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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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3-17 19:31 조회3,02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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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기쁨
요한복음 3:22-30
㉮.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막 완성한 어린이.
밀물이 들어오면 곧 허물어져버릴 것이지만
㉯. 방금 아기를 목욕시키고 난 엄마
㉰. 공예품을 막 완성한 목공
㉱. 어렵고 힘든 수술 끝에 생명을 살려낸 의사
그 사람의 됨됨이는 무엇을 기뻐하며 무엇을 슬퍼하고...
울고 웃는 희노애락의 표현에 그 사람의 됨됨이가 나타남
웃을 일에 웃을 줄 아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입니다.
웃어서는 안 될 일에 웃는 사람은 정신 나간 사람입니다.....
그리고 울어야 할 일에 우는 사람은 인격자입니다.
그런가하면 울지 않아야 할 일에 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병의 하나가 정상적인 감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감정이 정상이 아닙니다. 감정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 말은 많습니다.
잘났다고 떠들어댑니다. 분노할 일도 아인데 너무 쉽게 분노합니다.
목숨을 걸 일도 아닌데 결사 투쟁을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목숨까지도 ...자살율 1위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병들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감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감정을 잃어버린 채 말이 많은 사람에게
정상적인 분별력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
우리는 무엇을 기뻐하며, 어떤 때에 기뻐하며, 얼마나 기뻐합니까?
㉮. 대체로 우리는 소유함. 돈과 권력을 얻었을 때
㉯. 어떤 목표를 달성했을 때 그 성취감으로 기뻐합니다.
㉰. 칭찬을 기뻐하고 명예를 기뻐하고, 인정받는 것을 기뻐합니다.
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어디서 찾느냐가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데서 찾으려는 사람은
유치한 사람이요 불행한 사람입니다.
남이 알아주면 기쁘고 남이 조금 무시한다 싶으면 죽을상이 되는 사람이라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나 자신의 진실로 그 존재 가치만으로 충분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그 하나만으로 충분히 행복
나 자신이 보물인데
나 아닌 다른 것으로 나를 내세우고 치장하려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네 하나님이 되고...이 말이 무슨 말인지를 알고 나면
내가 하나님의 보물이라는 사실로 ...
만일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가 없다면
그 하나님은 내가 만들어 놓은 神신이지 진짜 하나님이 아니다.
이 정체감이 건강하지 못할 때에
우리는 기뻐할 수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의 기쁨이란 너무나 이기적. 육체적이고
순간적이고 찰나적이고 비도덕적인 때가 많습니다.
또한 우리의 기쁨은 비사회적이기도 합니다.
순간적이고 허무합니다.
성취감 역시 순간적인 것으로 더 큰 성취를 욕망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성취감 자체에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상대적인 기쁨은 기쁨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상대적인 기쁨은 건전치 못하며,
나아가 도덕적 심판을 받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 도박판에서 돈을 딴 사람들은 기뻐합니다. 잃은 사람은?
도박판의 판돈이 적어서는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억이 왔다 갔다 해야 짜릿한 기쁨이 있답니다.
우리들 인생에서 도박이 아닌 것이 얼마나 됩니까?
내가 기뻐하는 그 시각에 다른 사람은 슬퍼하고 있습니다.
내가 얻는 순간에 다른 사람은 잃고 있습니다.
내가 웃는 순간에 다른 사람은 울고 있습니다.
이런 식의 기쁨이라면, 그 기쁨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열 걸음 열 사람이 한 걸음. 참 좋은 이야기이지만 그러나 집단주의. 전체주의의 위험.
✎. 복음이란?
➜. 땅 끝까지 세상 끝 날까지 온 백성들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 사실 어마어마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세례 요한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29절)"
㉮.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7
내가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다 예수님에게로 세례를 받으려고 몰려가
아니 그러면 나는 뭐가 되느냐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도. 못 봐주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실패를 내가 즐기고 있다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성도들의 기쁨이란 절대적인 기쁨입니다. 질투와 시기가 없는 기쁨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의 원수가 망할 때에 기뻐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네 원수가 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할 때에 그 재앙을 네게도 내리겠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정말 마음을 곱게 먹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야 나도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이기고 지는 일에 예민한 사람들은 오래 사귀기에는 무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이김으로 기뻐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실수하는 것을 보고 더 좋아합니다.
