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말씀묵상

작성자 정요한 목사
작성일 23-02-05 20:55 | 조회 631 | 댓글 2

본문


본문 - 마태복음 8:23~34

 


함께 기도해 주세요.

 

1.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세상 속에서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2. 함께 행복한 선한목자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 가운데 말씀을 듣고깨달아 삶으로 살아내는 은혜가 넘치게 하옵소서. 

3. 각자의 기도제목을 놓고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내도록 기도합시다.

 

* 말씀 묵상 영상은 매주 월~토 오전 5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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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2

충호님의 댓글

충호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신데도 풍랑이 일어나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습니다.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뱃사공 출신의 제자도 있겠다 배가 뒤집어지지 않고 잘 헤쳐나가도록 열심히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 무거운 물건일수록 버려서라도 배의 무게를 줄여서 조금이라도 더 배가 물위에 올라와 있도록 하고 그래도 배로 넘쳐서 들어오는 물을 속히 퍼내야 합니다. 또한 거센 풍랑에 돛으로 방향잡기 힘들거나 찢길 우려가 있을 때  돛을 신속히 내려야 합니다  꽉~ 붙들어야하는 것은 방향 키이고, 노를 저어야 하는 경우는 노를 꽉 붙들고  양쪽에서 힘과 균형을 잘 맞추어 파고를 향해 똑바로 진행하도록 잘 저어야합니다.  몰아치는 파도와 배가 평행이 되면 금방 뒤집어져버리므로 거대한 파도가 오는 수직방향으로 뱃머리가 향하도록 하고 파도를 타고 올라서거나 파도를 타고 가는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목수 출신인 예수님보다 뱃사공인 우리가 더 풍랑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는지 제자들은 경험상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력함과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되었을 때에야  예수님을 찾습니다. “아니~제자들은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있는데 주님은 지금 세상 돌아가는 형편도 모르고 주무시다니요! 죽게 된 우리를 돌아보시지 않으십니까?” 원망과 불평 섞인 외침으로 예수님을 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깨워 처한 현실을 알리고 구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기도라면,  맨 나중에 죽을 것 같을 때에야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자느라고 몰랐구나 미안하다 애썼다.”라고 사과하시면서 위로부터 하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가끔 책망하실 때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번에도 믿음이 적은 것을 책망하십니다. 그렇다고 책망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람과 바다를 “고요하라 잠잠하라.” 꾸짖으셔서 순종하게 하심으로 죽음으로 인한 공포를 해결해 주십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을 깨워 “이 극성을 부리는 바람과 파도를 어찌 할까요?” 묻고 응답받고 말씀하신대로 그대로 명령을 행하든지 혹은 “만유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주무시는데 어찌 무례하게 경거망동을 하느냐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바람아 파도야 고요하라 잠잠하라.“하고 외치는 믿음을 보이거나,  하나님 아버지 품에 안기신 예수님처럼은 아니어도 ”예수님이 계신데 뭘 두려워해?“하며  예수님 곁에서 죽으면 죽으리라 잠을 청하면 책망을 듣지 않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귀신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귀신같이 알아차립니다. 그런데 그에 합당한 경배와 찬양과 회개와 자발적 순종을 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  “때가 이르기전에 괴롭게 한다”고 원망과 불평을 하게 되고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이르면 내어 쫒기고 멸망할 것도 알고 있음에도 우선 잠깐이라도 살아보겠다고 돼지 떼에 들여보내달라고 청하는 떼귀신의  모습이 일면 마을 사람들의 청하는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돼지 떼의 죽음을 보며 손해배상 청구 안하는 것을 보면 일단 뭔가 모를 예수님의 비범함까지는 깨달은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적 손해가 압도적으로 크게 보여 더 이상의 물질적 손해를 막고 잠깐 왔다가는 세상에서 나름대로 살아보겠다고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떠나시라고 청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신성을 깨닫고 산자로 살아갈 기회가 주어진 것을 스스로 차버린 것 같은 안타까움과 함께  마치 좀비로 살아가기를 청하는 것처럼 겹쳐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데도 그에 따른 마땅히 올려드려야 할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은 이들 귀신의 행태와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갑자기 무서워지는 생각이 듭니다.  뭣이 중헌지 모르는 것처럼 행하는 나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매번 주시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예수님이 동행하시는 생명길로 잘~ 따라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충호님의 댓글

충호
수정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느꼈으나  물질에 대한 애착이나 욕심이 더욱 커서 부인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 이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다시 읽어보니  예수님의 비범함까지는  깨달은 것 같으나  신성을 깨닫지 못하고  죽은 자가 아닌 산자로 살아갈 기회를 스스로 차버린 것으로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