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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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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3-24 17:41 조회3,260회 댓글0건
설교자 : 김준봉 목사
설교본문 : 디모데후서 1:15-18
설교일자 : 2019. 03. 24

본문

 

 

                        유쾌한 사람들       

                                                                                      디모데후서 1:15-18

           유쾌한 사람들은  less is more


인간관계라는 것은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남의 말 하기는 쉽지만 내가 당사자가 되는 경우 

나는 정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유쾌한 사람일까?

주위를 살펴보면, 다른 이들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만나는 것 자체가 아주 곤혹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만나면 그저 반갑고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일생동안  다시는 안 보았으면 하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안보면 못 견딜 정도로 다시 보고 싶고 또 만나고 싶은 그러한 사람이 있습니다.

멀리는 놔두고 우선 가족 관계부터 보면 사는 일이 그렇게 만만하고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 일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내게 이렇게 대해주었으면 저렇게 대해주었으면 하고 바라거나 

좀 더 친절하고 너그럽게 이해심있게 반갑게 환하게 유쾌하게 나를 대해주었으면 합니다.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어린 아이에게도 똑같은 바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은 먼저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먼저 자각해야하는데도 그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정작 나는 남에게 유쾌한 사람이 되고 있는지, 

아니면 기분 나쁜 사람이 되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반가운 사람인지 아니면 영  불쾌한 사람인지  

내가 남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인지 아니면 

남을 낙심하게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는 거의 무관심합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사람을 이해하는 여러 가지 유형들이 있습니다. 그 중의 한 가지입니다. 

 첫 번째 유형은 폐쇄적인 사람입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무슨 말을 듣든지 가리지 않고 '쳇' '흥하면서 

도대체 남의 말을 들으려는 자세가 아주 부족합니다.

한마디 듣고 나서는  웃기고 있네  도무지 마음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마음이 완전히 닫힌, 이 같은 폐쇄적 심리상태의 사람입니다

 자신이 잘난지만 알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자기 성찰이 부족합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을 기분 나쁘게 만듭니다.


 두 번째는  열린 마음 인것 같지만은 까다로운 사람입니다

   남의 말을 들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증거를  요구합니다.

 "그것이 왜 그렇습니까?"하며 따지는 것이 많습니다. 

듣기는 듣는데 물어보는 것이 많습니다. 

묻는  것이 지나치다못해 무슨 취조  하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또 그렇게 묻는 것이 당연한 듯 혹은 잘 들어주는 것인냥 마치 사랑인  양 착각합니다. 

외출을 하거나 어디를 갈 때에 우연히 아는 사람과 마주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냥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만  하면 좋은데 

반갑습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꼭 "어디 가십니까?" 누구만나러 가세요?하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참 답답한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자네, 그것을 꼭 알아야  되겠나?"하고 반문할 수도 없다. 

그냥 예~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는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협조적이고 친절하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언제나 타당성 있기를 요구합니다. 

사람 사는 일이 항상 이성적이고 합리적일 수가 없습니다.

개개인의 사생활을 심지어 부부간에도 다 설명해야한다면 

차라리 혼자살고 말 것입니다

 

 네 번째는 신뢰내지는 신앙형입니다. 

Anything you say is always OK

당신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항상 다 좋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것은 나도 좋고, 

당신이 말하는 것은 다 사실이고, 당신이 옳다는 것은 내게도 옳습니다.

무슨 설명을 따로 할 필요도 없고 달리 물을 필요도 없는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따지지도 이유를 다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말을 다해야 아는 것이 아니요. 

다 말 안 해도 당신하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합니다. 

할아버지가 하시는 일은 언제나 옳아요............. 말 한필- 썩은 사과

적어도 이렇게 충분히 신뢰하고 신뢰를 줄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우리는 유쾌한 인생은 어렵다.

 

 

전화 걸어야 할 것을 깜빡 잊어버리고 아니면 상황이 허락치를 않아서 

새벽 2시에 귀가한 남편

 ➀. 왜  늦었는지는 묻지도 않고 화부터 내는 여자

    전혀 상대방의 말을 믿으려고 하지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➁. 이렇게 늦도록 도대체 어디에 갔었어요?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을 했지요? 

     무슨 나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예요? 

     깊은 관심? 죄인 취조당하는 기분입니다.

    그 이유들을 다 설명해주려면  아주 힘이 듭니다. 

    혹 좋지 않은 일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을  다시 상기하면서 이야기하는 것도 기분 나쁜 노릇입니다.

➂. 회사에서 일을 너무 많이 시키는군요. 월급을 더 올려달라고 해야겠어요. 

    당신이 너무 고생을 많이 하니까요." 

    아는 척 위하는 척하지만 실은 사람 피곤하게 만듭니다. 

➃. 제가 어떻게 해드릴까요 뭐 필요한 것 없는 가요? 

