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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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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0-06-17 15:59 조회1,938회 댓글0건
설교자 : 김준봉 목사
설교본문 : 마태4:1-11
설교일자 : 2020. -6. 14

본문

    수도원의 향기 사막의 영성 

                                               마4:1-11 딤전 4:7-8

 

수도원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보고 싶은 것은 지금도 미련이 남아있다.

 

카이로 갔을 때 피라미드 껍데기 보는 것보다 알렉산드리아로 가는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성 마카리우스 수도원을 들렸다 왔어야 하는데.....그 때는 뭘 알았어야지요.

 

그들의 신학을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모두가 수도사가 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을 통해서 우리가 잃어버리거나

 

아주 중요하지만 소홀한 부분들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수도원 이야기이지만 ✘  ➜. 우리가 전부? 옳다? 그것은 아니다.

 

이집트 성 마카리우스 수도원. 콥트 정교회의 가장 전통적인 수도원입니다. 

 

세례 요한도 쿰란 공동체 일종의 수도원 출신이다.

 

우리 나라에도 카톨릭. 정교회 개신교 봉쇄 수도원이 있습니다. 

 

토속적인 수도원도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사막밖에 없습니다. 

 

사막에서 해가 뜨고 사막에서 해가 지는 곳

 

해만 뜨면 열기를 뿜어내는 더운 사막에 수도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새벽녘이면 서늘한 바람이 잠시 불고 

 

잠시 후 해가 뜨면 다시 뜨겁기 시작하는 곳입니다.

 

밤새 더운 열기가 식지 않는 작은 방에서 수도사들은 생활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방에서 밖을 내다보면 사막밖에 보이지 않은 곳.

 

그런데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나고 있었습니다.

 

수도사들의 옷은 까맣고 땀에 젖은 옷이지만 향기가 배어 있었습니다.

 

영성 생활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전인적 균형을 개발하는 삶과 

 

일상생활에서 하나님과 일치를 이룬 삶을 지향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균형 있는 삶이란 

 

기도와 공부와 노동을 통한 영성의 균형을 의미합니다. 

 

일상에서 하나님과 일치하는 삶을 사는 것은 수도사만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가 해야 할 일입니다. 수도사들의 삶을 통하여 

 

수도원에서 끊임없는 향기가 풍기는 이유를 살펴봅니다.

 

기도. 공부. 노동. 순명. 순결. 청빈. 고독. 자기부정. 절제. 침묵.......

 

그들의 삶이고 옷이고 음식. 호흡이다.  

 

이런 것들이 저들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음식. 편한 옷이다.

 

ⅰ. 예수님이 계시는 방입니다 

 

    수도원 입구에는 좁은 문.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문

 

두 사람이 같이 들어갈 수가 없을 만큼 좁고 작은 문.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문. 호적 지우고 사망신고하고 들어가는 문.

 

도르레로 잡아당겨서 밑에서 음식물을 올려주면 그걸로 먹는 것을 해결.

 

들어갈 때도 그렇게 들어가고 나오는 문은 없는 곳

 

 바로 하늘나라로 직행하는 곳. 세상과는 단절된 곳. 

 

뒤돌아다 볼 이유가 더 이상 없는 곳.

 

그렇다고 그 안은 공동묘지 같은 곳이냐? 

 

오히려 그 안에 인간성도 신성도 충만한 생명이 넘치는 곳입니다. 

 

그 작은 문안에서는 나름대로 풍성하고, 푸르고, 생명이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원래 좁은 길이라고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스스로 좁게 만들어서 가는 길인 것입니다. 자원하여 가는 길입니다. 

 

모든 원함 모든 소원은 하나로 다 정리가 된 길. 오직 예수.

 

오직 예수님말고는 원하는 것이 없는 길입니다. 

 

세상에 화려하고 대단해 보이고 매력적이고 신나고 재미있는 

 

수 많은 것들 가운데 예수님 한 분을 선택한다는 것이 좁은 길입니다. 

 

모든 수도사들은 좁은 문을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넓고 좋은 길을 포기하고 좁고 협착한 문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부귀와 재물과 쾌락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묵상하며 살겠다고 헌신한 사람들입니다. 

 

수도사들의 거처는 두 평 남짓한 작은 방입니다. 

 

이 방에는 딱딱한 침대 하나가 있습니다.

 

담요 한 장이 있습니다. 그리고 빈 의자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

 

13세기 15세기에는 땅을 파서 석굴 혹은 토굴을 만들어 거처로 사용했다.

 

가진 것이 없는 그들에게 큰 방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필요가 없는 방입니다. 장식도 사치로운 방입니다

 

예수님만 계시면 그것으로 충분한 작은 방입니다.

