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자화상 7-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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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8-04 18:02 조회2,7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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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자화상 7- 바울
사도행전 26 : 24-32
✎. 인간의 理性은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데 쓰는 용도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도구로 주어진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가 조선이든 일본이든 상관이 없고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후손들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사람들에게는
머리라는 것은 이익과 손해를 유리와 불리를 계산하는 도구 일뿐이다.
사람에게는 살고 죽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인간다움을 지키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마땅함과 마땅하지 못함.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더러움과 깨끗함
의와 사랑..이러한 인간의 인간다움이 없다는 것은 사람이기를 포기했다는 말이다.
사람이기를 포기하고도 생존이 더 중요한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생명? 목구멍에 밥이 생명?
어떤 굴종과 치욕에도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한가? 머리가 어느 쪽으로 돌아가는가?
그게 왜 중요하냐면 우리인생을 결정하기때문이다.
나라가 없어지고 나라 말과 글이 없어져 가는데도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잘 먹고 잘 산다? 이게 사람?
일본의 역사..임진왜란이후만 보더라도 군벌간의 싸움. 남의 나라 침략.
세계평화를 위해서? 정의正義를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9분 진도 7.9급의 초강력 관동 대지진때 6000명의 조선인 학살
남경대학살....30만. 731부대 살아있는 사람을 쥐나 개구리처럼 생체실험......
이 사람들에게 머리는 이해관계를 계산하는 데 유리 불리를 판단하는 도구일뿐이다.
관동 대지진때에 미국 함대에 구호물자를 가득싣고와서 도와준 나라 백성들에게..
미국에 전쟁 선포..진주만을 공격해? ➜. 1941년 12월 4월에는 소련과 중립조약체결
대한민국의 헌법은 침략 전쟁을 부인하고 있다.
조선의 충신들 선비정신. 동학혁명. 31살 안중근. 3.1 운동과 4. 19정신. 홍익인간 정신
그 나의 역사와 문화가 어떤 바탕인가가 중요하다.
일본은 아무리 기독교가 들어가 기독교인구가 1%도 안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인간다움을
하나님 말씀으로 다시 한 번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우리 인간들 편에서만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눈에 인간다움이다.
➜전12:13....하나님의 말씀 or 마귀의 거짓말인지를 분별하는 분별력에 쓰라고
이성과 양심. 성경. 성령을 ㅜ 주시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2천 년 전 로마는 기독교 국가가 아니었습니다.
원형 극장에서 수많은 기독교인을 죽였고 말할 수 없는 핍박과 순교의 역사를 거듭하면서
기독교를 박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박해는 313년 콘스탄틴 대제 때에
밀라노칙령과 함께 끝이 나고 대로마 제국이 갑자기 기독교 국가로 선포되어졌습니다.
이것은 세계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된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합니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선포할 때 전 국민 가운데 기독교인은 오직 9%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9% 기독교인이 세계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엄청난 동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당시 이 9%의 기독교인이
모두 로마의 지성인이며 귀족이며 정치적으로 고관들로서 소위 말하는
세력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이 같은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권력층에 있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었느냐 하는 것에 대하여
역사가들이 말하는 바대로 보면 당시의 로마 제국은 윤리적으로 몹시 타락했었는데
그 중에 특히 여성들의 타락은 더욱 심하여 갖가지 부정한 일들이 많았고,
또한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된 시대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우생학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인들은 정결했기 때문에 이 소문이 온 로마에 퍼지게 되어
로마의 고관들이 자기들은 예수를 믿지 않아도 기독교 여인과 결혼을 하려고 했으며,
강제로라도 그들을 며느리로 맞아들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립된 결혼으로 인하여 얼마 있지 않아서 자녀들이 태어나게 되었고
그 어머니는 이 자녀들을 신앙으로 키웠으며 세대가 바뀌면서
기독교 교육을 받고 자라난 그 자녀들이 고관의 자리에 앉게 되니 전반적으로
로마의 귀족들은 그리스도인의 피를 이어받은 신앙인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에 있는 기독교 여성들의 순결과 철저한 신앙이 바로 로마를 복음화시켰으며
순교의 죽음을 당하면서도 서로 위로하며 사랑하는 그 기독교인 상이
성도들의 세계는 물론이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까지 깊은 감화를 주었던 것입니다.
