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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으로 돌아가면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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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7-12-18 15:38 조회2,764회 댓글0건
설교자 : 김준봉 목사
설교본문 : 에베소서 4:1-6
설교일자 : 2017. 12. 17

본문

. 오늘 설교는 녹음을 못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번에는 조용한 시간에 천천히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듯싶습니다.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근본으로 돌아가면 하나입니다

                                                                                            에베소서 4:1-6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지 않으면 거짓입니다. 무지. 허세 위선.

남자들은 도둑놈 늑대 이리. 같은 부류가 아니라 바로 늑대들. 도둑놈들 그 자체

여자들은 꼬리가 99개 달린 백여우........목사님께서 이렇게 무식하게 말하면 안 됩니다.

점잖으시게 품격과 예의를 갖춰서 말씀하셔야 합니다........진실은 Fact는 모두가 죄인이다.

세상에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사람이 있는가요? 우리 모두는 경건하지도 거룩하지 않습니다.

음란하지도 않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가 있는가요? 그러면 사람이 선한 사람이 있는가요?

사람이 정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6024시간 365

평생을 정직하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살 수가 있는가요?

부처님도 그렇게 못살고요 공자님도 마호메트나 소크라테스도 세종대왕도 이순신도 그렇게 못합니다.

비굴하고 거짓된 모습 허세와 가식 위선의 모습일 때는 전혀 없는가요?

세상에 정말 聖人 거룩한 사람이 있는가요? 흔히 말하는 위인이나 영웅이 정말 있는가요?

세상에 정말 인격을 갖춘 사람이 있는가요? 우리가 다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다고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아갈 수가 있습니까? 그럴 수 없느니라....3:31

 

깨 벗고 살 수는 없다. 가린다고 가려지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가릴 것을 가리고 살아가는 것이 예의이고 염치이다.

우리가 다 죄인이지만 그래도 인간성의 밑바닥을 다 보이면서 살수는 없다.

禮義 廉恥 面目. 상식 윤리도덕이라는 것을 성경의 언어로 말하자면 양심이고 율법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지 예의 염치 양심으로 구원 받습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예의 염치 양심 율법의 근본 정신을 버린 사람은 확실하게 가짜 신앙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 그 구원이란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요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권고하는 것

禮義 廉恥 面目 양심. 율법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 기쁨이고 행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하나님 몰라도 더 양심적적이고 더 선하고 더 좋은 일 많이 하고.....

근본으로 돌아가면?

사람마다 태어난 성향이나 자라난 환경이 다 달라서 도덕적 감각도 다 다릅니다.

출발선부터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초대형교회 목사님 아들로 태어나서 또 목사님 되었어요.

누구는 노점상 아들로 태어나서 목사님 되었어요. 어떻게 비교를 하겠습니까?

누가 더 훌륭하냐고?

문제는 사람마다 도덕적 판단과 능력이 다 다릅니다. 정말 거지같이 막장을 살다가 신앙생활

어떤 사람은 정말 최고의 인품과 지성을 가진 부모 밑에서 반듯하고 크고 넓은 사람으로

거기다가 모태에서부터 신앙적인 분위기에서 생기고 자랐어요..

누가 더 잘 믿는 사람이냐고?

. 사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일까요?

. 누가 무슨 기준으로 판단을 합니까?

내 눈에 보이는 것과 하나님 눈에 보이는 것이 같을까요? 자신 있으세요?

근본으로 돌아가면 인간이란 다 하나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다 하나입니다.

죽어서 땅에 묻히면 다 하나입니다. 아무리 무덤을 치장해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거짓말.

우리가 살아있을 때는 뭐가 다른 줄로 안다면 아직 인생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사나 죽으나 사람은 하나!  죽은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바로 눈앞에는 지금 몇 시간 후의 십자가가 있다.

이제 피 땀을 흘려 기도하시는 그 순간에 예수님은 제자들도 함께 하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권면하여 "깨어 기도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자들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그 세 제자는 잠에서 헤어나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잠시도 깨어있지 못하느냐?" 이렇게 아주 감정 어린 말씀을 하셨습니다만은

 저들은 여전히 잠에 취해 있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동정어린 말씀을 하십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구나." 이렇게 말씀하시고

깨어 기도하라고 일깨웠습니다만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 그것은 깊은 동정에서 사랑으로 하신 말씀입니다만은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육신이 약한 것이 아니라 의지가 약합니다. 마음이 약합니다.

 그리고 상황을 판단하는 그 판단능력도 없습니다.   또 나아가서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간절하게 말씀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깨끗한 마음의 자세도 없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를 지실 때에 저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고 도망갔었습니다.

특별히 베드로까지도 세 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하는 그런 부끄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얼마나 궁색했을까? 왜 그랬을까?

왜 이렇게 비참했을까? 왜 이렇게 초라한 인간이 됐을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기도하라" 하셨는데 기도한다는 것이 뭔지도 몰랐거든요.

기도 없이도 시험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장담까지 했거든요.

"죽을지언정 내가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후에 예수를 부인하게 됩니다

부인만 했나요? 맹세했지요. 저주까지 했지요.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얼마나 후회했겠습니까? 그래 전설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하고 말씀하신 바가 있는데

옛날엔 시계가 없으니까 닭이 한 번 울고 또 얼마 있다가 또 한 번 울고 ....

 "두 번 울기 전에" 라고 하신 그 말씀을 생각하면서 닭 우는 소리가 날 때마다 무릎을 꿇었답니다.

자기가 자기를 믿는다는 것이 이렇게 비참한 일입니다.

뭘 좀 아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제는 뭐가 된 줄로 알았는데 .......

그래도 이제는 뭔가 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 것도 할 게 없어요.

.60이 되고 나니까 앞으로 더 60을 살게 해준신다고 해도.....그게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다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게 그렇지 뭐 해 아래 무슨 새 것이 있겠어요.

인간이 자신의 주제를 알고 나면 행복의 이유가 정말 달라지게 됩니다. 꿈에서 깨는 것이지요.

인간이 자신의 주제를 알게 될 때 느끼는 후회라고 하기는 그렇고 묘한 감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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