 

방에는 작은 창문이 하나 있습니다. 지름이 40센티미터 정도 돼 보이는 작은 창

 

방에서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유일한 창입니다.

 

밖이라고 해봐야 사막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약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눅17:32 롯의 처를 생각하라.

 

     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창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누구이고 무엇입니까? 

 

많은 중요한 것들 중의 하나입니까?

 

아니면 오직 예수밖에는 없는 것입니까? 

 

 ☞. 요일5:11-12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생명이 없다. 생명의 문제이다.

 

 

 

이집트의 마카리우스 수도원에 선지자 엘리사의 유골이 있다고 합니다.

 

엘리사에게는 작은 방이 하나 있었습니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위하여 지어준 작은 방입니다.

 

이 작은 방에는 침상과 책상과 의자 그리고 촛대가 있는 방이었습니다.

 

이 작은 방이 좁은 길로 들어간 사람들의 거처입니다.

 

예수님을 모실 작은 방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큰 방을 요구하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충분하고 넘칠 수 있는 예수님을 모실 수 있는 작은 방

 

우리에는 온갖 방이 다 있습니다. 

 

노래방도 있고 최근에는 찜질방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위한 작은 방조차도 없는 마음들입니다. 

 

조급함과 분주함으로 꽉 차 있는 방들입니다. 

 

예수님을 모실 이 방이 있으면 여러분의 마음도 가정도 수도원입니다.

 

예수님을 모실 마음의 방이 있으면 그 마음은 이미 수도사입니다.

 

하루 저녘 머무는 데도 몇 백만원짜리 고급스러운 방도 있습니다만.....

 

옹색하고 종일 더운 열기를 뿜어내는 수도원의 그 작은 방일지라도 

 

예수님 계시면 거기가 천국이 됩니다. 

 

때로는 한 평도 안 되는 작은 감옥에서 

 

때로는 그 좁은 운전석에서도      때로는 토굴에서

 

예수님께서 함께 하실 때 그 흥분과 벅찬 감동을 세상 어디서 경험할 수 있겠는가

 

 

ⅱ. 그 곳은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수도사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훈련과정은 어떻게 됩니까?

 

☞.요21:15-17  수도사는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실제 수도사의 자격은 엄격합니다.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들이 많습니다.

 

우선 남자이어야 하고, 미혼이어야 하고, 병역을 마쳐야 한답니다.

 

거의 대부분의 수도사들이 고학력자들. 옛날에 흉악범들의 은신처가 된 적도....

 

세상을 버리고 온 사람들이기에 세상에서 입은 옷들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들이 아무런 방해받지 않도록 다 가지치기하고 들어 온 사람들

 

단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만이 자격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 사람들이 이 곳에 모여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사랑을 압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세상을 만드신 유일한 조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주신 단 하나의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구원하신 유일한 이유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작은 복음이다. 성경 전체의 요약입니다. 

 

 복음성가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 하리,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 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조롱 하는 소리와 세상 유혹 속에도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리라, 

 

내 생명 주님께 드리리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갑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순교자의 삶을 삽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조롱하는 소리도 이깁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세상의 유혹도 이깁니다. 예수님의 순결한 신부가 됩니다. 

 

수도사들은 이 사랑 때문에 결혼도 하지 않고, 예수님의 정결한 신부로 삽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예수 믿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예배하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세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사랑합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14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라고 합니다. 

 

강권하시는 그 사랑에 붙잡혀 수도원에서 평생을 보내며

 

 그 사랑을 맛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사랑합니까? 

 

세상의 어떤 것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려고 합니까? 

 

무엇으로 우리가 날마다 만족하려고 합니까? 

 

먹는 것입니까? 마시는 것입니까? 재미있는 놀이입니까? 

 

채팅입니까? 사람과의 만남입니까? 

 

재물. 권력과 지위도 인기도 명예도 우리들의 진정한 관심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유일한 동기부여. 하나님 사랑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우리들의 가정과 일터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베푸는 자리가 되게 하십시오.

 

우리들의 가정과 직장이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수도원이 되게 하십시오..

 

카를로 카레토라는 사막의 수도사. 

 

그대가 만일 사막에 갈 수 없다면 그대의 생활 가운데

 

사막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가정의 수도사, 직장의 수도사가 되어야 합니다.

 

삶의 자리를 고요히 하나님을 만나는 사막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람 사는 곳이 사실은 다 수도원이라는 생각입니다....

 

 

ⅲ. 수도원은 고독과 자기 부정의 자리였습니다.

 

사막으로 해가 집니다. 수도사들이 각자 자기 방으로 들어갑니다.

 

수도원의 모든 문들은 종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오후 8시가 되면 유일한 출입구인 작은 문마저 닫힙니다.

