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장사를 하는 인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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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1-11-02 09:14 조회2,12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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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는 장사를 하는 인생은....
누가복음 19:3 찬송가 461장
➀. 헤롯 아켈라오의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고 있다.
비유가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보아야 한다
➁. 부재와 존재의 차이.
숨겨져있는 것과 다 드러나 있는 것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고후5:6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고후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고후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➂ . 하나님이 무슨 이익이 필요하신 분? 천국에 무슨 돈이 필요한가?
천국에 금은보화? 천국에 부귀영화? 천국에 성공? 천국에 자기 성취감?
돈이 없으면 교회도 못다녀? 돈이 없으면 천국도 못가?
자본주의. 돈. 이해관계에 사람들의 생각이나 의식이
얼마나 무섭게 달라붙어있는지....천국은 회사나 기업이 아니다.
하나님은 회장님이나 사장님이 아니다. 탕자의 아버지 하나님!
이 분이 우리들의 왕이시고 주님이시고 신랑되신 분이시다.
십자가에 다려 죽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우리들의 신랑되신 분이시다.
➃. 므나 달란트는 우리들 인생입니다.
장사를 한다는 것은 왕의 백성. 주인의 종.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 가운데 들어와 있는 하나님 백성들이
왕의 不在부재와 왕의 나라의 隱匿 은익속에서
깨어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어떤 것이 주인에게 칭찬 받는 남는 장사를 하는 인생일까요?
달란트와 므나의 비유에서 달란트와 므나는
주님의 부재 속에서 주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는
주님과 백성들 간의 연결 끈. 접촉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연결 끈.접촉점은 다름 아닌 주인의 명령 즉 말씀.....언약입니다.
우리의 왕은 우리에게 다시 오신다는 말씀 하나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주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성도들은 바로 그 주님이 남기고 가신 주님의 말씀과 언약을 붙들고
그 분이 다시 오셔서 영원한 나라의 왕 노릇 하실 그날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
바로 그러한 성도의 삶이 투영되어 담겨져 있는 것이
주인이 남긴 것을 가지고 주인의 말에 순종하고 있는 종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종들이 얼마의 이윤을 남겼다는 결과에 집착하지 마세요.
그들이 얼마를 남긴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
이 땅의 인간들은 그런 등급매기기에 너무도 익숙합니다. 계급장 놀이
그보다는 그들이 주인의 말을 듣고 장사를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정직함과 진실. 성실함으로.....
➜.눅19:13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마25: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마25: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장사라는 것은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이윤을 남길 수도 있는 그러한 것입니다.
어떤 장사가 이윤을 남기고, 어떤 장사가 손해를 본다는 것을
미루어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종들이 겁도 없이 주인의 돈으로 장사를 하고 있단 말입니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충성된 종은 주인의 인격을 믿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만이 손해를 감수한 자유로운 장사를 할 수 있습니다.
주인을 믿는다는 것은
주인이 시킨 장사를 통해 자신이 이윤을 남기든 남기지 못하든,
주인이 자신의 충성을 인정해 줄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이 이윤을 남기면 주인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 질 것이며,
자신이 장사를 해서 손해를 보면 주인과의 관계가 서먹해 질 것이라는
그런 우려가 없습니다.......
두려움. 우려. 눈치. 비위를 보고............ 이런 관계가 구원받은 영생?
그런 우려 속에서 힘겹게 주인의 비위를 맞추려 하는 것이 율법주의입니다.
➜. 탕자. 고멜을 생각
주인은 그들이 남긴 이윤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인의 말에 어떻게 충성했는가를 귀하게 여깁니다.
심지어 졸아도, 잠이 들어도, 주인은 그들을 나무라지 않으신단 말입니다.
주인에게 중요한 것은
그 종들이 주인의 말씀을 붙들고 있느냐 아니냐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두 달란트를 남긴 종이
동일한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분명한 예가 포도원 품꾼의 비유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품꾼들은 제 삼시에 왔건 제 육시에 왔건, 십일 시에 왔건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그들이 일한 양이나 성과에 따라 차별된 상을 받지 않는단 말입니다.
동일한 품삯을 받습니다. 그 품삯은 노동의 댓가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충성된 종들에게는
1등 종과 2등 종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뭘 많이 하면, 1 등 종이 되어서 상급을 많이 받고,
조금 덜 하면, 2 등 종이 되어서 상급을 덜 받게 될 것이라는
조바심이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행위의 경쟁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자신이 손해를 보던 이윤을 남기던 모든 소유와 노동가치 또한
주인의 것으로 환언이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윤에 욕심을 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충성된 종들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 은혜를 은혜로 안다는 말이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그렇게 그 종들의 개인적 성취 정도는
주인의 칭찬에 아무런 근거로 작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주인의 긍휼과 은혜를 알지 못하는,
다른 말로 주인을 믿지 못하는 종은 어떻겠습니까?
함부로 장사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주인의 긍휼과 은혜를 믿지 않기 때문에,
손해는 바로 주인의 꾸중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이해관이지 신뢰와 사랑✘
그게 바로 율법주의이며 인본주의인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 주인의 말을 이행할 수가 없습니다.
장사, 손해를 봐도, 이윤을 내도 괜찮은, 주인의 그 넓은 은혜의 품속에 들어있는,
그 자유의 복음을 그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절대 손해는 보지 말아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자신의 지혜를 사용하여 주인의 뜻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달란트와 므나를 수건에 싸서 땅에 묻어둔 종의 모습인 것입니다.
주인이 장사를 하라고 했으면
주인의 인격을 믿고 손해를 보던 이윤을 남기던 장사를 해야 하는데,
주인에게 손해를 입히면 자신에게 돌아 올 상급이 적어질까봐,
혹시 버림을 당할까봐,
자신의 힘과 지혜를 사용하여 다른 방법을 강구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게 바리새인들의 율법 지킴이었습니다......
➄. 악하고 게으른 종들을 보세요
철밥통 직장에서......伏地不動 복지부동......사랑. 충성✘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몸을 사림을 비유하는 말
눅19:11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
눅19:12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눅19:13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 맡기고 간 사실 자체가 신뢰와 사랑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교회들
㉡. 부활과 승천하시고 그리고 다시 오시는 것을 염두에 두시고 하신 말씀
눅19:20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눅19:21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눅19:22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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