 외롭다고 울고 있습니다. 얼마나 답답한 일입니까?
그런데 교만한 사람이 고독합니다. 왜냐하면 교만한 마음은 은혜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에게는 선물이 없습니다.
주어지는 은혜나 선물을 마치 당연한 것으로 여기거나 보상으로 또는 공로로 착각합니다.
또는 선물을 뇌물로 생각해 버리고 나면 선물을 한 사람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잘 줄줄도 알아야 하고 잘 받을 줄도 알아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은혜의 선물이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받아들여 감사하면 얼마나 행복합니까?
그러나 선물의 뜻을 모르는 자는 절망할 수밖에 없고 외롭고 고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를 아는 자이기에 행복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은혜라고 말했습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이것이 바로 그의 삶의 원천이었으며
생명의 근원이고 믿음의 근본이며 행복의 뿌리였습니다.
이것은 성경적 진리요 원칙입니다. 모든 것을 선물로 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사랑을 담은 상징으로 소화했습니다.
마귀가 낳는 것은 의심과 교만이지만
모든 것을 은혜로 받아들이는 자는 그 마음속에 믿음과 겸손이 있습니다.
형통과 성공도 감사요 고난과 실패도 감사입니다.
잘했어도 감사한 일이지만 실패했어도 감사한 일.
실패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인간이 어디가 있습니까?
실패 속에서도 자신의 부족한 것을 깨우치고 배우고 성장하며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가면 그게 성공이다.
불신과 교만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불안과 저주와 원망이 가득차서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➀.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자연과 역사를 다스리신다.
➁. 그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셨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다. 증거?
➂.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사실로 확인해봐라.
➃.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선물이다. 고난은 고난대로 형통은 형통대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선물 종합 세트가 우리 인생이다.
이게 믿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 자체가 은혜라고 말한 것입니다.
믿지 않겠다는 사람에게는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증거가 부족해소 못 믿는 것이 아니다. 증거가 차고 넘쳐도 못 믿는 것이다.
에베소서 2:8에서는 믿음은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겸손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믿음과 겸손을 가진 자는 모든 것이 선물이요 모든 것이 감사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내가 뭘 잘하고 잘 못하고 내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 부족하고 모자람에도 언제 변함없이
신실하시고 선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세 가지의 은혜의 선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들은 자기 공로나 노력이나
결단이나 의지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이라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➀. 선물은 알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그 은혜를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 계시의 영에 대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안다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행복이란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아는 문제요 깨달음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알게 하려고 애를 써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한 듯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끝까지 모르고 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알게 해 주신 이 은혜는 얼마나 감사합니까?
진리는 감추어진 자에게는 영원히 감추어진 것이요 멸망받을 자에게는 영원히 비밀입니다.
그런데 이 귀한 것을 내게는 눈을 뜨게 하시고 귀를 열게 하시며
마음 문을 여시어 깨닫게 하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계시의 영을 주셔서 그리스도의 신비, 십자가의 신비의 그 능력 그 지혜를
우리들에게는 알게 하셨습니다.
목사님들이 설교를 하지만 이상하게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반응은 천태 만상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어도 마찬가지이다.
똑같은 강의를 같은 교실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교수에게 들었는데도
시험을 보면 똑같은 강의를 듣고도 어쩌면 그렇게도 서로 다른 답을 쓸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입니다.
어떤 학생은 가르친 그대로 모범 답안을 정확하게 쓰는가 하면,
어떤 학생은 도대체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엉뚱한 답을 쓰고 나갑니다.
어떤 성도는 은혜를 듬뿍 받고 기뻐하며 이 말씀으로 전도하며 간증할 분이 계시는가 하면,
어떤 성도는 졸고 있습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 잠이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마11:15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눅10:23 제자들을 돌아보시며 종용히 이르시되 너희의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계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도 바울도 한때는 몰라서 교회를 핍박했고 스데반을 죽였습니다.