     그리고 더는 딴소리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내게 이렇게  저렇게 해주기를' 바랍니다. 

상대방이 내 말을 전적으로 믿어주기를 원합니다. 내 인격, 내 마음, 내 말…… 

내 모든  것을 무조건 전적으로 믿어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남을  불신합니다. 여기에 모순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나를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그것도 내 입장에서 이해해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겠군요"하며 전적으로 상대방이  내 편에서 이해해주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는 나에 대하여 참아주기를 바랍니다.  

모름지기 조급한 마음은 사람을 괴롭힙니다. 

조급히 판단을 해서도 안 되고 조급히 말을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좀 기분 나쁜 일이  있더라도 일단 며칠 동안은 지켜보고 

그래도 정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혹 이해가 안 되어도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겠지 여기며 

깊이  인내하고 오래오래 참아야 하는 법입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남에게 조급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15절)“ 버렸다는 것은 누가  무슨 배신을 하고 

어떻게 신앙을 버렸다는  유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누구와 뜻을 달리하였고 일을  달리하였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협력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들은 나와 뜻을 달리하였다는 의미에서 '나를 버렸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바울의 기대에  어긋났기 때문에

 '그들은 나를 피곤하게  만들었다'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이름을 들면서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16절라고 말씀합니다.

 refresh 신선하게 하다, 힘을 내게 하다, 용기를 북  돋아주다'라는 

아주 좋은 표현입니다. 한마디로 기분 좋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듯 사도 바울은   오네시보로는 참으로 나를 유쾌하게 한 사람이었다'라고 

그와의 인간관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많은 사람이 그를 죄인으로 봅니다.

 죄지은 것이 있으니 감옥에 갇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사도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바울 나름대로 무슨 잘못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무슨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세히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고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 관계가 없으면 아무 관심도 없는 것입니다. 

아는 척하고 가까운 사이라는 것이 

자신의 사회생활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데도 자주 들락거릴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오네시보로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만은 바울의 고난에 함께하고 있었고 바울의 의로움을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라는 그 하나의 끈만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교회. 성도들입니다. 

 

 

테레사 수녀는  수련 수녀들을  선발할 때에 

이러한 선발기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험을 보지만 합격의 기준은 간단합니다. 

그저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을 선발하였다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잘 웃는 사람이 어려운 시험도 이길 수 있고

잘 웃는 사람이   남을 위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웃음은  우리에게 건강한  태도를  지니게 하고 소속감을 가지게 합니다. 

공감대를  형성하고 의심과 불신을 제거합니다. 연대감을 가지게 합니다. 

또한 사랑을  시작하게 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웃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들이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듯 웃는 것 하나만 가지고도 큰 구제가 됩니다.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은 남을 위로할 자격이 없습니다.

 

아무리 잘생긴 사람이라 해도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은 유쾌한 사람이 아닙니다. 

남을 유쾌하게 할 수 있고 남을 선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웃는  사람입니다. 

또한 잘 먹는 사람은  건강합니다. 내가 건강해야 남에게 봉사할 수 있습니다. 

잘 자는 사람은 심각한 죄를 가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심각한 죄를 지어 항상 찌푸리고 사는 사람은 남을 위로할 자격이 없습니다. 

데레사 수녀가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사람을 선발한 것은  그래서입니다.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는, 그런 사람이 잘 믿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노종을 며느리. 이삭의 아내 구해오는 일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보냅니다

     ⓐ.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 막내 동생 나홀의 아들 브두엘의 딸 리브가를 우물가에서 만나고

        노종과 열 마리 낙타에게 물을 다 먹이고.....

        이렇게도 개방적이고 열린마음. 평안한 마음으로

      상대방의 필요에 적극적으로 응답할 줄 아는 처자......

        말 한 마디 건넸다가 본전 못 찾는 남편들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17절"라고,  

오네시보로는 행동적으로 위로했다는 것을 본문은 말씀합니다. 

말로만  위로한 것이 아닙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방문을 합니다. 

자주자주  찾아뵈어 바울로 하여금 인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결코 무슨 타산적인 생각에서가 아닙니다. 

무엇을 얻자고 하는 일도 아니고 인간적으로 무슨 기대를 두고 하는 일도 아닙니다. 

다만 사도 바울의 진실과 그 거룩한 희생에 함께 하고자 했을 뿐입니다. 

 

머리가 이해관계로 작동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돌아가는 줄로 압니다. 

아무 이해관계가 없이도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다른 사람의 진심을 의심하고 코웃음 칩니다. 

아무 이해관가 없어도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어 함께 할 수 있는

 그 한 사람이 없이 인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18"

 바울이 직접 '오네시보로가 얼마만큼 나를 섬겼다'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봉사가 기쁨과 함께   이루어질 때에만 상대방을 유쾌하게 할 수 있습니다.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행복해 질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것을 받아도 기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내 것을 다 주고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

돈이나 물건 선물이 아닙니다. 먼저 사람입니다.

