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

삼위일체 = 사랑의 집으로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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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2-04-06 09:06 조회1,950회 댓글0건
설교자 : 김 준봉 목사
설교본문 : 요한일서 4:7-11
설교일자 : 2022. 04. 06.

본문

 

      삼위일체 = 사랑의 집으로 초대

                                                                      요한 일서 4:7-11 찬송가 8장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삼위일체 이콘을 묵상하며

      . 삼위일체 하나님은 일신론이나 삼신론이 아니다. 

         여호와 삼위일체 하나님이 정확한 표현이다.

     ㉯. 구속의 신비........+  삼위일체 사랑의 신비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1410년 완성 성 세르게이 삼위일체 수도원.

창세기 18장에 나온 세 명의 손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찾아온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은 이 작품은 그 배경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 나무를 통해 

그 소재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상징하는 세 인물이 

뚜렷이 구별되는 개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정작 그 얼굴은 매우 닮게 그려져 있다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본체로서는 한 분이시나,

 ‘위격으로는 세 분이신 하나님이라 고백하는 삼위일체의 고백

세 분은 제대를 가운데 두고 앉아 계십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 있습니다.

이는 성체성사를 상징하며 세 분 가운데 중심에서 

신성과 인성을 상징하는 두 손가락과 

그 방향이 그 잔을 향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여기서 성도들이 삼위일체를 묵상한다는 것은

사랑의 성체 성사에 대한 깊은 인식으로 인도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이 성화가 삼위일체의 신비를 묵상하는 것은 

                     곧 사랑의 신비 대한 고백입니다.

. 세 천사들이 이삭의 탄생을 알리듯이 

      삼위 하나님은 성자의 희생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중심 

.색상과 지팡이

왼쪽이 성부이고 가운데가 성자오른쪽이 성령이다.

그런데 세 분의 옷에서 청색 푸른 색이 공통적으로 눈에 띤다.

이 푸른색은 하늘나라을 상징하는 색으로 

세 분 모두 하나의 하나님으로서 신성을 나타내며

각기 들고 있는 지팡이- 역시 한 분이시며 

같은 권한을 가진 하나님이심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의 옷에서 보면 붉은색을 공통적으로 또한 볼 수 있다.

이는 고대로부터 황제를 나타내는 황제의 색깔로서 왕권을 상징하고 있다.

성령은 녹색 겉 옷을 입고 있는데 이는 생명과 희망을 나타내주고 있다.

상징들

성부는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고향으로서 성부 위에는 성문.집을 묘사했고,

성자의 뒤에는 아브라함의 집 앞에 서있던 상수리나무십자가. 생명나무

성령 뒤에는 바위가 늘 묘사되는데 이 바위는 성령은 우리 신앙의 굳건한 토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무릎 선을 연결해보면 하나의 커다란 잔의 형상...

그림의 식탁 위에는 그릇 잔의 모양에 담겨진 피와 살의 희생 제물

성부께서는 손을 들어 축복하시는 모습

그림을 계속해서 가만히 묵상해 보면 세 분은 고요히 앉아 계시되

서로가 서로에게 향하는 사랑의 움직임이 감돌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이 거룩한 그림을 통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의 상호내주의 신비 속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는 루블료프가 깊이 묵상한 인간을 위로하시는 삼위일체 신비의 핵심입니다

이 성화에 흐르는 고요하면서도 따뜻한 색과 정조는 우리를 매혹하고

상호내주의 신비시간을 잊고 잠기게 합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성화들은 유난히 온화하고 따뜻한 분위기로 유명합니다.

수줍고 조용한 성격의 수도승이라고 소개하며 루블료프의 스승이었던

테오판 그렉은 강고하고 금욕주의적...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기 보다는

자비를 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으며 더할 나위 없이 섬세하고 부드럽다

수도사로서 성덕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체로 1360년에 태어나서 1430년까지 살았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정치적으로는 타타르족= 몽골족의 지배하에 있던 러시아가 

조금씩 독립의 가능성을 보였던 시기였는데

백성들에게는 수많은 전란과 약탈로 가득했던 가혹한 폭력과 죽임의 시기였습니다. 

