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좁은 길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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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9-15 14:14 조회2,7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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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음을 못해서 원고만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좁은 문 좁은 길로 갑니다.
누가복음 13:22-30
현대인을 아주 병들게 하는 근본적인 병든 철학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첫째가 안일주의라고 하는 것입니다. 편리주의입니다.
너무 편하게 편하게 살려고 하는 그러한 철학이 인간과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문명의 이기라는 것은 대체로 우리를 편리하게 합니다.
멀리 가려면 며칠씩 걸리는 거 요새는 몇 분이면 갈 수 있고,
오래오래 만들던 거 지금은 쉽게 만들 수 있고,
기다려서 기다려서 음식을 먹어야 했는데 지금은 간단하게
다 만들어진 것 데워서 패스트 식품으로 쉽게 먹을 수 있습니다.
목화씨를 땅에다 심고 목화나무를 잘 가꾸어 가지고 가을에 목화 솜을 따서
그걸 틀어 가지고 실을 뽑아서 그리고 밤새 그걸 베를 짜 가지고
그거 시원치 않은 것이지만 그것으로 또 본인이 직접 재봉을 돌리면서
이렇게 해서 옷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거 시원치 않은 옷이지만 그 옷은 아주 값비싼 겁니다.
그 속에 사랑과 정성과 마음 진실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것을 입고 자란다고 하는 것은 그건 천하를 얻은 것 같은 행복이 있는 것인데
요새 아무리 좋은 옷을 몇 푼 주고 사 입고 벗어 내던져버리고 잃어버려도 잃어버린 지도 몰라요
✎. 성경 읽다보면 금은보화와 함께 옷 몇 벌 이렇게 나오는 것 있어요..
인간성 인간다움을 느끼기가 어려운 시대입니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모든 것은 쉽게 쉽게 빨리빨리 나 하나만이라도 지금 당장
그리고 우선 무엇부터 이런 식으로 우린 몰아칩니다.
그 중에서 소중한 정성, 사랑, 마음 인간성은 다 잃어버렸어요.
자신이 조금만 불편하거나 자존심 상한 거 못 참습니다.
얻어터지고 상처 나고 때로는 싸우고 그러면서 깊어지고 부드러워지고
강해진 사람을 만나는 것은....생각도 못할 일...본인도 그럴 마음도 없고 자식들에게도.
두 번째 철학이 뭐냐하면 상대주의 Relativisism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업. 장사하는 분이든 정치하는 분이든 뭐 교육이든 간에 모든 면에서 들려지는
하나의 좌우명이 있습니다. "변화하는 것만 생존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죽는다 이겁니다.
큰 개혁을 촉구하는 슬로건입니다마는 참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해야만 살아남는다.
그러나 방향도 없고 목적도 없고 궁극도 없습니다. 목적도 없는 변화,
방향을 알 수 없는 이러한 방향 실종된 변화 이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그래서 절대적 진리는 없고 기준은 없고 중심을 잃어버린 그런 세상을
우리가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가 심각합니다.
『마누라 빼고는 다 바꿔라』 그 집안 아들딸들은 마누라도 남편도 다 바꾸데요
인간다움 인간의 본분이라는 인간의 존엄성보다 인간의 생존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절대 가치라는 세계를 잃어버리면 윤리도덕? 법?
안하무인격의 세상이 됩니다
세 번째는 실리주의. 실용주의입니다.
이데올로기를 버린지 오래 되었습니다. 이념이나 종교마저도 실리
앞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나한테 쓸 데 없는 하나님? 1초도 고민 안하고 버립니다.
나한테 쓸데가 있는 지 없는 지 판단할 실력도 없으면서 그러고 있으니 불쌍하지요.
모든 판단의 기준이 지금 나한테 지금 내가 기준이고 편리와 실리만 따집니다.
편리와 실리만 따진다는 말은 결과만 생각합니다. 방법과 과정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적과 의미도 상관이 없습니다. 실리적으로 대하겠다고 하는데
여기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서운 인간상이 나타나게 됐습니다.
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 시간과 영원......이렇게 전체를 생각하고
오늘을 생각하는 사고구조가 작동이 안 됩니다....
묶여 있다는 사실. 그림자가 그림자라는 사실을 몰라.
공부를 잘한다 합시다. 공부에 지름길이 없습니다. 인생에 요행 길은 없는 겁니다.