일방적으로가 아니라 서로가 자신을 다 내어주고 행복해지는

이 관계가 되는 사람들은 서로가 유쾌한 관계가 될 수가 있습니다. 

어떤 가치와 의미 보람 지향하는 과녁. 세계관과 목적지가 하나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이게 가능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아이고 웃기는 이야기 하지마세요. 예수 믿는 사람들이요 더 무서워요.

이 게 가능한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소화한 사람들입니다.

정통신학. 교리 진리를 지킨다고 그런 논쟁에 아주 사명감을 가지고 

달려드는 목사들 많이 봤습니다.

그러면서도 이해관계에 걸리면 아주 이기적인 사람들. 

야한 이야기 나오면 더 호박씨 까는 인간들.

 

고전4: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여기 능력이란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인격 품격 품성입니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무슨 능력?

    ​ 자신의 인생을 다 허비해버려도 오히려 천 배 만 배 더 행복해자는 능력

 

 

 "너희들이 내 속을 얼마나 썩였던지 이 머리 희어진  것 좀 보아라. 

얼굴에 쪼글쪼글 주름살까지 잡혔구나."  아이들이 그 말을  어떻게 들을까요?

 '때가 되었으니까 머리가 희어지고 

늙었으니까   당연히 주름이 생긴 것이지 우리가 무슨 상관이람 참 나.....

  "내가 너를 위해서 수고하는 것은 바로 나의 기쁨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해도 진정성을 50%밖에는 인정 안하는데......

 "내가 낳았으니까 죽지 못해 할 수 없이 너를 위해 살았지 니가 뭐 이뻐서 그랬다냐.......

그 많은 수고가 말짱 헛것이 됩니다.  

듣는 사람은 전혀 유쾌하지 못합니다. 반갑지 않습니다.  

누가 자기보고 수고하라고 했나? 공치사는 왜 해? 부모 자식관계도 어렵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어떤 관계에서든지 인격적인 관계가 안 되면 나머지는 아무 소용이 없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은 자식대로 부부도 

서로가 인격적인 됨됨이 안 되면 누구를 막론하고 콩물도 없다.

자원해서 기꺼이 기쁨으로 섬길 때에 상대방을 유쾌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수고하고 애써서 그 댓가로 행복을 얻어 내겠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도 너는 그게 뭐냐?

이런 것이 무슨 사랑이고 부부입니까?

행복은 선물이지 거래해서 챙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득이하게, 의무적으로, 할 수 없어서 수고한 줄  알게 되면

그 인간관계는 헛것이 됩니다. 

천만금이 오간다 하여도 유쾌하지 못합니다.   가족이란 거래하는 관계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위로와 인정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바라기  이전에 내가 먼저 남을 유쾌하게 할  수 있고, 

남을 기쁘게 할  수 있고, 남의 용기를 북돋아 주는 그러한 존재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만한 능력이 사람에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인생이 피곤한 것이고 허망한 것이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겨울에 찬바람 맞고 지붕위에 앉아 있는 외로운 참새 한 마리. 딱 나.

천년만년을 살아도 인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롬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성경 말씀은 가만히 가까이 다가가서 오래 오래 들여다보면

샘물처럼 .밀물처럼 근원을 알수없지만

어딘가로부터 솟아나고 흘러들어 오는 것을 알게 됩니다.

 

➀. 에덴에서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는 그림

➁. 유다를 다말을 통해서 살려내시고 씨를 이어가게 하시는 하나님

➂. 네 하나님 되고 네 하나님 되고...어떻게. 어린 양의 피로 유월절.

    백성들의 죄를 대시하는 소와 양들이 피 흘리고 죽는 제사...

      조상들에게 제사지내는 것 아니다.

➃. 고멜을 데려다 아내를 삼고 영원히 하나가 되어 사랑하겠다고......

➄.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이것 말고 무슨 유쾌한 이야기를 들어야 감동이 되고 은혜를 받고

           나도 그 하나님 사랑이라는 염병에 걸리겠습니까? 

            행24: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료가 안 되는 상처가 어디 있냐 말이요.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사슬이 안 끊어지는

     억압과 눌림. 무거운 짐. 사슬과 결박이 어디가 있냐

   왕이고 대장이고 뭐고 그런 것 다 벗어던져버리고 

   하나님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는 하나님의 아들들이있다.

   아무리 포악한 짐승 같은 더러운 죄인도  어린 양보다 더 순하게 되버리는 능력

   게달의 장막 같은 여자도 그 거지 같은 옷 벗어버리고 솔로몬의 휘장 같은 옷을 입는 능력

 우리는 도대체 뭔 영화를 봐야 죽을 때까지 유쾌하게 살 수가 있을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나의 자랑이 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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