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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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5-12 17:07 조회2,977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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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전도서 5:1-7
어느 화창한 봄날,
어미 꿩이 새끼 꿩들을 들판에 데리고 나가 먹이를 주워 먹고 있습니다.
어미 꿩은 졸졸 따라다니는 새끼 꿩들을 모아놓고 단단히 주의를 줍니다
. "얘들아, 너희들 땅 위에서 먹이를 찾아먹을 때에는 입으로는 먹이를 먹고,
눈으로는 먹이를 찾고, 발로는 더듬고 뒤집겠지만, 귀만은 언제나 열어놓고
내 음성을 듣도록 해라. 어느 때에 갑자기 여우가 와서 우리를 헤칠는지 모르니까
내가 큰 소리를 치면 빨리 내게로 달려오도록 해라."
이렇게 단단히 주의를 주어서 단속해 놔서 이 새끼 꿩들은 먹이를 먹다가도
어미 꿩이 큰 소리로 위험을 알리면 재빨리 모여듭니다.
그런데 어미 꿩이 한 말을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유독히 자기 멋대로
여기저기 좋은 먹이를 찾아 자꾸 멀리 가는 한 마리 새끼 꿩이 있었습니다.
너무 멀리 나간 그 새끼 꿩은 여우가 왔을 때에 어미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게 되어
결국은 여우에게 잡혀 먹히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멀리 가도 들을 말은 들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들어야 할 음성은 들으며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바빠도 들어야 할 말씀은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듣는다는 사실은 아주 중요합니다.
✎.히브리; 교육의 대명사 = 쉐마....들으라
머리도 좋고 재능도 외모도 뛰어나고 집안도 좋고 돈도 있고
무엇인들 나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한 가지를 잘 못하면
나머지는 자기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되고 의미도 없습니다.
그 한 가지가 들을 줄 아는 것..꼭 청각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듣든지 보든지 받아들일 줄 아는 수용성이다.
✎. 해야 할 일들. 즐기고 누리고 싶은 일들. 욕구. 본능. 호기심. 소원
많고 다양하다..그러나 본질은? 듣는 것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입니다.
➀. 하나님 말씀이 들리십니까?
➁. 부모님 말씀이 들리십니까?
➂. 그러면 아내나 남편의 말이 들릴 것이고 자녀들의 말이 들릴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상대방이 나에게 잘해주기를 바라지만
정작 우리가 모르는 것은 내 자신이 복 받을 그릇이 안 되어 있다.
농아학교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 아이들이 다 농아가 아니랍니다.
귀가 들리지 않음으로 농아가 된 것입니다. 그 아이들 가운데 90% 정도는 발성구조가
온전하답니다. 그러나 듣지 못했기 때문에,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입의 기능과 구조가 완전하다고 하더라도
듣지 못하면 다 쓸 데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들리지 않는 대화는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의 귀입니다.
들으면 무엇 합니까? 들리어야 하고 들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대화는 먼저 마음이 열려야만 가능.
소리는 들리는데 마음에 와 닿지를 않으면 시끄럽기만 합니다. 소음공해가 됩니다.
✎. 외국어를 배우는 순서.....먼저 듣기입니다. 귀가 열릴 때까지 듣기에 집중
이 순서를 어기면..... 말을 하기는 하는데 발음이나 감정표현이 어색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 16:18."
사람이 교만하면 되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거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어느 자리에 앉아서도 한마디도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안 들음으로 멍청해지고, 멍청해짐으로 망하게 됩니다.
아내의 말도, 남편의 말도 부모님의 말씀도 어른들의 말도, 양심의 소리도,
하나님의 말씀도 들리지 않는다면 끝난 것입니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롬 10:15.....결국 구원은 들음에서 난다고 말씀함입니다.
➀. 자신이 교만한 사람이라는 자각이 어렵고
➁. 자신의 교만함이 보이기 시작해도 그것을 고치기가 어렵다
➂. 하나님의 악함이 나의 선함보다 비교할 수가 없이 선하다는 사실이 믿어질 까?
