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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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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4-28 16:55 조회3,040회 댓글0건
설교자 : 김준봉 목사
설교본문 : 요한 계시록 1:8, 17-19
설교일자 : 2019. 04. 28

본문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예수님

                                                                          요한 계시록 1:8, 17-19

전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전12: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전12: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성경이 말하는 인간다움

 

➀.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들에게는 감당이 안 되는 어마어마한 일.

 

     이 건물을 지을 때 우리는 처음부터 예배당으로 계획하고 땅을 고르고 설계를 했습니다.

     여기다 창고나 공장을 지을 생각도 해 본 일이 없다. 공중목욕탕? 동네 슈퍼마켓?

     사람들이 고급 아파트를 지으면서 개집을 지은 것이 아니다.

     아파트는 소나 돼지를 기르는 축사가 아니고 양계장이 아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작정하신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 인간됨의 목적!

    그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의 인간다움을 정하신 것입니다. 

 ➜. 양심과 이성 자유. 감성 육성 지능 예능 체능 소리 색의 감각. 촉감 맛의 감각

     이러한 최고급 자재 인테리어를 했는데 무슨 목적으로?

    인간은 창조된 피조물로 생긴 것 만들어진 것.              

    만들어진 피조물은 스스로 자기다움을 결정하는 주체가 될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창조주 하나님을 빼버리고

    인간들이 자기들끼리 인간다운 윤리도덕을 만들어서

   그것으로 인간이 인간이기에 충분하다고 하면서

    그것을 휴매니즘. 휴매니티라고 하고 그것을 보편적 진리라고 하면 

   이게 얼마나 황당하고 우습냐?

    우리들끼리는 상당히 근사하고 멋있고 매력적이고 수준 높은 내용일 수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의 윤리 도덕은 정말로 창조주 하나님이 실재하신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인간들의 자기들끼리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들끼리 아주 근사한 진화론을 만들어서 이것을 과학적 진리라고 가르치고 

   창조주 하나님은 비과학적이라고 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무슨 신화적인 단군 할아버지정도로  만들어 놓고 

  자기들끼리 무슨 진리를 말한다면 이런 바보들이 없다.

   하나님의 창조가 사실이 아니라고 증명한 어떤 과학도 없습니다. 

  증명해 낼 수 있는 내용도 아닙니다.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도 안하고 진리라고 말하고 가르치면서 사는 세상을 

  뻔뻔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마법에 걸려 있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정신을 못 차리면 자기 인생만 다 말아먹는 것이 아니라

  남편과 아내 자식들까지 다 망해먹는 것이다.

 

전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전12: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와 원칙 창조주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을 따르는 것이 인생의 방향.

   졸음운전은 눈을 감고 운전하는 것이다. 그냥 걸어만 가도 눈을 감고 가면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개념이 없는 것은 인생의 방향이 없다는 것 ...나침반. 내비게이션

   ➜ 인생을 눈을 감고 산다...... 자아 숭배주의자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여야 하고 내가 주도해 나가는 것이고

내가 조작해 낸 神은 그 주체인 나를 열심히 도와주기만 하면 됩니다.

간섭하고 들어오면 하나님이라도 소용없다. 가차 없이 쳐내버립니다. 

진짜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 피조물인 인간이 그렇게 한다고?

구데기 벌레 티끌 먼지인 인간이?


➁. 성경은 태초에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In the beginning..........『처음에 시작할 때에 』

   창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 and the earth.

 

㉠. 시작이 있었다는 말은 끝이 있다는 말.

   시작과 끝이 있다는 말은 임시적이다. 영원한 것이 아니다. 실재가 아니다.

   어떤 목적이 끝나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이상 있어야 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

   하늘과 땅 공간과 물질이라는 것도 시간과 함께 시작과 끝이 있다는 말입니다.

 

㉡. 피조물이 이 세상이 전체적으로 시작과 끝이 있지만

     우리들 각 사람들도 개개인들이 시작과 끝이 있다.