남을 넘어뜨리려고 트릭을 동원하는 등 갖은 애를 다 쓰고
다른 사람이 여기에 걸려 실수할 때에 통쾌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적인 사람입니다. 너무나도 불행한 사람입니다.
항상 모든 일에 이겨야만 하는 사람, 일등을 해야만 하는 사람,
그렇지 않으면 잠을 못 이루는 사람도 정말 불행한 사람입니다.
일등을 하든 꼴등을 하든 박수를 받든 비난을 받든
자신이 마땅히 할 일을 성실하게 하고 나머지는 내 영역이 아닙니다.
평안하시고 잠 잘 잘 수 있는 사람이 되세요. 자신에게 정직하고 성실
시127: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신앙생활 잘 한다?
예수님께서는 승부욕이 없으셨다.
흔히 말하는 이기고 지는 세계. 높아지고 낮아지고 그런 세계가 없다.
아버지의 이름 아버지의 뜻 아버지의 나라가 있을 뿐입니다.
흔히 남자들에게 약한 문제가 성문제. 돈 문제. 명예. 이름...
그 중에서도 사람마다 취약한 부분이 있다.
홀로 광야를 걸어가고 있는 수도사가 있습니다.
마귀가 그 뒤를 따르면서 수도사를 시험합니다.
예쁜 여자의 모습으로 동행하여 유혹. 돈과 명예를 주겠다고 속삭이고 ......
다 소용 없습니다. 그 수도사는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길을 그대로 의연하게 갈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마귀는 그 수도사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는 "수도사여 긴급 속보입니다.
당신의 친구가 방금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렇게도 의연하던 그 수도사의 안색이 별안간 싹 달라지더랍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사람이 세례를 받기 위하여 예수님께로 모입니다.
세례 요한에게 모여들던 사람들까지 다 예수님께로 가버리자
요한의 제자들이 몹시도 불만스러워합니다. 그 결정적인 시간에 세례 요한은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하고 말씀합니다.
요한의 마음 속에는 전혀 시기와 질투가 없었습니다.
이렇듯 시기와 질투가 없으려면
자기 처지와 자기 정체와 자기 본래성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정체감이 확실한 사람이었습니다.
ⓐ.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27
ⓑ.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28
ⓒ.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29
ⓓ.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30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기 정체감이 분명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 사명이 있다.
자신의 역할을 하면 그만이고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감독 지휘하고 계신다.
➜.자기 포지션과 역할을 잘 감당하고 나머지는 다른 선수들과 감독의 몫입니다.
㉯.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28
주연이 아니어도 아무 상관이 없다. 조연으로도 충분하다.
주님의 종으로 섬기는 것만도 분에 넘치는 영광인데
아예 자신이 마치 하나님이라도 되는 줄로 착각을 하면.....그것은 재앙이고 저주입니다.
무익한 종입니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제가 무슨 상을 받습니까? 뭐가 잘못 된 것 같네요.
㉰.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왕이 되면 우리는 성공이라 하고 그 신하가 되면 벌써 망한 기분이다.
누구는 왕을 하고 나는 그 신하를 해야 하나?........
➜.누구 아들은 이 번에 왕이 되었데.....
누구 아들은 그 밑에서 자리 하나 얻었다하데...
신랑의 친구.......유대의 혼인예식에 있어서 독특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 신랑과 신부 사이의 연락을 맡습니다. 옛날에야 전화. 편지?
그래서 신랑의 친구가 신랑과 신부가 마음대로 왕래하지 못할 때에
서로 주고받고 싶은 말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전해줍니다.
ⓑ. 혼인식을 준비하고 초청장도 발송합니다.
ⓒ. 특별히 재미있는 일은 신부의 방을 지키는 것도 역시 신랑 친구의 책임입니다.
본래 유대사람들은 저녁에 결혼식을 올립니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랑이 옵니다.
캄캄한 밤에 신랑이 아닌 사람이 들어가면 큰 일입니다.
아무리 캄캄한 어두운 밤이라도 신랑을 알아보는 친구가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랑의 친구가 지키고 섰다가 신랑이 오면 기뻐하면서 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랑 신부가 기뻐하는 시간에 그도 함께 밖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랑의 친구입니다.
나는 신랑의 친구이다 나는 내 위치에서 기뻐하고 있노라...
