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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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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9-01 16:16 조회2,763회 댓글0건
설교자 : 김준봉 목사
설교본문 : 히 6:1-6
설교일자 : 2019. 09. 01

본문

 

                   성도의 정체성 

                                             히 6:1-6  

✎.할 마음이 없는 사람하고 할 마음이 있는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할 마음이 없는 사람은 하지도 않을뿐 아니라 해도 기쁨이나 감격이 없습니다.

➀. 내가 주체성을 가지고 내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부모님. 아들 딸. 남편 아내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믿는 것이 무엇인가 공부하라. 예수님을 알아가라.

➁. 본인이 예수님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믿는 사람답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이다. 

   최소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내가 예수 믿는 사람이 마땅히 되어야 하는 수준을 알고 있는 것만큼 

          ​살지 못하는 갈등으로        바로 ‘....인척’ 하는 것으로 해결한다. 

          ​기도 많이 하는 척, 모든 고민이 없는 척, 믿음 생활을  정당하게 잘하고 

          있는 척 할 수 밖에 없다.  기쁘고 행복하고 평안한 척 한다.

둘째는 “웃기지 마라. 예수 믿는다고 해봤자 다 덜렁덜렁하더라. 

            ​속이 썩었는데   회칠한 무덤. 겉만 번지르 하면 뭐하냐. 

           ​차라리 나처럼 솔직하게 나가는 것이 더 좋지 않으냐”하는 식이다. 

둘 다 동일하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각자의 인간적인 해결방법인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버리지 못하겠고 그 믿는 모습에 스스로 만족스럽지도 못하고 

결국 인간적인 방법으로 풀어가는 인간적인 자기 위안인 것이다. 변명이고 구실이다

➀. 경건한 척하는 것도 ➁.자포자기식으로 널부러져   있는 것도  

➂. 마음에도 없지만 힘을 다하여 발버둥 치고 있는 모습도 다 초라하고 우습다. 

      정답이 아니다.

셋 째 내가 얼마나 잘 하는가? 얼마나 잘 할 수가 있는가?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심 진실

    사자 굴에 들어가도 불구덩이에 던져져도 목이 잘리고 돌에 맞아죽어도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진심이 있는가? 마음이 있는가? 속의 진심.

    겨자씨만한 진심이 있어도 기적이 일어난다.


① “하나님 저는 이만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기에 이렇게 ‘척’이라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하는 안타까움이 그 배경이 되고 있다. 

② 널부러져 있는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제가 이러고 싶어 이러는 게 아닙니다. 

    속은 뻔한데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이라도 있는 것처럼 척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진심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하는 진실이다. ...

     정말 최선이라도 하는 척...그 만큼만이라한다면 인간의 절망을 눈치채고

     은혜와 자유라는 말을 배워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정말 알아야할 진실이 있다

➂. 믿음은 성장하는 것이다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생명은 씨앗이 떨어지는 것이고 

   새 싹 잎과 꽃. 향기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희미하든 좀 더 또렷또렷하든 

. 방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양심. 영혼의 나침반

 

  장망성에서 천성으로 삶의 방향성이 생기는 것이다. 

  예수님을 더 알고 싶고 더 잘 믿고 싶고   예수님을 더 사랑하고 싶고.....

수천 만번을 넘어져도 또 일어나서 그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사실은 내가 얼마나 예수님답지 못하다든가 아니면 자포자기한다든가 하는 것은 

신앙생활을 잘 알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쓸데없는 기우에 불과한 것이다.

성도들은 완성된 천국 백성으로 출생하지 않는다. 

성경의 시간은 이미와 아직 사이입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완성의 표나 마침표가 아니다. 

하나님은 탕자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신다

다 100% 완전해 가지고 와라 그러면 아무도 올 수 있는 사람이 없다. 

100% 완전해 질 수 도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있는 그대로 놔두시지는 않습니다.

