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승리자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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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6-16 16:52 조회2,93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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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승리자로 살자
요한복음 16:33
십자가의 승리....기독교 신앙은 십자가를 승리로 믿는 것이다.
No other win.
예수님께서 소나 양처럼 자신을 희생 제물로 삼으셨는데 승리하셨다고 하신다.
죽으셨는데 생명의 문을 여시기위해서 모든 것을 다 이루셨다고 하신다.
No other want.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이 되셨는데 승리라고 하신다.
자신은 죽으시고 친구를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목숨을 버리셨는데...그것을 승리라고 하신다.
자기를 죽이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신다. 용서하시는 것이 승리라고 하신다.
자기 옆에서 처형당하는 강도에게도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승리
보통 상식으로 말하면 아무리 잘 봐줘도 실패한 것 같은데
식민지 국가의 아들로 태어나서 로마 군인들에게 함께하는 제자들 한명도 없이
33살에 처형된 것인데....어떻게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 승리?
그것도 자기 자신만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승리라고 하신다.
이겨야 기쁨도 있고 할 말도 있고 상당한 보상도 주어지는 것이지
지고 실패했는데 무슨 승리인가?
칼로 이기는 것이고, 힘으로 이기는 것이고. 천재적인 뛰어난 재능으로 이기는 것인데
왜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시는가?
원수를 갚고 아예 죽여 놔야지 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가?
용서와 사랑을 승리라고?
우리는 언제 내가 이겼다고 하시는가요?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다. 내가 이겼다.
초등학생 아들에게.........의사인 엄마가 ......아들!
예수님께서 어른으로 오시지 왜 어린 아이로 오셨을까.
예루살렘도 아니고 베들레헴 구유에?
21세기 오늘날 같이 위생시설도 좋고 의학도 발달하고
강대국인 미국 같은 큰 나라 대통령으로 오시지......
➜. 아들이 뭐라 했겠어요? 자기 같으면 아예 오지 않는다고. 뭐 하러 오냐고....
뒤통수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어라는 것이다.
아이들 눈에도 도대체 뭐 하러 오셔가지고,...............뭐가 답답해서 오셨을까........
.아이고 참.
인간인 제 눈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말해도
이 세상이 거의 좀비 수준인데 뭐하러 오시는가?
사람들 조금만 자기 맘에 안 맞으면 쓰레기통에! 뭐 고민 같은 것도 안하고 바로 버립니다.
심지어 Gott. 예수님도!!!!
어느 시인처럼 소풍 왔다가 간다고? 참 즐거웠다고?...
그런 말은 장례식장에서나 하는 거구요
어떻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이 절대적이고 영원하고 완전한 승리?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일주일 남겨놓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이 당시 원수들은 예수님이 유월절에 올라오면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을
이미 모의하고 결정하여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에게도 미리 여러 차례 앞으로 있을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혁명을 위해 오신 것이 아니지만
그의 능력과 인기와 역사가 정치적인 음모에 사용되었고 말려들었습니다.
또한 종교적인 질투와 시기가 결정적으로 예수님께 괴로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애국의 이름으로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과......
엮이는 것 자체가 불쾌한 일이다.
왕이나 총독이나 제사장들이나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들 바리새인들...........
그러나 이 모든 위험을 알지만 나귀를 타고 입성을 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나귀를 타고 입성한다는 것은 초라한 행사 같지만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이것은 왕이 대관식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때 행하는 예식이었습니다.
고로 이런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 예식을 하면서 입성하시면
다음 사건은 더 불리해진다는 것을 예수님이 모르신 것은 아닙니다.
원수가 기다리는 곳으로 오히려 정치적으로 예수님을 몰아붙이기 쉽게
구실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가 뭔데 나사렛 촌놈이 무슨 왕은 왕이야.....
거지같은 것들이 별짓을 다 하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이것은 승리의 상징입니다.
또한 겉옷을 벗어서 길에다 깔고 그 위로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걸어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왕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호산나를 불렀습니다.
호산나의 뜻은 '우리를 지금 구원 하소서 save us now입니다.
당신은 우리의 왕이며 구세주이니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는 의미였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왕에게 보내는 함성이었습니다. 승리와 영광과 권력의 상징적인 행렬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에 도달하니 대제사장과 종교 지도자들이 나와서 웬 사람들이냐고 묻습니다.
이 때에 호산나 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몇 사람이 남아서 대답하는 말이 겨우
"갈릴리에서 온 선지자 입니다."
다시 말하면 촌사람들이 명절에 와서 한 번 벌이는 행렬이오니
못본 척 참아 달라는 듯이 변명을 했습니다.
이럴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몇몇 아이들만 호산나를 부르고 있었으니까요.
이 행렬이 헤롯의 궁전으로 들어가고 빌라도의 총독 관저로 들어가서
발칵 뒤집어 놓고 헤롯 빌라도 잡아다가......
최소한 곤장이라도 쳤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흐지부지하게 되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한 바퀴 돌아보시고
아무 말 없이 베다니로 내려가셔서 하루 밤 쉬고 다음 날 아침은
어제와 대조적으로 아침 식사도 못 하시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 오십니다.
이 때 길가에 있는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저주해서 나무가 말라버렸습니다.
바로 어제 호산나를 부르던 사람은 다 어디 가고 이렇게 예루살렘으로 외롭게 들어오시는 겁니까?
