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준봉 작성일20-11-07 13:10 조회2,886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내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다
요일 4:10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같이 말 하니라.
인간의 의지나 결심이나 능력을 조금이라도 의지하게 하는 게
바로 마귀 라는 걸 선언해버린 것이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어요.
너희 모두가 날 버릴 거다.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을 다 포함
너희들 다 나를 배반할 거야,
어떤 사람들은 뭐가 특별하게 잘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다른 제자들은 본인들에게
가롯 유다와는 다른 뭐가 있어서 구원 받은 것이 아니다. 똑같다.
다른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로 창세전에 작정하셨다.
그것이 구원의 시작이고 끝.
제가 그것을 어떻게 무슨 수로 다 이해를 합니까? 저도 잘 몰라요.
그러나 아는 것은 나는 절대 불가능.
적어도 제가 아는 영원한 생명.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는 일에
저는 억천만분의 일도 아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무엇을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왜? I am Nothing.
인간의 절대불가능과 하나니믜 은혜
전적인 타락. 무조건적인 선택. 불가항력적인 은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죽는다고 하시니까 격렬하게 막아서면서
‘절대로 죽으시면 안됩니다, 제가 목숨을 걸고라도 주님을 지키겠습니다’ 고
했던 베드로에게 이 사탄아, 마귀야 하셨던 예수님
그런 인간 보편의 의지나 결심이나 능력 전체를
한방에 부정해버리시는 예수님을 보셔야 합니다.
우리는 골고다에 세워진 십자가로 생명을 얻어 살게 되는 거지
우리의 의지나 결심이나 능력으로 예수님 편에 서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기 주제를 모르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의지를 발동하여 목숨까지 희생하는 것이
무슨 큰 희생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nonsense
➜. 목사님들에게 베드로 같은 그런 권사님 장로님 계시면.........
상식과 예의를 생각해서라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되는데......
그런 척이라도 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사탄이라니.....
죽을지언정 주님과 함께 가겠다고 하는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3번이나 부인할 것이라니...... 그러나
1시간 만이라도 깨어서 같이 기도하자고 하는데도.....
3번씩이나 부인하는 것도 부족해서 저주하고 도망가.....
죽음을 이야기하는데도 서로 자리 다툼이나 하고 화내고......
인간의 진실은 어디까지일까?
가롯 유다만 열 두 명 중에 제일 악마 같은 나쁜 놈, 모자란 놈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가롯 유다만 마귀 새끼이고 지옥갈 놈이 아니고
다른 제자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들도 누구를 손가락질할 처지가 아니다.
내가 마귀. 사탄. 옛 뱀. 가롯 유다입니다.
시간 속에서 유한한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은
누구도 영원하신 하나님 편에 설 수가 절대 불가능
목사님은 진짜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세요?
젊었을 때에는 뭘 모르고 거침없이 대답했었다.
사랑하기는 뭘 사랑해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결국은 자기 자신이다.
구원의 확신은 나의 열심 나의 경건 나의 사랑에서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자기가 죄인이라는 실상을 안 사람은 절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먹고 싸고 미친 짓만하다가 죽는 구더기 벌레 인간이 무슨 하나님 사랑하냐고...
➜. 불편한 진실 – 서로 덮어?
똥걸레같은 더러운 옷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그 실존에서 벗어 날 수가 없는 썩은 송장같은 인간들이....
요일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는 여기서 눈꼽만큼도 더 달라진 것이 없다.
목사님이 되어서 70년을 금식. 기도. 성경으로 살았어도 아니다.
아닌 것은 아니다.
시간 속에 사는 인간이 어떻게 영원에 설 수가 있고
유한한 인간이 어떻게 무한하신 하나님을 흉내라도 낼 수가 있고
도대체 어떻게 피조물이 창조주의 편을 들 수 있겠는가?
어떻게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하고 맞먹는 친구를 하겠는가?...
주제를 알아야지. 창조주가 피조물의 편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치고 올라가는 사랑은 없다. 내리사랑만 있다.
무한의 권세가 유한을 덮는 걸 은혜라고 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걸 구원이라 한다. 그것을 창조라고 한다.
그냥 은혜로 덮어버리는 것입니다. 그걸 인정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하며 불가능한 존재인지를 먼저 알아야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인 독사의 새끼들임을 먼저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인들은 예수님의 피와 살을 먹지 않으면 살 수도 존재할 수도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이 죄를 인식하는 과정이 생략되어 버렸다
처음부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요
처음부터 하나님 이렇게도 사랑하시는 자들이요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마저도 전부 자기를 위한 하나님 사랑입니다.
천국도 자기를 위해서 준비된 것입니다
마26: 20 저물 때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저희가 먹을 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심히 근심하여
저희가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내니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와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랍비여 내니이까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내니이까? .....나는 아닙니다. 선생님?
예수님은 분명히 너희들이 오늘 다 나를 배반할 거라고 했고
이 중의 하나가 나를 판다...