 

슥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엡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고전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엡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빌1:6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살전3:13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영원에서 이미 완성된 것을 바라보고 달려가지만 

아직은 미완성인체로 하나님의 마지막 터취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이 성도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나온 것일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다 대놓고 스스로 이것이 맘에 안 들고 저것도 맘에 안 들고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나 다른 사람에 대해서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줄 줄 아는 하나님의 관용과 너그러우심.....믿어주는 것도 실력

..........➜. 창28:15

 

 똑같이 두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 라이트급. 헤비급.  타고난 성품이나 기질이나 성장배경이 다 다르다.

    『그리스도인 답다』 『교인답다』......기준도 모호하고 끝이 없는 이야기 

➜. 고린도 교회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고전 1:2”

  그러나 보세요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고전 3:1”

   바울의 이야기는 “너희들은 욕을 먹어도 싼 사람들이다.

               부끄러움을 당해 마땅한 자들이다”인데 

                 불리워지는 호칭은 하나님의 교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이다. 

 

  비유로 생각해보자. 거지가 왕자로 오해되어 왕궁에 들어갔다. 

그는 기이하게 생긴 옥새를 가지고 어떻게 사용할 줄을 몰라 호두를 까먹었다. 

손 씻는 물을 마셔 버린다. 그래도 그는 왕자이다. 

어제 까지만 해도 다리 밑에서 자란 소년을 생각해보자. 

그가 할 줄 아는 것은 악한 말과 거칠고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뿐이다.

 그래도 그를 임금이 왕자를 삼았다면 그는 왕자이다. 

그의 신분은 어제와   오늘 사이에 하늘과 땅 같이 바뀐 것처럼 바뀌었다. 

그러나 그의 수준은 하루 아침에 바뀔 수 없다. 

내가 오늘 마땅히 왕으로 살아야 할 부름을 받은 것과 

왕으로서 완성되어 있다는 것은 먼 거리이다. 

분명히 우리는 왕자이다. 신분의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얻은 모든 사람들이   왕 같은 제사장이다. 

그러나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왕답지’ 않을 수는 얼마든지 있다. 

어제까지   살던 버릇을 하루 만에 고칠 수 있는가? 

침대가 귀하지만 냉바닥에 자는 것이 더 그에게는 편하다. 

궁중에서 쓰는 말투보다는 거리에서 쓰는 막말이 더 좋다. 

아무리 맛있는 반찬과 밥으로 식탁을 꾸몄어도 그 식탁에 앉는 것이 더 불편하다. 

불안하고 이상하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왕자 된  자신이 자신을 봐도 

왕자답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내 자신이 내가 왕자로 끝까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왜? 

바로 왕자답지 않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모습이 달라져 있을 뿐이지 

나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 이런데서  훨씬 더 버릇이 나빠질 수도 있다. 

즉 자신이 명령하면 무엇이든지 복종한다는 것을 알고 

어는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망나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수도 있을 수가 있다. 

즉 스스로 자조적이 된다는데 무서움이 있는 것이다. 

내가 왕자이기 때문에 지금 이런 대접을 받는다고 

즉, 하나님이 나를 이 신분으로 세웠기 때문에 지금 이런 대접을 받는구나 생각하지 않고

 “이 수준이라도 사람들이 굽신거리는구나” 생각하면  이야기는 복잡해 진다. 

➜. 자기가 뭘 잘해서 복 받는 줄 알고.........잘 하면 복 받는 다고 생각

  정당하게 돌아와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권리와 축복들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신분 때문이지   

수준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신분을 허락하신다. 그의 자녀라는 것을  허락하셨다. 

그의 자녀로 허락된 신분에서 우리는 어린 아이로부터 시작되어 

장성한 어른으로 가게 되기를 요청 받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무엇을 주시옵소서!’만을 하는 때는 영적 유아기이다.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누구나 다 갓난 아이로 태어나 성장하여 어른이 된 것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신비하고 놀라운 체험을 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셨다.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자비로우심과 선하심과 사랑하심에 비하여 

우리는 우리가 그분의 자녀라고 불리워지기에 너무나 부족하다.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이야기

그러나 그것이 성도들에게는 좌절이 아니고 분발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자녀로 부르신 것은

 우리가 그분의 자녀다운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지  않음에도 불러주신 것이다. 

