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말씀묵상

작성자 정요한 목사
작성일 23-03-10 16:55 | 조회 568 | 댓글 1

본문


본문 - 마태복음 19:1~12

 


함께 기도해 주세요.

 

1.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듯 사람을 사랑하며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2. 함께 행복한 선한목자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되기를 힘쓰며 그 사랑의 열매를 맺어내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3. 각자의 기도제목을 놓고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내도록 기도합시다.

 

* 말씀 묵상 영상은 매주 월~토 오전 5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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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1

충호님의 댓글

충호
이유가 있으면 이혼해도 되느냐고 묻는 바리새인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여 곤경에 빠트리고자 한 질문임을 예수님께서는 아셨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답은 ‘이혼해도 좋다’ 혹은  ‘이혼해서는 안된다’ 두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대답하든지간에  다음 질문이 그러면 왜? 로 시작하며 함정에 빠지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은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니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역시나 모세의 이혼증서를 들어 반박하는 바리새인에게 모세보다 크신 분이 아니면 아마도 더 이상 변론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결혼 제도를 만드시고 그  본질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너희의 완악함 때문에 모세가 약자를 보호하느라 허락했지만 본래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시면서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장가드는 자는 간음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허락한 것이다‘는 표현은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듯 이혼을 마땅히 해도 된다는 듯 장려한 것이 아니라 마치 마지못해서, 본질을 따르는 최선이 아닌 차선을 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완악함은 결혼한 상대방을 음행의 함정에 빠트리거나 우겨서라도 자신의 욕구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고 음행의 해석 범위를 넓혀서라도 이혼의 정당성을 만들어 내기까지 할 것입니다. 혹은 애초에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이 아니었기에 이혼해도 된다고 여길 수도 있고, 부모를 떠나 아내에게 합하여 한 몸이 되라고 했는데 이 사람은 부모를 떠난 적이 없는 마마보이라 이혼해도 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굳이 하나님의 말씀을 나름대로 지키고자 하는데서 합당한 이혼 사유를 내놓고자 하지 않아도 복잡다단해진 사회에 이혼 사유도 법적으로 뿐 아니라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도 이혼 사유가 많아졌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모세 당시의 형편을 들어 너희의 완악함 때문에 허용한 것이 있었다고 말씀하셨듯이 그 때는 허용했던 것도 지금은 틀릴 수 있고 혹은  본질상 틀려도 형편상 지금은 맞다고 허용하는 것도 있을 듯합니다.  인간의 믿음의 정도나 연약함 때문에, 지속적인 불의함에 함께 살아가기 힘들어 어쩔 수 없다고 여겨지기에 또는  차라리 이혼한 것이 서로를 위해서도 좋다고 합의가 될 때 등등 여러 원인으로 누군가에게는 이혼이 합당하다고 허용되기도 하겠지만, 만일 지나친 욕심이나 죄성 때문이라면 이혼에 대해 다시 한 번 심사숙고 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가 된 것을 찢어내는 아픔은 당사자가 아니면 알 수 없고, 함께 살아본 이혼 당사자가 아닌데 어느 것이 합당하다고 어디에 기준을 두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선악에 대해 올바르게 판단을 할 수 없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기 쉬운 것이 인간인지라 하나님이 진정한 주인이 되지 않으면 누구를 위해서,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 본질을 따르는 최선은 어차피 어려운 현실이라해도 무엇이 차선으로 잘 한 결정인지 단정지어 주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는 본질을 따르는 것을 강력히 원하시지만 인간인지라 형편에 따라 사정도 봐주셔서 철이 들 때를 기다리시며 차선도 허용하시기도 하시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연약함, 허물, 잘못 판단한 것, 실수 등등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전화위복으로 삼으실 수 있는 분이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시기에 때로는 우리가 전정(가지치기)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럴 지라도 선택과 갈등의 갈림길에서 중요한 것은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의 가지로 꼭~ 붙어있지 않으면 버려진 가지가되어 말라버릴 것을 속히 눈치채고 예수님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자양분과 생수를 공급받아 살아가느냐일 것입니다.
이혼하느냐 마느냐, 재혼 하느냐 마느냐 보다 중요한 것은 성어거스틴은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맘대로 해라.”라고 언급했듯이 매사 인간사에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는가가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결국 “하나님 사랑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 그리고 이웃사랑 특히 새로운 가족 공동체의 유익이나 덕이 되느냐가 중요한 판단의 기로에서 옳은 판단 기준이 될 것 같습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