신앙을 말하기 전에 윤리도덕이 무너지면 더 이상 이야기 할 것이 ✘
그러나 윤리도덕으로 신앙을 말하는 것은 더 교활하게 위험합니다...
예수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없는 기독교는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닙니다.
교회가 프로그램이나 무슨 사업이나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도 경계대상
그럼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둠이 빛을 좋아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미워합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300년동안 박해. 잡아다 잔인하게 죽이고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가장 교회다웠던 시대입니다.
교회는 사람 숫자로 거대한 조직과 돈으로 싸우는 그런 종교집단이 아니다.
많은 일이나 업적과 공로가가 아니라 사람이다
어떤 사람. 영혼의 진실. 순결. 거룩.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
하나님이 대장 되시는 싸움을 싸울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강한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강하신 분입니다.
요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눅6: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선한 행실로 좋은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마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벧전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일이 잘되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하며 감사하고,
일이 잘 안 되었을 때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시련이라고 생각하며
겸손하게 참고 견디어 나가는 사람들. 무엇인가 결이 다른 사람들.
자신들의 선함으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간다고 하면서도 불의하고 악한 일은 차마 하지 못하는 사람들.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양심을 거스리는 일은 감히 하지 못하는 사람들
신앙인의 모습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생활 주변에서 어떤 모습의 그리스도인 상을
비춰 주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의 모습을 세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첫째,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진실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다른 사람이 보는 내 모습에서는 상식과 도덕과 윤리성을 추구합니다.
셋째,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내 모습, 여기에서는 겸손한 신앙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자기 모습이 합쳐져서 완전히 하나가 되었을 때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
✎. 때로는 미쳤다는 말 듣는 것은 당연한 일.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서 바울이 말하기를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 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담대하고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바울은 결코 평안하고 안일한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나 자기 자신에게까지 성실했기 때문에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며 모든 사람이 자기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는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한 생활이며
우리는 사도 바울에게서 진정한 그리스도인 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울이 체포되어서 로마로 압송되기 직전에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는 생사를 가름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봉왕 아그립 바와 총독 베스도 앞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그들에게 자기가 예수를 믿게 된 다메섹 도상에서의 일과
십자가의 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설명하였습니다.
바울의 말을 들은 베스도 총독이 소리를 지르면서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하였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13에 보면 사도 베드로도 이와 비슷한 말을 들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서 복음을 증거한 베드로를 향하여 본래 무식한 사람인 줄
알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이 하는 일을 보고 알 수 없는 힘,
즉 영의 역사가 있다고 믿고 새 술이 취했다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본래 지식이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그 지식으로 인하여 미치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베드로는 무식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새 술이 취했다고 하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두 사람 모두 똑같은 성령의 충만한 상태였지만
그 생활 배경에 따라서 두 가지로 평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조금 깊이 상고해 보면 그들의 대화 가운데에서
네 가지 형의 그리스도인 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던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적은 말로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말을 정리해 보면
➀. 기독교를 지식적인 면으로 생각하여 지식적인 그리스도인
바울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지식적으로 알고 있는 면만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흔히 성경을 많이 암송하고 교리를 많이 알고 있는 이런 사람을
하나의 교인상으로 말을 합니다.
그러나 풍부한 성경 지식을 가지고 잘 가르치고 설득하고 하는 이런 경우에는
믿음보다 이성적 기능이 앞서게 되어서 무엇이든지 합리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이 있게 됩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지식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성경에 대하여 많이 안다고 하여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교도소에서 성경 암송 대회가 있어서 심사를 해 본 일이 있는데,
죄수들이 성경을 많이 알고 있으며 그 중에서 어떤 한 사람은
성경 한 권을 거의 다 외우고 있는 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던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 일입니까? 그러나 지식과 신앙은 다른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으로써 그 사람의 신앙을 평가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신약 구약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성경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사람이
더욱 진실한 그리스도인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그리스도인 됨이 성서적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을 신앙의 바로메터처럼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설교를 잘 하시는 목사님이 꼭 신앙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z z z
우리나라에는 무당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학습 무당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배워서 무당 노릇하는 것으로서 90%가 이 습득 무당이라고 합니다.
이 습득 무당에게는 돈을 아무리 많이 갖다 주어도 굿의 효과가 없습니다.
지식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학습 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우월성은 있지만 자기의 체험이 부족하므로
주관적인 신앙을 갖기가 매우 힘드는 것입니다.
