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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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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6-06-13 13:56 조회3,398회 댓글0건
설교자 : 김준봉 목사
설교본문 : 로마서 7:24-25
설교일자 : 2016. 06. 12

본문

 

 

             우리는 회개할 수 있는 사람인가요?

                       나는 회개 할 수 있는 사람인가?           로마서 7:24-25

. 다른 모든 것을 다 잘해도 이것 하나를 잘못하면 다른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나 다른 모든 것을 다 잘 못해도 이것 하나만 잘 하면

    나머지 모든 다른 것을 결국은 다 잘 하게 된다. 그 하나가 무엇일까?

    예수님 잘 믿는 일. 그 중에서도 회개하는 일. 나는 회개할 줄 아는사람인가?

.. 설교 처음부분이 녹음이 안되었습니다.

     원고 처음 도입부분을 조금읽으시고 들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원고 마지막 1/3은 설교에는 없습니다.


70년대 중동 건설 현장에 나가서 처자식들과 떨어져 돈 벌려고 나간 아빠들이 많았습니다.

몇 년간만 고생하면 집도 사고 자식들 교육도 시키고 그런 꿈을 안고

뜨거운 더위에 견디면서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그때 이층집 한 채에 300만 원정도 대졸 초봉이 십만원 안밖

그렇게 일해서 번 돈이 그대로 집에 있는 아내에게 통장으로 입금이 됩니다.

아내는 그 돈을 잘 관리하고 아이들 잘 키우고 몇 년만 고생하다가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 것입니다.

아내는 그렇게 살림을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내가 바람이 납니다.

처음부터 용감하게 불륜에 빠지는 아내들은 없을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빠져들다가 결국 중동에서 일해서 들어오는 모아 논 돈까지 다 날려버립니다.

시간이 지나고 3년이 다 되어 남편 귀국합니다.

남편은 아빠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린 시간입니까?

그러나 아내는 귀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하기만 합니다.

이제 와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가정에서 아내의 자리는? 이 아내가 회개할 수가 있을까요?

회개한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남편은 이 아내를 용서할 수가 있을까요?.

이 모든 사실을 확인했을 때 남편의 분노와 아픔을 헤아릴 수 있을까요? .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을 하나님은 어떻게 용서

 간음한 자. 안식일을 범한 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왜? 약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을 파기하는자들은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게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 관계가. 창조주이신 거룩하신 영광의 하나님과 죄인 인 인간들의 관계가

이런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끔찍하고 혐오스러운 용서받을 수가 없는 상태라는 것을

사람의 눈으로도 조금만 주의 깊게 자신에게 정직한 성찰을 한다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런 사실을 외면하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냥 살아갑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것을 외면한다고 기억에서 지워버린다고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날마다 즐거운 일만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밝은 면만 보고 웃음을 잃지 않고 산다고

우리가 죄인이라는 현실이 달리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7:24 아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가요!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

우리가 더 경건하게 살아서 더 거룩한 생활을 한다고 성자가 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부자가 된다고, 성공하고 만사 형통 해서 왕관을 쓴다고 결혼한다고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고

건강해서 120세까지 산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인입니다.

죄에 대한 감각이 살아날수록 우리가 경건해지는커녕 두렵고 떨리게 되는 것입니다.

바람난 아내...요즘 사람들은 뭘 어떻게 해 이혼하면 되지 그런 막장 드라마를 쓸 것 같아요.

이렇게도 죄의식이 없어져버린 인간들이 어떻게 회개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판단 진단은 인간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 악함이란 것이 보편적인 것이고 누구나 다 그런 것이어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23:24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3: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3: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3:28 이와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3: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23: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 마치 지금 자신들은 그렇지 아니하기라도 한 것처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말하는 교활함

7: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7: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7: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7: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7: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여기서 예외일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요?

하나님의 눈에 인간이란 얼마나 끔찍한 혐오스러운 피조물인지를 아는 것이 회개의 시작

1: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25:4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여자에게서 난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25:5 보라 그의 눈에는 달이라도 빛을 발하지 못하고 별도 빛나지 못하거든

25:6 하물며 구더기 같은 사람, 벌레 같은 인생이랴

.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하고 교활하고 추악한지

      치가 떨리는 정도라는 것을 인생에서 한 번쯤은 눈치를 챌 기회가 있다.

인간의 실존은 죽을 병에 걸렸다. 죽음에 이르는 병. 절망.

절망을 아는 사람만이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하나님에게서 쫒겨나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느냐고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울면서 통곡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 어린아이가 될 수밖에 없다

 

 당신은 상당히 겸손하고 친절하고 선한 사람?

스스로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

당신의 만성적인 불치병의 교만을 드러내주는 표시 증거는 없다.

정말 희생이라고 할만한 희생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

한 번도 자신의 자존심을 꺽고 항복해 본 일이 없는 사람이

자신은 반듯한 사람이라고 심성이 바른 사람이라고 파리 한 마리도 못 죽이는 사람이라고

법 없이도 사는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자신은 친절하고 겸손하고 다른 사람과 화목하고..

내 배가 부르고 내 기분이 좋으면 내가 참 좋은 사람입니까?

1. 측은 지심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자비 긍휼 사랑

2. 수오지심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

3. 시비지심 옳음과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

4. 사양지심 겸손하여 남에게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이런 덕목들은 사실 하나

옳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측은지심이 사양지심을 기대하면....

시비지심이 부족한 사람에게 좋은 인간관계를 지속하기는 어렵다.

절제할 줄 모르는데 사양지심이 어디서 생기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20세기 들어서면서 인간들은 죄의식이나 수치심

자신의 본능이나 욕구를 절제하는 것을 인간의 정신건강에 해로운 것으로 선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적인 인간의 본성이나 본능을 억압하지 말고 종교나 도덕 전통 관습의 이름으로 억압 하거나

 스스로 위축되지 말고 그것을 풀어주고 해방시켜라. 너는 초인이 되라고 부추깁니다.

네 인생의 주인은 바로 너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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