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은 만남과 사귐을 원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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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1-03-07 09:41 조회2,960회 댓글0건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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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깊은 만남과 사귐을 원하시면 』
더 깊이 사귀기를 원하시면 침묵하십시오.
①. 말과 ②. 감정의 절제가 있어야
어떤 관계이든 깊이 오래 지속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로 채워지는 일이다
시내산에서,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할 때에, 변화산에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
저들의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 때는 사람의 자기 말이나 감정 표현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계실뿐입니다.
내 안에 상대방의 존재로 가득해 질 때가 있습니다.
가장 행복한 시간들입니다.
생전에 마더 데레사는 처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명함을 주었는데
거기엔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다음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 침묵은 기도를 낳고, 기도는 믿음을,
믿음은 사랑을, 사랑은 봉사를, 봉사는 기쁨을 낳는다 』
" 사람 안에는 가장 내적인 침묵의 공간이 있다.
사람들은 잡다한 생각들 때문에 그것과 잘 접촉을 못하고 있다.
그 고요 영역이 하나님이 내 안에 머무시는 공간이며 여기엔 누구도 들어올 수 없다.
타인의 의견 판단 중상 또는 요구 기대도, 나의 걱정 공포 소망 등도 그 속에 못 들어온다.
우리의 가장 깊은 그곳에서 나 자신과 만나게 되고 동시에 그 안에서 하나님과도 만나게 된다."
한편 하나님은 침묵 속에 계시면서도
자연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보존하시며 온갖 일을 다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과 좋은 만남을 가지려면 내 안의 침묵의 공간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
라디오. TV. 신문. 인터넷. 스마트 폰...말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날마다 정해진 시간과 지면을 다 채워 넣어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다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제한 없이 원하는대로 꽉꽉 채워지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절제된 만족이 더 큰 행복이 된다.
여유나 여백이 없는 것은 오히려 답답하다.
다 말하지 말자. 조금씩은 말을 아끼고 생략하자
침묵은 듣고자 하는 태도이다. 소음은 말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침묵은 순종하고자 하며 소음은 반항하고자 한다.
침묵은 타인을 존중하므로 바보처럼 보이지만,
소음은 자기를 존중하여 똑똑해 보인다.
침묵하면 세상이 조용해진다. 소음이 있으면 세상이 시끄럽다.
침묵은 하나님께 깊은 관심을 둔다. 소음은 세상에 관심이 많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으면 들으려고 한다.
세상에서 뭔가를 얻고자 하면 시끄러워야 한다.
침묵은 바라봄과 같고, 소음은 내려다봄과 같다.
침묵은 나를 통해 세상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통해 나를 보고자 한다.
소음은 세상을 통해 나를 채우고자 한다.
소음은 내가 주인공이 되야 직성이 풀린다.
침묵은 내가 없어도 게의치 않는다.
오직 하나님께서 내 삶에 개입하신 것만으로 감격해 한다.
침묵은 듣고자 하지만 소음은 말하고자 한다.
내 말을 많이 하면 사람들이 도망간다.
그러나 들어주면 사람들이 몰린다.
우리는 말하기 원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들어주기 원한다.
그 충돌 속에서 지혜로운 자는 듣는 쪽으로 선택한다.
경청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한다. 내 지식은 한계가 있다.
남의 것을 보태면 훨씬 큰 지혜가 된다.
하나님의 음성 듣기 위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침묵은 깊은 세계에 들어가게 한다.
필요한 사람이 되게 한다.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한다.
세상의 보배로운 자로 나오게 한다.
약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약1:20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약1:21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약1: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1:23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약1: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약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약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2011년 3월 7일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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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신비....
어느 날, 한 부인이 수도사를 찾아와 밤낮 남편과 싸우는데
어떻게 해야 가정을 회복 시킬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수도사는 교회 뒤 우물가의 물을 성수(聖水)라고 떠 주면서
남편이 싸우려고 달려들 때마다
그 성수를 한 모금 마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수를 마신 후에는 삼키지 말고 있다가 남편의 말이 다 끝난 후에 삼키면
한 달 후에는 가정이 회복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뒤 이 부인은 남편이 싸우려고 달려들 때마다 수도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정말 한 달 후에 망아지 같던 남편이 양처럼 변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부인이 수도사에게 찾아와 말했습니다
“정말 신비한 물이군요”그러자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물이 신비한 것이 아니라 침묵이 신비한 것입니다”
침묵의 신비는 기다림의 신비에서 비롯됩니다
나쁜 일은 대개 좋은 일과 잇닿아 있음을 알기에 기다릴 수 있고,
절망적인 순간은 희망이 시작되는 순간임을 알기에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람됨과 인격성은 “침묵을 잘 할 줄 아느냐?”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때로 침묵은‘깊은 사랑’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외적인 삶보다 내적인 삶입니다.
우리 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보다
우리 안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외면도 튼튼해야 하지만 내면이 더 튼튼해야 합니다 그래서 침묵이 중요합니다.
창조적 침묵은 우리의 내면세계를 튼튼하게 만듭니다.
어느 날, 미국에 사는 한분이 휴가를 맞아 가족과 함께 한적한 호수로 여행을 갔습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딸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들 이 소리가 들려(Do you hear that)?”
딸들이 물었습니다. “무슨 소리요(Hear what)?”
그분이 대답했습니다.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
그러자 딸들이 동시에 말했습니다. "들리지만 너무 싫어요(Yes! And we hate it)!"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침묵의 소리는 듣기 싫어하고 시끌벅적한 곳에 가야 만족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침묵이 있어야 영혼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건강해 질 수가 있습니다
건강한 소리(sound)는 진리를 다가서게 하지만
시끄러운 소리(noise)는 진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때로 목의 소리(voice)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진리의 길을 막는 1등 방해꾼 역할을 합니다.
진리와 평화는 복잡한 소음 중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조용한 침묵 중에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리석은 사람과 현명한 사람의 차이는
현명한 사람이 10분이라도 더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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