➁. 자기 경험을 통하여 믿음을 가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체험 교인이라 합니다.
누가 물으면 교리적으로 설명은 못하지만 확고한 자기 체험이 있습니다.
병 고침을 받았든지 기도의 응답을 받았든지 어떠한 영적인 체험을 함으로써
그 경험 위에 신앙을 세운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주관성이 대단히 강해
누가 뭐라고 해도 자기 믿음에서 후퇴를 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객관성이 결여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체험적 신앙을 많이 강조하고
체험적 그리스도인 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인 교회는 다툼이 자주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자기 경험이 절대적이므로
고집과 의지가 한데 뭉쳐져서 독선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 객관성 결여. 체험을 절대화
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잘 읽지 않으며 자기가 체험한 것과 계시에만 만족을 느낍니다.
때로는 아주 성경을 많이 읽습니다. 그런데 자기 읽고 싶은 대로 읽어버립니다.....
➜.역사성과 정통성이 결여
그러나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체험은 중요한 것이며 꼭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내가 본 바요 귀로 들은 바요 손으로 만진 바라고 하는 자기 체험을 말하고 있으며,
베드로도 눈으로 보았다고 하는 자기 경험에 대한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경험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에서 어떠한 종류의 체험이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성서적 계시와 동일시하려고 하는 것은 위험하며
자기 경험을 절대화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성경의 객관적 진리의 토대 위에 주관적 경험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 밖으로 나가는 신비적 체험은 검증할 수가 없습니다.
마귀가 한 것? 성령께서 하게 하신 것? 어떻게 알수가 있는가?
그래서 말씀과 성령 성경과 기도생활이 항상 하나가 같이 있어야 합니다.
➂. 영적인 교인이 있습니다.
바울에게는 지식이 너를 미치게 했다고 하였고
베드로에게는 새 술에 취했다고 했는데,
미쳤다거나 새 술이 취했다거나 모두 영에 이끌린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직접 자기를 가리켜 하나님을 위하여 미쳤다고 했습니다.
성령을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영적인 역사이므로
미쳤다고 하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던 것 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서 베스도가 정말 미친 것으로 생각할 때
베스도에게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 정신차린 말을 한다고 하였고
베드로는 우리가 새 술이 취한 것이 아니라
말세에 하나님께서 부어 주실 성령의 역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방인에게나 성령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 모든 현상이 이상하게 보여졌던 것이다. 이것이 영적인 그리스도인 상입니다.
➜. 성도의 자화상은 땅에 있는 것들로 주눅 들지 않습니다.
➜. 황제. 왕 총독 부자 회장 박사님....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의하면
적어도 이런 사람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알고 예수님과 동행했고 예수의 부활도 보았고
못 자국 있는 손을 만져 보았다고 하더라도
이것만으로서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가가 기록한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말하는 대로 보면
오순절로부터 시작한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
즉 그리스도의 영에 이끌려 사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느끼기에
자신들하고는 무엇인가 다른 영을 가지고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사이비 가짜 기독교인들이라는 것이 들켜버린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이 성령의 체험이 있은 후 이것이 체계화되고 의식화될 때 이것을 신학이라고 하며,
이것이 고백될 때에 신앙 고백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18:24 이하에 보면 아볼로라고 하는 성경에 통달한 유대인.
예수님을 잘 알고 그리고 믿고 전도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성령이 있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바울이 그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성령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성령에 대한 지식이 많고 또한 성령에 대하여 잘 안다고 할지라도
직접 성령의 체 험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성령께서 마음 문을 열어 주시고
성령이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게 하고
성령이 그를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해서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하게 하고
성경을 읽을 때에 성령께서 눈을 열어 깨닫게 하시고 보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영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➃. 자기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다 내려놓고 예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전적으로 위탁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에 대한 지식도 있고 자기 경험도 있고 성령의 충만함도 받은 자로서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자기의 생을 온전히 그리스도에게 맡기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운전대를 예수님에게 넘겼습니다. 제가 아내와 아들 딸 데리고 다닐 때가 있었습니다.
내 소원 같은 것은 이제 없습니다. 고집을 부릴 것이 없습니다. 내 생각에는.....✘.
자기의 소원이나 자기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나를 위한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한 나로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상입니다.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일에 전신전력하는 사람들.
자기 성취감에 춤추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행복이 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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