 

   인생이 영원한 것도 아니고 젊음이 언제까지나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어 다니는 애기 때도 있지만 

   자기 몸 하나도 가누지 못해서 지팡이에 의지 할 때도 금방 옵니다.

   이 시간의 허망함이란 정신을 차리고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이 허망한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우리는 잘 살아야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 수가 없다.

✎. 부자? 돈 많은 사람이지 잘 사는 사람이 아니다. 출세나 성공이 잘 사는 삶의 브랜드가 아니다.

잘사는 일에 대한 성찰. 생각과 철학 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부자가 잘사는 것이라고 해버리면....

이런 천박함이 대한민국의 정신이 되면 우리 나라가 어떻게 ?   

더 한심한 일은 교회 다니는 사람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중에 두 번째가

㉢. 시작과 끝을 일관하는 기준. 원칙입니다.

 

어떤 유능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에게 생활비까지 나오는 장학금을 주면서 묻습니다.

이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할 것인가? 

좋은 대학을 졸업 ➜ 법관 ➜ 결혼 ➜ 자식을 낳고 좋은 집을 짓고

 ➜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 그 다음에는? 늙어서 죽을 것인가? 

➜. 그 다음에는?  자네에게는 내일이 있는가?...   Memento Mori -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

. 내일이 없으니까 가슴이 안 뛰어.  불장난으로 끝나는 인생을 산다.

 

주기도문의 내일의 양식은 시간 속에서 오늘 내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기도의 내용이 먹을 양식 달라고? 

영적인 양식이고 육적인 양식의 군형?

➜. 눅12:29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

마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똥개가 금 목걸이하고 다닌다고 똥개 아니고 금 개가 되는가?

    진돗개가 뭐 좀 묻었다고 진돗개의 자세가 안 나오는가?

    돈 힘 지위 신분 부귀영화 재능 천재 위인  인기 명예 이런 걸 가지고 

    자기를 치장하며 꾸미지 말고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가지고 인생을 걸고 씨름을 하며 살자는 이야기

    이 정도는 무슨 말인지를 알아야 예수님 믿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양식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

요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요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요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예수님 믿는다고 돈벼락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꼴등이 일등을 하는 것도ㅠ 아니다

대충 생긴얼 굴이 얼짱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삭개오가 골리앗이 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우리가 예수님을 배우고 알아야하고 예배해야 하는가?...

에수님이 ​창조주 하나님. 만왕의 왕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영원한 생명이기때문이다.

 

.시작과 끝을 일관하는 원칙이나 기준은 

      시간 밖에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비행기 안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탄 비행기를 모른다.

기장이 운행하는가? 인공위성에서 위치 고도 속도 방향을 다 알려 준다.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있다가 없어지는 허망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성간의 사랑이 아무리 달콤해보여도 육신으로 하는 사랑은 불장난으로 끝나는 것이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과정이어야지 그것이 영원한 줄로 알면 바보.

부활 때에는 왜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없이 천사들과 같이 된다고 하셨을까?

사랑도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돈이나 권력도 세상의 부귀영화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데.....

이런 것들이 어떻게 목적?

복부인 졸부라는 말이 있었다.  

돈은 왕같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는데 그 사람의 됨됨이는 졸병

교양과 지식은 없는 벼락 부자를 뜻한다. 부동산으로 벼락 부자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들어선 충남의 연기군 남면·금남면·동면, 공주시의 장기면·반포면 

농사짓고 살아가시던 분들이 보통 100억....실감이 안 난다고 해요....

갑작스런 부의 축적과 신분상승으로 인한 불안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불안은 

동료들과의 이질감, 비판에 대한 민감함 반응, 

부에 대한 회의감 등으로 정상적인 건강한 삶이 어렵다.

  

. 시작과 끝을 일관하는 원칙이나 기준은 

      시작과 끝을 결정하시는 분이 세우는 것입니다.

 

시작과 끝을 일관하는 기준. 원칙은 

우리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설명할 수가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목숨이. 살고 죽는 것보다  목숨보다 더 큰 것이어야 합니다.