➃. 믿음은 들음에서 시작되는데...그 믿음이 뭘 다 알아서 들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린다는 사실은 신비이다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비유말씀 가운데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씨뿌리는 자가 밭에 나가서 씨를 뿌립니다.
이 종자는 좋은 것이요, 완전한 것이요, 생명의 씨앗
그런데 이 종자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길가와 같은 마음, 돌밭과 같은 마음,
가시덤불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말씀의 역사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 열린 마음, 부드러운 마음, 순종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그 종자를 받아들일 때에 그 마음속에 종자가 들어가서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완전한 진리의 말씀입니까?
꼭 설교가 아니어도 강연이든 무슨 행사이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자세에 따라서 전혀 달라집니다.
이왕이면 좋은 설교자 이면 은쟁반에 금사과입니다.
이왕이면 학식과 덕망이 좋으신 부모님이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나이가 40이 넘으면 자기 인생 자기가 책임지는 나이입니다.
누구를 탓하고 말이 많으면 스스로 모자란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말은
말씀을 들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말씀이 곧 생명입니다.
말씀하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먼저 들음으로 사는 구조를 근본으로 삼고 있음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학생은 선생님의 말씀이 들려야 공부가 되고 자식은 부모님의 말씀이 들려야 자식이 됩니다.
그런데 말씀은 있는데 들리지가 않습니다. 그런가하면 말씀은 들리는데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입맛 좋은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음식만 봐도 속이 거북하고 얼굴이 구겨지는 사람은 벌써 반은 간 사람입니다.
입맛이 좋고 먹는대로 소화가 되어야 건강한 것입니다.
건강을 잃어버리고 나면 영 입맛이 없습니다. 음식 냄새가 역겹고, 아주 싫습니다.
다윗이나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꿀보다도 더 달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성공한 사람의 대표이고 사울은 실패한 인생의 대표입니다.
어디서 갈라지는가?
결정적인 시간에 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 합니다.
결정적인 시간에 한 사람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고 맙니다.
잠언이나 전도서에는 대조적인 구조형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지혜자와 우매자를 대조.. 우매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말을 듣기보다는 더 많이 하는 사람이 우매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매자는 경청을 하기보다는 늘 자기 의견을 앞세우고,
자기 지식을 앞세워 말하기를 좋아합니다.
신학대학에서 40년 넘게 강의를 하시는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강의를 끝까지 놓치지 않고 잘 듣습니다.
듣고 나서 생각하고, 거듭 생각한 다음에 궁금한 것이 있으면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시원치 않은 학생은 강의하는 도중에 질문을 합니다.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질러 "교수님"하고 질문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험을 보면 그 시원찮은 학생은 시험지의 묻는 질문에
정답을 쓸 줄 모르고 많이 썼는데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
강의를 다 듣고 나면 절로 해답이 나오는 것인데 그것을 못 참고 앞질러 질문을 합니다.
자기가 아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자기 생각이 앞서서 그런 것입니다.
설교를 들어도 대화를 해도 우매자는 자기 지식으로 먼저 판단해버리고
그리고 가르치려고 훈계 하려고 합니다.
성경은 먼저 들을 줄 알아야 우매함을 벗는다고 합니다.
오늘의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라고
말씀합니다. 함부로 입을 열게 되면 자연히 나의 나됨을 잊어버리게 되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급한 마음은 자기 생각을 관철하려는 마음으로,
이로써 욕망의 노예가 되고 감정의 노예가 됩니다.
이러한 욕망에 사로잡혀 말씀을 들어도 들리지 않고,
기도를 해도 몸부림뿐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 군자와 소인의 차이....
군자는 학문을 함에 귀로 들으면 그것이 곧 마음으로 전해지고, 몸에 배어서 실천을 한다.
그러므로 인격과 성품이 높아진다. 그러나 소인은 학문을 함에 귀로 들으면 곧 입 밖으로 내뱉는다.
아는 것이 있으면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버리고 만다.