몰랐기 때문에 다메섹까지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여시고 깨닫게 하시며
그리스도를 알게 하셨기에 그는 감사하며 귀한 선물로 받았습니다.
어느 부부가 아이가 없어 갓난 아기를 데려다가 양자로 삼고 잘 키웠습니다.
그는 어느덧 여대생이 되어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딸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자기가 고아라는 사실과 부모들이 친부모가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는 큰 충격을 받고 부모들에게 반항하며, 자기 자식도 아닌데
애지중지 키워 준 것은 위선이라고 폭언까지 하면서 가출을 해 버립니다.
어머니는 너무 마음이 아파
어떻게 하면 자기들의 사랑을 딸에게 바로 전할 수 있을까 고심했습니다.
어머니는 사방에 수소문하여 딸의 거처를 알아내 찾아가 보니,
딸은 없고 방 안의 어지러운 물건들이 그의 방탕한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습니다.
술병과 소지품들이 난잡하게 흩어져 있어 어머니의 마음은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는 방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냉장고에 먹을 것을 다 채워 놓고
편지 한 장을 남긴 다음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에 귀가한 딸은 방 구석구석에서 어머니의 사랑의 손길을 느꼈으나
강하게 이를 부정하려다가 몇 줄의 편지에서 그만 통곡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딸아, 너는 내가 필요하지 않을지 모르나 나는 네가 필요하다.
나는 너를 끝까지 사랑한다. 매일 밤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돌아와 다오."
그는 어머니의 사랑에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다시 하니 낳지도 않은 자기를 이렇게까지 사랑하는 그 사랑은
보통 부모가 자기 자식을 사랑하는 그 사랑보다 더 큰 사랑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깨닫고 보면 내가 부족하기에 사랑을 더 많이 받았고,
내가 죄인이기에 사랑을 더 많이 받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기는 모든 사람보다 가장 못된 사람이나 구원을 받았으니
남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이라고 고백하면서
이 사실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➁. 바울은 선물을 받되
일하게 하시는, 즉 일꾼이 되게 하셨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소명 사명.
다시 말하면 일을 선물로 받았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내게 주신 은혜를 따라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가끔 일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며 피곤해서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틈만 있으면 쉬는 일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쉬겠다고 시간을 움켜잡지 마시고 뛸 수 있을 때 열심히 일하십시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아주 푹 쉴 때가 오지 않습니까?
미리 쉬겠다고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휴식할 나이가 옵니다.
일이 있을 때는 일하는 고마움을 잘 모르다가 정년 퇴직한 다음에야
일이 있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병들어서 누워 있게 되면 일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습니다.
이 병만 나으면 월급 받지 않아도 좋으니 일하겠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이렇게 잃어버리고 나서야 그 가치를 알게 됩니다.
일한다는 것,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러므로 높은 자리 낮은 자리 너무 가리지 말고 할 일이 있다는 것,
그 자체를 귀하게 여기셔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셨다"고
자기가 인정받은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쓸데가 있다고 써주시고 때를 따라서 능력을 주셨음에 감사하며,
그리고 새로운 기회를 주셔서 일하게 하심에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일을 기뻐하는 자는 행복하고, 일을 의무로 생각하는 자는 노예입니다.
비록 사장(社長)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즐거워하지 않고 마지못해 하며
사장된 그 임무를 무겁게 생각하면 그는 노예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사람들이 업신여기는 하찮은 일일지라도
일하게 하신 것에 감사하면서 일하면 그는 주인입니다.
일은 은혜요, 일 자체가 선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➂., 바울은 핍박과 고난도 선물로 생각했습니다.
고난도 기뻐하는 것이 바울의 신앙입니다.
골로새서 1:24에 보면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고난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왜 괴로움을 기뻐했습니까?
고후12: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난을 통해서 겸손해지고 강해지고 순수해지고 진실해지고 의로워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내가 상상할 수 없는 큰 역사를 이루심을 믿었습니다.
