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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그리고 빛과 소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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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2-10-30 09:32 조회777회 댓글0건
설교자 : 김 준봉 목사
설교본문 : 마태복음 5:13-16
설교일자 : 2022.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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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생명 그리고 빛과 소금 

                                                                           마태 5:13-16

. 성도들의 옳은 행실...예수님을 믿는 다는 말은???

. 성경의 언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 영광을 돌린다????? glorify your Father which is in heaven.

         피조물인 인간이 무엇을 잘해서 창조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이방인의 우상숭배적 언어

.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이 드러나다 나타나다. 

자연에는 이 영광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자기들이 대단해서 뭘 잘 해서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린다?

하기는 자기들이 다 해놓고 그래도 그 영예를 하나님께 돌려드린다?✘ 

율법주의... 인본주의..... 선악과 따먹는 일이다..

벧엘. 얍복강에서... 기드온. 삼손에게... 모세. 시내산..

출애굽의 모든 과정에서 회막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를 드러내시는 것이다...

40: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예수님.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 돌려드린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말은 그 원래 주인에게로 돌려드리는 것. 이것은 제것이 아닙니다

       나라. 권능.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께만 속한 것입니다....

       선한 것은 무엇을 해도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이나 여리고 성의 전쟁을 누가 했는가?......

.아간이 그 전쟁의 영광을 도둑질.

단순히 물건에 대한 욕심으로 뭘 도둑질해서 숨겨두었다....✘ 

삶과 역사의 주인. 왕이신 하나님.. 그러한 영적이 지각이 없이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자기 중심적인 인생을 사는 것 자체가 아간이다

. 영광에 참여...영광으로 단장....

    살짝살짝 드러나거나 구경하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됨 -영화롭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세상을 비추고 세상의 부패를 막는

륭한 사람 선한 영향력을 끼치자....................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그러면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3:13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 왕의 혼인잔치에 초청을 하러 종과 아들을 보내는 데 왜 죽여버리는가

      얼마나 미우면.....

15: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 소속 정체성이 드러나면 바로 전쟁입니다.

16:3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유유상종이라고 세상이 우리를 보고 자기편이라고 좋아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

우리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세상은 우리를 미워하게 되어있다.

절대 세상은 우리의 빛과 소금됨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빛과 소금을 존경해 주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 빛과 소금을 핍박하여 환난을 당하게 만듭니다.

그게 성경의 진술입니다

착한 일 많이 하면 세상 사람들이 존경해 주고, 칭찬해 주고 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성경이 성도에게 요구하는, 오직 성도만이 행할 수 있는 

착한 행실이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 누구나가 행할 수 있는

그런 도덕적, 윤리적, 사회적, 상식적 착한 일이 아닌 것이지요? 

왜냐하면 성도가 세상이 추구하는 착한 일을 했을 때 

세상은 성도를 칭찬하지 핍박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교회가 불우이웃을 돕는다던가,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한다던가

불쌍한 이웃의 경조사를 돕는 등의 행위를 했을 때 

일간 언론에서조차 칭찬해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성도에게 요구되는 착한 일은 

      착한 일을 하고도 세상에게 욕을 먹는 그런 착한 일이란 말입니다.

주님이 요구하시는 착한 행실이라는 것이 그런 세상적 착함이라면 

그 착한 행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근거가 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성도의 세상적 착함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라면 

타 종교인들의 착한 행실은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까?

타 종교인들의 착한 행실도 우리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그들 각자가 믿는 다른 신들에게 영광이 되는 것인가요

선한 일이라고 눈꼽만큼이라도 해놓으면

 그것으로 또 자기 만족이 되고 자기 챙기는 것이 인간.

안그럴 수도 있는 인간이 어기가 있는가요?. 

신앙생활의 본질은 그런 선행 구제 봉사 희생. 헌신 충성. 업적 공로✘✘✘..

예수님의 착한 행실?

성경은 그것을 선악과 따먹는 것과 십자가로 그림을 그려주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

.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성도의 착한 일, 성도의 착한 행실은 예수님의 착한 행실  

        우리 인간들이 본 받음?

예수님의 착한 행실에서 기인한 착한 행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게 빛과 소금의 삶입니다...

예수님 생명 그 DNA. 씨앗이 같다....구원자 + 그 생명이 나타남 = 똑같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사랑으로 순종으로 하나......

그 하나됨이 예수님의 착한 행실.

