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던져진 거룩한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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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2-11-13 08:57 조회1,076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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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던져진 거룩한 진주
마태복음 7:5-6
1. 달팽이............ 달팽이는 어디로 가버리고 빈 껍질
달팽이가 어디로 가버렸는데 빈껍질이 있다고 달팽이?
달팽이도 아닌 것이 들어와서 산다고 그게 달팽이가 되는가?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
하나님이 떠나버렸는데 사람에게 무슨 생명이 있냐고?
목숨이 붙어있는 것이지......그래서 불안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불안을 이겨볼려고 하나님도 아닌 것들을 산더미처럼 욕심을 내서 쌓아놓고
잘난 척하고 자랑질 하고....
부끄러운 바보 짓들인 줄도 모르고 – 그게 더 비참한 것.
생명도 없는 빈껍데기들에 무슨 이름을 붙여도 아무 의미가 없다.
성인군자. 천재. 세계적인 인물. 재벌 회장 .
아내. 남편. 아들 딸. 아버지. 어머니. 가족.......
아브라함과 이삭. 하늘의 별같은 후손들 다 합쳐도 빈 껍데기 Nothing
그게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올라가는 사건이다.
아바지도 아들도 빈 껍데기 일 뿐이다 하나님이 계심으로 생명이 있는 것.
아버지가 답이 아니다. 아들도 답이 아니다. 하나님이 답이다.
하나님이 생명이다.
아버지가 아버지되고 아들이 아들 되는 길이 하나님이다.
노아 때에 홍수로 인간 세상 자체를 땅속에 다 파 묻어버렸다.
이것이 윤리.도덕? 상식과 교양? 이성과 양심?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올라간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 생명은 윤리도덕이 아니다 그 이상의 본질이다.
이 진실을 잘 알아야 우리가 헛발질을 조금이라도 덜하고 산다.
2. 불안 염려 근심 걱정...떼어 놓으려고 해도 안되....왜?
하나님도 아닌 것들. 가짜 거짓말로 될 일이✘
마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 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하냐...
..........들의 백합화를 봐라
㉠.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다.
㉡.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6: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이 생명. 하나님이 빛......... All. 一. 全體. 統.....요한복음1장
사람이 염려를 하기 시작한 것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땅에서 축출을 당한 이후부터입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서, 절대 순종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생명력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며 존재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은 포도나무이신 하나님에게 접붙임을 받은 가지들처럼
나무이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생명력으로 존재하며 유지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존재 자체가 처음부터 공동체적입니다.
인간은 특히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 개별성을 챙기며 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을 머리로 한 공동체적 존재, 거기에는 염려가 있을 수가 없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순종의 자리에 내려가 있는 피조물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알아서 퍼부어 주시는데 무슨 염려가 있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나무가 튼실하면 가지는 아무 염려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피조물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지의 자리를 벗어나,
선악과를 따먹은 뒤 스스로의 안전과 행복을 자기가 챙겨보겠노라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가지가 스스로 개별적인 포도나무가 되어보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나도 나무이다.
공동체적 존재가 개별성을 챙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나는 나다 하고 자기 선언....= 죄 =죽음.
자기들이 선악의 판단의 주체가 되어, 자신들이 가치와 힘이라고 생각하는
하나님도 아닌 이 세상의 것들로 스스로를 보호하고,
또한 그것들을 쟁취함으로 행복에 도달하려 시도를 합니다.
재물과 인기와 건강과 도덕과 윤리 등이 그러한 것들입니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의 힘과 가치를 쟁취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일을 하고, 열심히 공부도 하고, 열심히 아름다움을 가꾸고,
열심히 착한 일도 하고, 열심히 사기도 칩니다.
아무튼 타락한 인간은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이 욕심만큼 채워지지 않을 때
염려라는 것을 하게 된 것 입니다. 그러니까 염려는 자신의 영광 챙기기에 나선
타락한 개별자들에게 있어서 필연적으로 찾아 오게 되는 것이며
개별자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름에서 오는 저주받은 감정인 것입니다.