명품 바이올린의 가격이 20억이나 되는 것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조그만 나무통 하나가 왜 이렇게 비싸야만 하는지 ....
바이올린을 만드는 재목은 고지대에서
혹독한 추위와 비바람에 나무들이 클 수가 없습니다. 몇 십 미터씩 되는 그런 거목이 아니다.
작고 단단합니다. 그런 나무들을 일단 잘라서 수십 년 동안을 그냥 들판에 버려 두어
비를 맞고 햇볕을 받으며 바람에 의해 말리기를 거듭한 후에 정성껏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바이올린의 좋은 소리를 얻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소리라고 다 같은 소리가 아니랍니다.
사람인들 왜 예외가 되겠습니까?
갖은 고난과 희생을 통과해야만 소리가 좋습니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고맙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아니 고난을 통한 영광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808년 비엔나에서 대작 「천지창조」가 연주된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는 작곡자 하이든도 물론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그는 몹시 늙고 병약하여
자기 의자를 끌어당길 힘조차도 없었다고 합니다.
연주가 끝난 다음 감격한 청중들은 모두 기립하여
하이든에게 갈채를 보내고 환호하였습니다.
하이든은 그 갈채를 감당할 수 없다는 자세로 일어서면서 큰 소리로
"아닙니다, 아닙니다. 이 작품은 내 것이 아니라 위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오직 은혜로 된 것이지, 내 작품이 아닙니다"라고 외쳤는데
결국 이 말이 하이든의 마지막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감사가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모든 것을 의무로 생각하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자 입니다.
모든 것을 보수와 댓가로 여기는 사람은 곧 실망과 실의에 빠집니다.
모든 것을 은혜와 선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진정한 행복과 영광이 있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믿음의 조상들 중에 아브라함은 평균 보통사람입니다. 12-24. 25장은 175세에 죽었다.
아들 이삭은 그 중에서도 모범생입니다. 이웃들과 다투지 않고 바보같이 또 파고 또 파고
우물 파는 이야기 말고 이야기 말고는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 7개 이상..... 26장
아내도 리브가 한 사람으로 끝.
야곱은 아주 머리 아픈 사람입니다.
아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이 목표한 것을 얻기 위해서는
형이고 아버지고 외삼촌이고 심지어 아내들도 소용없습니다.
속이고 속고 잔머리 굴리고......
자기가 연애하는 라헬을 얻기 위해서 처가살이 7년을 하루같이 삽니다.....
저 같은 사람하고는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25장에 전반부에 할아버지 아브라함이 죽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25장 후반부에는 벌써 야곱이 형에서를 속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25장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다 나옵니다. 그리고 50장 장례 치룬 이야기
이 야곱에 대해서 성경은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 배속에서부터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분하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사랑하시고 인도하십니다. 28장에는 그 유명한 벧엘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창28: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창28: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28: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그 놀라운 신비를 체험하고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도 그는 평안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습니다.
결국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까지 이겨먹겠다고 달려들다가 하나님한테 한 대 얻어맞고
평생을 절뚝거리며 하나님이라는 지팡이를 의지해서 살아갑니다.
자신의 고백대로 참 험악한 인생을 130년을 살고 그리고 애굽에서 또 17년을 더 살다가
인생을 마감합니다. 그가 임종하면서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면서 고백하는 말입니다
창48: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창48: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요.
내 인생이 힘든 것은 누구 때문이 아니다.
이 감격. 이 은혜에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은혜라는 한 단어를 아는데 147년.
이 감격, 이 은혜에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은혜는 창조적이요 선물은 생산적입니다.
이 귀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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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기도
출15:2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출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시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48:14 이 하나님은 영영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
시95:6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95:7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의 음성을 듣거든
시95:8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의 맛사에서 지냈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
시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오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사40: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사40:11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렘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겔34:30 그들이 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며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라
겔34:31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요10: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10: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온다.
요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벧전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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