많은 유대인들의 정치적인 기대, 종교적인 대망, 사회적인 욕구들을 다 외면하시고
당신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라면 왜 그렇게 가만히 있냐고 온갖 비아냥에도 묵묵부답입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고 심지어는 제자들까지도 절망했습니다.
마치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실의에 빠졌습니다.
감람산 기슭에서 출발했던 호산나의 함성은
이렇게 아주 우스꽝스럽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승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뭘 이기셨다는 것?
병 고치는 예수님을 보고 따라다니고,
오천 명을 먹이시는 예수님을 보고 따라다니던 군중들이
호산나 소리 한 번 했다고 예수님 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믿는 자는 이 십자가의 사건 속 에서 승리의 신비를 깨닫는 자라야 합니다.
우리들의 진정한 인생의 승리가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보고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 돌릴 수 있는 승리의 신비를 아는 자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승리의 표상입니다. 그 승리를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승리의 결정은 십자가에 있고 십자가 속에 감추어진 승리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등을 해야 하고
게임을 하든 싸움을 하든 소리를 질러도 무조건 이겨야지 지고는 분해서 못살아요.
자기 자존심이 상하면 죽기 살기로 일 저질러요.
자기 성취감으로 인정받고 보상이 주어져야. 산다.
이 이김질 자존심의 싸움이 얼마나 무서운지 ...
정신이상자.=조현병· 주폭 분노장애보다 더 무섭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런 승리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는 내용이 반듯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쓸데없는 이김질에서 해방되어야합니다.
이런 문제가 정리가 안 되는 데 무슨 평안. 평강?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입곱 마디의 유언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 한마디가 "다 이루었다"입니다. ➜.33살에 죽으면서?
누가 죽음 앞에서 이런 임종어를 남길 수 있겠습니까?
"다 이루었다"라는 말은 승전가입니다. 그 의미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16:33에 보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내가 일등. 내가 최고. 내가 머리. 내가 왕이고, 내가 Star + King
내가 하나님 같이 되어야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에 맞게 행동하고 살아야 승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도록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살아야 그것이 인생의 승리.
보통 승리란 쟁취하는 것이요, 소유하는 것이요, 힘과 권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리면 패하고 얻어야 승리하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야 이긴 것입니다.
일등 해야 승리.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야 승리. 수많은 경쟁에서 이겨야 승리.
세상의 모든 게임이 다 이기고 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권투 시합은 사각 링에서 처절한 싸움을 하고
수많은 군중들은 그들을 지켜봅니다. 이 싸움은 어떻게 해야 끝이 납니까?
구경꾼들은 판정승은 재미없어 하고 KO승을 해야 구경한 것 같고 재미있어 합니다.
자! KO승이 좋긴 하지만 한쪽이 KO승을 하기 위해서 다른 한쪽은 KO패를 해야 합니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어느 한쪽이든 맞아서 넘어져 일어날 수 없어야 KO승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비참한 승리가 진정 승리입니까?
누군가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죽어나가야 내가 승리할 수 있습니까?
정말 사각 링이 이 세상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승리는 승리가 아니고 죄입니다.
정말로 의롭고 사랑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천국을 믿는 다면
우리는 이러한 승리를 바랄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동물 왕국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뒹구는 나라. 패자 없는 승리.
이기고 지는 세계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나라
원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살리고,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와 함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것을 우리는 진정한 승리라고 합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승리를 쉽게 발견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은 처음에 예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충실한 제자 스데반을 돌로 쳐죽이는 데 앞장을 섰으며
예수님 믿는 자를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까지 가서 신자들을 잡으려는 잔악한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마침내 제자까지 삼으셨습니다.
이 큰 사랑에 사도 바울은 굴복되어 남은 생을 주님 위해 바치고 마지막에는 순교까지 하게 됩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생각해야 할 무궁무진한 신비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리 양 같으신 예수님 어떻게 땅의 임금들의 머리. 만왕의 왕이 되시는가?
40일 동안 광야에서 시험받으시며 승리하시고........
3년의 공생애를 승리로 이끄셨고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승리하심으로........
십자가의 승리를 다 이루었다로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승리 이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새 피 땀흘려 기도하십니다.
여기서 승리하시고 이 승리의 결과로 십자가에서 승전가를 부르십니다. 우
리는 이 신비로운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깨어서 기도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는데도 잠을 잤습니다.
그는 주님을 위해 칼도 휘둘렀고, 장담도 했고, 맹세도 했지만 예수를 모른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은 용기는 만용이고, 기도하지 않은 자가 휘두른 정의의 칼은 폭력에 불과합니다.
자기의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한 자는 더 이상 얘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소유는 승리가 아니고 권좌도 승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먼저 승리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가장 위대한 능력은 자기를 십자가에 완전히 못 박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 자기를 완전히 바치는 자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진정한 승리가 여기에 있고, 능력도 여기에 있고 지혜도 여기 있습니다.
자신을 완전히 십자가에 못 박는 순간에
위대한 부활의 능력이 있고 승리의 신비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려오실 때 하신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이 잔은 가야바가 내린 것도 아니요 빌라도가 내린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가 주시는 십자가이기에 순종하는 아들의 마음으로 이 잔을 받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승리요, 사랑의 승리요, 소망의 승리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승리하신 후에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재판을 하고 침을 뱉어도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대로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진정 승리자만이 사랑할 수 있고 승리자만이 침묵할 수 있고 승리자만이 너그러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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