공부 잘 하도록 좋은 책상도 마련하고 좋은 램프도 켜 놓고 좋은 음식도,
공부할 수 있는 좋은 공부방, 뭐 학비, 다 해 줄 수 있어도 공부는 결국 자기가 해야 되는 겁니다.
분위기 만들어 줬다고 공부가 되는 건 아니에요. 공부는 자기가 해야 되는 겁니다.
공부를 잘하는 다섯 가지 비결... 그래서 다섯 가지가 갖추어져야 된다.
심력, 체력, 지력, 자기 관리 능력, 인간관리 능력, 다섯 가지를 말합니다.
체력도 없는데 공부하라 그러면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죠.
자기 관리 능력이 없어요. 잠시도 앉아있지 못해요.
마음을 가누지 못하는 이 자녀들에게 공부하라 그러면 죽는 거예요.
자기 관리 능력이 있어야죠. 또 인간관리, 친구들을 관리할 줄 알아야죠.
만약 이것이 안 되면 우울증 환자가 되는 거예요. 공부하다가 사람 이상하게 되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이 다섯 가지는 어디서 오느냐? 많은 시련 속에서 얻은 거예요.
긴 시간이 흘러가면서 깨닫고 훈련받고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공부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빨리 되는 일이란 하나도 없습니다. 빨리 될 수 있는 일이란 없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의 손을 잡고
"도끼자루를 쓸만한 나무를 찍으러 가자" 하고 산으로 갑니다
도끼 자루로 쓰는 나무는 아주 튼튼한 나무라야 합니다.
보통 우리가 보는 이런 나무는 거기에 꽂아놓아 봤댔자 한번 치면 부러져 나갑니다.
쇠처럼 단단한 나무가 있어야 되는데 이걸 구하기 위해서 이제 산으로 올라가는데
거기 산 밑에 바위 밑에 곧게 자란 참나무가 있어요.
"할아버지. 저거 찍읍시다" 그러니까 "안 된다" 그래요.
"더 올라가자." 한참 올라가다 또 반듯하게 자란 게 있어요.
"할아버지 저거는 안되요" "안 된다."
그냥 숨을 몰아쉬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갔어요.
얼음덩어리 같은 추위를 몇 달씩 견디고 햇빛과 바람을 맞으면서
견디어 온 세월이 말하는 것입니다
✎. 인생은 돈이나 재능 성공 부귀영화가 아니라 인격 됨됨이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 기적 신비체험이 목적이 아니다.
인격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전기 스위치를 키는 것처럼 끄는 것처럼
그렇게 번쩍번쩍 변하고 컴퓨터 스위치를 누르고 클릭 하면은 반짝 돌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에요. 인간은 그게 아니에요. 인격적으로 변화되는 것이거든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기적이 없어요.
이것은 오랜 시간 동안에 훌륭한 인격으로 키워져 나가는 것입니다.
근데 요새는 전부 이렇게 급하게 그대로 오토매틱하게 자동적으로
모든 것이 되기만 바라는데 급하게 되기만 바랍니다.
이 조급함에 문제가 있는 것이에요
. "차선은 최선의 원수다." 우리는 최선을 버린 지 오래되었어요.
차선만 찾아요. 그것도 삼선 사선을 찾아요.
최선이 아니면 아니어야 하는데 이런 고집은 좀 부려도 되는데....
신앙생활에 차선은 독입니다. 마귀로 틈을 주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엡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본 훼퍼..그의 신학의 명제가 있습니다.
"값싼 은혜가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원수입니다.
우리는 오늘 값비싼 은혜를 위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 아주 세밀하게 자세하게 빈틈없이
㉯.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끝까지
㉰. 盡力....다할 진.
은혜를 생각할 때에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예수님 없는 은혜.
복을 달라고 비는데 그 속에 예수님 없어요. 왜요?
예수님은 이미 복된 길을 가르쳐 주었어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핍박당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좁은 길로 가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복된 길을 다 가르쳐 주었는데 이건 마다하고 그대로 손바닥을 내놓고 복만 달라는 거예요.
그리고 몸부림을 치는거에요. 이게 믿음입니까?
그게 잘못된 신앙이예요. 그걸 알아야 합니다.
✎. 이성과 양심 생각과 분별력이 없는 신앙은 광신 미신 사교.