위치감각이 분명한 이런 사람은 행복합니다. 조연이라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친구는 장가가는데 장가도 못가고 친구 장가가는데 조연이나 하고 있고..
하나님께로서 받은 바 내 위치에 대한 정체감이 분명한 사람이 행복합니다.
나아가 그 마음이 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에는 좋게 시작했다가 중간에 그 마음이 변하면 안 됩니다.
환경이 어떻고 세상이 어떻고, 신랑이 내 기분을 상하게 했다고 해서
마음이 변하고 생각이 달라지면 안 됩니다.
어떤 순간에라도 그 신부가 내 아내보다 예쁜데 하는 질투를 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디까지나 나는 신랑의 친구입니다. 끝까지 친구입니다. 바로 그 마음이 중요합니다.
➜.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이 하나로 필요충분조건이 넘칩니다.
주례 목사님 앞에 세워 놓고 신랑 신부가 둘이 손을 꼭 붙들고 놓지를 않습니다.
신랑의 부모님들은 신랑 신부와 같이 연신 입을 벌린 채 좋아합니다.
그런데 신부의 부모님들은 손수건으로 눈두덩을 닦으며 울고 있습니다.
참 묘한 시간이다.
결혼이란 것이 두 사람이 하는 것인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무릇 동물은 제 새끼를 사랑합니다. 호랑이도 사자도 코끼리도,
심지어는 고슴도치도 제 새끼를 아끼고 예뻐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새끼 때에는 이렇듯 예뻐하다가 조금만 자라면 미워합니다.
물어서 내어 쫓습니다. 이러한 동물성에서 채 벗어나지 못한 인간들이
어렸을 때에는 사랑 하다가도 조금만 크면
아버지와 아들이, 어머니와 딸이 원수가 되어버립니다.
이 얼마나 야만스러운 일입니까?
모름지기 사랑했으면 끝까지 사랑할 것입니다.
잘되라고 바랐으면 끝까지 잘되라고 빌어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왜 중도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까? 마음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생을 건강한 영혼으로 살아간다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 친구관계에서도, 부모 자식관계에서도, 부부간에도........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면 그것 하나로 충분합니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요 영원히 왕입니다.
눅17: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30
세상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제정신이 아니다. 바보 멍청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이 부인되고 오직 예수님의 영광을 위한다......
眞心진심으로! 全心전심으로! 盡心진심으로!
이쯤에서 알곡과 가라지가 극명하게 걸러진다.
내가 고통당할 때에 함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동지입니다.
내가 기뻐할 때에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은 친구입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고통을 당할 때에 기뻐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원수입니다.
내가 기뻐할 때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적입니다.
우리는 고통당하는 자에게 좋은 마음으로 가서
위로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사람이 선도들입니다.
그런데 기뻐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는 데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나보다 친구가 후배가 먼저 앞서갑니다.
내 자녀보다 남의 자녀가 더 잘 합니다.
그런데 함께 같이 마음으로 기뻐해준다?
친구를 대신해서 죽어준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처자식을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 확장된 나입니다.
그러나 친구는 아닙니다. 내가 아니라 남입니다. 이 경계를 넘어선다?
내가 누구인가에만 집중하십시오.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요 영원히 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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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마음을 위한 말씀과 기도
요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잠24:17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잠24:18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너에게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욥31:29 나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거나
재앙을 만나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본 적도 없다.
겔33:11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잠17:5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사람의 재앙을 기뻐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할 자니라
출23: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재판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
부자라고 권력자라고 재판을 왜곡하지 말고
출23:3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편벽되이 두호하지도 말지니라
출23:4 너희가 원수의 소나 나귀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거든
그에게 끌어다 주어라.
출23:5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그 상황을 모른 체 하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평안하고 기쁘고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못합니다.
때로는 부지중에라도 악을 행하면 행복하기를 바라고
선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감격하기를 기다립니다.
오 주님 주님의 음성이 들려지게 하시고 순종하며 말씀을 따라가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기쁨이 우리의 기쁨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우리들의 마음이 되게 하시옵소서
먼저 마음과 생각이 바르게 하시고 악을 행하지 않게 하소서
어리석어지거나 무지하지 않도록 지혜와 총명을 더하시고 용기를 주시옵소서
진리를 알게 하시고 자유롭게 하시는 진리를 갈망하며 따르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영이 있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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