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 온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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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3-07-21 09:14 조회89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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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온 루터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고후 13:5 찬송가 342장
✎. 다니엘서를 통해서 진짜 왕. 진짜 나라. 진짜 왕의 백성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의 모습
진실이 무엇인가? 진실이 아니면 거짓말. 속임수.
학문의 이름으로.
과학의 이름으로.
때로는 정직. 진실 겸손을 말하면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거짓말인 줄도 모르고 거짓말을 한다.
공적인 언론이나 교육기관이나 사적인 대화에서나
거짓말들의 바다에서 살고 있다.
성도들은 진실. 진리에 깨어 있어야 한다.
시26:2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시139: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시139: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학1:5 그러므로 이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는 자기의 소위를 살펴볼지니라
고전11:28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에베소 교회
계3:1 "사데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 보내어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 말씀하신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것이다.
계3:2 깨어나라. 그리고 아직 남아 있지만
막 죽어 가는 자들을 굳건하게 하여라.
나는 네 행위가 나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계3:3 그러므로 네가 그 가르침을 어떻게 받고 어떻게 들었는지를 되새겨서
굳게 지키고, 회개하여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같이 올 것인데,
어느 때에 내가 네게 올지를 너는 알지 못한다.
계3:4 그러나 사데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 몇이 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인데,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갈6: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천국을 정말로 알아버렸는데
그 사람이 천국에 안들어갈 수도 있을까요?
밭에 감추인 보물을 발견해 버렸는데도
빨리 가서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안 살 수도 있을까요?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인데도......
그 사람에게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는데도
그 사람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한 마디도 땅에 떨어질 수가 없는데............... 『그대로 되니라』
종교개혁자 루터가
그의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다고 가정을 해 봅니다.
우선 그는 얼마동안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아주 은밀하게 우리들의 삶을 지켜보며 관찰했습니다.
하루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신자입니까?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요?』
이 곤혹스러운 질문으로부터 빠져나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신앙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폭풍우가 있기 직전에 이를 감지하고 불안해 하는 들새의 비행처럼
나는 약간의 혼란을 예상하면서
신앙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아니요 루터 선생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기는 하지만
신앙은 갖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나도
자신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지칭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꺼지지 않는 불구덩이 속에.
빛이 없는 어둠 속에 던져질 것을 두려워해서
『그럼요 저도 신자입니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내가
『그렇소 나도 신자입니다 그게 어째다는 거요?』 라고 말했다면
루터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서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기때문입니다.
내가 지금도 당신의 생활을 지켜보고 있는 이유가
웬지 아십니까? 바로 그 증거때문입니다.』
➜. 항변 ?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루터 선생께서 내 설교를 몇편만 들으신다면
아니면 제 책을 몇권만 읽으신다면 제가 신앙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쉽게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이 스스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도 바로 저의 책과 저의 설교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훌륭한 작가. 배우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뿐입니다.
당신의 글이나 설교가
당신이 작가나 배우라는 것을 증명 할 수는 있어도
당신이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당신이 울면서 통곡하면서 믿음에 대하여 설교했더라도
그것도 또한
당신이 아주 유능한 배우라는 것을 증명 할 수있을 뿐입니다.
➜. 예수님 믿으세요.
내가 목사입니다.
내가 신학대학 교수. 총장입니다.
목사냐고 묻는 것도 아니고 신학대학 교수냐고 묻는 것도 아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신앙이란 참 당혹스러운 것입니다.
그 당혹스러움이 당신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 주었는지를 보여줄 수가 있는가요
당신 자신에게서 진실이 거짓을 몰아냈습니까?
당신 자신에게서 빛이 어둠을 이겼습니까?
당신 자신에게서 사랑이 미움을 이겼습니까?
하나님을 갈망하는 갈망이
당신의 모든 탐욕의 사슬을 끊어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희생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희생을 하셨습니까?
당신은 예수님의 이름때문에 박해를 받으셨는가요?
빛과 진실.
그 빛과 진실에 정직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포기하셨습니까?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 무슨 이의나 항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불신앙입니다
신앙이란 즉시 관철 될 수가 있는 당혹스러움 그 자체입니다.
희생과 포기. 고난과 약함으로서만 얻을 수가 있는 천국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그 사건이 마냥
하나님 사랑이라고 은혜받고 감동 받고 끝나는 사건인가요?
얼마나 참담하도록 당황스럽고 두렵고 떨리는 일이 아닌가요?
지옥을 지옥이라고 인식할 수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천국을 선택할 수가 있겠습니까?
죄와 죽음을 볼 수가 없는데도
그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을 선택할 수가 있을까요?
참된 평안과 기쁨을 아는데도
세상에 뽀짝거리고 기웃거릴 수가 있을 까요?
거룩한 근심이 떠나지를 않습니다.
고후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후7:11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사무치게 하는가?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전9: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고전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믿음을 떠나 발람의 길을 가는 많은 사람들을
성경은 조심하라고 합니다.
살았다고 하나 실상은 죽은 자들을 잘 보라고 하십니다
사랑이 없는 믿음.
사랑이 없는 능력.
사랑이 없는 천사의 말.
사랑이 없는 구제 봉사.
자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순교까지라도
사랑이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 이런 문제들을 가지고
누가 다그치거나 압박을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목사인 저도 그런 식으로 교인들을 압박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될 일도 아니다.
그러나......천국 가는 길을 누가 가니까 가고
아무도 안가면 나도 안 갈 것입니까?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천국가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이미 천국에 가 있는 것처럼 천국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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