그게 타락한 인간의 나라입니다....욕심이 없을 수가 있는 인간이? ✘
하나님이 없는 데서 생기는 것이 불안이고
이 불안을 해소해보려고 온갖 짓들을 다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창세전에 택해 놓으신 당신의 백성들을
그 인간의 나라에 계속 묻어두실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그 인간의 나라에서 건져내셨습니다. 그게 이스라엘. 교회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원래의 처음자리인 하나님에게 접붙임을 당한 공동체적 존재로
회귀를 시켜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이 역사 속에서 이 세상의 것으로
자신의 존재의 근거를 삼는다든지, 안전의 방책으로 삼는다든지,
행복의 조건으로 삼는 등의 타락한 나라의 존재방식에서 점점 벗어나게 되어
종국에는 모든 것을 다 부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사는 자로
지어져 가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염려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자신의 존재의 근거와 가치의 근거를
포도나무이신 하나님에게만 두는 자로 완성이 되어져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기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100% 하나님의 은혜로 작동이 되는 나라.
하나님이 계시면 그것으로 끝. 완전함. 다른 것이 더 필요한가?
그러면 하나님 나라 아니다.
사랑. 능력. 지혜. 인품. 덕에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으로 다 커버가 된다.
➜. 낮과 밤이 없다. 해와 달과 별들이 없다 왜 하나님 자신이 빛이 되신다
천재와 바보가 없다. 성인 군자와 인격 파탄자가 없다.
내것과 네 것이라는 경계 국경이 없다.
자기 소유. 자기 영역. 자기 자존심. 자신의 능력. 잘남...
이런 것들이 있을 이유가 없다. 어떤 차별도 없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만유 안에서 만유를 충만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이 분이 머리.
엡4: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으라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그런데 그 빛이 비추이니까
어둠 속에서 기어나오는 자들이 있더라는 것입니다...그 빛을 받으니l
요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시119:64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사6:3 .......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 산상수훈 마태복음 5-7장은 천국의 그림
거기에 염려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의 힘과 가치로 자신들의 인기와 명성 챙기고,
자신들의 안전과 행복을 챙기는 그런 세상 나라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거룩한 백성들은 이제 세상의 힘과 가치를 사용하여
자신들의 영광을 챙기는 이 세상 나라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로 경륜이 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더 이상 이 역사 속에서의 자신의 가치 챙기기나,
존재 챙기기, 착함 챙기기에 조바심 낼 필요가 없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이 세상의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으로 염려하는 것을
그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악 판단에 의해
스스로의 안전과 행복을 챙기는 자기 숭배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만을 붙드는 그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우리 스스로 착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삶을 추구하여
만들어 내려고 하는 인간 측에서의 의를 버리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성이 된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롬3:21~22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그러니까 율법은 인간들 스스로 자신들의 자존심과 영광을 챙기는 수단으로서의
인간들의 의인 것이고,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이 준비하신 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여, 너희들의 착한 일로 스스로의 인기와 평판과
명성을 챙겨 하나님 앞에 공로와 업적으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것 입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지 않으면 그 누구도,
그 어떤 착함과 업적과 공로를 내어 놓을지라도,
지옥의 유황불을 모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주님의 말씀 속에 담긴 메시지.
3. . 비판
이 세상의 힘과 권세로 자신의 안전과 행복을 챙기고,
스스로가 선악의 주체가 되어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열심에 의해
자신의 영광을 챙기려 하는 사람들로부터 필연적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
비판입니다. 그래서 염려의 이야기 바로 다음에 비판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이다
㉠. 나보다 더 잘하고 위에 있으면 그게 나를 불편하게 하고
㉡. 나보다 아래에 있으면 함부로 하고...그것도 다 자기 생각
➜. 마태 7:1-6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 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옳고 그름의 판단이나 분별을 피 할수는 없습니다.
그런 비판까지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자기 눈에 들보는 그대로 놔두고
남의 눈에 가시. 티끌하나를 보고 빼라 마라......왜 그래?
자신들의 부족함을 감추고
자신의 영광과 인기를 챙길 수 있는 것은 과시하고....
다른 사람이 나팔 불어주기를 바라고..
