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양식 예수님을 구하는 기도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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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2-10-02 08:08 조회1,073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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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양식 예수님을 구하는 기도생활
눅11: 1-13
ⅰ.
눅11:1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 주님의 기도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 친구의 강청하는 기도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 하물며........성령을
눅18: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눅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 항상 기도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무시로 기도... 성령으로 기도...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 깨어기도. 금식하며 기도. 한적한 곳에서 기도.
무릎을 꿇고 기도.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 기도에 항상 힘쓰며
눅6:12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눅9:29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눅22: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행1:14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행3:1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행6: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행9:11 다메섹 아나니아. 직가 -거리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행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행10:31 .....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
행16: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행20:36 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행21:5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새 ....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골4:2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살전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살전5: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딤전2:8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딤전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약5:13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유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계5: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계8: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 기도가 숨쉬는 것처럼 생활 속에 녹아 있고 몸에 베어 있는가?
㉯. 무엇을 위한 기도인가?
ⅱ.
밤중에 찾아온 친구의 비유....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강청하여 졸라대면 하나님이 귀찮아서라도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야 마신다는 말?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우리의 거룩한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꾸준히 반복하여
지속적으로 기도하면
그 정성에 감격하셔서 = 믿음? 그 기도에 응답을 하시는 분일까요?
자신의 소원이나 필요를 구해서 소원 성취하는 것이 기도? ✘
예수님을 생명의 양식으로 구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기도생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지성이면 감천이다. ✘
그런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건 성경과 완전히 거꾸로 반대되는 개념들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늘은 하늘의 뜻대로 인간을 바꾸어냅니다......
아브라함 야곱. 유다.......아브라함이.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여 이겨먹었다????
하늘은 절대 인간들에게 다스려지거나 조종되지 않습니다.
하늘이 인간을 다스립니다.
하나님은 절대 성도들이 드리는 기도의 양이나, 기도의 자세나,
끈기 등을 고려하여 기도 응답의 가부를 결정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성도의 기도를 당신의 뜻에 맞게 바꾸어 내시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도 귀찮을 정도로 강청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보좌가 흔들려
하나님이 마침내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이용하는 것.
하나님을 한낱 해결사로 전락시켜 버리는 불경스러운 성경해석인 것입니다.
우리네 인간 세상에서의 부모들도 자식들이 무조건 땡깡을 부린다고
그 요구를 다 들어주지 않습니다. 우리네 인간세상의 부모들도
그 자식의 요구가 과연 그 자식의 사람됨에 도움이 될 것인가 아닌가를
심사숙고 한 후에 그 자식의 요구에 대한 가부간의 응답을 합니다.
하물며 우리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숨과 바꾸셔서
당신 나라 백성으로 양육하고 계신 그 자식들의 요구를
그저 끈질김과 간절함이라는 것만을 근거로 하여
응답의 유무를 결정하시겠습니까?
기도의 응답을 너무 못 받은 어떤 사람이 나중에 하늘나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기도의 응답을 그렇게 못 받은 이유를 하나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하나님께서 ‘너는 참 끈기가 없더라, 금식 기도도 열흘을 작정해 놓고
여드레 만에 중단하고, 100일 새벽기도를 작정하고도 90일을 못 채우더라,
좀 더 끈기를 발휘해 보지 그랬어?
그럼 내가 들어주었을 텐데’이렇게 대답을 하셨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하나님 무서워서 어디 천국에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나하는 것 봐서 언제든지 내 치실 것인데...
그 하나님이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하신 그 분입니까?
ⅲ.
당시 유대인들은 기도를 거의 습관처럼 자주 하고 있었고,
기도를 무척 중요한 종교행위로 간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도문 몇 개씩은 늘 암송하고 다녔고,
시편의 기도들을 노래로 만들어 흥얼거리며 다닐 정도로
기도에 열심이었던 사람들입니다....시편150편이 노래입니다!!!!!
자신들의 믿는 바와 지향하는 바를 특화시켜서 기도문으로 요약하여
마치 신앙고백서나 사명선언문처럼 암송하거나 읽고는 했습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세네파, 세례요한파, 헤롯당 등등 모든 집단들이
각각의 자기들 특색을 살린 기도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의 품속에 가지고 있는 나의 가장 깊은 소원이
내가 누구인가를 정의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추구하고 있으며 무엇을 가장 소원하고 있는가?’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가슴 속 깊은 곳의 소원이 나를 정의하고
나의 기도가 그 소원을 표현하는 것이라 한다면
내가 지금 무슨 기도를 하고 있는가가 바로 내가 누구인가를 정의 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렇게 우리의 가슴 깊은 곳의 소원이 우리의 기도로 나타나고
그 기도가 우리가 누구인가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야말로 주님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문을 하나 만들어
우리의 색깔을 규정하고 찾아주세요라는 제자들의 요구에
‘너희들은 이렇게 살게 될 것이고, 이러한 완성지점으로 갈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대답을 해 주신 것이 주기도문입니다.