십자가 없는 예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모든 일을 십자가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여기에 생명의 길이 있답니다.
그런데 십자가는 없는 그런 안일한 예수를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Discipline이 없는 은혜, 훈련과정을 무시한 은혜를 생각합니다.
긴 시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때 책장을 넘기듯이
벌떡 하루아침에 주신 게 아니에요. 사십 년이라고 하는 긴 Discipline 코스요.
이 교과 과정을 통해서 가나안 땅을 주신 거예요. 우리는 이 귀한 진리를 잃어버립니다.
훈련과정, 이 기나긴 훈련 이 시련, 이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에요.
이것을 통하여 우리를 복 주시고 선하신 길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 ➀. 일본 자위대 군인들 실제로 전쟁나면 목숨 바쳐서 싸울 군인 22%도 안 된다....73%
➁. 훈련이 없는 군대...체력 단련이 안 된 군인 ➜. 군대가 직장. 군이이 공무원이다.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목숨을 걸고 싸울 맘이 있는가?
오늘 본문에 아주 의미심장한 질문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어봅니다.
"구원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제자들이 예수를 따를 때 기적을 바랬고 축복을 바랬고 형통을 바랬고
출세를 바랬고 예수를 통해서 놀라운 기적 같은 축복이 있어지기를 바라고 따랐어요.
따르면서 예수님의 교훈을 잘 들어보니까 그게 아니에요.
그 마음에 깨달음이 오는데 예수님 말씀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
이런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아 이게 아무래도 어렵겠는데' 생각해서 물어본 겁니다.
구원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예수님께서 뭐 10%다 20%다 그렇게 %를 말씀하지 않고
딱 한마디 대답하시는데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라고 말합니다.
자, 적다는 말입니까 많다는 말입니까? 여러분 스스로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하고 말씀하십니다.
2000년 초 김대중 대통령 때입니다. 지금 이렇게 남북이 서로 만나는데
"목사님, 언제 통일이 될까요? 언제 통일이 될까요?" 항상 똑같이 대답합니다.
"우리하기 탓이지요." 내가 해야 할 일이 여기 있는데 이거는 하지 않고
누가 해주길 바라고 그대로 통일만 기다리는 겁니까? 우리가 하기 탓이에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떻게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이루어질 것이지요.
언제 됩니까? 뭘 바라는 거예요? 무슨 대답을 원하는 것입니까?
오늘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라." 얼마나 좁은가 보십시다.
"힘써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할 자가 많으니라."
많은 사람이 결심을 해요. 그러나 중도에 도중에 하차해요.
모처럼 하나님의 사람으로 출발하여 예수의 제자가 되겠다고 나섰다가도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참 유감스러운 말씀이에요.
다 됩니다. 안하니까 못하는 것이지. 열심히 하세요. 그러면 얼마나 좋아요.
못하는 자가 많으니라. 하나님이 은혜주시고 특별한 은혜 가운데만 가능합니다.
우리 인간 의지 한계를 넘어서는 얘기예요.
내 결심 가지고 내 의지 가지고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푸실 때에 이것이 가능 합니다.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참 엄중한 말씀이에요.
이거는 마술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인격적으로 이루어짐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좁은 문입니다. 좁은 문이 무엇입니까?
옛날에 예루살렘 성에 성문이 있었어요.
큰 성문이 있고 이건 아침에 열었다가 저녁에 닫아버려요.
그러면은 밤중에 멀리서 돌아오는 사람들이
성안에 들어와야겠는데 못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분들을 위해서 비상구를 만들었어요.
성문 옆에 조그마한 개구멍 같은 문을 만들어 놓고
이렇게 늦게 돌아오는 사람들이 성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이 문 이름이 "바늘구멍"입니다.
바늘구멍이라고 너무 작아서 몸둥아리 하나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크기의 구멍 문입니다.
이게 좁은 문입니다. 말을 타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짐을 가지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
교만한 자도 안됩니다. 오직 겸손한 사람, 마음을 비운 사람, 오직 영혼만을 생각하는 사람
오직 생명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들어올 수가 있어요.
다 버리고. 버릴 게 많아요. 교만도 자존심도 물질도 욕심도 명예도 다 버리고
오직 순수한 생명 위주의 그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만이 들어올 수가 있어요.