학문이 자기 마음이나 자기 인격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귀와 입이 사촌간이다. 학문이 귀에서 입으로 뱅뱅 돌아다니고 만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가서 가만히 깊이 오래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묵상이 안 됩니다.
들려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명상하고 가슴에 두고
자기의 성품으로 녹아내려 삶으로 말해도 늦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매한 사람은 듣자마자 바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므로 정작 자기 마음에는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 인격에 아무런 변화도 일으키지 못합니다.
✎. 부모님이나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것을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이러네 저러네 비판 판단. No!
일단 잘 듣고 새기고 최소한 몇 시간이라도 하루 이틀 지나서
자기 생각을 말해도 아무 일 없다.
학문이 깊지 않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 가르치려고 합니다.
50살까지는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말이 급하고,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할 수 없습니다.
진리와 그 자신 아무 상관도 없는 생을 살게 됩니다.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죄인이기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 말에 책임을 무겁게 짐
4절 말씀은 "서원한 것을 갚으라"라고 강하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한번 말한 것을 번복하고 실수가 많은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말씀을 듣는 사람입니다.
「사무엘 상」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15:22.
금식하고 애통하고 예배 찬양 기도 헌금 봉사 충성 무슨 말을 해도 먼저 근본은 들음이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초대를 받으사 그녀들의 집에 들리셨을 때 일입니다.
언니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아주 부산스럽습니다.
반면에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조용히 앉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습니다.
몇 일을 굶어서 한 끼 고급 요리로 잘 대접 받으려고 가셨습니까? 40일을 금식하신 분.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동생에게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좋은 편...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물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그보다는 앉아서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좋은 일입니다.
✎. 한 어머니에게 두 아들이 있습니다. 한 아들은 아주 잘 나가는 아들입니다.
고정적으로 달달이 용돈도 드리고 시시때때로 온갖 좋은 선물도 해 드립니다.
다른 한 아들은 형님의 반의 반도 못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작은 아들로 인해 더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내 예배는 내가 드립니다. 아무도 대신할 수가 없습니다
바른 예배자의 첫 번째 자세는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주 일 날이 기다려지는 사람.
예배드리러 오는 것이 그렇게도 자랑스럽고 행복한 사람....
➔. 복 받을 그릇이 된 사람
말씀을 듣는 이러한 자세가 바로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과 성품으로 이어집니다.
나아가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1절 말씀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제사드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여
말씀을 듣는 자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하룻길을 걷고 열 시간 기차를 타고 말씀을 들으러 오는 사람들.
서울 대학교를 합격해 놓고 너무 멀어서 못 다니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없고 돈 없어서 못 다니겠다?
✎. 진리의 가치를 아는 사람. 하나님 말씀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들.
보물을 보물로 아는 사람들.
마태8: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마8:6 이르되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마8:7 이르시되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마8:8 백부장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마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마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놀랍게 여겨 따르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로마의 고급 장교 백부장의 자세.
정복자의 자리에서 식민지 백성의 한 가난한 청년을 대하는 자세.
아브라함은 100세가 되고 사라는 90세가 되었는데 아들을 주시겠다고 합니다.
주신 아들 이삭이 15살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이든 말씀하실 때에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
이런 사건들 하나 하나를 가까이 오래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시간과 과정이 장난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 믿음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붙여주신 이유를
조금이나마 헤아려 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청각이나 시각의 문제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보면서도 아무 소리도 아무 그림도 안 보이고 아무 느낌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한글을 쓰고 말하면서도 60년도 넘게
성경.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아멘 할렐루야 이런 단어를
한 번도 못 들어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성경이 책인지 건물인지 나무인지 먹는 것인지 무슨 이름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은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도 넘겨듣고 비껴듣고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예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가까이하여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믿어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 말씀이 내 마음과 인격을 지배하고, 내 성품을 지배하고,
나아가 내 운명까지 지배하게 하십시오.
그 진리의 말씀이 내 귀에 들어와 역사할 때에 내가 곧 자유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구원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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