..다른 이들이 나 자신보다 월등함을 소유하거나,
나 보다 더 잘난 자들이나 자신에게 열등감을 주는 것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진짜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에게는 관심도 없고
자신의 이름이나 영광에 관계되는 것은 눈에다 불을 쓰고 달라들고.......
손자 뻘되는 젊은 충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강간한 다윗
그게 들통이 날까봐서 우리야를 간접살인하고
그리고 그 손녀뻘 되는 밧세바를 데려다가 자기 아내를 삼고 그리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넘러가려는 그 인간이 골리앗을 무너뜨린 그 다윗?
그 밧세바가 다윗 왕의 아내가 되서 행복합니까? 솔로몬을 낳아서 행복합니까?
밧세바의 일로 밧세바 할아버지 다윗과 막역한 친구였던 아히도벨이
압살롬과 반역을 하게 되고 그 반역의 실패로 자살을 하게 됩니다.
남편과 할아버지를 잃은 밧세바가 살아가야할 인생이 행복?
밧세바의 그 어두운 그늘 –우울증은 솔로몬에게 그대로 전달이되고
솔로몬은 여성편력을 가지고 되고 천명의 후궁과 비빈을 두고 살게 됩니다.....
이게 사람입니까? 인간벌레입니까? 하나님께서 가만히 놔두실 수가 없다.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 알리시고 다윗에게 말하라고 허신다
어떤 부자가 자신의 양도 많은데 이웃의 가난한 자가 자식처럼 키우던
단 한 마리의 양을 빼앗아 요리를 하여 자기 손님을 대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윗이 뭐라고 합니까?
그런 놈은 당장 죽이고 양 새끼를 사배로 갚아주어야 한다고 노발대발합니다.
자기는 왕궁의 수많은 첩들이 있었음에도 충신의 아내를 강간하고
그것이 발각이 될까봐 충성된 장수를 죽여 버린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신의 눈에 들어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겨우 티끌 같은 양 한 마리 빼앗아간 자에게 대노하는 것입니다.
그게 인간의 죄성입니다.
그걸 자기 영광을 챙기기 위한 더러운 비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들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
기준과 근거로 삼는 것이 바로 율법. 도덕성. 양심. 윤리. 정의 공정성입니다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율법을 모두 지켜내면 하나님 나라에 당당히 입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외에 하나님의 율법을 모두 지켜낼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율법은 자기를 죽여 원수를 살려내는 이웃사랑을
그 뿌리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어 보겠다고 피조물의 자리를 박차고 나간
인간들 중에 누가 그 사랑을 감히 흉내나 낼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오히려 이웃을 죽여 그 피로 자신의 배를 채워야 하는
좀비 같은 존재들인데, 어떻게 자기를 죽여 남을 살리는 하늘의 사랑을 합니까?
그래서 그렇게 선한 율법이 자신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올인 하여 사는 인간들에게 주어지면
그 율법은 곧 자신의 훌륭함을 입증하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데에만 쓰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그걸 지켜서 자신의 잘남을 입증해 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왜 인간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하나님의 의만을 의지 할 수밖에 없는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 뒤로 꼭꼭 숨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교만한 인간들은 최선을 다해 그 율법의 행위를 지켜내고
자신의 그 율법지킴을 근거로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자신의 잘남과 자신의 인기와 자신의 명성과
자신의 영광을 위해 열심을 다해 지켜내는 율법지킴과
그것을 근거로 내질러지는 타인에 대한 비판을 가리켜
외식이라고 일갈을 하십니다.
마7:5-6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생명이신 하나님을 일어버리고
하나님도 아닌 것들로 생명도 없는 것들로 산더미처럼 앃아서
그것도 다른 사람을 밟고 도둑질하고 죽여서까지
자신이 뭐가 되려는 이 추악한 자기 숭배자들
그럴 힘이나 능력이 없으면 열등감이나 패배의식으로 담벼락을 쌓고
자기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인간들
이런 모습들이 자기 눈에 들보.
이 사람들에게 무슨 천국의 그림.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그림이 그려져?
주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의만으로 통치가 되는 나라입니다.
