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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숨겨진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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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4-07 15:51 조회3,157회 댓글0건
설교자 : 김준봉 목사
설교본문 : 마태 21:23-27
설교일자 : 2019. 04. 07

본문

                   예수님의 숨겨진 권세

                                                              마태 21:23-27

㉠.권세의 반대말. 허세. 

㉡.진짜 권세 있는 분은? 예수님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왕으로 삶.

 

권세? 근본 본질로부터 흘러나오는 것.   그 근본 본질이 무엇인가?  

➜.권력의 이동

힘이 쎈 싸움 잘하는 사람. ➜ 돈이 있는 사람  ➜ 지식 정보  ➜ 조직의 힘.  

권력을 바탕으로 한 정부의 힘 - 공권력........... 돈을 바탕으로 한 재벌의 힘. 

➜ 공무원. 관리. 대기업 임원...여기에는 사람들이 몰린다.

각 분야에서 어떻게든 어떤 모양으로든 유명세를 탄 유명 인사들 거물들의 위세 

그런 유명세를 바탕으로 괴물이 된 사람들......감히 범접할 수가 없는 대가들.

목사님들도 큰 교회 목사가 되면 교인들도 스스로 알아서 잔말 못하고 따릅니다.

100명 교회목사. 1,000명 교회목사. 10,000명 교회 목사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형태의 권력이나 권세들에 우리는 아주 익숙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잘 압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권세는?  예수님의 권세는?    

㉮. 병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기적과 능력을 행하시면 

      금방 알아봅니다. 

㉯. 죄를 사하시는 권세..........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그 권세를 알아보는 자가 있는가?

㉰.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는 권세....도둑이나 강도 소굴 종교장사 ✘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〇

  마21:23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저들의 눈에 보이는 권세는 자신들이 누리고 행사하는 

세상의 왕들이나 집권자들의 권세입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쉬게 하시는 권세?

    36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쉬게 하시는 권세? ➜.자유하게 하시는 권세?

 

㉱. 십자가의 권세........ ➜.죄인들을 사랑하시는 권세?        

    돈도 아니고 벼슬도 아니고 외모. 재능도 아니고 힘도 아닌 

    사람 속을 알아보고 그 사람의 됨됨이와 인격을 알아보고 

   그 사람에게 삼가 조심하는 사람이 주변에 있으신가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죽임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회개하면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울어?


㉲.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죄와 죽음을 이기신 그 부활의 권세가 

    어떤 것인가를 제자들은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마법에 걸린 인간의 이성과 지식의 한계입니다.

 ➜. 창조주. 만물을 운행하시는 만왕의 왕....

      그런데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사시는 실력

    창조주이시면서 피조물처럼. 전능하시면서도 무능하신 것처럼....

    그냥 우리들처럼 사싰다.

 

 

돈의 권력

사마천의 화식열전......2천 년을 관통하는 돈의 법칙 부자의 법칙........

그대로가 진리?✘     맞다 틀리다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지독하게 냉정한 현실을 있는그대로 直하고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

“인간의 길은 仁義보다 먹고사는 것이 우선이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의를 아는 법이다.”

“부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성정이다. 

배우지 않고도 하나같이 추구할 수 있다.”

“돈을 벌려면 무엇보다 장사를 하라.”   

 “가족을 먹이지 못하는 자는 거짓 군자이다.”

 

“세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10배 부유하면 헐뜯고, 

100배가 되면 두려워하고, 1천 배가 되면 그의 일을 해주고, 

1만 배가 되면 그의 하인 노릇을 한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천금을 모은 부자는 한 도시를 거느린 영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거만의 재산을 보유한 자는 제왕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즐거움을 누린다. 

제나라 환공이 사상 첫 패업을 이룬 것은 경제력 때문이고,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것도 돈이 있어 가능했다. 

 

돈과 욕망이 최고의 가치가 돼 버린 한국 사회에서 돈이 괴물이 되어 있다.

돈이란 무시해서도 안 되고 

돈을 너무 좋아하면 돈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다.

돈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보다는

 돈이 가지는 치명적인 위험성을 더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힘의 권력

일제강점기 '친일파'들은 진짜 친일한 사람들이 아니다.

