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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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1-04-20 09:15 조회2,519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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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신비
㉠. 오컴의 면도날 Ockham's razor
㉡. 이성과 논리에 안 맞는 이야기는 버리고...
㉢. 하나님나라는 감추어져 있는 비밀.신비...이성을 넘어서는 놀라움
✎. 정말 나는 누구일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영원한 미래는 뭐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런 문제들에대해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칠흙같이 캄캄한 어둠속에서 묻는다.
예수님의 신비를 알면 답이 나온다.
➀ 그렇게도 비참하게 죽으신 예수께서 어떻게 부활했느냐?
도살장으로 끌려가시는 양처럼 죽으신 분이...
뭐때문에 그렇게도 비참하게 죽으시고
이제와서는 또 살아나시는가?
죽으시는 것은 뭐고 다시 살으시는 것은 또 뭡니까? 죽음과 부활의 신비.....
부활의 신비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볼 것 같으면
많은 사람이 부활 하신 예수를 만나 보았다고 하는데
만나 보았기에 부활 하신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봤다고하는데도 불구하고 유독히 도마는 아니라고 합니다. "아니에요..."
모두가 다 예수를 만나 보았다 해도 "아니에요.
나는 눈으로 보아서는 못 믿겠습니다.
눈으로는 못 믿겠다. 왜 그것은 환상일 수도 있으니까..."
예수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고 못 자국이 있는 그 손을
내가 만져 보고야 믿겠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믿을 수 있는 얘기입니까?
그렇게 비참하게 죽으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났다니
도대체 이것이 있을 수 있는 얘기입니까?
요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요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그런데 도마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도마가 실제로 손바닥 옆구리에 자기 손을 넣어보았다?
사실은 그 이상의 것을 본 것입니다.
상처 자국이 있고 없고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못으로 찔러서 애벌레를 죽였는데 다시 살아났다.
상처 자국을 확인하면 애벌레는 애벌레가 아닌가?
억천만번을 다시 살아나도 똑같은 애벌레......나비가 아닙니다.
부활은 우리 몸이 예전의 몸으로 다시 살았다는 내용이 아니다.
고전15:40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고전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➁. 이렇게 부활하신 예수를 확실하게 만나 보고 믿게 됐는데 말입니다.
왜 예수님의 제자들이 갈릴리로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까?
그 예수를 버리고.....이 점을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 놀라운, 신비로운 사건이 눈앞에 있는데 특별히 성경 얘기를 보면은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 라." 그러니까
그 다음 사람들 "나도! 나도! 나도! 나 도!...."...요21:2-3
일곱 사람이 따라갑니다. 따라가는 모습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얘기입니까?
예수는 부활하셨습니다. 만나 보았습니다.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물고기 잡으러 갔습니다. 그 점이 납득이 안가요.
➜. 부활 사실을 보았어도
부활이 얼마나 엄청난 우주적 대 드라마의 시작인 것을 모르는 거요
그냥 예수님 부활인거여요
내 부활이요 새 하늘과 새땅 천국의 시작을 보지 못한 겁니다.
"그는 첫 열매. 장자 맏아들. 둘째 아담이 되었다가 바로 그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셨으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지
왜 나의 부활이 되는 것이냐고요?.......
예수님의 부활은 애시당초 죄인들을 위한 것이지
하나님께서 할 일이 없어서 무슨 쇼를 한 것인가요?
➂. 이렇게 물고기 잡으러 갔던 사람들이 말입니다.
옛날 직업으로 돌아갔던 사람들이
다시 생각을 돌려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들고 오순절에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한사람 한 사람이 새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새로운 용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부활의 증인이 됩니다. 부활의 증인이란 순교자를 의미합니다.
부활을 믿고, 부활을 증거하려면
내가 아깝지 않게 포기하고 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음의 선을 훌 쩍 넘어서야 합니다. 그것이 부활의 증인입니다. ...
적어도 당시의 상황이 그렇습니다
순교자만이 진정한 의미에서 부활의 증인입니다.
자, 여기에 신비가 있습니다
부활절이라고 하는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오순절이라고 하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부활절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적 사건이고,
오순절이라고 하는 것은
그 마음속,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주관적인 사건입니다.
그래서 부활절이 없는 오순절은 단순한 신비주의 운동에 불과합니다.
주관적인 것. 오순절 없는 부활주일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성주의에 불과합니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인정하는 지식에 불과합니다.
이것은 객관적인 것입니다.
이성과 신비가 하나로! 합쳐질 때 이것을 부활신앙이라고 합니다.
부활사건과 부활신앙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내 속에서 확실한 부활 신앙으로 부활 될 때
거기에 생명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 ㉠.고전15:35-58...객관적인 부활의 실체
+ ㉡. 갈2:20...........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들 안에 주님으로!.
+ ㉢.. 빌3:11-12......나는 없고 주님만 계시는 영생을 향하여!
빌3:8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3: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➃. 사도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한 사람.
아주 초라하기 그지 없는 부끄러운 사람.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용기를 내는 것입니까?
어떻게 해서 새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 예수님의 공생활, 예수님의 전도생활에 3년 동안 같이 합니다.
모르는 것도 많고, 믿기도 하고, 안 믿기도 하고.....
결정적인 실수도 있고 그러나
거기서 신앙적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것이에요.
그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부활 사실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됐습니다.
직접 예수님을 만났다는 사실이 너무 중요한 것입니다.
다 믿지 못하고 다 알지 못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그 감격 놀라움. 충격 훙분
그 사건은 그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박게 됩니다.
대단히 중요 한 것입니다.
㉢. 성령께서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를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나타난 것인지........
베드로의 편지가 증거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결론이 납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만나면
초점이 생깁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마나고 나면
중심이 잡힙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만나고 나면
나아갈 목표가 뚜렸해집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만나면
사람이 생명을 얻고 살아납니다.
해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처럼.
아론의 마른 막대기에서 새 순이 나는 것처럼....
노아 홍수 속에서도 방주에 들어가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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