우리가 모자란다고 느끼는 부분들은 우리를 좌절로 끌고 갈 자리가 아니라 

분발로 끌고 갈 자리가 되어야 한다

완성이 되어 있다면 더 이상 살아있을 필요가 없다. 

완성되는 날이   제대 날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 이 땅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완성되기 위한  훈련소이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제대가 아직 멀었다는 뜻이다. 

✎.장말성? 이 세상이 장망성이고 나는 아닌가? 내가 장망성이다.

     이 장망성을 떠나서 천성을 향하여 간다. 내 자신의 방향성이다. 

     천성을 향해서 가는 길 말고 다른 길이 없다

➜. 창기와 세리와 죄인들을 불러주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다.

    자신이 얼마나 어디까지 타락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도우실 길이 없다.

    자신의 죄성을 보면서 통곡하며 울어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알수가 있을까?

하나님께서 붙들고 씨름하시면서 도와주시는 사람들은 누구? 

죄와 죽음의 종노릇하는 절망. 비참함을 나는 사람들이다.

 

 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에 관한 초보적 가르침을 넘어서서 완전한 데로 나아갑시다. 

죽은 행실로부터 회개하는 것과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세례에 대한 교훈과 안수

죽은 사람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기초를 다시 닦지 말고 

온전한 데로 나아갑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3:1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빌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벧후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내 수준으로 내 신분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자꾸만 아닌 것 같은 것이다. 

✎. 오만원 지폐에 똥묻었다고 오만원이 안 되나?

     한국은행이 그 값어치를 보증한 것  -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 피 값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이 누군가? 

하나님의 교회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진 성도들이다. 

잘못했을지라도 그 이름이 취소되지 않는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기초를 나의 수준과 능력으로 확보하려 하는 한 

평생토록 그것은 확보되지 않는다. 

“구원”이라는 말만 하다가 한 걸음도 진전하지 못하고 만다. 

우리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신자답지  못하다는 것은

 이제 훈련하고, 고치고 자르고 해서 도달해야 될 목표이다. 

하나님 앞에서도 떳떳하고 싶고 믿는 것도 떳떳하게 믿고 싶어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것을 죄라고 하였다. 

고전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성도들은 십자가의 능력으로 보혈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예수님으로 자랑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

 

 

㉮. 전적인 타락. 불가능한 존재 생명 없는 죽은 자인 것을 아신다....

     그런데 살아있는 자인 것처럼.........

     그런데 뭘 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 무조건적인 선택.......아무 조건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열심과 사랑으로 선택하신 것이다

㉰. 제한된 속죄......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무효화되거나 취소되거나 실패 포기라는 것은 없다.

      성도들은 피로 값 주고 산 사람들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발라진 사람들.

㉱.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나를 끌고 가는 것이고 나는 끌려가게 되어 있다.

㉲. 성도의 견인..........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은 영원한 것이다.

    고전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 신앙생활의 어떤 문제이든 이 신학적인 5가지 요점 안에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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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정체성

히브리서 6:1-6

1. 신앙생활의 딜레마?

 

 

2. 성도들의 신앙생활에는 정직한 진실과 진심이 있다.

 

 

3. 신앙생활은 성장하는 것이다.

 

 

4. 성도의 영혼에는 영혼의 나침반이 있다. .

 

 

5.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은 이미와 아직 사이에 있다.

     공사 중이다. 지어져 가고 있다.

 

 

6. 보혈의 능력. 예수님의 피 값은 영원하다.

    성도들은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살아가고

     예수님으로 자랑하고 행복해하는 사람들.

 

. 전적인 타락. 불가능한 존재 생명 없는 죽은 자인 것을 아신다....

    그런데 살아있는 자인 것처럼.... 뭘 할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 무조건적인 선택.....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열심과 사랑으로 선택하신 것이다

. 제한된 속죄......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은 무효화되거나 취소되거나

     실패 포기라는 것은 없다. 성도들은 피로 값 주고 산 사람들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발라진 사람들이다.

.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나를 끌고 가는 것이고 나는 끌려가게 되어 있다.

. 성도의 견인........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은 영원한 것이다.

     고전1:8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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