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신앙의 3가지 역설과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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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2-01-24 02:07 조회2,02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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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신앙의 3가지 역설과 신비
요한복음 1:1-5 찬송가 502장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 물리적인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람들 세계로 들어오면 현실이고 실제로 그렇다.
ⓐ. 기독교 신앙은 누구나 다 알아볼 수가 있는 상식과 윤리도덕이 아니다.
그것도 못되는 비상식적인 것이 되면 미신이 되고
그 이상의 놀라운 신비입니다.
ⓑ. 동굴 밖에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늘이라는 단어는 그냥 동굴 천장입니다.
그림자를 보고 그림자인 줄을 모르고 실재로 착각하게 됩니다.
동굴 밖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를 압니다.
최소한 세가지 정도는 그 비밀을 알아야.....
어둠에 비추인 그 빛을 알아본 것이라고 말 할수가 있을 것입니다.
➀. 왕.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이 없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왕은 ?
저마다 자기 머리에 왕관을 쓰는 꿈을 꾸고 살아가는데......
왕이 둘은 있을 수가 없다.
일월 오봉도를 배경으로 용상에 앉아서 여봐라~ 해야지 御命어명이다......
무슨 왕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냐고.....진짜 왕이 되는 길은?....십자가?
그것은 무슨 수단 방법이 아니다. 존재 양식입니다. 존재의미. 존재 목적.
빛이 어둠이 아니고 빛이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왜 진짜로 하나님. 왕. 생명. 빛. 그리스도 이신가?
그 진실.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땅에 있는 왕의 백성들입니다.
세상의 왕은 그렇게도 잘 아는데....................
기독교인들이 자기들의 왕. 주님. 하나님이라고 믿는 그분이
어떻게 그렇게도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시냐고...............
도대체 그 분의 죽음이 무엇인지 관심이라도 있냐고....
예루살렘 여자들처럼 질질짜는 그런 감성적인 접근말고.....
십자가는 그런 감성팔이가 아니다.
설교가 그런 감성팔이로 연명한다는 것은 정말 초라한 일..
정말 두렵고 떨리는 진실을 알아가려는 진리에 목마름이 필요합니다.....
➁. 양식...............
예수님이 생명 양식? 하늘의 생명 양식
돈이나 금덩어리 진주보석. 쌀이나 밀가루....이런 양식말고.....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라고.......
날마다 그 생명의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주님의 기도
날마다 그 생명양식으로 살아야 하는데....QT? 성경읽기? 성경 필사.....
그러나 그 이상을 말하는 것....그게 무슨 말일까?
이 비밀이 크도다.................................................................. 엡5:31-32
요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요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➂. 승리. 성공......
군대. 힘. 무기....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면서 무슨 승리? 무슨 성공?
정치적인 사람들 상업적인 사람들....식민지를 통해서 돈 벌려는 돈벌레들
노예 무역? 사람잡아다가 팔아먹는 장사...그것을 합법화 해주고
그 때나 지금이나 개발 업자들은 손만 대면 다 돈이 되는
식민지 개발 사업.....황금 덩어리
그 이권 따내려는 파리떼들이 그 당시에도........
강도 .도둑. 살인자들.....천사들로 둔갑한 마귀들.
이런 사람들과 선교사들이 부딪힐 때에 누가 살아남는가?.....
선교사들 다 죽어나갑니다.
한 사제가 십자가에 묶여서 이과수 폭포에 떠내려가
떨어져 죽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교횡청과 예수회 신부들....
교황청은 자기들의 이익에 반하는데도 예수회 신부들의 선교를 지원?
➜. 승리? 성공?...
선교사들 건강도 다 못챙기고 풍토병이나 질병으로 죽어나갑니다.
이들이 칼과 총으로 군대로 맞서싸우는가요.
아니면 돈으로 선교를 하는가요? 선교가 사업?
문화. 스포츠. 정치 학문 심지어 목회마저도 성공의 수단이 되어버린 현실....
돈이 안되면 이해관계가 없으면...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세상 인심인데......
㉮. 친구 사제의 주검을 보고도 사지를 향하는 가브리엘 신부
영화가 시작되면 거대한 폭포의 상류로부터
한명의 사제가 십자가에 묶인채 떠내려 오다가
이윽고 깊은 폭포 속으로 사라지는 순교장면이 나옵니다.
이 주검을 보았으면서도 가브리엘 신부는
호전적인 과라니족 원주민들의 선교를 위해 본인이 직접 나설것을 다짐하며
험준 계곡을 넘어 원주민 지역에 들어갑니다..........
과라니족 원주민들이 살해하고 납치해서 사냥한 원주민을
다른 상인에게 팔아 넘기는 로드리고
이 사람이 다음에 회개하고 예수회 신부로 가브리엘 신부와 동역하게 됩니다
이렇게 극단적 반전을 이룬 로드리고는
예전에는 한낱 돈벌이에 지나지 않은 원주민에게서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서로 융화하며 신부로서의 삶을 일궈 갈 무렵
스페인과 포루투칼 사이의 영토교환 조약으로 그가 사랑했던 원주민들이
쫓겨나거나 모두가 노예의 삶을 살아야 할 처지에 놓이게됩니다.
이에 가브리엘 신부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원주민의 영혼 구원을 위해 무력 저항이 아닌 기도와 무저항으로 맞섰고
반면 로드리고는 현실 가운데 원주민의 자유와 믿음을 지켜내기 위해
원주민 꼬마가 전해 준 예전에 내려 놓은
칼과 총을 다시 잡으며 저항하게 됩니다.
무장한 로드리고는 전장에 나서기 전
친구, 가브리엘에게 축복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 신부님! 축복을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아니오. 만약 그대가 옳다면 신의 축복은 필요없을 것이오.
그리고 만약 틀렸다면 나의 축복은 소용이 없소.
만약 무력이 옳은 것이라면
이 세상에 사랑이 설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난 이 세상에서 살아갈 기력을 얻지 못할 것이오. 로드리고,
나는 당신에게 축복을 해줄 수 없소........
예수님은 이미 무엇이 복과 생명이고
무엇이 저주와 죽음인지 다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들도 성도님들도
목자이신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그대로 그 길로 걸어가시면 됩니다.
교황청으로부터 공격 개시 전,
예수회 신부들을 설득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주교는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표면적으로는 신부 몇몇과 과라니족의 멸종으로 끝났습니다만
죽은 것은 저 자신이고 저들은 영원히 살아남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말입니다."
살아남은 과라니족 아이들이 줄 끊어진 바이올린을 들고
비열하고 위선적인 문명을 등 뒤로 한채 더 깊은 정글 속으로 숨어 들며
다음과 같은 자막과 함께 영화는 끝이 납니다.
빛이 어둠을 비춰도, 어둠이 이를 깨닫지 못하더라
㉠. 어둠에 비추인 빛을 알아보고 계십니까?
㉡. 빛의 자녀로? 어둠의 자식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들의 목자요 주님이시고 왕이시고 하나님이신 분이
어떻게 사시다가 어떻게 죽으셨는지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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