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오전예배

주인이신 농부의 궁극적인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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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3-03 19:39 조회3,027회 댓글0건
설교자 : 김 준봉 목사
설교본문 : 마태 13:24-30
설교일자 : 2019. 02. 24

본문

 

 

                                   주인의 궁극적 관심

                                                                      마태13:24-30

'하나님은 우리가 선을 사랑할 수 있는 양심을 주시고, 

              우리가 선을 알 수 있는 이성을 주시고, 

             우리가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다'- 루소

 ✎. 양심 이성 자유가 인간의 발명품?  화학물질에서 진화되어 생긴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 모두에 하나님의 뚜렷한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사랑하고, 선을 알고, 선을 선택하여 

모름지기 선을 향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양심과  이성, 그리고 자유를  주신 것입니다. 

악을 위하여 주어진 자유가 결코 아닙니다. 

방탕을 위하여 주어진 재물이 아닙니다. 

잘난척하는 영웅이 되라고 주어진 재능이 아닙니다. 

사치를 위하여 주어진  번영은 더욱 아닙니다. 

그 모두는 우리가 선을 이루도록, 보다 큰 선을 이루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이 있습니다. 

경륜하시는 깊은 의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경륜 하십니다. 

때로는 강권적으로 살아 역사하시어 반드시 소원을 이루신다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시지도 포기하시지도 않습니다.

선함을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없이 우리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선 자체이시다. 하나님이 없는 선은 없다. 

선이란 것이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가 아니다. 진리 = 하나님

피조물은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존재할 수가 있는것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서 그 사랑 그 은혜 안에서 선을 사랑하는 것이 복락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인간됨. 이 하나를 잘 배우고 가면 되는 것이 인생입니다.   다른 뜻은 없다.

이 역사. 인생이라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이성과 양심 자유를 가진 상태에서도 영원히 타락할 수 없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타락이 가능한 아담에서 타락이 불가능한 예수 생명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창조가 되는 것이 이 역사의 존재 목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와 역사를 운행하시는 것은 바로 이 인간 농사를 지으시려는 것입니다.

이 농사에 가리지도 있고 알곡도 있습니다. 농부의 일은 알곡을 모아서 곡간에 들이는 일.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봅니다. 

하나님은 능력도 많으시고 전능하신데 왜  악을 그대로 내버려두시는가? 

당장 벼락이라도 내리치셔서 악을 중단시키시지 왜 방관만 하시는가?

조급해하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는 아마도 하나님은 전능하시지 못한가보다 라고 .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의 전능은 ㉠.기계적. 물리적이거나 ㉡.폭군적이지 않습니다. 

                        ㉢. 마술적인 것이 아니다 ㉣. 지극히 인격적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전능은 율법적이거나 형벌적이거나, 파괴적이거나 심판적이지 않습니다. 

㉤. 오히려 은혜적이요 창조적입니다.  

상징적으로 부성적 전능이라기보다 모성적 전능입니다.

이를테면 엄격한 아버지와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어린아이를 대하여 가라, 먹어라, 자라, 공부하라. 일마다  해라 마라 한다고 해보십시오. 

아이는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하기야 합니다마는, 

억지로 하는 것이기에 마음은 점점 더 멀어져갑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버지처럼 강압적이지는 못하지만, 간절하게 부탁하고 눈물로도 호소합니다. 

그래서 간혹 아이들이 어머니의 말을 가볍게 여겨 무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마는 

나이가 들고 보면 전적으로   어머니의 승리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머니의 그 간곡하고 희생적인 사랑에 감동을 받아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어느 겨울날, 바람과 해가 내기를 하는 이솝 우화.

 "저기 지나가는 사람의 옷을 벗기는 내기를 하자. 

이렇게  해서 먼저 바람이 나섭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바람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바람이 세게 불면 불수록 그 사람은 점점 더 옷을 감아쥐고 몸을 웅크립니다. 

끝내 벗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해는 따뜻한 햇볕을 계속하여 내리쬡니다.

 그 사람은 하도 더워서 마침내 옷을 훌훌 벗고 맙니다. 

여러분, 어느 쪽이 이긴 것입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심도 흔히 힘으로만 능력으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심지어 마술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마는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이 인격적 전능이요 사랑의 전능임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전1:24절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이 전능?  이 말씀이 정말로 이해되십니까?

 십자가야말로 얼마나 바보 같고 어리석고 나약하고 비겁하게보입니까? 

사실 똑똑한 인간들이 보면 얼마나 답답한 이야기입니까?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니라“

이 신비로운 간증, 고백, 지식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때에 우리가 비로소 그리스도인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가라지 비유' 말씀입니다. 

