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극적 관심이 나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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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2-17 18:47 조회2,9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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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 관심이 나를 이끈다
요한복음 6:26-35
본능에 끌려 다니며 살다가 죽는 존재가 아니라
생각을 할 줄 아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배부른 돼지의 만족을 인간의 행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문제는 생각의 내용입니다.
먹고 입고 사는 것----이런 육체적인 생활이란
어떤 사람이든 너나 할 것 없이 그게 그것이고 거기가 거깁니다.
아무리 별난 것을 먹고 입고 구경했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별날 것이 따로 없다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 관심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에 따라 생의 목적이 설정됩니다.
이 목적이 가치관과 세계관을 결정합니다.
이 목적이 나를 어디다 써먹는가를 결정. 價値決定 가치결정 어디다 쓰는 물건?.
두 종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먼저 본능대로 살아놓고 생각을 이에 맞추어가는 사람입니다.
본능이나 감정에 충실하고 생각이란 갖다 붙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생각을 먼저 가지고 그 생각에 따라서 오늘을 살며,
본능까지도 지배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문제는 최종 목적이 무엇이며 궁극적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육체적인 욕구...
음식과 생리적인 욕구. 안전. 안정의 욕구가 있다.
불안 고통과 공포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되도록이면 편안하게 살고 싶어합니다.
이런 욕구 다음에 오는 것이 소속의 욕구입니다.
이웃과 친구가 있어야 하고 그들로부터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인정받지 못하면 소외감을 느낍니다.
이런 소속의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지고 나면
자기 존중의 욕구. 자기성취. 자기실현의 욕구가 생깁니다.
그래서 항상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행복이란 자기 존재를 계속 확인해나가는 것으로 느낍니다.
자기 존재감을 느끼지 못하면 남이 볼 때에도 볼 것이 없고
자기가 자기를 볼 때에도 볼품이 없고 쓸모가 없고 점점 더 사람이 망가집니다.
그래서 자기 성취나 자기실현. 여기에 목숨. 인생을 걸고 달려듭니다.
세상은 이런 일에 사람들을 경쟁시키고 부추깁니다.
✎. 문제는 그 존재감을 어디서 느끼는가? 왜 그게 필요하지?
왜 그렇게 불안거야?
중요한 점은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생각할 가치가 없는 것을 생각하고
관심을 둘 필요도 없는 것에 관심을 두고, 존재감을 느낄 일이 아닌 것에 매달릴 때에
불행이 있는 것입니다.
불행을 불행으로 모르고 오히려 이렇게 이렇게하면 행복하다고 선전하는 것이 세상.
거짓말
✎. 주 진형.
정부가 하지 말아야 하는 짓을 하고 있다고 하면, 대안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꼭 있다.
하지 말아야 하는 짓을 하지 않는 게 바로 대안이다.
일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세상에 얼마나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많은지.
조직의 지도자 역할을 해본 사람은 안다.
쓸 데 없는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게 자기 일의 태반이라는 것을.
혁신을 해 본 사람은 안다.
해야 할 일을 안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하는 짓을 사람들이 열심히 한다는 것을.
人爲인위의 일을 제발 좀 하지 말고 無爲무위로 가만히 있어주는 게 도와주는 것이다.
✎.지구에 人間種이 유일한 해충 害惡
㉠.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들에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목자.
한 마리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와서는 그 잔치 하느라고 양을 몇 마리나 잡았을까?
㉡.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양을 위해 사람인 목자가 목숨을 버린다?
어찌 양을 위하여 사람이 목숨을 버립니까?
✎. 계산상으로 실리성? 앞뒤가 맞는 논리성? 말도 안 되는 이야기....
✞. 하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구원받는다...이게 말이 됩니까?
심는 대로 거둬야 하고 자기 죄는 자기가 책임져야 되지......
자기 죄를 다른 사람이 대신 책임?
사람들은 예수님은 참 쉽게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주 어려운 내용을 아주 쉽게 말씀하신 것뿐이다
내용 자체가 쉬운 내용이 아니다.
우리들이 정말로 99마리 놔두고 한 마리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일합니까?
아무리 동물들을 사랑해도 그렇지 사람이 동물들을 위해서 죽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위해서 죽습니까?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그래서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신부를 위해서 처음부터 작정하고 자기 인생을 다 포기하는 신랑이 그런 남자가 있는가요?
자신을 위해서 별로 쓸모도 없고 이쁘지도 않고 성질도 개떡같은 여자를 그렇게 사랑할 수가?
우리는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그렇게도 잘 믿는 척할까?
그렇게도 자기 욕구 충족에 충실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렇게 사랑하신다고 하는 데는 그렇게도 잘 믿어질까....