밥 먹고 숨 쉬고 사는 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밥 먹고 숨 쉬고 사는 것의 목적이 

우리 인생을 일관되게 목적지를 향해서 끌고 가는 것이다.

시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으로 이어질 수 있는 어떤 것이어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금은 보화 돈을 가지고 갈 수도 없습니다.

세상에서 우리들끼리 잘난 척하는 그 이름들을 가지고 갈 수도 없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되는 지도 모른 체 

죽음을 그대로 가지고 간다는 말은 지옥에 자살 골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거푸집은 건물이 아니다.

     그러나 건물은 거푸집으로 만들어진다.

 

우리가 사는 인생은 거푸집을 만들어서 건물의 골격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다.

㉮. 땅을 고르기...입지 선정....목적이 맞는 장소

㉯. 터닦기...토목공사 그리고 지반검사 

      건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한가?

      전보대 같은 기둥을 땅에 박아서 

      건물을 올릴 땅을 지진으로 흔들어도 견딜 수 있도록

㉰. 모래를 깔고 그 위에 두꺼운 비닐로 물이 습기가 올라오지 않도록

㉱. 그리고 거푸집을 만들어서 건물이 올라갈 기초가 되는 틀을 짜고

    철근을 가로 세로 넣어서 엮어주고 통신 수도 전기 소방 오수관 하수관 따로 묻어서

    그 다음에 레미콘 차로 시멘트 몰타르를 부어서 고정시킵니다

㉲. 이런 작업이 층마다 벽이나 기둥을 세우면서 계속해서 합니다.

  이렇게 건물의 뼈대 골격을 만들어가는 일을 

  목수들이 거푸집을 만들어 가면서 전체적인 모양도 만들어 갑니다.

그런데 이 거푸집을 튼튼하게 만들지 못해서 시멘트 몰타르가 부어질 때 터져버리면 

보름 한 달 일한 것이 헛 수고가 됩니다. 그것 치우느라고 죽을 고생을 또 합니다. 

그대로 놔두면 바위덩어리같이 굳어지고 건물이 건물이 아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 인생을 지어가는 데 

이 거푸집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형식이나 예절입니다. 

교회생활 같으면 주일을 지키고 함께 모이고 예배를 드리고 일입니다

헌금생활 봉사활동 같은 것입니다. 

교회의 예절과 법을 존중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무슨 보상을 바라는 이 아니다.

하나님이 무슨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바쳤으니 하나님이 튀밥 튀어 갚아줘야?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예배를 안 받으시면 하나님이 무너지고 망하는가? 

하나님도 허전하신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무슨 날짜 지키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왜 한 주 한 주를 살아가면서 한 주일의 0순위로 주일을 지키는가?

왜 안식일을 범하는 자들을 

구약에서는 살인이나 간음 우상숭배자들과 똑같이 사형시키는가?

왜 안식일을 범하는 자들이 백성들 중에서 끊어내 버리는가?.......

➜. 인생의 자살골이 되기 때문에.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목숨이 붙어 있어도 치욕스러운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 됨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 순교해야할 때에 못하면 살아있어도 지옥이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켜준다.  

기원전 오백년경에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뒤에 이천오백년이 다 되도록  

나라가 없어도 유대인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형식이 거푸집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그것을 꿰어야 진주 목걸이가 됩니다. 

主日 신앙이 개목걸이?

 

 

왜 우리가 성경을 읽고 배우는 가? 

좋은 인생. 잘 사는 인생의 좋은 그림들을 그리기위해서이다

정말 복되고 존귀하고 사랑스러운 사람 그런 인생을 그릴 줄 알아야

 그렇게 살아갈 것이 아닌가? 무엇을 그릴 줄도 모르는데 어떻게 작품이 나오는가?

아이들 낙서 수준의 그림을 가고 어떻게 좋은 집을 지을 수가 있겠는가?

왜 그렇게도 엄청난 설계비를 지불하면서 설계를 맡기는가? 

실제 건물을 지어주는 것도 아닌데... ➜. 종이 위에 그림에 불과한데...

 

시92:12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시92:13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시92:14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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