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재판과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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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1-07-06 10:35 조회2,48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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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의 재판과 예수 그리스도
왕상3:16-28 303장
✎.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에대한 그림책........
위인전 영웅전✘ 솔로몬의 지혜를 구하자?✘
자고 일어나 보니 아이가 바뀌었습니다. 한 아이는 죽었습니다.
죽은 아이의 엄마가 살아있는 아이로 바꿔치기.......
살아있는 아이의 진짜 엄마가 알아챘습니다. 문제는
살아있는 아이의 진짜 엄마가 자기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지혜를 발휘하여 진짜 어머니를 찾아 줍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재미있습니다.
그 아이를 반으로 잘라서 반씩 나누어 가지라는 것입니다.
평강의 왕인 솔로몬의 지혜가
자식을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으셨던 십자가.
예수님이기도 하고 우리들이기도 합니다.
두 엄마는 하나는 율법이고 하나는 긍휼 은혜입니다....
정말로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엄마는 자궁 긍휼. 생명싸개....
두 엄마가 다 아무런 반응을 안했다면 그 아이는 그 자리에서 죽을 판입니다.
가짜 엄마는 그 아기를 자르라고 합니다.
금방 그 아이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며 아이의 소유권을 주장했던
가짜 엄마가 사실은 아이를 죽이는 자였음이 폭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 가짜 엄마의 이름이 바로 율법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를 구원할 것처럼 너스레를 떱니다.
우리들의 자존심을 챙겨주고....... .훌륭한 위인 성인. 군자
우리들이 얼마나 반듯하고 선하고 대단한 존재라고
열심을 부추기고 선동합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들은
자신이 그 율법의 요구를 온전하게 감당할 수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율법.계명..양심 운리. 도덕....
내가 누구 무엇? 어디서 왔어? 어디로 가는 거야? 몰라. 부모 없는 자식.
그러나 우리가 율법을 감당하지 못하고 우리 자신의 처음 자리,
어머니의 자궁의 자리, 핏덩이의 자리, 무력함의 자리,
어머니의 탯줄이 끊기면 그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죽은 흙의 자리로
내던져 질 때 율법은 가차 없이 우리를 죽이려 대듭니다.
그게 율법의 참소이며 고발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주 자주 우리 성도들을
죄의 자리, 불의의 자리로 몰아붙이시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그토록 의지하던 율법이 우리를 어떻게 정죄하는지 경험하라는 것입니다.
율법 = 우리의 가능성과 행위는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갑니다.......
불순종. 거역. 죄의 열매 이름이 왜 선악과 나무이지요?
✎.엡2:3-8
엡2:3 전에는 우리도 다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엡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진짜 엄마는 자기가 그 아기를 포기하겠으니 그 아기를 죽이지 말라고 선처를 구합니다.
자식이 그가 온 원래의 자리. 없음의 자리.
긍휼 = 자궁의 자리. 즉 죽음의 자리로 내 몰리면
진짜 그의 부모가 누구인지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피조물의 원래의 자리를 드러내십니다.
그들을 그들의 원래의 자리인 출산의 자리, 아니 그 이전의 자리,
자궁 속의 자리, 무력하고 불가능한 죽은 자의 자리,
어머니로부터의 생명선이 끊기면 무력한 고깃덩이 일 수밖에 없는
그 자리로 자꾸 내 몰아 가십니다.
그 자리는 약한 자리이며 때로는 불가능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 약함의 자리, 불가능의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영광이 임하여
오직 그 하나님의 능력만이 오롯하게 돋을새김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속에 들어있는 이들을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이 역사 속에 던져 넣으신 이유를
곡해 하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우발적 범죄에 의해 당신의 계획과 뜻을 급히 바꾸시는
그런 나약한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자들이
과연 어떤 열매와 결과를 생산해 내는 지를
당신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죽은 흙에 불과했던 당신의 자녀들이
어떠한 능력과 사랑과 은혜와 긍휼로 그렇게 하늘의 왕자들이 되었는지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시고자 당신의 백성들을 이 땅에 내려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수시로 그들의 원래의 자리, 자궁의 자리, 죽음의 자리,
핏덩이의 자리, 세상과의 간음의 자리로 내려가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과 은혜를 배우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딱 두 종류로 갈라집니다.
마귀의 자식과 하나님의 자식입니다. 알곡과 가라지
하나님의 편애에 의해 어떤 무리는 날 때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정해지게 되는 것이고,
어떤 무리는 그 편애에 의해 저주받을 마귀의 자식으로 태어납니다.
야곱과 에서가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야곱을 편애하셨습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의 마음에는
이삭에 대한 편애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불공평한 분이십니다.
함부로 하나님의 불공평에 대해 논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인간과 같은 라인에 올려놓고 시비를 가리려고?
