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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容恕의 미학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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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1-30 00:00 조회3,5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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容恕용서의 미학美學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벧전 2:19 - 24


1. 베냐민 지파 사울의 친족 시무이의 저주

①. 시므이
사울의 친족 중 한사람으로 여겨지는 시므이(Shimei)라는 자가
자기 支派와 가문에 대하여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그리하여 그는
유다 지파인 다윗이 사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왕 됨을
시기하고, 이제 다윗이 쫓기는 신세가 되자 이를 반기면서 다윗을 저주하였던
것이다. 물론 시므이는 훗날
압살롬의 반란이 수습되자 다윗 왕을 찾아와
이와 같은 과거의 망령된 행실을 시인하고
다윗의 용서를 받긴 하였다.
사무엘하 19:16-23
하지만 그는 결국 솔로몬 왕 때에
왕명을 어겨
참수를 당하고 말았다
열왕기 상 2:36-46.
우리는 여기서 극단적인 支派주의자 또는
혈통주의자(血統主義者)의
편협한 사상과 그의 비참한 말로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오늘날 가문, 혈통, 지연(地緣) 등 소아(小我)에 사로잡혀
대아(大我)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의 표상으로
이 시므이를 들 수 있는 것이다.

②. 시므이의 저주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삼하 16:5-6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꺼져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삼하 16:5-8
다윗과 그 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 - 삼하 16:13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
여기서 돌을 던진 행위는
상대방에 대하여 참을 수 없는 극도의 분노를
표시한 행위이다 시므이는 여기서 다윗 왕이 과거 이스보셋과 아브넬을
죽인 장본인이며 따라서 베냐민
지파의
쇠퇴와 사울家의 몰락의 책임이
바로 다윗에게
있다고 믿으면서 돌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므이의 비방은 전혀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다윗은
사울가의 어느 누구도 살해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윗은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을 마치 자기 아들처럼 예우하며
아껴주었을 뿐이다(9: 9,10).
따라서 시므이의
이같은 행위는 그릇된 자기 선입견(先入見)의 결과였음을
알 수 있는 바, 우리는 여기서 선입견의 무서운 실상을 보게 된다.
=====16:7
비루한 자여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쉬 하벧리야알을 직역하면
벧리알의 사람아란 뜻이다. 여기서 벧리알이란 말은
무익한 것,
무가치한 것, 또는 파괴, 파멸이란 뜻을 갖는다.
따라서 이 말은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놈아,
또는 파괴를 일 삼는 자식아란 뜻이다.
이렇게 볼 때 시므이의 욕설은 보통 사람이면 도저히 참기 어려운
독설(毒舌)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왕에게 한편,
후일
신약 시대에
이르러 벧리알(Belial)이란 말은 사단을 지칭하는 말로 발전되었다(고후6:15)
=====
가거라 가거라 -
이는 약속의 땅에서 떠나 이방인의 땅으로 꺼져 가라는 욕설이다.
이와 같은 욕은 약속의 땅 가나안(창 13:14-17))을 자신들의
영원한 기업으로 믿고 있었던 히브리인들에게는 아주 악랄한 저주였다.
=====16: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압살롬의 난(15:10-12)이 이스보셋과 이브넬을 죽인
다윗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시므이는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다윗을 정죄하고 있지만
실상 그의 정죄는
정직하지 못하며, 지극히 감정적이고 무지에 의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보셋과 아브넬의 죽음은 다윗의 책략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삼상 15:28).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다윗의 큰 아들 압살롬의 난 역시
다윗의
사적(私的)인 범죄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형벌이었기 때문이다
=====16:9
아비새 -
요압의 동생으로(2:18), 다윗 왕의
조카이자
그의
충성스런
신하이다
죽은 개 - 가장 보기 싫고 하찮은 인간을 뜻하는 히브리적 은어(隱語)이다

시므이는
한 백성이요 다윗은 나라의 욍이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다윗의 군대장관 아비새의 말처럼
시므이는 『죽은 개』에 불과할 수 있는 것이다


2. 다윗의 처지와 그의 신앙적 고백
①.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왕이 가로되 ........................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
삼하 16:10


=====16:10
스루아야의 아들들아 - 스루야(Zeruiah))는 아비새의 어머니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들들이란 복수로 보아 아비새 곁에는 그의 형
요압도 함께 있었던 것에 분명하다.
요압은 아마도 시므이를 단칼에 목 베어 버리자는
아비새의 의견을 지지했을 것이다.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

아비새의 제의를 일축해
버리는
말로서,
나의 생각과 너희의 생각은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함축적 의미를 가진다
여화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

시므이의 악독한 저주를 신앙 안에서 받아들이는 다윗의 모습이다.
즉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은 물론 시므이의
저주까지 포함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모든 사건들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과거에 저질렀던 그의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12:10-12)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상황에서 다윗은 자기를 괴롭히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보복하거나 불평하기 보다는,
자신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마땅한 죄인으로 여기고 철저히 근신(謹愼)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분명 과거 실수한
자리에서
벗어나,
이제 인간에게 당하는 억울함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저질렀던
자기의 추악한 죄를 먼저 생각하는 다윗의
새로운 신앙 자세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죄를 보는 자만이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을 것이다

②.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 -
삼하 16:11

인간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우리들의 죄가 어찌 이렇게도 .........................
다윗 자신의 죄도, 그리고 아들 압살롬의 하는 짓들도.............
어떻게 말로 다 그 간악함과 부끄러움을 표현할 수 있겠느냐?
이 마당에 하물며
다른 지파 출신인 시므이가 자신에게 저주 한 마디
한 것쯤이야 하나님의 징계치고는 대수로운 것이 아니지
않겠느냐는
반문이다 .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범죄를 우리야의 입장에서 헤아려 보자

③. 혹시 복 받을 기회가 될련지 알겠느냐?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 삼하 16:12

다윗은 자기가 이러한 수욕(受辱)을 묵묵히 감수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가해진 과다한 저주를 기억하셔서
자기를 궁휼히 여겨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현재 자기의 억울한 형편을
정확히 살펴보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또한 일정한 징계의 기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 위기 가운데서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 쉽고도 어려운 문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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