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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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7-04-16 20:41 조회2,95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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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며
고린도전서 15:3-8
ⅰ.
기독교 신앙은 부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Fact
부활은 기독교가 부화되는 사건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결정적 사건.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하면 무효가 되어버립니다.
일이 진행되어진 과정 순서 기간을 봐도
예수님의 부활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놀라운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부활을 그냥 정신적인 부활정도로 십자가도 단순한 희생정신 정도로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은 기독교나 불교나 종교는 다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종교다원주의자들
알을 가지고 병아리를 설명하려고 지만 결국은 알이야기밖에 안되는 것이다.
부활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십자가에 달린 그 유대 청년이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사람은 없었습니다.
제자들과 처음 성도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십자가 사건의 의미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에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부활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십자가들 중 하나로 잊혀졌을 것입니다.
그냥 유대인 청년. 선지자 하나가 죽었다. 그걸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문제는 부활을 믿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우선, 그것은 과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만일 부활한 것이 아니라 蘇生된 것이라면,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부활은 과학적인 연구의 대상이 아닙니다.
과학은 물질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만을 연구하고 분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물질 세계를 뛰어 넘는 사건입니다.
우리 말로 부활復活은 다시 산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소생과 다르지 않습니다.
헬라어로 부활을 가리키는 아나스타시스는 다시 일어서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나라 말에도 예수님에게 일어난 사건을 정확히 표현할 단어가 없습니다.
우리의 경험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과는 차원이 다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양이라는 동물도 없고 단어도 없는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그 양을 뭐라고 번역? 돼지는 있다.
그보다 더 거의 불가능한 문제가 부활이 무엇인가를 전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인지 예수님에게 일어난 일인데 제자들이 봤는데도 40일동안 지속적으로 본 일이고
또 승천하셨는데 이 사실을 뭐라고 해야하는지 그 진실을 아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조각 공원의 대리석으로 조각된 작품들. 돌이 진짜 사람으로 툭 튀어나오는 일보다!
양철이나 나무로 만든 장난감 병정들이 피노키오 처럼 정말로 사람이 되어버리는 일보다
더 놀라운 일이 예수님의 부활이다
그러므로 부활 사건을 자체를 두고 따지는 것은 아무런 소득 없는 논쟁입니다.
그보다는 물질 세계를 넘어서는 다른 세계가 존재하느냐?를 묻는 것이 더 소득이 있을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말은 우리가 경험하는 물질 세계를 넘어서는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뜻이고,
예수께서 부활했다는 말은 그 세계로 옮겨가셨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물질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아는 시간과 공간. 물질이 아니다. 다른 세계입니다.
우리가 아는 생물학적인 죽음에서 생물학적인 생명으로
같은 물질의 세계에서 죽었는데 다시 살아났다 그런 말이 아니다.
그런데 물질 세계를 전부로 여기는 유물론자들 진화론자들. 공산주의자들 무신론자들은
부활을 받아들일 근거 자체가 없다. 무슨 말로 무슨 논리로 이야기해도 결국은 우물 안이다.
물이 없는데 물고기를 말하고 하늘이 없는데 새가 하늘을 난다고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요6:62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 시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동영상을 찍을 수가 없다
㉡. 하루살이에게 계절. 내년을 어떻게 설명?
㉢. 시공간에서 보여지는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종이 위에 그려?
물결치는 바다위에 쏟아지는 햇빛을..그 파도 소리와 출렁이는 물결과 반짝이는 빛을 어떻게?
㉣. 오케스트라를 피아노 한 대로 담아내?......
하루살이같은 물질의 세계만 고집하는 그런 사람들이 부활이라는 말을 쓴다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라 이 물질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어떤 새로운 현상을 말하는 것뿐이다.
20대에 어려운 신학서적을 한 참 읽어가다 보면 전혀 딴 말을 하고 있어요......
부활이라는 말을 쓰기는 쓰는 데 성경이 말하는 부활이란 뜻이 아니더라구요...
철학적 심리적 사회적인 어떤 현상을....$%^@# 부활?
부활 사건이 믿을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따지려면
예수님의 죽음 이후에 예수님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일어난 변화들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죽어 매장된 예수님에게 일어난 사건이 무엇이었는지를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무슨 말로도 어떤 논리로도 사람을 설득해서 믿게 할 수는 없다.
성경도 어떤 논리적인 근거를 대면서 안 믿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억지로 믿으라고 누가 사정하지도 않습니다.
반면에 믿어지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의 어떤 반대 논리나 근거에도 설득당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그 자체가 사람의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는 놀라운 신비입니다.
말해준다고 해서 누구나 다 믿는 것도 아니고 믿을 수도 없는 것이고
믿는다고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진짜 부활이 무엇인지를 알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먼저는 객관적인 사실을 자신이 직접 확인해 보시고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증거를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ⅱ.
먼저, 십자가에 달려 죽어 장사된 예수님에게 일어났을만한 일을 모두 생각해 보십시다.
만일, 성경이 말하는 대로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았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1) 그분의 시신이 무덤에 그대로 있었는데,
제자들이 집단적인 환상을 보고 예수가 부활했다고 믿었다. 집단체면이나 착시현상
2) 십자가에서 내려졌을 때 그분은 기절한 상태였고, 무덤에서 쉬고 난 다음에 기력을 되찾았다.
3) 제자들이 몰래 그분의 시신을 훔쳐다가 숨겨 놓고 부활했다는 믿음을 조작했다.
첫째, 그분의 시신이 무덤에 그대로 있었는데,
제자들이 집단적인 환상을 보고 예수가 부활 했다고 믿었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이 가정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그 같은 집단적인 환상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데 있습니다.
그런 현상이 일어나기도 어렵지만,
그런 현상이 일어나려면 집단적으로 무엇인가를 간절히 갈망해야 합니다.
사도들과 신도들이 모여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열광적으로 기도했다면
혹시 그런 환상을 볼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읽어 보면 알 수 있듯,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믿지도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기는커녕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 상상하지도 않았습니다.
여인들이 와서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을 때 즉시로 믿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집단적인 환상을 보았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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