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음 그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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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9-04-14 20:17 조회3,0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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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죽음 그 진실
요한 3 :16-17
1. 사람 사는 일이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아무렇게나 주먹구구식으로 살아서도 안 되고 기분대로 살아서도 안 됩니다.
엄연한 질서와 원칙이 있습니다.
사람은 그 엄연한 질서와 원칙를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 인생의 근본입니다.
일평생을 가르치는 선생보다는 학생으로 살겠다.
배우는 자로서 나의 본분을 삼겠다.
배움의 내용이 지능 예능 체능 성품...이렇게 전인적이고 전인격적입니다.
①. 지능은 이성의 능력 생각이 자라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眞僞진위.... 진실과 거짓 善惡선악......good and evil
美醜미추.......아름다움과 추함 虛實허실..... 허함과 실재 nihility and reality 있음과 없음
聖俗성속......거룩함과 속됨 貴賤귀천.....귀함과 천함.
先後선후 앞뒤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능력
輕重경중.....일의 가벼움과 무거움 適否적부...적절성과 부당성
正誤정오......바르고 틀림 本末본말.....음뜸과 딸림
➜. 뭐이 중헌디? 이익과 손해 vs 옳고 그름...이익인데 틀려. 그러면?
公私공사 공적인 일과 사사로운 일. 내게 아무리 이익이 되어도 공공의 적.
이외에도 어휘력 발표력 이해력 개념 정리하는 능력. 주제파악 상황 파악하는 능력
덕과 재능을 구분하고 재능보다는 덕을 앞세우는 분별력과 용기 열정. ➜. 德勝才
하나님과 우상을 구분하고 올바른 신앙과 미신 사교집단. 사이비이단을 구분하는 실력
✎. 하나님과 인간. 하나님과 귀신. 하나님과 자연.
창조주와 피조물. 시간과 영원을 분별할 줄 아는 지능
이러한 지능 생각이 일정한 기준과 원칙이 있고
바르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중심을 잘 잡아가야 합니다.
②. 예능...시각 청각 촉각이 예술적으로 잘 발달하여 감성적인건강함과 풍성함을 누리도록.
사물의 색감 명암 = 밝고 어두움. 채도= 진하고 엷음 선명함의 정도...
색의 전체적인 조화 감각. ➜. 전체적인 구성의 원근과 균형 조화를 느낄 수 있는 감각
소리 음감. 음의 고저 장단 화음을 익혀가면서 인생을 밝고 즐겁게 살아 갈 수 있는
감성적인 소양을 갖추어갈 수 있도록 예능적인 감각이 자라가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이 얼마나 감정적이 동물인가 이 감정이 통제가 안되면 이성마저도 무력해진다.
➜. 최소한 잘 할 줄을 몰라도 느끼고 감상할 줄은 알도록 배워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 통제가 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연을 즐길 줄 알고 사람도 즐거워할 줄 알아야 사랑도 할 줄 아는 것이다.
사랑을 무슨 동물적 본능정도로 밖에 생각을 못하면......참 추해지고 우습게 됩니다.
③. 체능입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아이들은 자기 몸이 있는 줄도 모르고 즐겁게 삽니다.
어른이 되갈수록 몸이 무거워지고 여기 저기 고장이 나고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예민해집니다.
위생적인 깨끗함은 기본이고 음식을 골고루 잘 먹는 습관.
먹을 것 못먹을 것 가릴 줄 알고. 몸 관리. 수면과 적당한 운동
사람 사는 일이 지능 예능 체능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성품으로 열매 맺어야 합니다.
④. 성품 훈련
착하고 아름답게. 온유하고 겸손하게. 화평하고 거룩하게. 진실하고 성실하게.
지혜롭고 순결하게 공평하고 정직하게. 근면하고 검소하게. 신중하고 담대하게.
순전하고 양순하게. 풍성하고 충만하게. 인자하고 관용하고 너그럽게.
은밀하고 친절하게. 자유롭고 질서 있게. 충성되고 경건하게
확실하고 분명하게. 신선하고 참신하게. 인내하고 덕스럽게. 민첩하고 슬기롭게.
기쁘고 즐겁게. 원만하고 적당하게.......
좋은 사람이 된다는 일이 만만하거나 쉽지 않습니다.
저절로 가만히 있어도 시간만 가면 자동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이 정도만 살펴보아도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무게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가를 알아갈수록 자기 입을 꿰매고 싶어진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너무도 천박하고 경박하다. 지옥이 따로 없다.
지능. 예능 체능. 성품 모두가 타고나게 뛰어난 사람도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격자. 인물. 위인 영웅 Star 성인이라는 이름들을 붙여 줍니다.
재능만 뛰어나도 대단한 대접을 받고요
인품만 훌륭해도 사람 됨됨이만 반듯해도 한 세상 살아가는 일에
별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우리들끼리 이야기입니다. 우리들끼리야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2.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다 어쩔 수가 없는 죄인들입니다.
특별히 이번 고난 주간에 예수님의 죽음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이성과 감성 그리고 건강한 몸으로 좋은 성품으로 잘 자라가도록
프로그램도 계발하고. 성품 학교도 하고 아버지 학교도 하고 부부세미나도 하고
조금 부족하더라도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지
왜 꼭 예수님의 죽음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해야 하나?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지만 예수님의 죽음에 비하면 비교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왜 우리의 유일한 구원이 되는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또 무엇이라도 되는 줄 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뻔뻔스럽게도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립시켜서 인간다움이라고 내세운다.
그런 것들은 기독교 신앙의 찌꺼기들 배설물일 뿐인데 말이다.
죄와 허물로 죽은 것들을 가지고 무슨 생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보석이라도 되는 양 자기 재산이라도 되는 것처럼 인간다움을 내세운다.