역사와 우주적인 의문에 주시는 명쾌한 해답

예수님께서는 이 귀한 말씀을 주시고 나서 결론을 내리십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예수님의 말씀은 아주 쉽습니다. 그러나 내용이 그렇게 쉬운 내용이 아닙니다. 

이 말씀 안에 들어 있는 진리는 역사와 우주적인 중요한 문제에  해답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만이 들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겸손이  있는 사람 이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듣고 충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 주인이 농사를 잘 짓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농사짓고 계십니다..

 나라는 하나님 나라 하나 박에 없습니다. 왕은 한 분 밖에 없습니다. 

 지들이 스스로 왕이 된 인간들은 다 가짜들입니다. 

우리들이 뽑아놨어도 그들이 진짜 무슨 왕이 아니다. 

    인간은 흙이고 도공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씨앗. 농부는 하나님....이 걸 빼고 계산하니 좀비

✎.신정국가. 만왕의 왕. 만유의 주.

 애굽이라는 나라와 출애굽을 하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은 왕이 누구인가? - 근본

 우리 왕이 어떤 분이신가를 잘 아는 일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 씨앗인 주제에 자꾸 마치 자신이 농부라도 되는 줄로 착각합니다.

    그러니 보는 관점이 틀렸습니다. 씨앗은 씨앗으로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면 그만입니다.

  농부가 하는 일을 씨앗이 다 신청하고 이러니 저러니..........

 진흙이 토기장이 보고 뭐라 하고........................................

 

 

밭을 정성껏 갈아 좋은 씨만을 골라서  뿌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나가보니 싹이 나서 자라기는 합니다. 

그러나 뿌리지 아니한 싹, 가라지도 나서 함께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본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 묻습니다. 

"좋은 씨를 뿌렸는데 어디서 가라지가 생겼을까요?" 주인이 대답합니다.

 "원수가 와서 뿌려놓았구나."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버릴까요?" 그러자 주인이 판결을 내립니다.

 "가만두어라. 가을  추수 때에 가라지가 제  모습을 드러내면 

가라지를 먼저 거두어 불사르고 알곡은  따로 거두어서 곳간에 넣게 하리라." 

 

심는 대로 거둔다는 理致이치를 믿습니까? 

이 엄연한 진리에  대하여 확실한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무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반듯이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다 거두십니다.

하나님께서 실패하십니까? 하나님께서 포기하십니까? 

자신이 하나님이 심으신 씨앗임을 알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예배하는 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큰 흐름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농사법을 따르며 살아갑니다. 

유전자가 그렇다.

딛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남에게 눈물을 흘리게 하면 

언젠가는 내 눈에서 피눈물이 흐른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반드시 내 마음도 아플 것입니다.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둡니다. 

이것을 의심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세상이 이처럼 혼란한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선한 사람도 그렇습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많이들 낙심합니다. 

사랑하고 희생하고 봉사하다가 어느 날 느닷없이 중단해버립니다. 

선을 심으면 선으로  거둔다는 이치를 불신해서 그렇습니다. 

당장 보답이 있느냐 없느냐...상급이 있느냐 없느냐, 

남이 알아주느냐 알아주지 않느냐...이런  것들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부지런히 선을 심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선을 거둘 것인데 말입니다. 

너무 조급해한 나머지 도중에 낙심하고 마는 사람들을 흔하게 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6:9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말라. 살후3:13 

그러므로 낙심할 것이 없습니다. 심은대로 거둘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씨를 심었으면 좋은  열매를 거둘 것이요, 

가라지를 심었으면 가라지를 거둘 것입니다. 

아무리 제 모습을 위장하려 해도 가라지는 가라지일 뿐입니다. 

언젠가는 본색이 드러나고 맙니다. 

씨앗도 가라지요 뿌리도 가라지요, 자라는 중에도  가라지요 

종말에도 가라지입니다.    고후11:14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악은 실재합니다. 실재하여 행동하고 성장합니다. 

그러나 때로 악은 스스로 제 모습을 은폐하기를  좋아합니다. 

악이 아닌 것처럼 선인 것처럼 위장에 능합니다마는

 어느  때에 이르면 반드시 제 본색을 드러내고, 그리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완전한 은폐란 불가능합니다. 완전 범죄란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기간 동안은 함께 자랍니다.  

본문에서 말씀한바, "함께  자라게 두어라"   ....함께 자라는 과정이 있습니다.

 

  본문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주인과 종.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상이한 관점을 봅니다.


㉮. 종들은 씨 뿌리지 아니한 가라지가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그러나  주인은 태연합니다.

   "원수가 와서 뿌렸나보구나." 뿌리는 자가 있습니다.   우연한 일. 실수. 우발적 사건이 아닙니다.