우리 성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들이며,
우리 때문에 모독을 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이름은
반드시 거룩하게 찬양을 받게 될 것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일어나는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될 것이고,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이 이 세상에서 온전히 성취가 될 것이며,
우리에게 하늘의 만나이신 예수님을 양식으로 주셔서
죄와 허물로 죽어있던 우리를 살려내신 하나님께서
다른 세상의 양식들을 모두 쳐 내시고, 오직 예수라는 양식으로만 배부른 자들로
만들어 내실 것이고, 율법에 의해 형벌을 가해야 하는 율법의 시대가 가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한 은혜의 시대가 와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율법으로 정죄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으며,
가시적으로도 완성이 될 것이고, 선악과라는 시험 기간이 완전히 끝나고
생명나무만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곧 도래할 것이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모두 아버지께만 돌려지는 그러한 완벽한 하나님 나라가
올 것이며, 그 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살 자들이 바로 우리 성도인데,
그 모든 것이 하늘의 생명 양식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영적으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이게 주기도문이 담고 있는 우리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그런데 주기도문 안에 쓰인 동사가 전부 부정과거 명령형 시제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고 기도할 때, 그 안에는,
그 나라는 이미 임했으며, 임하고 있으며,
반드시 임할 것이란 뜻이 모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이미 임한 것과 현재에 진행 중인 것과
종말의 현실이 모두 그려져 있는 이미와 아직
오늘 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 하냐
요6:27 너희는 썩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여라.
오늘 우리에게 내일의 양식을 주세요라는 청원....생명의 양식. 예수님
예수님은 아람어를 사용. 아람어로는 내일이라는 뜻.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일의 양식을 오늘 주신 적이 있었지요?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6일 째 되는 날에
항상 내일의 양식을 함께 주셨습니다. 왜 여섯째 날에 다음날 것까지 주셨습니까?
그 다음날이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에는 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기 때문에,
여섯째 날에 일곱째 날 것까지 거두고, 안식일에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온전한 창조를 기념하며 즐기고, 종말에 이루어질 참 안식을 고대하라는 의미에서,
여섯 째날 다음날 것까지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여섯째 날 내일의 양식까지 주심으로
안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하시고,
아울러 그 안식의 날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확신하게 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은 반드시 약속의 땅에 들어가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걸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안식의 날인 내일이 오지 않을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굳이 내일의 양식까지 오늘 주실 필요가 없잖아요?
이스라엘은 여섯째 날에 벌써 일곱째 날의 양식인, 내일의 양식을 소유하고
있음으로 해서 여섯째 날에 일곱째 날을 미리 누리면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이 땅에서 여섯째 날을 살면서 완성의 날인 일곱째 날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내일의 양식을 가지고. 내일이라는 말은
시간 속에 어제 오늘 내일 모래의 그 내일이 아니다. 24시간 후의 내일 ✘
오늘이라는 시간의 세계가 아니라 영원을 가리키는 단어......
새 날. 그 새 날의 새 노래 – 생명의 양식.
우리는 다가올 내일, 즉 하늘나라를 살게 될 하늘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저 하늘의 것으로 먹고 마시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 나라를 통치하시는 왕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 나라를 준비하며 사는 자들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그 하늘의 양식이 무엇입니까? 요6:27. 48~51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 치신 자니라.
48 내가 곧 생명의 떡 이로라 51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 이로라 하시니라
➜. 샌드위치 기법 주기도문의 핵심은 내일의 양식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을 영원의 생명양식으로 구할 줄 아는 사람들
그 양식을 강청할 줄 알고 그 양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이 소원이 되어서
밤낮으로 졸라대는 과부의 원한
ⅳ.
어느 한 집의 손님은 그 집만의 손님이 아니라 마을 전체의 손님 대접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의 친구 개념은 네 것 내 것이 없는 아주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따라서 밤에 친구 집에 도착한 그 친구도 미안해 할 것이 전혀 없는 상태였고,
그 친구를 맞아 다른 친구 집으로 떡을 빌리러 갔던 친구도 전혀 미안할 것 없이
떡을 요구할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풍습 하에서
그 손님은 마을 전체의 손님이었고, 그날 떡을 만든 집이
바로 잠자고 있던 친구의 집이었으며, 친구 사이는 밤낮 구별 없이 아무 때나
그 집의 것을 제 것처럼 쓸 수 있는 사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상황을 설정해 놓으시고 질문을 하나 던지십니다.
눅11:6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7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소에 누웠으니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이 질문은 제자들에게 실소를 자아케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 비유에 떡을 구하는 친구의 강청이나 끈질김이나 땡깡은
단 한 줄도 기록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냥 그 질문으로 비유의 내러티브는 끝이 나고 설명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소용대로 주리라....
수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 체면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친구와 떡 세 덩이의 비유는 절대로 거부당할 수없는, 어떤 당연한 요청에 대한
하나의 그림으로 제시가 된 것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고, 조르면 주게 되어있다
라는 그런 유치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면서 그 비유에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어떤 요구가 붙어 있는지 보세요. 눅11:9-12
9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예수님이라는 하늘의 만나를 먹은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삶, 예수님 같은 삶,
자기부인과 십자가의 삶을 추구하라는 말인 것입니다.