자신들은 그렇게 죽어도 안하면서.....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원수라도 사랑하라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한 알의 썩어지는 밀알로 살아가라고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셨으니
너희도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게 된다고
"며칠 안 있어 돌아가실 텐데 그런 건 해드려 뭘해?" 잇속을 따지자면 그렇지요.
그러나 그래서는 못씁니다. 비록 어른이 사양을 하더라도,
"나야 곧 떠날 텐데 뭐. 입던 것도 다 못 입을 건데 뭐……"하고 말씀하시더라도
해드려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만 생각해서 해드리지 않는다면 불효입니다.
오늘 해드렸다가 내일 버리게 되더라도 오늘은 해드려야 합니다.
너무 잇속만 따지고 살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돈 벌레
경제적인 이치, 경제적인 손익계산損益計算을 밝히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소위 경제적 동물
만사를 돈으로만 계산하려는 사고방식, 이것이 사람을 비인간화시키고
사람의 가치와 행복을.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이익이라고 계산하는데 그게 망하는 길
이런 계산적인 사람들이 정말 행복해지는가?
인생을 길게 멀리 깊이 보면 그런 인간들은 망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계산기가 세상이라는 우물 안에서 쓰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눅 15:11~32)를 봅시다.
탕자가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왔으나 아버지는 좋아서 잔치를 베풉니다.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잃었다가 다시 얻었다고 기뻐합니다.
그때 탕자의 형이 바른 소리를 합니다.
"동생은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함께 다 먹어버렸습니다.
이렇게 나쁜 자식을 왜 환영하십니까?
그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까지 잡으시다니 도대체 이것이 무슨 경우입니까?"
사실이지 똑똑한 지적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타산 이해득실利害得失의 계산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잃은 양 한마리 탕자의 비유 선한목자이야기는 삶의 방향성. 성질을 나타내는 나침반.
✎.돈. 재물이 아니라 아들. 사람...일이 아니라 사람
이제 묻겠습니다.
여러분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다 마음을 두고 살아갑니까?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고 사는 것입니까? 내 생각의 중심이 어디에 있습니까?
목적될 수 없는 것을 목적 삼고, 아무 소용없는 시시한 일에 너무 집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쓸데없는 일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곤 합니다.
머리가 터지도록, 몸이 쇠약해져서 마침내 자리에 드러눕도록 마음을 쓰고 애를 태웁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생각해보니 모두 무상한 일이요 쓸데없는 일이라,
그 때가서 가슴을 치고 후회합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생명과 바꾸어도 후회할 것이 없는, 그만한 가치에 관심을 두고 살 것입니다.
✎. 삶의 구도. 원근. 주제를 잘 못 잡으면 좋은 그림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마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생각하여보라."
깊이 생각하고, 멀리 생각하고, 그 마지막을, 그 궁극을 생각하라는 말씀입니다.
미식가다 뭐다 하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먹을 것 찾아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음식문화의 발달은 정신문화의 퇴보.
먹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세상에 무슨 가치 있는 일이 있으며,
무슨 정신적인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영성을 기대하겠습니까?
잘 먹으면 얼마나 잘 먹고, 많이 먹으면 얼마나 많이 먹겠습니까?
✎. 이번 주 목요일 마지막 다녀오면서....육신이라는 것이 옷이요 집..
한 번 걸쳐보고 쇼하고 몇 번은 이사해보셨지요....
예전에 살던 집에 혹은 고향집에 가보시기도 하시지요.
마지막은 여러분이 마련한 집과 옷 말고
하나님께서 마련하시고 지어주신 ➜.새 집으로 새 옷
우리가 말하는 집과 옷 음식은 다 육신적인 것이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은 그게 아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내 영혼이 아니고 몸에 걸친 그 옷이 내 영혼이 아니다.
✎.영혼이 없는 사람
마르코스 대통령 부인 이멜다의 옷가지가 1,200벌.
그중에는 한 번도 입어보지 못한 옷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놓아두고 갔습니다. 그것도 자랑일까요? 대통령부인. 궁궐에 산 것이 자랑?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실 옷에는 별 관심이 없어집니다.
자꾸 나이 드신 분들 얼굴이 보입니다.
얼굴이 맑고 평안하고 깊고 조용했으면 좋겠는데........
내 마음속에 있는 초라함과 공허함은
어떤 좋은 옷으로도 감출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낡고 값싼 옷을 걸쳤다 해도
마음속에 감추어진 기쁨은 빛을 잃지 않습니다.
옷이 날개라는 착각은 50문턱에서는 버리셔야 합니다.
✎. 사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사람이 50이 넘으면 세수만하고 와도 멋있어야지......