창조주 하나님을 빼버리고 자기들끼리 인간다움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가?
갈6:14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이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이 나에 대하여 죽었고
나도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내가 세상에 대해서도 세상이 나를 향해서도
피차 상관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빌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왜 예수님의 죽음만이 나의 생명 의미 기쁨 자랑이 되는가?....
➜. 설명해서 되는 문제가 아니다. 은혜의 계시로 믿어지는 일이다.
며칠을 굶은 거지처럼 배가 고파야 밥이 밥으로 보인다.
목자의 음성이 들려야 그 목자의 양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게 되어있다.
아주 분명하고 명확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알아보는 눈이 열리게 되어 있다.
예수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사람의 말이나 글로서는 담아낼 수가 없는 내용이 아니다.
음악이나 시나 그림이나 소설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가 없다.
괜히 어색하고 우습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아이들의 낙서 수준으로 밖에는 더 이상 안 됩니다
다른 하나는 신화...아주 조잡하고 더럽게 느껴지는 것이 신화입니다
신화는 신화로 읽으면 그만입니다.
전설따라 삼천리는 전설로만 들으면 됩니다.
내용이나 본래적인 뜻도 중요하지만 그릇이 유치하고 너무 조잡하고 더럽습니다
희랍인들의 신화나 바벨론 페르시아의 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신 히브리인들의 언어는 사실언어. 그림언어입니다
이들의 언어는 몇 마디만 해도 바로 그림이 그려집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 1:1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더라. -창 1:3
천국의 비밀은 어린 아이들에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에 관한 모든 사실은 성경책에 써진 그대로 어린 아이들 수준으로
그대로 믿으시면 됩니다. 더 어렵게 만들지도 말고
더 쉽게 이해시키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대로 사실입니다.
단순하고 깨끗하게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눈을 열어 하나님의 세계를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 쉽게 말하면 이해되고? 어렵게 말하면 이해 안 되고?
예수님의 죽음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이나 비유나 모범으로 만들면 쓰레기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신화로 우습게 만드는 자들도 지옥 말고 다른 어디에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예수님의 죽음 때문이며,
우리가 일평생 듣고 말하고 가슴에 담아야 할 것도 십자가의 죽음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무엇이길래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마다하고
헌신하고 사랑하고 순교하면서 몇 백년이 넘게 핍박과 박해도 견디고 나왔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1.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한 사건이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 되고, 얼마나 크고 놀라운 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충분히 이해가 되거나 알게 되어서가 아니라 자석에 끌리듯 그냥 끌립니다.
그리고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2.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격렬하신 지를 말합니다
수난, 고난이란 말은 파토스 열정이란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요 3:16
하나님은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우리에게 '주셨다. -롬 3:25.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셨다. -롬 8:32.
가만히 앉아서 용서를 받는 분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 자신의 희생적인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먼저 죄 문제를 정리하시고 그리고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사람들끼리도 한 번 화해하려면 서로 자존심 싸움하느라 얼마나 복잡합니까?
화해를 하더라도 깨끗하지를 못해요.
그러나 예수님은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고 몸을 찢고 피를 흘리는 죽음으로 말씀하십니다.
이 사랑이 얼마나 파격적이고 격정적이며 신비하고 놀라운 것이냐 말입니다...
➜. 여호와의 불
㉠. 그 불을 어떻게 끄냐? 지구의 바닷물을 다 갖다 퍼부어도 끌 수가 없다.
㉡. 내 인생을 다 팔아서 그 사랑을 산다고? 조롱거리가 된다.
천 원짜리 한 장 들고 가서 몇 억짜리 자동차 달라고?
자기와는 격에 맞지도 앉는 여자에게 청혼?
예수님 사랑이 뭔지를 하루살이 주제도 못되는 니들이 알아?
예수님은
①.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계시던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이제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 요 17:5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 2:6-8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말의 진실이 정말 알고 싶어집니까?
그 죽음이 정말 나하고 상관이 있다고 믿어지는 사람이 어떻게 구경꾼으로 남아있겠는가?
②. 하나님의 사랑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사랑으로 신적인 신비적 하나 됨을 이루십니다
삼위 일체적 신비의 사랑으로 죄인 된 사람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 요 17:23
천사들을 자녀 삼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희생하신 것은 들꽃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희생하신 것
더 아름다운 우주 천체를 만드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죄인들을 사랑하시고 자녀 삼으시기 위해서입니다
3.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를 위해 발 벗고 나서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자발적 순종이다.
의무적인. 무슨 도덕 윤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겉으로 보기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군병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그분의 죽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한 자발적 순종이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까지를 하나님이 정한 뜻으로 이해하였고,
거기에 순종하셨습니다. 그 마지막 고난주간에 되어진 일들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되어진
일련의 모든 사건들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의 파토스 열정과 의지를 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우리가 어떻게 같은 생명을 나누고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로 함께 할 수 있는지를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를 인하여 살리라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4.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속죄하는 사랑의 능력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우리를 정결하게 씻어주시는 능력이 된다는 것을
사람의 말로 어떻게 설명이 가능한지 저는 아직 모릅니다.
➜.단 번에 영원히 완전하게 정결하게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여러 번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죄를 도말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요 1:29, 36
유월절 어린 양처럼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희생 제물로
유월절 어린 양을 잡는 날 돌아가셨다
그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발라서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구원받는 것처럼 예수님의 피를 통해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 5:7.
5. 예수님의 죽음은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시킨 사건이다.
막10:45절에서 예수님은 친히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을 이렇게 밝히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5
☞. 민 35:31-32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우리들을 값을 치루고 자유케 했다는 해방의 은총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골 1:13-14
6. 예수님의 죽음은 화해와 평화를 이루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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