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라는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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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4-05-12 23:58 조회3,203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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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라는 유산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팀의 명투수였던 토미 라소다가 어렸을 때
그의 집안은
매우 곤궁했다. 그런데도 그의 아버지는 항상 웃으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어느 날 이를 못마땅히 여긴 라소다는 아버지에게 투덜댔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빠는 채석장에서 트럭을 모는 고된 일을 하셔야 하고
엄마는
관절염으로 병원에 다니시고, 먹이고 입혀야 할 애들이 다섯이나 있어
늘 어려운 형편인데.................."
그러나 라소다의 아버지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얘야 알고 싶니? 빈털터리였던 내게 지금은 멋진 아내와 다섯 명의
착한 아이들이 있고 가꿔야 할 집도 있고
고물이지만 몰고 다닐 수 있는 차까지 있잖니?
난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야.
얘야. 네게 웃음이 없다면 내 웃음이라도 빌려 가거라."
내가 웃을 수 없다면 누가 웃을 수 있는가? 라는 건강한 자존심이 좋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지식과
정보 홍수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서 세계 각국에 있는 정보를 얼마든지 접할 수가 있는
시대입니다. 그 지식들을 통해서 볼 거리도 들을 거리도
넘칩니다
감동적인 따뜻한 이야기들도 창고에 가득 가득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밝고 환하고 건강한 웃음이 있는 활달한 사람 생기 있는 사람을
현실레서 만나는 것은 노다지 캐는 것만큼이나 보석을 만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기도해야할 것 같습니다. 정말 중요한 기도 제목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그러면 맨 처음 생각나는 게 무엇입니까?
금주, 금연, 외골수 ,독선적, 답답한 사람, 말이 많은 사람,
착하기는 한데 실력 없는 사람.......
은혜 근처에라도 가는 이야기는 정말로 듣기가 쉽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풍기는 냄새가 은혜와는 거리가 먼 탓이리라.
얼마 전 주일에 교회에서 한 꼬마가 고개를 돌려 사람들 얼굴을 하나씩 쳐다보고
웃고 있길래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아니는 꼴깍거리는 소리를 내거나 침을 뱉거나 콧노래도 부르지 않았고
발로 차거나 찬송가를 찢거나 엄마 가방을 뒤지지도 않았다.
그냥 웃고 있었다.
잠시 후 아이 엄마가 아이를 확 잡아채더니
소극장에서 관객더러 들어라고 하는 독백마냥 다 들리는 소리로 말했다.
"그만 좀 웃어! 여긴
교회야!" 그러면서 아이를 한 대 주어 박았다.
아이의 볼에 눈물이 흐르자,
"차라리
그게 나아"하고 덧붙이고는
다시 기도하는 자세로 돌아갔다.
나는 벌컥 화가 났다.
"온 세상이 울고 있으니 너도 이제부터라도 울어" 하는 말로 들렸다.
나는 얼굴에 눈물 자국이 난 그 아이를 내 옆에 앉혀 놓고
하나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기뻐하시는 하나님, 웃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지으실 만큼 유머 감각이 있으신 하나님
통념상 우리는 조문객처럼 엄숙하고 비극을 연기할 때처럼 비장하며
소중한 것을 전부 갖다 바치면 믿음이 좋은 것 같이 생각해버리기가 쉽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지금 이 엄마는 우리 문명에 남아 있는 유일한 빛, 유일한 소망, 유일한 기적,
유일한 무한의 약속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 아이가 교회에서 웃을 수 없다면 어디로 가란 말인가?
기업은 그 기업의 마인드가 있다
가정이나 교회도 나름대로 특별한 마인드가 있다
그러나 웃음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너무도 중요한 것과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무리 귀한 덕목들이 있었도 기쁨을 잃어버린 어떤 진리도
나에게는 매력이 없다
거룩 거룩하다 거룩에 빠져죽는 거룩은 사양하겠다.
그리스도인은 포기할 수 없는 거룩에의 열정과 뜨거운 갈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기쁨이 없는 거룩은 비은혜의 율법적인 것이고
노예적인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웃음을 잃지 않고 생기 있고 건강하고 활기차게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는
모습이 그리스도인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아름다운 얼굴이었으면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 때문이요
십자가와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벧전1:8-9
Filled with an inexpressible and glorious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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