  "나는 본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만 깜빡하여 엉뚱한  말을 해버렸다"  거짓말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는 죄인입니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7:21

선과 악의 두 마음이 함께하는 모순적 자기 존재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태생적인 환경이나 교육을 탓할 필요가 없다. 다른 사람을 탓할 것도, 사회를 탓할 것도 없다.

악의 실제를, 내 안에  있는 악의 실재를 인정할 줄 아는 데서부터 진실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엡2:1-3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이 세상 풍속을 쫓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며 사는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사는 좀비들

            육체와 마음의 욕심대로 원하는 것을 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

✎. 내 안에도 악한 가라지가 있네...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아 나도 이렇게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가라지로구나..

 

㉯. "가라지가 많이 났습니다. 그냥 두었다가는 농사를  망치겠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가라지가 좀 있다고 걱정할 것 없다.  추수 때까지 기다리자." 

    설령 99이 가라지고 1만 알곡이라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숫자에 속지마세요.

노아 한 사람. 아브람 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거룩한 씨에 관심이 있습니다.

사무엘 한 사람을 통해서 말씀하시고

 그 한 사람을 통해서 백성들을 깨우시고 다윗 왕을 세우십니다.

거룩한 씨들이 길가에 가시밭에 돌짝 밭에 그러면서 실패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하나님은 실패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들은 조급해합니다. 

"가서 뽑아버릴까요?" 주인은 "가만두라"  합니다. 너무 신경 쓸 것 없다.

하나님의 인내하심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오래 참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잡히시고 칼과 몽둥이로 잡으러 떼를 지어 몰려와도 

채찍으로 매를 때리고 온갖 수모와 모욕을 해도 

십자가에 못 박아 매달아 죽여도 그대로 죽으십니다.

가룟 유다가 앞장을 서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의 무리를 몰고 와도 

베드로가 칼을 빼어 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가 떨어져나가도 

예수님께서는 다시 붙여 주십니다.

베드로가 세 번이나 부인하며 저주하고 도망가도..

다 알고 계시면서도 그냥 아무 말이 없으십니다.

 

다른 사람의 나쁜 짓에는 당장  벼락을 내리치실 것이지 하면서 

자기의  잘못에는 오래오래 참아주세요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그토록 관대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모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의 밭에도 비를 내리시고 선한 자의 밭에도 비를 내리십니다. 

고루고루 내려주십니다. 내 허물을 참아주시듯이 다른 사람의 악도 

오래오래 참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손대실 때까지 놔두셔야 합니다.

악을 심판한다고 하면서 내가 먼저 죽습니다. 

✎.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야합니다.. 원수사랑. 농부는 하나님을 기억

  그렇다고 하나님의 인내하심을 우습게 여기면 정말 망합니다. 

  종들은 가라지에 대하여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투쟁적으로 대합니다

. "뽑아버릴까요?“

 

노예해방이라는 문제 하나를 놓고 남북전쟁을  7년을 치루면서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남쪽에  대하여 관대하다고 해서 말들이 많았습니다. 

좀 더 빨리 끝날 수도 있었던 전쟁이 길어지고, 그래서 더 많은 희생이 따랐다는 것이지요. 

어느 날 파티에서, 한 여성이  이 문제를 놓고 대통령을 보고 정면으로 충고합니다.

 "각하, 당신의 책임은 적에 대하여 친절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진멸하는 것입니다." 이 충고를 들은 링컨 대통령은 웃으면서 한마디

 "그들을 나의 친구로 만들면 적은 자연히 진멸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죄를. 악을 미워해야지 사람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그게 어렵다. 

 우리들의 관심은 가리지를 뽑아버리는 일입니다. 

농부이신 주인의 관심은 좋은 곡식입니다.

가라지 보다는 좋은 곡식에 마음을 두어 더 아끼고 사랑합니다.

가라지가 함께  자라는 것은 당연히 불편합니다. 

그러나 가라지를  뽑다가 자칫 좋은  곡식이 뽑혀지면 안되겠기에 

가만두라 하십니다. 이것은  생명의 문제입니다. 

악한 사람 만 명이 망하는 것보다 의인 하나가  죄 없이 희생되는 것이 

하나님께는 더욱 마음 아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흙을 헤치고 보면 가라지의 뿌리와  좋은 곡식의 뿌리가 서로  얽히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라지를 뽑으면 좋은 곡식까지 뽑히고 마는 일이 허다합니다. 

 

앞에 앉은 사람이 졸고 있습니다. 

얼마나 피곤하면 저리 고개까지 떨군 채 조나 싶어  안쓰러운 마음도 없지 않지만 

그러나 계속 보고 있으면 그 순간부터 설교가 안됩니다.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기도하고 얼른 다른 데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열심히 귀 기울여 듣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아야 합니다. 