그 일을 해 주러 오신 분이 누구입니까? 성령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결론이 13절로 나게 되는 것입니다.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눈에 끼어 있는 세상의 온갖 백태로
하나님나라는 마치 없기라도 한 것처럼 숨겨져 있다.
성도들도 오십보백보이다. 마법에 걸리 성안의 사람들처럼....구별이 안된다.
그래서 생명의 양식을 구하는 기도를 기도생활이라고 하는 것이지
무슨 소원 성취해서 만사형통하게 되는것을 기도생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삶을 살아야 하는 성도들은
항상 기도로 확인하고, 기도로 힘을 얻고, 기도로 믿음의 고백을 하며
살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취하신 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기도를 안들어 주시겠느냐?
떡을 구하는 친구의 요청을 당연히 들어주는 것처럼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가 어떻게 자기 자식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ⅴ.
아벨의 신원, 제단 밑의 성도들의 신원,
이 땅을 살고 있는 우리 교회의 신원은 모두
하나님의 의에 반하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모든 죄악에 대한 원한인 것입니다.
성도의 원한은 하나님의 은혜를 무색케 해 버리는 세상의 죄,
자신이 왕이 되어 하나님을 부리려 하는 세상의 죄에 대해서
치를 떠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의 눈에만 그것이 보이니까요.
그런데 주님이 말씀 하시기를 지상에 있는 그 하나님 나라 형제들이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아니, 세상을 다 죽여 버리시면 되지
왜 세상에게 당하고 있는 성도들이 다 죽기까지 기다리십니까?
하나님을 대적하여 자신이 이 우주의 중심이 되어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장적나라하게 폭로되는 곳이 어디입니까?
바로 성도라고 하는 우리 자신의 마음 안입니다.
하나님은 철장을 들고, 세상을 사용하여, 우리 안에 여전히 오염의 형태로 남아있는
마귀 적 속성들을 죽이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옛사람이 죽어가다가
결국 육적 사망과 함께 완전히 죽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새로운 몸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그 때에는 완성된 성품과 인격과 됨됨이가 온전한 모양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과 세상. 우리들 안밖으로 영혼까지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으로 단장이 되는 것.....햇빛보다 7배나 더밝은 빛의 옷으로....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보거나,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볼 때,
악인이 승리하는 것 같고, 내 속의 악한 것이 선한 것을 잡아먹어 버릴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습니까? 그 때 낙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일이 가끔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발생하고 수시로 폭로가 되므로 항상 기도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이 더뎌 보이고, 요원해 보여도 그 일은 이미 이루어졌고
가시적으로도 이루어 질 것이니까, 걱정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로 너의 믿음 있음을 선포해 보라는 것입니다.
기도로 너에게 주어진 언약을 다시금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 전체를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일이 얼마나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지
많은 이들이 끝까지 기도하며 기다리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요한의 말대로 원래부터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 비유의 결론을 인자가 다시 올 때에
내가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로 내리셨던 것입니다. ➜.눅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그러나 성도는 어떻다는 것입니까? 항상 기도하며
보이지 않는 소망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그 날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을 높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무력함과 연약함과 죄인 됨을 수시로 폭로당하며,
‘하나님,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저는 오늘이라도 당장 죽은 흙이 될 것입니다
라는 겸손한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 바로 뒤에
성전으로 기도를 하러 올라간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자신 안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는 마귀의 모습이 발견되고 있는데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매 순간 그 옛 사람의 죽음을 경험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올바로 자각하고 있는 이가 다른 이의 연약함과 더러움을 지적하며
나는 저 사람과 달리 착한 사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라는
교만한 기도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늘 원한 같은 것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우리 안의 마귀 적 속성과 그 속성으로 대표되는
전체 마귀의 세력에 대한 원한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속히 저 세력을 멸망시키시고 하나님의 의와 공평과 은혜와 안식만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를 완성시켜 주세요.
하나님, 이렇게 여전히 나의 육신의 만족과 행복을 위해 이 세상 것들만
구하는 저의 이 추악한 죄를 하루속히 소멸시켜 주옵소서.’
이게 바로 성도의 원한이며,우리가 항상 기도하며
낙망치 말아야 할 기도이며, 하늘의 떡을 구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이 세상 것들을 하나님께 강청해서라도 얻어내고야 말겠다?
㉮. 원하는 것이 천국이요 세상이요.
천국이 뭔지를 알고 이 세상도 천국도 다 주세요. 하는 거요?
영원과 천국을 아는 사람들은 그런 소릴 하지 않습니다.
알고 오직 생명의 양식만을 구하는 자들로 살아가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 선한 일을 많이 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겠다?
지금 자기 주제. 주기 처지를 아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해?
우리는 하늘의 떡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며
하나님 이외의 이 세상 것들로 나를 행복하게 하려 하는
더러운 죄 성과 싸우는 이들이지
그런 것들을 얻어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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