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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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3-07-25 10:10 조회89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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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요10:14-15 찬송가 569장
요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요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예수님의 하시는 일의 기준은 아버지와의 관계
㉠. 자신의 말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아버지 말씀
㉡. 자신이 하시는 일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
㉢. 자신이 사랑하시는 것도
아버지께 아들을 사랑하시는 것 같이 죄인들을 사랑.
㉣. 선한 목자로 양을 아시고 양을 돌보시는 것도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 목자와 양이 하나가 되는 일도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 인 것 같이
아버지가 아들 안에 아들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와 아들이 사랑으로 하나 인 것 같이
㉥. 아들이 죽기까지 아버지께 순종하신 것처럼.....
양들을 위해서도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사랑하신다.
➜. 긍극적으로 죄인들을 삼위일체 하나님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셔서
삼의일체 하나님하고 하나가 되게 하신다.
우리들끼리의 이야기가 아니다. 천국을 삼위일체 나라.
영생도 삼위일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영생.
Dr Herbert A. Codington.
『거지대장 닥터 카딩턴』 - 일독을 권합니다.
6살 막내 아들 필립이 양림동에 뭍혀 있다. 그 아이의 묘비....
PHILIP T. CODINGTON
Aug. 13, 1960 ~ Aug.9, 1967.
I AM THE GOOD SHEPHERD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아버지는 무등산에 검은 돌을 하나 주어와서
그 돌에 왜 이 말씀을 새겨주었을까...........
육신의 아버지인 자신보다
아이의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 아들을 더 잘 아시고
아들을 더 잘 돌보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들을 선한 목자되신 주님께 맡기는......그 심정
아들을 잃은 젊은 아빠를 위로하려는 주의 사람들에게
걱정하지 마시라고...................
㉮.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더 잘....알고 더 잘 돌보신다.
우리가 그분을 믿을 수가 없다면
우리는 몹시 심한 격정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필립을 예수님께 보내고 있습니다.
『예 우리 아이 하늘나라 갔습니다. 저는 제일을 해야지요』..
그리고 병원으로 향하는 분
➜. 조의금 – 갱생원 아이들 옷 사 입혔다.
닥터 카딩턴은 미국서 의과 대학교를 나오고
아버지의 병원을 물려받기로 되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편한 길이 아닌 선교사로 그리스도의 삶으로 걸어가게 된다.
인턴할 때에 그에게 말씀이 들려왔다.
약 4:7 -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이 말씀이 들어온 후 카딩턴은 내가 나 혼자 잘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교사가 되어야겠다.라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 남장로교의 파송을 받고 1949년에 한국에 들어온다.
그렇게 1949년~1974년 25년간 한국에서 결핵 환자들을 치료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그가 지나다니며 얼마나 많은 거지들이 따라다녔는지
그의 별명을 거지대장으로도 불릴 정도라고 한다.
그럼에도 카딩턴은 아끼지 않고
시골에서 올라온 환자들의 행색이 남루하면 자신의 옷을 벗어 주었다.
이런 사정을 뻔히 아는 한국인 직원들이 이를 지적하였는데,
카딩턴은 “그래도 그들 가운데는 진짜로 어려운 사람도 있다”고 말하며
무료 진찰과 전도를 멈추지 않았다.
㉯. 99명에게 속아도 1명이라도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해야지요....
그렇게 1974년 한국의 경제가 안정되고 결핵 환자가 거의 사라지자
더 열악한 방글라데시로 가게된다.
이때 카딩턴을 붙잡는 이가 많았는데
그가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저는 한국 올 때 한국을 사랑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가라고 해서 왔습니다. 이제 방글라데시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순종해야지요’라고 하시곤
방글라데시에서 25년 더 사역하시고 80살에 은퇴하시게 된다.
그렇게 그의 헌신과 나눔으로 한국과 방글라데시에서 결핵퇴치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고 카딩턴은 아직까지 ‘결핵의 아버지’라 기억되고 있다.
㉰. 자신이 무슨 특별한 사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하지 않고
주님 명령에 순종하는 것뿐.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하라시면 하고. 하지 마라고 하시면 멈추고.....
내려가라면 내려가고 올라가라면 올라가고.....................
사람들의 평가. 자리매김 같은 것은 관심 없다....
양은 목자를 따라가는 일에 생명이 있다.
앞선 선교사 서서평 선교사 ...성공이 아니라 섬김입니다.
이분이 일하실 때에는
마침 광주. 화순에 이세종. 이현필 선생. 최흥종목사 이런분들과 함께
결핵. 나환자들 치료해주고 거지들 돌봐준고....
당시에는 석션 기계가 없었다.
입으로 빨대 비슷한 것을 만들어서 결핵환자들 돌보셨던 이야기
그분들에게 치료도 받고 폐가 1/4
그래도 살아서 원목실에서 일하셨던 장로님 편입하셔서 같이 다니셨다.
한 번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각혈병이 있는지 피투성이에 입과 코에는 위에서 나온 토사물과
쏟아 낸 피로 꽉 차 숨을 못 쉬고, 얼굴은 창백한 폐결핵 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를 본 카딩턴은 급히 다가가
환자의 입을 벌려 피와 토사물을 맨손으로 긁어냈다.
환자가 무의식으로 물면 의사의 손이 잘려 나갈 수도 있는데도 불구하고
카딩턴은 기도를 막고 있는 핏덩이가 빠지지 않자
거침없이 환자의 입에 자기 입을 대고 빨아내기 시작했다.
굳은 핏덩이가 빠져나오자 그는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그의 동작은 망설임이 없었다. 물 흐르듯, 노련하게,
응급환자를 대하는 의사로서 처치를 완벽했다.
그렇게 환자는 거친 숨을 쉬며 살아났다.”
㉱. 선교사는 그 어느 곳에도 자기 이름을 남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는 의사로서 선교를 한 것이 아니라
선교사로서 의사 일을 한 것이다
선교편지 이외에는 자신을 위한 어떤 기록도, 재산도, 기념물도,
단체도 남기지 않은 그는
의료나 구제를 선교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에게 나눠 주었을 뿐이다.
✎. 조선을 섬긴 행복.
바보야.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야!..... 서서평 선교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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