 옆 사람과 이야기하는 사람 고개 숙이고 낙서하는  사람, 

졸고 있는  사람에게 자꾸 시선이 가면 그날 설교는 시쳇말로 죽 쑤는 것입니다.

잘 듣는 사람. 집중해서 듣는 사람. 

하나님 말씀이 들려지는 사람 그 한 사람을 보고 전심으로 설교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무슨 일이든 선을 극대화함으로써 악을 막아야 합니다. 

악에 촛점을 맞추어 악을 막을 생각은 말아야 합니다. 

악을 집중적으로 생각하는 동안에 선의 그 큰 가능성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람을 대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의 많은 장점을 보고 그것을 살려나감으로써 

단점을 극복해야 합니다. 단점 한두 가지를 끄집어내어 버려라 고쳐라 소란을 떨면  

자칫 그 많은 장점까지 다 소멸하고 말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나아가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임시이기는 합니다마는

가라지와 좋은 곡식이  함께 자라야 하는 불편함에는 

전적으로 손해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과 악이 함께 거처하다보면 악에게도 유익함이 있습니다. 

물론 불편이야 따르겠습니다마는   분명 유익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들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산 속에 목장을 크게 짓고  수백 마리의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다른   짐승들도 먹을 것이 많아서 그런대로 조용한데, 

겨울이 되면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에 가두어 놓은 양들을 노리고 

여우나 이리 같은 사나운 짐승들이 목장 주위로 모여드는 것입니다. 

주위에 모여들어 울음소리를 내면 양들은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정신없이 우리 안을 돌아다닙니다.

 그러다 간혹 한두 마리씩 잡혀 먹히기도 합니다. 

하는 수 없이 주인은 사냥꾼을 몇 명 사서  근방에 있는 여우와  이리들을 모조리 잡아 죽이게 합니다. 

이제는 이리 소리도, 여우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양들은 무럭무럭 잘 자라고 많이 번식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겨울만 되면 많은 양이 얼어 죽는 것이었습니다. 

전과 똑같은 시설인데도 얼어 죽는 것이 이상하여  조사해보니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았습니다. 

우리 밖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에는  

 무서워서 벌벌 떨며 내내 우리를 돌아다녔으니 

그것으로 운동이 되어 얼어 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위험이 없어지자 그저 배불리 먹고 늘어져라 잠만 자다가 

얼어 죽는 것입니다. 악의 유익함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더는 할 말이 없습니다. 

내게 다가오는 환난과 시험, 내가 감당할 만큼 주십니다. 

그것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내게 꼭  필요합니다. 

악인은 선인에게  인내와 온유를 가르치고, 

선인은 악인에게 회개를 가르친다. -아우구스티누스

 

발명왕 에디슨의 말년의 일화.  

나이가 많아 귀가  점점 어두워지자 큰 소리밖에는 들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의사가 진찰을 하고 수술을 하면 낫겠다며 수술 날짜를 받아줍니다. 

그러나 그 날, 에디슨은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찾아갔을 때, 에디슨은 변함없이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큰소리로 묻습니다. "왜 수술을 안 받으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에디슨이  대답합니다

.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를 듣지 않으니 연구하기 좋구먼. 그냥 살려네." 

우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너무 많이 들으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상당히 많은 것을 걸러내 들읍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당신께서 택하신 자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성장에 있습니다. 

악이 존재하고 함께 활동하는 것을 불평하지 맙시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반드시 그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어가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인내는 가라지가 변하여 좋은 곡식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가라지는 가라지입니다. 끝까지 가라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좋은 곡식, 곧 알곡에  있습니다. 알곡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항상 좋은 이야기를 하는 분이 있고, 걱정거리만 늘어놓는  분이 있습니다.

 "아이고 세상 끝났습니다" "왜 이리 악해만 집니까?" "정말 말세인가 봅니다" ...

만날 때마다 인사가  이렇습니다.   

좋은 이야기도 많은데 왜 나쁜 이야기만 늘어놓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을  나쁜 방향으로만  보려 하면 점점 나빠만 집니다. 

옛날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더 심한 때도 많았습니다. 

좀더  밝은 것을 생각합시다. 

 

㉮. 하나님의 심판, 그 종말론적 심판을 보자

㉯. 그 심판 앞에 설 것을 생각하고 살자 

㉰. 농부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나는 씨앗이다

     좋은 열매 맺는 일에만 전심전력하자. His part my part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계십니다.   

가리지 뽑아버릴 생각이나 가라지 걱정 염려하지맙시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 뜻을 이루어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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