좁은 문이요. 아주 좁은 문이에요. 모든 것을 버리고야 들어올 수 있어요.
또 한 가지는 이 좁은 문은 시간적으로 좁아요. 딱 문이 닫히면 다시 열 수가 없어요.
우리 앞에 잠깐 잠깐씩 문이 열립니다. 열렸을 때 들어가야 됩니다.
그 다음에 닫히고 나면 열 수가 없어요. 하나님의 일할 때, 할 수 있을 때 해야 합니다.
일 할 수 있을 때 일해야 됩니다. 기회를 놓치면 다시 일 할 수 없구요
특별히 회개하는 것 회개할 기회를 하나님이 주실 때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의 기회를 놓치면 가슴을 쳐도 회개할 수가 없습니다. 문이 닫쳐 버려요.
셔터가 내려 버렸다 이거요. 여러분, 이 문은 항상 열려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앞에 있는 구원의 문이 닫칠 때가 있다는 걸 알아야 돼요.
사람의 의지나 감정이라는 걸 잘 알아야 합니다.
내 맘대로 하고 싶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종말론적인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는데 소중한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열렸을 때 들어가야 된다. 시간적으로 좁은 문이라 말씀하셨구요.
계3:7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주 앞에서 먹고 마시고 주님이 우리 길거리서 가르쳤습니다.
천국 문이 닫친 다음에 가서 두드리면서 "열어 주소서" 그러니깐
"나는 너희를 모른다" 그러니까 "아 모르다니요. 우리가 주 앞에서 먹고 마셨구요.
주님과 함께 음식 나누었고 또 주님이 우리 길거리서 가르쳤는데요."
그 다음 얘기가 없습니다마는 주인이 이럴 겁니다.
"그래, so what? 그래 어떻다는 얘기냐?
너와 함께 나가 음식을 나누었다고 해서 그래 어떻고
그래 너희 길거리서 가르치는 것을 네가 들었다고 하자.
들었으면 어떻고 보았으면 어떠냐. 먹었으면 어떠냐. 그게 구원의 조건이냐"
이 말이에요. 보아도 먹어도 배워도, 아니요. 새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이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것입니다. 군더더기나 변명이 아무 의미가 없다.
집집마다 건강운동기구 없는 집이 없어요.
뭐가 되었든 다 하나씩은 갔다 놓았습니다.
집에 건강 기구를 쌓아 놓았다고 해서 건강해지는 겁니까? 운동을 해야 되는 거지.
운동기구? 운동기구 없어서 운동 못 하는 게 아니지요. 운동은 내 몸이 해야 되는 거지.
신앙생활? 진심으로 할 마음이 생겨서
성경 읽고 기도하시고 전도하시고 봉사....본인이 하시면 되요
누가 좀 안도와주냐고요? 줄넘기가 없어서 줄넘기 못한다고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아주 단순한 마음이요. 거기에 구원의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구원의 절대 조건을 말씀하십니다.
첫째,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둘 째 중생하지 못하면 천국을 보지 못하리라.
셋째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넓게 살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있지만 좁게 살아갑니다.
먹을 수 있다고 다 먹는 것도 아니고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
얼마든지 넓은 길이 있지마는 내가 가야 할 길은 좁은 길입니다.
넓은 세상이지만 내가 생각해야 될 것은 좁은 길입니다.
넓은 세상을 좁게 살 줄 알아야 합니다. 스스로 좁히면서 살아야 됩니다.
교회에 나오는 일 교회를 가까이 하는 일 한 달에 한 번 나오면 편하고 쉽지요.
일주일에 한 번도 아주 넓고 넓은 길이지요. 좁게 사세요.
편하게 넓게 실리적으로 살고 싶다고요....그러면 그렇게 하세요. 그건 아닙니다요.
유명한 미국에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그의 고향인 메사츄세츠 주에서
상원의원들에게 연설한 1961년 연설문이 하도 유명합니다.
"우리가 먼 훗날에 역사의 심판대 앞에 서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용감했습니까?'
'당신은 총명했습니까?'
'당신은 성실했습니까?'
'당신은 헌신했습니까?'
넓게 산 사람은 유구무언 有口無言이요.
좁은 길로 간 사람만이 대답할 말이 있는 거예요.
좁은 문 뒤에 영생이 있어요. 넓은 문 뒤에 지옥 영원한 죽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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