그 착한 행실이 세상 속에서 어떠한 모양으로 나타났습니까

순종으로 나타났습니다. 비움으로 나타났다. 자기부인으로 나타났습니다

십자가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착한 행실에 의해 

교회가 탄생을 한 것입니다. 성도의 삶 속에서 바로 그 새 창조의 행위

자기부인과 순종으로 지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그모습이

그게 하늘나라 백성들에게 나타나는 세상 속 착한 행실입니다.

10:38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비움. 자기 부인.....

이런 말들의 실체적 진실?  2: 6-8

바로 이 예수님의 착한 일이 성도에게서 그대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빛과 소금의 삶 착한 행실은 십자가. 자기 부인당함. 죽기까지 순종 

그리고 부활로나타나는 하나님의 새 창조 역사가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성도의 착한 행실, 순종의 착한 행실, 십자가의 착한 행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지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 말도 잘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그 말은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상태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뭘 잘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의 삶 속에 개입을 하여 세상은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인내와 수고와 섬김과 순종의 삶이 성도의 삶에서 드러나게 될 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세상에 증거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나는 삶

그 삶이 바로 착한 행실이고, 빛과 소금의 삶인 것입니다.

그건 세상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그런 삶입니다

그래서 그 삶이 성도에게만 요구되는 것입니다.

주여 주여하면서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 다우심이 드러나지 않아...

자기밖에 없어....자기 허세. 자기 과시. 자가 자랑...

아무리 자신을 훌륭하게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위인 영웅처럼 준비된 사람

그런 대단한 인물처럼 보여도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그렇게 어벙하신 분이 아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원하는 것이요 아니면 자기를 챙기는 것이요...

성도들의 착한 행실이란 하나님 자신.

마른 땅. 목마른 사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없어도 하나님만 계셔주시옵소서..

그 진실함과 간절함이 영혼에 늘 절박하게 원하는 그것이 

소금과 빛으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죄인. 죄덩어리. 악한 자. 위선과 허세. 자기 자랑...

탕자. 거지 나사로. 창녀. 세리 도적 강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그러니까...돌로 쳐서 죽여버리는 것입니다

자기들 잘 한다고 인정 칭찬해주어도 시원찮을 판에 

세상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악하고 불순종하는 지를 폭로해버리는데....좋아해?

 

빛과 소금이라는 것의 근본 성질이 뭡니까? 구별입니다

소금은 부패의 대척점에서 부패와의 구별을 의미하는 것이고

빛은 어두움의 대척점에서 어두움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의 빛과 소금의 삶이란

세상은 흉내를 낼 수없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도만이 해 낼 수 있는 그런 삶이어야 합니다.

만일 성도의 빛과 소금의 삶이 세상의 윤리와 도덕과 상식의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법정 스님도 빛과 소금의 삶을 살다간 사람이어야 합니다....... 맑고 향기롭게

그 분의 산문집에서 몇 부분을 옮겨 읽어 드려 보겠습니다.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을 쓰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뜻이다.”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 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소리 없는 소리

자신은 똥이고 걸레라고 말한 중광 스님은 더러운 사람?...

나는 세상을 훔치며 산다. 괜히 왔다가 간다. 허튼 소리.... 사람의 정체. 실체가 뭐요?

성인군자. 위인. 영웅. 존엄.위대? 죄인들. 죽은 송장들...

.사진을 100장 찍으면 그중에서 제일 잘 나온 1장 올린다....진짜 나는 누구?

1997년 길상사 창건 법문 중 일부입니다.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즘은 어떤 절이나 교회를 물을 것 없이

신앙인의 분수를 망각한 채 호사스럽게 치장하고 흥청거리는 것이 

이 시대의 유행처럼 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풍요 속에서는 사람이 병들기 쉽지만 

맑은 가난은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를 이루게 하고 올바른 정신을 지니게 합니다

이 길상사가 가난한 절이면서 맑고 향기로운 도량이 되었으면 합니다.” 

완전 개혁주의 아닙니까?

이렇게 불가의 스님도 무소유의 삶, 비우는 삶, 절제의 삶, 청빈의 삶을 

자신의 열심으로 살아낼 수 있습니다. 어디 그 이 뿐입니까

힌두교인 간디. 힌두교의 구르 유대인들의 랍비. 톨스톨이. 슈바이처

성자같은 종교인들 목사님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감히 우리는 상상도 못할 절제와 버림과 청빈과 섬김의 삶을 살다가 갔잖아요?