 

세상을 닫아 버리면 하늘이 열리고 

 

하늘이 열리면 하나님 예수님이 보입니다.

 

하늘이 열리면 하늘의 음성이 들리고 

 

하늘이 열리면 이후에 되어질 일들이 보입니다.

 

전기불이 하나씩 꺼지고 갑자기 고독이 밀려옵니다. 

 

침묵 묵언의 시간..

 

사람의 말을 거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들리는 말을 끄고 들리지 않는 말을 듣는 시간입니다.

 

그런 시간에 익숙하지 않는 사람들은 얼마나 외롭고 두려운지 

 

심리적 공황마저 느낀다고 합니다.

 

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까운 곳에 도시가 없기 때문에 밤이 되면 글자그대로 흑암 입니다. 

 

수도사들이 사막을 찾는 이유는 고독한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곳이기 때문 입니다. 

 

아무 것도 없기에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사막의 고독은 거룩한 고독입니다. 

 

거룩한 고독을 느낄 때에 사람은 가장 성숙해집니다.

 

적막감과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두려움은 견디기 힘듭니다. 

 

사막에서 해질 무렵은 가장 고독한 시간입니다. 

 

저녁 시간에 수도사들은 사막을 걷습니다. 

 

짝을 지어 걷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혼자입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자 홀로 어디론가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들은 사막을 걸으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모세가 홀로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지내며 이 고독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익어갔습니다

 

이 적막함 속에서 단독자로 하나님을 만난 그 멘탈이 

 

출애굽의 맨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야곱의 경험이 그렇습니다. 

 

홀로 광야를 지날 때에 지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 캄캄하고 어둔운 밤에 야곱은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캄캄한 밤에 아브라함을 불러 내십니다.  ☞. 창세기 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합니다.

 

땅을 쳐다보면 무서움이 밀려옵니다. 

 

그런데 하늘을 바라보면 별들이 수없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하늘을 쳐다보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무서움 보다 신비함이 더 큰 것이 하늘인 것을 알게 됩니다. 

 

땅은 두려움과 걱정과 무서움을 줍니다. 

 

하늘은 희망과 신비와 용기를 줍니다. 

 

우리들은 두려움이 있을 때에 하늘을 쳐다보는 것입니다. 

 

땅을 바라보면 두려움이 밀려옵니다. 

 

땅을 쳐다보면 세상 걱정과 근심이 엄습합니다. 

 

하늘을 쳐다보면 하늘나라의 소망이 가득 차게 됩니다.

 

 

 

이 수도원에는 세례 요한의 유골이 있는 곳입니다. 

 

그의 모든 사역은 이 한마디에 압축됩니다!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세례요한은 철저한 자기 부정으로 일관한 인물입니다.

 

자기 부정은 세례요한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부정은 수도사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부정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조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마16:24, 막 8:34, 눅 9:23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따르는 조건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진 사람들은

 

이제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갈2:20

 

바울은 이런 자기 부인을 이렇게 표현 합니다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다 버렸다.

 

오직 예수님을 얻고자 한다. 이 때 모든 것을 다 얻습니다

 

버리는 사람은 얻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포기한 사람은 채워집니다. 

 

수도사들은 끊임없는 영혼의 채찍질을 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자신을 죽이고 사는 삶을 삽니다.

 

 

ⅳ. 사막에도 바람이 불고 수도원에는 나무가 자랍니다.

 

대부분의 수도원의 뜰에는 수백년된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수도원 뜰에는 곳곳에 하얀 백합이...

 

아침이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로 시끄러울 정도입니다. 

 

황량한 사막이지만 나무가 있으면 새가 삽니다

 

수도원이 있는 곳의 지하에는 물이 흐르고 있기때문입니다. 

 

생명이 있으면 다른 생명을 살게 합니다.

 

사막을 향한 창으로 쉴새 없이 바람이 들어옵니다. 

 

사막에는 바람이 멈추지 않는다.

 

이것이 사막을 살게 합니다. 이것이 사막의 생명입니다.

 

바람은 생명입니다. 하나님의 생기의 바람은 우리 생명의 근거입니다.

 

그 바람이 없으면 사막은 정말 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사막으로 변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삭막한 사막 같이 변합니다. 

 

생명이 있으면 다른 생명을 살립니다.

 

아무리 황량하고 적막해도 사막은 살아있습니다. 

 

그 속에는 물이 있고 바람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사막 같은 세상에 우리가 삽니다. 

 

그러나 사막도 하나님의 숨결이 있고 사막은 살아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바람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막같은 세상도 움직이고 살게 하십니다.

 

그 바람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으면 세상에서도 향기롭게 삽니다.

 

사막 한가운데의 수도원에도 나무가 자라고 새들이 살 듯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으로 살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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