거기에서는 개별적 업적이나 공로를 절대 인정해 주지 않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애초부터 공동체로 구원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개별적 의나, 개별적 공로나 업적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거기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만이 오롯이 드러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느니라
그곳에 사는 모든 이들은 전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면목 없고, 공로 없는 이들입니다.
그 나라에 어떻게 타인을 향한 비판이 있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필요가 없다. 생각도 못하는 곳
그런데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을 비롯한 모든 인간들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 눅18:11~12
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 하나이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 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한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세리라는 자와의 비교 상대적 우월감을 누리고
자신의 깨끗함과 종교적 열심을 자랑하기 위함에서 나온 것이라는 게
하나님의 노여움을 유발해 낸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자랑과 자신의 유익과 자신의 영광을 챙기기 위한
깨끗함과 종교적 열심은
반드시 다른 이들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단 말입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토색, 불의, 간음 때문에 그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티끌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도둑질한다고...하나님께[서 무엇을 잃어?
우리가 간음한다고....하나님이 더러워집니까? 해라?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지 서로 해하고 상하고......그러면 지옥
죄라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통용이 되는 용어가 아닙니다.
사59:1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하지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너희 죄가 그의 얼굴을 가리어서 너희에게서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
무슨 죄?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밧세바를 강간하고 충신우리야를 죽여 버리고서도
내가 하나님께만 범죄 하였다는 말을 한 것이다.............오해. 오용.✘
우리들끼리 서로 해를 끼치고 상처를 주는 죄와
하나님께 지은 죄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들끼리 서로 사랑하지 못하고 지은 죄들들도 결코 작거나 사소하거나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깨끗하게 용서를 구하고 배상을 할 수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심판하시는 근거는 토색, 불의, 간음보다는
자기 사랑이라는 완악함입니다.
토색, 불의, 간음 등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큰 위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무시하고 그 분의 영광을 탈취하여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자기 사랑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은 바로 인간의 자기 사랑과 자기 영광 챙기기입니다.
그게 들보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그러한 들보를 자기 눈에 끼운채 그대로
다르 ㄴ사람들의 티끌 같은 것들을 가리키며 분노한다는 말입니다.
하루살이는 걸러내는데 정작 약대는 삼키고 있는 꼴입니다.
㉠. 재판관 자리는 하나님 자리...경찰. 검찰 법원✘
무슨 법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판단 시비?
㉡. 흠 잡지 말고 하나라도 좋은 점을 보고 칭찬하고 격려...
윤리 도덕 차원에 설교 9/10 ✘
생명이신 하나님이 빠져나간 자리에 자기가 하나님 되어서
하나님도 아닌 것들로 채워넣으려고 하는
일체 모든 자세와 태도 정신을 네 눈의 들보
✎. 이 들보를 빼라고 하시면서 바로 그 다음에 주시는 말씀이
마7: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자
선과 악을 스스로의 기준으로 판단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타락한 인간의 밝아진 눈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들을 가리켜
본다고 하는 자들은 소경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 측에서는 자신들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었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그게 바로 눈이 먼 것이라고 반대로 말씀을 하십니다.
요9: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들보를 가지고 보니
열심히 깨끗하게 살아온 자신이 대단하게 훌륭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훌륭한 인간? 깨끗한 인간이 어디가 있습니까?
자신이 배설물이고 걸레인줄 알면서도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지 않으니
자신은 똥. 걸레라고 따들고만 다니는 것입니다.
회개도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라는 부자집 대문에서 얻어먹는 것 말고는
자신이 할 일이 없는 줄 알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꿇어 엎드릴 줄 아는 사람들이
진짜 부자 하늘의 영광을 상속하게 되는 것
거지 나사로가 되어서 주리고 목마른 사람으로 살아갈 줄 모르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외식하는 자이며 그들이 바로 개와 돼지라는 것입니다.
비판을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던 주님이
갑자기 개와 돼지의 이야기를 꺼내시면서
거룩한 것과 진주를 그들에게는 절대 주지 말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거룩한 진주를 알아보고
천국의 복음. 십자가 복음을 알아듣고
하나님의 의가 다스리는 하니님 나라가 보여지고 들려지는
하늘의 복을 받은 성도들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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