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도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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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도덕성?
갈라디아서 5:13-14 찬송가 212장
➀. 니체의 군주 도덕과 노예 도덕.........초인사상. 권력의지
무신론자 미치광이의 허튼 소리정도로
치부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초기에는 도덕의 근원을 자기 만족이나 쾌감의 추구에서 찾았다
후기에는 도덕의 근원을 완전히 힘의 관계로 해석
따라서 좋은 = 선한 것은 무엇인가? ......힘의 느낌, 힘에의 의지,
인간 안에서 힘 그 자체를 증대시키는 모든 것.
악한 = 나쁜 것은 무엇인가?...........약함에서 비롯되는 모든 것.
행복이란 무엇인가? 존재감을 느끼는 것.
힘이 증대된다는 느낌, 저항이 극복되었다는 느낌.
이런 힘 관계를 토대로
도덕을 군주 도덕과 노예도덕의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성경의 메시지.....『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선......
스스로 왕이 되고 하나남 같이 되려는 모든 것을 악
니므롯처럼 영웅. 위인 = 사냥꾼 바벨탑을 쌓는 왕....
이 사람의 정신이 곧 악惡
군주 도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발적 긍정에서 성장하고,
자기 스스로 가치를 설정하며,
스스로 선과 악을 결정하는 자의 도덕이다.
주도적이 판단하고 선택하고 명령하고 책임진다
따라서 군주 도덕에서 좋음과 나쁨은
왕다운 고귀함과 노예근성의 경멸적인 것을 의미한다.
반면 노예 도덕은
복수심, 원한감정, 즉 반동적 집단 본능에서 성장한다.
약자의 열등의식. 피해의식에서 생긴다.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반대하고 부정하고 비판과 불만을 쏟아낸다.
못난 열등 인간들의 자의식. 열등의식. 피해의식.....
이런 노예 도덕은 폐기되어야 할 인류의 적.
초인. 초월자로서 권력의지를 가진
강한 자로 발전하고 진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노예도덕에서 선과 악의 대립은
위험하지 않음과 위험함의 대립과 같은 것이다.
동정이나 연민에 대한 권고 등은 노예도덕의 표식이다.
열등의식의 표현일 뿐이다.
그리스도교의 도덕은 유대인의 복수심이 고안해내었던
노예도덕의 지반 위에서 생겼다고 생각
노예도덕은 철두철미 병든 토양에서 자라고
군주 도덕은 건강한 강자의 토양에서 자란다
군주 도덕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세상을 긍정한다.
군주도덕은 자기의 충만함을 사물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리고 세계상을 신성화하고 아름답게 만들며 합리적으로 만든다
그리스도교 도덕은 사물의 가치를 빈곤하게 하고 창백하게 만들고
추하게 만들어버리며 세상을 부정한다.
세상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교적으로는 욕지거리인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긍정과 존경 없이
단지 사고 팔고 먹고 살기위한
시장터 같은 사회적 삶에만 가치를 두는 것도 마찬가지 노예도덕
군주 도덕을 통해서 삶을 자기극복을 통해 만들어가는 강한 의지,
많은 욕구들의 긴장적 대립들을 제어하는 능력, 긍정적 자기 긍정과
자기가치의 느낌을 새로운 선의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선한 인간은 이제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의식 속에서,
자기극복의 덕을 갖고 있는 자가 된다.
이런 인간은 곧 고귀한 인간, 귀족적 인간.
귀족적 가치평가를 할 수 있는 인간이다.
이런 인간이 곧
차라투스트라가 찾던 강한 자이며, 초인적인 존재인 것이다.
진화론 유물론 공산당선언같은 시대의 흐름속에서
기독교의 도덕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도덕성이란 것이
노예 도덕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
자본주의에서 성공신화를 써야하는 무한 경쟁의 세상에서
똑똑한 재능과 머리가 있는 사람들에게
강한 자. 성공한 자 정산에 서는 자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강한 자의 옷을 입혀주는 철학이다.
✎.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새 사람을 입으라....롬13:14. 엡 4:24
모르면 당하는 것이다. 먹이감이 된다.
노예도덕은 군주에게 종속된 노예가 지니는 도덕적 가치관
노예도덕에서의 선이란
노예가 갖추어야 할 겸손, 근면, 순종 등의 덕목을 의미한다.
따라서 노예는 피지배자 계급으로서
겸손하고 근면하며 주인에게 순종하면서도
자신이 주체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창조하지는 못한다.
노예도덕은 열등의식과 피해의식에서 자랐기때문에
강자에 대해 가지는
질투, 원한, 열등감, 시기심 등의 감정을 가리킨다.
결국 노예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이 선함에도 불구하고 지배자가 악하고 교활하기 때문에
지배를 받는 것이라고 합리화하고, 정작 자신의 힘을 길러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마음 속에 증오심만 가득한 것이다.
반면, 군주도덕은
노예를 지배하는 군주가 지니는 도덕적 가치관으로 진취적이고
결단력이 있으며, 모든 것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창조력을 중시한다.
군주의 위대함이란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는 태도이다.
저열함은 눈앞의 이익과 안락에 급급하여
죽음 앞에서 비겁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군주도덕에서는
위대함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이 군주가 되어
저열한 다수를 지배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긴다.....
➜.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도태되어야 한다.
기독교인들 중에서 이런 생각들이 아주 강하게 녹아들어 있다.
괜히 바리새인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의로운 척. 선한 척 경건한 척.....................
➁. 예수님의 도덕성
전지전능하신 창조주께서 구유에 누이신 어린 아이로 오신다.
만왕의 왕. 만유의 주 .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시는 분이
도살장으로 끌려가 죽는 어린 양.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 하나님 도덕성의 맨낯
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이것이 노예근성?
➂. 우리들의 현실
입으로는 예수님처럼 겸손히 섬기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저마다 자기 머리에 왕관을 쓰려고 하는
거짓말쟁이들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는 노예 근성의 도덕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껍데기는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이렇게 무섭게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
니체가 본 당시의 기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예수님처럼 섬기는 종으로서 도덕성을 진짜 왕의 도덕성으로
내면화시키는 일은 간단하고 쉬운일이 아니다.
단순히 윤리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을 제대로 이해했는가의 문제이다
힘이 있고 강하며 능력과 권세있는 왕을 원하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종을 원하는 사람이 정말로 있는가?
당신 자신이 원하시는가?
당신의 자녀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가?
그러나 내 속에서까지 변화되어 있다??????
나 자신을 시험해보자............ 예수님이 있는가?
하나님의 지극히 높고 크고 위대하시고 존엄하심을 찬양?.....
시편 148-150
왜?..............
자연의 높고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것인가?
성도들의 찬양은 자연의 위대함 같은 것이 아니다.....
이교도들도 그 정도는 찬양한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번제할 어린 양으로 죽임을 당하신 일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이다.
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 예수님이 있는 사람들이 성도들이다.
계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계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계시록 5장 ...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
새 노래를 노래하여...
계5: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이러한 십자가의 복음이 보여진면....
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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