안드레이 루블료프의 평화로운 이콘들은 그러한 시기에 하나님께 희망을 두며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려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미천한 인간들의 어리석은 욕망을 질타하는 대신에 인간을 감싸 안음으로써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던 예술을 인간을 축복하는 예술로 변화시켰다.

그 최고의 완성작으로 삼위일체를 꼽는다.

그 특징이 이 그림에 가장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서로를 더없이 사랑하시며, 서로를 초대하십니다.

삼위일체를 묵상하는 소재로서 아브라함이 

낯선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들을 환대하고 

마음에서부터 극진히 대접한 장면을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 온화한 사랑의 신비는 그림을 부드럽게 채우고 

그 그림을 바라보는 이들의 영혼까지 어루만져 줍니다.

헨리 나웬....

우리도 세 거룩한 천사가 나누고 있는 친밀한 대화에 동참하라고,

그리고 식탁에 더불어 앉으라고 부드럽게 초대하는 느낌이 들게 합니다.

성자에게 몸을 기울이신 성부의 움직임과 

성부께로 몸을 기울이신 성자와 성령 두 분의 움직임은

하나의 움직임을 이루게 되고, 

기도하는 사람은 그 안에서 마음이 드높여지고 든든해진다

그림의 제목을사랑의 집으로의 초대 라고 지었는데 적절한 표현이다.

결국 우리가 이 그림을 묵상하고 깨닫게 되는 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향함으로써 두려움과 폭력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사랑의 집 안에 살게 되리라는 믿음과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 삼위일체 = 사랑의 집으로 

      세상의 어떤 권세도 해체시킬 수 없는 모임. 그 관계.

     둥글게 앉은 저 사랑의 모임 안으로 우리를 초대하신다....- 요17:21-23

84: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84: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84: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84: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90: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90: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성막. 성전. 지;성소...그리로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다.

 

삼위일체이콘의 성경 배경은 마므레 참나무 곁에서

사라가 세 천사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세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생길 것이라고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신비는 

세 천사를 대접한 사라와 아브라함의 친절이 이루어지고

 연로한 부부에게 잉태를 알리는 하나님의 친절에서 비롯된 환대의 신비이다.

. 영원한 생명의 씨를 주시겠다는 약속.

     이 씨하나로 하늘의 별같이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창조되는 것이다

      ...그 모형 예표

. 마므레 상수리 나무는 생명의 나무가 되고,

. 아브라함의 집은 우리와 함께 머무시는 하나님의 거처.

      아브라함과 사라는 물로 발을 씻어드리고 고우가루와 송아리로 대접합니다

     ...희생제물의 의미

성자는 두 손가락으로 가운데 살과 피를 담은

           희생 양의 생명양식 그릇을 가리키고 있다

        두개의 손가랃으로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희생양이 되심을 암시한다.

성부는 축복하시는 손짓으로 성자를 격려하고

        이렇게 성삼위의 친밀한 사랑의 신비가 보이는 가운데

성령은 제대 앞에 있는 열린 사각형의 유골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제대 밑에다 순교자들의 유골함을 넣었다고 합니다...

       제단 아래 피흘린 순교자들의 부르짖는 기도....계시록 6:9-10

6:9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6: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그 자리는 우리가 거룩한 모임에 들어가는 입구인데, 그 길은 고통의 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쳐 거룩한 희생에 동참하고자 하는 이들만이 

이 거룩한 식탁에 앉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고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기억하여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면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요한 15,20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

                                                                          롬 8:17 - 18 

. 즐거운 슬픔 No cross no crown. 

     그래도 이 길만이 하나님께 가는 유일한 길이다.

     기꺼이 즐거움으로 그 고난과 죽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1. 사랑으로 하나가 되시는 분위기...

     그 관계. 그 하나됨을 집...사랑의 집으로 초대........

    사랑은 여기 있나니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2. 생명의 양식 그릇......희생제물......

    성령께서 가리키는 순교자들의 피흘림

3. 삼위일체 그림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주는 그림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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