그런데 나머지 제자들도 사실상 예수님을 팔아먹었다..... 어떻게?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날 그날까지 제자들이 뭘 갖고 싸웠는가?
누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할 거야?
그럼 그게 뭔가? 예수 팔아 내 유익 챙기겠다는 거 아닌가?
유다랑 그들이 뭐가 달라요? 다를 거 하나도 없다.
그런데 이 유다를 비롯한 나머지 열한 제자가 전부 뭐라고 얘기하느냐 하면
나는 아닙니다. 확실히 저는 아닙니다.
나는 아니에요, 내가 왜 예수를 팔아요?
난 예수를 위해 목숨 바칠 사람입니다...이 놈들이 마귀.
난 아니에요, 난 아니에요. 쟤는 어떨지 몰라도,
이렇게 자신의 다름과 차이를 주장하는 것 = 마귀. 뱀
피차 불편한 이야기를 뭐 하려 하고, 듣겠는가?
당신은 구원받았어요. 행복하죠? 찬송하세요.
여기서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생략돼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나는’ 아니지요? 라는 이 다름과 차이를
증명하는 걸 건강한 신앙생활이라고 하고 달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방향이 빗나가 버린 것이다.
그건 에덴동산에서 마귀의 편이 되어버린 아담과 하와가
서로에게 죄를 전가했던 동일한 모습입니다.
난 아니에요, 쟤 때문이여요. 얘는? 난 아니에요, 쟤 때문이예요.
결국, 어디까지 올라가는가?
하나님이 만들어낸 저 여자 때문이에요.
하나님까지 탄핵하면서 나의 자존심을 챙기기 위해서.
그게 마귀란 말입니다.
왜 그렇게 내 자존심을 챙겨야 하는가?
내가 선악과 먹고 하나님 같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인데 내가 마귀 새끼라는 것을 어떻게 인정을 하겠는가?
난 하나님 됐다니까요. 선악과 먹고.
이것이 율법주의 아래의 아담들의 실상이다.
자신의 지성과 덕. 그런 인격성 자율성을 건드리지 말라고?
악으로 간주하겠다고......버트란트 러셀
심지어 자신의 죄를 자각한 상태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퐁당 빠져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살도 불사하는 것이 마귀의 실체이다
마귀인 가롯 유다가 예수를 판 자신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 메타노이아, 회개라는 단어가 씌어있다.
가롯 유다가 진짜 회개했을까?
그런데 왜 성경이 거리에다가 ‘메타노이아’, 회개란 단어를 썼을까요?
교회라고 자처하는 이들이 잘못된 회개를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회개는 정말 진짜 죄가 무엇인지 아는 자의 삶 속에서
은혜에 의존하는 하나님 절대 의존의 고백이 나오는 것을
회개라고 하는 것이다. 그게 회개의 목적지입니다.
그런데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자가
자기가 한 일을 반성하고 뉘우치는 게 회개가 아니다
무얼 근거로
가롯 유다가 죄를 모르고 엉터리로 회개 했다 고 얘기를 하는가?
죄는 인간의 목숨을 바쳐서 상쇄해 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목숨을 던져버리면 죄가 없었던 것처럼 되는 그런 성질이 아니다.
죄라는 것은.....
인간의 목숨 일 억 개 갖다 줘도 상쇄 안 되는 것이다.
그말은 다른 말로 바꿔 말하면 생명이라는 건 인간의 최선의 노력으로도
생산해 내거나 쟁취해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라는 말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열심과 노력이 뭐? 목숨 바치는 거?
그거 이상 할 게 뭐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 가롯 유다의 향위는 죄가 뭔지 모르는 바보같은 짓이다.
그래서 우리도 이 신앙의 절정, 이걸 순교라고 합니다.
그런데 가롯 유다식의 순교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런 순교는 다른 종교에도 많습니다.
인간의 목숨이란 이미 생명이 없는 죽은 송장의 목숨에 불과한 것이다
아무 의미가 없다.
순교하게 하시면 순교하는 것이지만
그 순교로 내가 하나님께 아주 큰 선물 드렸다고 생각하면...
마른 뼈들을 산 사람만들어 놨더니
마른 뼈들이 자기 공로를 들고 나와요?
➀. 아리우스의 주장.....
예수님은 구인가?
하나님 같은 하나님의 아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다.
그럼으로 인간의 행위를 강조하게 된다. 이단의 정죄됨.
➁. 아다나시우스의 주장....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 자신...삼위일체 하나님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리고 다 이루셨다.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믿음뿐이다.
➂. 펠라기우스 vs 아우구스티누스 = 어거스틴
➃. 알미니우스. vs 칼빈
하나님의 은혜보다 인간의 자기 의를 들고 나오는 이 인간들이
마귀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시62:5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시62:6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62:7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음이여
내 힘의 반석과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도다
시62:8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시62:9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시62:10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시62:11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시62: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