하나님의 뜻이 곧 공평이며 하나님의 뜻이 곧 선입니다. 하나님 계시면 선 없으면 악.
그러한 하나님의 편애를 하나님의 작정과 계획으로 보고
그것을 예정. 선택이라 하는 것입니다...
피조물 인간들에게 판단받으시는 분이 하나님?
불행한 것은 가라지들은 끝까지 지성과 양심을 붙들고 죽습니다....
심지어 바리새인들처럼 종교적 열심으로 포장합니다.
다행히도 알곡들은 하나님의 긍휼 은혜만을 의지하고 세리의 기도를 드립니다.
거지 나사로. 세리의 기도
하나님의 긍휼 은혜만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지성과 양심을 버리는가?....
은혜 안에서 진짜 지성과 양심
➀.하나님 아버지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인식할 수도 없다
➁. 자기들의 아버지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알게 될 때
그들이 어디로 숨는지 아십니까?
도덕과 윤리, 착한 행실, 율법 뒤로 숨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우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죽은 흙의 자리..없음 아무 것도 아님의 자리로 내 몰리게 되면
그들은 즉시 자신들의 부모가 하나님 아버지가 아님을 발각 당하게 됩니다.
➜. 허무주의. 냉소주의. 불가지론...
자기들도 무생물에서 우연히 생긴 아무 의미도 목적도 없는 자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러한 죽음의 자리, 죽은 흙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성숙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감지 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귀의 자녀들은 율법에 의해 끊임없이 참소 당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절망하고,
자신들을 그렇게 연약한 자리로 내몰아버린,
자신들이 거짓으로 세워놓은 아버지를 원망합니다......
✎. 만들어진 신. 세상의 초등학문. 철학과 종교....
도? 자연? 포괄자? 심연?. 깊이? 궁극적인 존재?.....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정체를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율법과 도덕과 윤리와 공로와 행위 뒤로 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역설적으로 착합니다. 착해 보입니다. 반드시 착해 보여야 합니다.
그게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 너희의 아비는 마귀라고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셨는데도
그들은 너무나 착했습니다. 진짜들보다 더 진짜 같아 보입니다....
혼란스러워하지 마세요.
우리 모든 성도들의 원래의 자리가 어디입니까?
그냥 흙입니다. 피조물의 자리입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변함없는 죽은 흙의 삶을 삽니다.
우리가 죽은 흙의 삶을 내어 놓았을 때 율법이 우리를 어떻게 취급합니까?
고소를 합니다. ‘네가 그러고도 그리스도인이냐?
네가 그러고도 장로냐? 네가 그러고도 목사냐?’
율법은 우리를 고소합니다.
그러나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신 우리 아버지는
그 율법의 참소를 묵살해 버리십니다.
이미 당신의 아들 안에서 그 모든 참소를 다 해결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긍휼과 은혜로 우리를 덮어서 살려 내시는 것입니다.
그게 진짜 우리 아버지입니다.
아비와 어미가 아들을 빼앗긴다는 것은 곧 그 자신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진짜 아비는 아들을 살려내기 위해,
솔로몬의 재판에 나오는 진짜 어미처럼 당신 자신이 손해를 보시는 것입니다.
손해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의 쪼갠 제물 사이로 홀로 지나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번제물이 되신다.
목을 따고, 네 다리를 따고, 가운데를 갈라버린 그 번제물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만을 의지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편애에서 제외된 자들은
끝까지 자신들의 행위와 율법을 의지합니다.
도무지 아버지의 은혜로 다가서지 않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수없이 많이 쓰인 하나님의 긍휼.히브리어로 라함 = 자궁
자궁 속에서의 태아는 어머니의 생명선으로만 존재가 가능합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자궁 속의 핏덩이들이었고, 죽은 흙이었는데
하나님의 자궁에서 긍휼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게 하나님 절대 의존적 존재의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자궁으로부터 긍휼로 잉태된 자들인 것이고
평생을 그 모습으로 살게 되는 것이며, 영원을 그렇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나는 없고
진짜 나인 하나님 여호와만 계시는 곳이 하나님나라. 영생
하나님의 진짜 아들이신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죄인의 자리 죽음의 자리로 내몰리셔도
오직 아버지만 믿고 의지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양자된 우리들도 그 모습으로 거듭나고 닮아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는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수시로
죄인 된 자신의 모습을 폭로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켜 착하고 훌륭하게 살아내어 아버지 앞에서 떳떳한 자가 되는 것이
성도의 성화가 아니라, 계속 죽은 흙의 삶을 토해내면서
우리의 불의를 폭로 당하는 가운데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을 경험하며 드러내는 것이 성도의 성화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진정한 항복과 충성과 순종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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