그러면 그들도 빛과 소금이 맞나요

행위로만 본다면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소금이고훨씬 밝은 빛이잖아요

그러면 그들이 천국에 가야하고

더럽게 산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들도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까?

빨강색 색연필더러 파란 하늘을 그리라고?

그것도 못해??? 채찍질하면서 더 열심히 하라고?

맑고 향기롭게. 성인군자같이. 자연으로 무위로 돌아가라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다 비우고 살라고. 다 놓아버리라고.....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경쟁, 질시, 시비논쟁, 세평 등에 매달리지 말라고 살라고

벼슬. 재물. 쾌락을 똥같이 여기고 소박하고 청렴하게 청백리들처럼 

안빈낙도를 즐기라고... 이렇게 훌륭한 이야기들

좋은 이야기들을 해주면서 소금과 빛으로 살라고 해야지....

독사의 자식들이라니....너희 아비는 살인과 거짓의 아비....

회칠한 무덤같은 인간들. 저주받은 무화과 나무같은 자들....

양의 가죽은 쓴 늑대.이리들이라고 일갈하시면 누가 존경하고 박수를 치겠어요?

거대한 문명을 자랑하는 현대인들에게.... 

아방궁이나 궁궐보다 더 고품격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돼지 움막에서 산다고 하면?

 

오늘 본문의 말씀이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는 산상수훈의 흐름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 말은 빛과 소금의 삶, 착한 행실의 삶을 사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말씀인데 착한 사람들은 전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맞아요?

그럼 예수님 옆에 달렸던 강도. 공개적으로 창녀이었던 막달라 마리아.

살인마 김대두 지존파 김기환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그들은 착한 행실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못 살았잖아요?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고작 그런 착한 행실에 대해 권고하고 계신 것일까요?

그럼 예수님의 말씀과

        초등학교 도덕책의 권위와 가치가 별 차이가 없는 것이겠네요아닙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런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착한 행실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소금이 되어라, 빛이 되어라, 하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선포해 버리십니다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소금이다.

그리고 그 빛과 소금은 당연히 세상에서 그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이 바로 착한 행실이며, 그 착한 행실에 의해 세상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착한 행실은 엄밀히 말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주님의 일.구원  즉 새 창조의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 그 생명이란 어둠이 물러가는 . 

썩은 생선같은 삶이 아니라 아무리 작아보여도 파다닥하고 살아내는 

숨쉬는 생명이 있는 삶을 살아게 된다. 빛과 소금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능력과 지혜. 분별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금과 빛의 장사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묻어둘 수가 없는 것이 하늘의 떡 생명이다.

그 생명이 소금과 빛이라는 이익을 남기는 장사가 된다는 것

묻어둔다는 말은 자신에 생명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예수님 옆에 달렸던 강도 속에서 일어난 새 창조의 일

살인마 김대두의 삶 속에서 일어난 새 창조의 일. 즉 구원의 역사가 

바로 예수님의 착한 행실이며, 그 예수님의 착한 행실에 의해 끌려가는

그들의 삶이 예수를 드러내는 빛과 소금의 구별된 삶인 것입니다.

설탕에 짠 맛이 있을 수 없고, 어두움 속에 빛의 속성이 혼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도도 할 수 있고

         세상도 할 수 있는 그런 것은 소금과 빛의 삶이 아닙니다.

 

세상과 성도가 빛과 어두움, 부패와 소금으로 

구별이 되는 유일한 근거가 무엇일까요?

오직 성도만이 갖고 있는 세상과의 구별점이 무엇입니까?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예수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

그게 성도와 세상의 구별됨을 결정짓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생명이 있는 자들의 삶 속에 나타나는 삶이 

바로 빛과 소금의 삶일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들이 보기에 예수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의 삶과 세상 사람들의 삶이

도덕과 윤리로, 쉬운 말로, 착함으로 구별이 되던가요?

예수 안 믿는 착한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따라서 예수의 생명을 가졌다고 하는 성도의 삶 속에서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빛의 삶. 소금의 삶은 그러한 도덕적, 윤리적, 사회법적 건전한 삶 정도가 아니다.