예수님을 바로 믿으면 최소한 쓸 데 없는 짓거리들은 그만합니다.
비본질적인 것들. 마지막 궁극적인 것들이 아니면 다 털어냅니다.
그리고 다 잊어버립니다. 아주 가뿐해지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삽시다. 떠나게 좋게 이사하기 좋게,
나그네처럼 훌쩍 나서면 그냥 갑니다. 뒤돌아 볼 필요가 없다.
무슨 일이고 사람이 하는 일에는 상당한 허영. 허세. 과장 거짓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서 긍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옷이나 음식이나 계급장이나 모자보다는 목숨 건강이 중요하지만
껍질 한 번 더 벗기면 이것도 목적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그리고 오래 살아보겠다고 애쓰지만 이것이 다 허욕입니다.
보물 같은 사람들은 30대 40대에 많이 가시더라구요.
물론 오래 오래 사시면서 겨울에 피는 꽃도 있구요.
어떻게 살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왜 사느냐고 물으십시오.
결혼생활을 어떻게 끌어나갈까 묻지 말고, 왜 결혼했는가를 물으십시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물으십시오.
먼저 이 '왜'라고 하는 문제, 이 목적의 문제에 대하여 분명한 해답을 얻으면
그 다음의 '어떻게'라는 방법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됩니다.
✎. 本立道生 본립도생...근본이 바로 서면 길은 자연히 열리는 것이다.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죽어 없어지는
자기 자신에게 그리도 관심이 많습니까?
아이잭 뉴턴은 세상을 떠날 때에
그만 건망증이 생겨서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자신의 나이도 생일도 잊어버렸습니다.
친구나 후배들이 찾아와 인사를 해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 천재가 일생을 통해 가깝게 지내온 사람들한테조차
"자네 누군가?" 하고 물었다니 지켜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한번은 누가 하도 답답해서 뉴턴에게 물었답니다.
"선생님,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가 있어요“
"내가 죄인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나의 구주라는 것, 이 두 가지는 기억하고 있어요"
다른 일들은 다 내버리셔도 아무 상관이 없다. 의미 없는 것들이다.
새 하늘 과 새 땅에 새 옷 입은 나...........
한량없는 영광 중에 주의 얼굴 뵈오리.
이것이 나의 꿈이요 환상이요 계시요 예언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구하신 것 단 하나...............아버지.
다른 이야기하시면 누가 뭐라고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인생이 공허하고 답답해집니다.
김웅용은 IQ 210을 바탕으로
3세에 미적분을 푸고 4살 한양대를 다니고 . 5세에 4개 국어를 구사하며
7-9살 미국에서 석박사과정. 나사에서 스카웃. 10세부터 15세까지
NASA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충북대학교 대학원 공학 박사의 학력으로 충북개발공사 기획홍보부 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신한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57세
1977년 15살에 미국에서 귀국해 KAIST에 취직하려 했더니 직원이 학위를 가져오라고 하더라.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었어. 우리나라에선 쪽지(학위)가 필요해. "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시간강사, 계약직 교수로만 15년을 보냈다.
"많은 사람이 저에게 묻습니다. 천재이면서 왜 지방에 있느냐고.
더 화려하고 촉망 받는 지위와 위치에 있을 수 있는데
자신의 능력을 무시하고 스스로를 격하시키는 것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비난일 수도 있고 때로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조언일 수도 있는데,
저는 살면서 타고난 능력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IQ210'이라는 숫자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작은 부분일 뿐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너무 늦게 알아버렸습니다.“
"난, 절대 실패한 인생이 아니다. 왜 서울대 못 들어가고,
왜 SKY대 교수가 못 되었냐고 하는데 능력대로 살아가고 있다"
SKY Castle에서 사는 것이 꿈이요 비젼인 사람들 눈에는 ........
✎. 김웅용 천재라는 타이틀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보통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그 여유. 그 자유로움.
SKY Castle에 사는 사람들
그 성안에 사는 사람들은 전부다 마법에 걸려 있는 좀비들.
62년생이 1970년대에 미국에 가서 콜로라도주립대에서 공부하고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들 하던데요.
설사 내가 미국에 안 갔다고 쳐요. 미국이라고 착각할 만한 어떤 곳에 있었다고 합시다.
제가 미국에 가고 안 가고가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사실은 그보다 더한 의혹도 많죠.
神童은 아버지가 만든 거다, 기네스북에 올라간 것도 사실이 아니다….
별별 이야기가 다 있어요."
신동이면 그게 뭐고 아니면 또 어떻고
기네스북에 올라가면 뭐하고 안 올라가면 어쩌냐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뭣이 重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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