일본에 진심으로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민족과 나라도 배반하는 자들이 남의 나라에 충성할 리 없죠. 

그들은 '친자기파', '사익 지상주의자', '극도의 이기주의자'였을 뿐입니다.

本倭본애 - 진짜 일본인. vs 土倭토왜 조선인이면서 일본 쪽에 붙은 사람들

'본왜'는 언제나 '친일'이지만

 '토왜'는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기회주의자라는 점입니다.

일본군의 밀정 노릇 하면서 동족의 재산을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한 일진회원이나,

 '동족의 손톱에 대못을 박고 뼈를 뭉개며 코에 고춧가루물을 들이부었던'

 조선인 일제 경찰들은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자기만'을 위해서 그런 짓을 한 겁니다

그들은 일본의 힘이 셌기 때문에 친일파   土倭토왜가 됐을 뿐입니다

 한국인 대다수가 친일파에 대해 갖는 감정은 

저들의 지독한 '사익 지상주의'로 인해 공동체의 분열, 파괴를 겪은 데에서 온 

트라우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친일을 한 자들에 대한 사회적  민족적인 트라우마도 

근원적 요소를 청산해야 치유될 수 있습니다.....인간의 이기적인 탐욕을 청산?

私益사익이 모든 것을 앞서는 곳에는 정의도 人道인도도 없습니다.

사익 지상주의자들은 철저하게 힘 있는 자들 편이고 돈 있는 자들 편입니다.

저들 죽었다가 다시 깨어나도 하나님 편은 될 수가 없는 가라지들입니다. 

 

친일했으니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산다.

독재했으니 그나마 이만큼이라도 잘 산다고 믿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에게는 먹고사는 것이 전부입니다. 먹고 사는 일이 권세. 

떵떵거리면서 기죽지 않게 사는 것이 권세 있는 사람의 인생입니다. 

다른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사람은 사람이기를 포기하고 가축과 노예이기를 자처하는 것입니다.

친일이라도 했으니 이나마 라도 발전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의 ‘대한민국’은 저의 ‘대한민국’이 아니다” 전 우용이라는 역사학자는 말합니다.

 “저 사람의 대한민국 건국절은 1948년 8월 15일이지만, 저의 건국절은 1919년 3월 1일이다.

  ✎. 양심이 없으면 절대로 '양심'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류의 양심? 양심? 개소리.

       3.1운동 때도 토왜들은 '인류의 양심'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양심보다는 이해관계가 먼저.

 

  양심의 권세? 만대후손까지 먹고 살수있는 천만금이 주어져도

     서슬퍼런 양심 앞에 배설물 같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양심의 권세가 있는 것이다. 양심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가 있는가?

    다 안다. 그러나 권세가 없다.

 

 ‘친일했기에 이만큼이라도 산다’는 말은

 ‘대갓집 종놈이기에 이만큼이라도 산다’는 말과 같다”

 “노비제도가 사라져도 노비의식은 남고

 식민지시대가 끝나도, 식민지 노예의식은 남는다. 

종놈의 ‘이만큼’은 시민의 ‘이만큼’과 같을 수 없고 

하나님의 자녀들의 이만큼은 시민들의 이만큼과 같아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사람들의 이만큼이 

종놈들의 이만큼과 같다는 것입니다.

  

권력과 돈을 향한 집착은 

문학을 해도 예술을 해도 체육 운동을 해도 심지어 목회를 해도 

돈과 권력 명예가 따르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먹을 것. 이해관계가 있는 곳에는 파리 떼가 달라붙습니다. 

파리 대왕 =바알세붑..마귀 대명사.

똥파리 = 왕 파리.  말에 속지마라.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의 숨은 권세를 알아본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돈이나 권력  돈이 되고 힘이 되는 권세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아서 행동

예수님의 숨겨진 권세는 

개념 파악도 안 되고 너무도 생소하고 현실적인 아무 이해관계가 없다.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에게 매력을 느낀다.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사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가지를 흔들고 호산나를 외칩니다.

당신은 왕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여주소서, 당신은 구세주이십니다, 

우리가 따르겠습니다. 종려나무가지는  승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같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환호하는 수많은 군중 틈으로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고 입성하십니다. 