물론 그러한 세상적 관점에서의 착한 삶은 빛과 소금의 삶의 열매로 맺혀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체가 빛과 소금의 삶의 본질은 아니다

열매는 생명이 있다는 흔적이요 결과이지 그 자체가 생명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생명에는 관심이 없고 열매만 맺으려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상하게 또 비틀면 안됩니다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모습들을 부정하거나 비아냥거리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모습들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 애굽을 탈출한 당신의 백성들, 구원받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열매를 요구하십니다...........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율법이 있는 백성. 이성과 양심이 제대로 작동이 되는 사람....

11:8......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이게 하나님의 요구입니다그런데 이스라엘이 성공했나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을 지킬 실력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살려고 했더니 자기들이 세상 속에서 원하는 것이 

하나도 주어지지 않아요. 결국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얻고 싶은 것을

쟁취하기 위해 우상을 만들어 냅니다. 그게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의가 아닌 다른 의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3:21~24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그들 자신의 의를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우리들이 쉽게 생각하는 윤리. 도덕 선함. 착한 행실. 공정과 공평. 정의...

인간들의 자기 의. 자신을 쥐어짜서 만들어내는 인간들의 자기 의....배설물. 토설물.

이성과 양심 율법과 도덕성......

이걸로 자신이 똥이고 걸레인것을 알라고 주신 것인데

그걸로 자기를 아주 훌륭한 인물로 치장하고 있는 인간 벌레들.....

인간은 그냥 흙. 티끌 먼지 피조물

성도는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선물로 받고,

 왜 자기들이 선물로 주어지는 의만을 의지 해야 하는지를 잘 배우며 

인간은 그렇게 예수님의 의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세상 속에서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빛과 소금의 삶이란, 신자 자신의 착한 행실을 내어 놓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착한 행실이 어떻게 나에게 임하게 되었는지를 드러내는 삶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의 주도권도 주님이 쥐고 계십니다. 

예수님 생명의 씨 예수님의 소금의 삶, 예수님의 빛의 삶을 

성도의 삶 속에서 드러내고, 자랑하는 삶이 

바로 성도의 빛 됨과 소금됨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 생명의 씨가 바위덩어리 같은 내 마음에 뿌려져도 

나를 옥토로 만들어서 소금과 빛이라는 열매를 맺게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생명의 씨가 나에게 잉태되어서

 그 생명을 품고 출산하는 과정이 성도의 일생. 그 과정에서 열매가 빛과 소금입니다

 

지혜가 무엇이냐고?..... 

탈무드. 노자 .장자 공자님 말씀. 싣다르타의 가르침.

유대인 랍비. 힌두교 구르.....현자들의 지혜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

시간은 무한대가 아니다. 시작과 끝이 있는 피조물이다

시간과 영원은 질이 다르다.

시간을 무한대로 하면 영원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시간과 공간 물질의 피조물 세계가 아니다.

흙으로 만든 우리들 육신. 그 육신이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 아니다

영원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과

그 하나님의 사랑이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을 찬송하게 되는 것을 지혜

인간들이 마치 무엇이라도 할 수가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인간들의 모든 가르침은 어리석은 것이다.

사람들 보고 무슨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것처럼 

너희는 무엇이 되라고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어리석음에 어리석음 더덕더덕 덧대는 바보 멍청이 짓이다.

107편은 우리들의 일상의 경험들을 일반화하여 말하면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인자하심을 노래하고 있다.

이 땅에서 다양한 인간들의 경험들을 자세히 살펴보라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가? 사랑이 있는가?

내 자신의 삶의 조건들?

 내 재능. 내 잘남. 내 우월. 내 재물. 내 지위...이런 것들로 행복의 조건?

내가 처한 삶의 자리에서 행복의 조건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이 아니면 죽음이고 절망이다.

이것이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화와에게 선언하신 정녕 죽으리라 이다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길을 잃어버린 양이 목자가 있는 양의 우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거지 나사로 뭘 잘해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다

세리 창기 강도 도둑놈들이 뭘 잘 했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뭘 잘 해서 천국간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인자. 긍휼이 사랑이 부어지니까

저들에게 덮여 씌워진 모든 덮개와 가리개가 벗겨지면서 

모든 저주와 죽음의 마법과 사슬이 끊어져 버리고

다 썩은 새끼줄처럼 허물어져 버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그 사랑 그 생명이 

은혜로 긍휼로 부어지니까 홰개하고 돌아가는 것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살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도들의 착한 행실. 옳은 행실 

피로 씻어서 희게 된 흰 세마포 옷을 입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타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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