제자들은 겉옷을 벗어서 그 길에 깝니다. 

예수님께서 그  위로 지나가십니다. 큰 행사입니다.  

나팔소리  북소리 요란하게  무장한 군대의 행렬은 없지만 

왕의 입성행렬임이 엄연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이나 권력자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권세에 대해서는 다들 소경입니다. 

예수님 말고는 전부가 다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것은 이해관계입니다

돈 바꾸는 자들의 상床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질타하셨습니다.

정권을 빼앗고자하는 구테타나 혁명이 아닙니다. 

성전의 권력자들?  싸울 상대도 감도 아닙니다. 

 

 

「여우의 진리」라고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

 

 여우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진리란 이것이다'라고 설교를 합니다. 

토끼를 만나서는 "너는 내게 복종하여야 한다. 이것이 진리이니라.

닭을 보고는 "너는 나한테 잡혀먹히고  내 음식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리이니라

개한테는 "너는  내가 닭이나 토끼를 잡아먹을 때에  간섭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진리이니라. 이 진리는 성경에 기록되었느니라 합니다.  

이 여우와 마찬가지로 

내 말이 곧 진리요, 내가 힘이 있으면 진리요, 돈이 있으면 진리라고 착각하거나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세상에는 드물지 않게 있습니다. 

내 권력이 내 돈이 그대로 권세와 통하는 줄로 착각합니다. 

허세를 참 권세로 착각합니다.  

권세는 법 안에  있습니다. 법을 떠나서는 어떤 권력도 용납되지 않고  

양심과 진리를 떠나서는 어떤 권세도 용납되지 않는 법입니다. 

지휘자의 권세는 권세가 대단합니다. 그러나 지휘자는 악보를 따릅니다. 

지휘자도 악보를 보고 대원들도 악보를 봅니다. 

지휘자가 악보를 따라갈 때에만  대원들이 지휘자를   따라주는 것입니다. 

그 지휘자가 악보를 좀 더 잘  이해하고 잘 해석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잘 연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 손을 쳐다보고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와 법 안에 권세가 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힘과 권력 재물에 허세가 있고 권세가 있는 것이 아니다.  vs 허세

  

 

 Lordship 퀴리오테스 이 말은 신약성경에 600여 회.  

사도 바울의 편지에는   300회 이상

 Ownership 즉 소유권. 창조주의 왕권. 

예수님께서 가지신 권세는 왕권(王權)입니다. 우주를  다스리시는 왕권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시고, 

육신을 입으시면서 잠깐 동안 이 권세는 감추어집니다. 

이적을 통하여 왕권을 가르쳐주십니다.  

병을  고치시고, 바다를 잔잔케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이 모든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의 권세를 계시하십니다. 

또한 당신의 행위를 통하여 나타내시고 행적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입성하시는 모습을 통하여, 

성전을 깨끗이 하시는 것을 통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빌라도 앞에서 아무 말씀 없이  십자가를 지십니다. 

잠시 그 권세가 감추어집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하여 더욱 높은 의미의 사랑의 권세, 

구속의 권세를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계십니다. 

 

✎.진짜 권세 있는 왕 vs 허세를 부리는 황제 총독 왕 대제사장 장로...조무래기 왕들

 

예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알게 될 때에 

우리가 그 십자가의 권세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알 때에 

비로소 내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압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알 때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권세를 알게 됩니다. 

 

탕자가 돌아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고 너는 내 아들이다 하고 반깁니다. 

이 때 내가 아들 된 자격이 있다느니 없다느니 

지난날에 죄를 많이 지었다느니  안 지었다느니

앞으로는 이렇게 하겠다느니 저렇게 하겠다느니 하는 

군소리는 다 쓸데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면  이미 그것으로 시작과 끝. 

내 자격은 갖추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받을 자격까지 부여하시고 계십니다. 

그 사랑의 권세에 엎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권세가  믿어지고 

그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때에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죄와 죽음을 이기신 그 거룩한 생명의 권세가 

나에게 들어와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습니다.

 죽으나 죽음을 맛보지 않는

이런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권세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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