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로 인도된 어린이 - 어린이 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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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3-05-13 22:01 조회3,65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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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로 인도된 어린이
마태복음19:13-15
어린이 주일은 엄마 아빠로 매 맞고
어버이 주일은 자식으로 매 맞고 뭘 잘한 것이 얼마나 있어야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보이는 이정표, 푯말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보이는 깃발, 얼굴, 창문
더 더욱이 부모는 자녀들에게 그렇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얼굴이 있습니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목소리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신비할뿐 아니라
차라리 두렵기까지 합니다. 차라리 묶음으로 덩어리로 다른 사람하고
같이 어떻게 도매금으로 넘겨지면 좋겠는데
나는 나로서 전적으로 내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얼굴에는 자기 인생이 그려집니다.
자기 얼굴에 그려진 자기 인생은
돈을 많이 주고 잘 그리는 사람에게 대신 부탁할 수도 없고요
어떻게 거짓말로 조작할 수도 없습니다 .
사실은 안 그런데 그런 척하는 것도 금방 다 들통나고 맙니다
문제는 이 얼굴 이 표지판은 속사람으로 쓰여지는 것이라서
세상 껍데기 같은 것으로 통하지 않습니다
ex. 100억짜리 집에서 산다고 100억짜리 얼굴이 그려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부자들은.
육신의 포장지가 색상이나 그림이 좋은 사람들은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얼굴이 진짜 자기 영혼의 얼굴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공부 1등했다고 일등 얼굴 그려지면 공부 잘한 사람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은 참 신묘 막측하시게도 공평하십니다
사실 행복은 바로 자기 얼굴에 그려진 그대로 일 것입니다
행복이란 뭡니까? 우리는 행복을 때때로 물질적 여건을 두고 생각하고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음식, 좋은 의복 이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마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음식으로 말하면 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입맛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더라도 입맛이 가시면 그건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냄새도 싫습니다. 역겹습니다. 입맛이 없는데 음식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인생의 입맛. 어디에 있을까요
술 한잔에 타서 마시는 눈물에 있을까요
커피 한잔을 타놓고 흘러가는 음악에 달래는 외로움일까요 낭만일까요
외국에 나가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잠깐 졸았는데 졸다가 구수한 냄새가
코에 들어 와서 눈을 떠 봤더니 거기 점잖게 생긴 어른이
돈도 많아 보이던데 어떻게 거기에
있는 스튀어디스들에게 잘 얘기 해
가지고 몰래 라면을 한 그릇 끓여서 잡수고 계시더랍니다.
그런데 어떻게 냄새가 좋은지 좀 달라고 하고 싶은데 ......
그런데 자, 그 비행기에서 주는 좋은 고급 음식도 있는데 그거 다
마다하고 하필이면 라면 한 그릇입니까?
이것은 그가 가진 입맛 때문입니다. 그 입맛이 그쪽으로 작용을 하니깐
그 외에 아무 것도 소용이 없는 것이에요.
그 입맛이라는 것이 이렇트면 익숙해진 마음 관심입니다
우리 눈과 귀가 우리의 마음이 자꾸 그 쪽으로 기우는 것입니다
인생 중에 무엇 때문에 가장 행복해 하셨습니까
인생 중에 무엇 때문에 가장 괴로워 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정말로 행복해보신 일이 있습니까?
아니면 예수님 믿는 것은 도대체가 뭡니까?
우리 은진 교회 식구들은
예수님 때문에 행복한 가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요 행복한 사람 한 사람을 보실까요?
어느 교회 장로님 한 분이 가끔 목사님과 마주 앉아서 식사를 하시는데
가만히 보면 너무 빨리 해요.
목사님은 반도 못 먹었는데 벌써 다 먹었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점잖은 양반이 비신사적이라고 좀 발란스를 맞추어서
속도를 맞춰 가지고 먹어야지. 이렇게 마주 앉은 사람은 홀랑
남겨 두고 혼자 먹으라고 이렇게 하면 이게 되겠어요?"했더니
장로님 왈
"목사님 저도 그걸 압니다. 그러나 음식을 입에 넣고 한번 씹으면 너무
맛이 있어서 벌써 목구멍 넘어가버리고 맙니다.
입에다가 더 오래 둘 수가 없어요.
그냥 바로 넘어가서 그래서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요
잘하셨어요 "
그러고 말았다고 해요.
그런데 여러분 이 장로님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진수성찬이면 뭘 합니까?
내 입맛이 없는데야. 결국은 내 입맛대로 행복한 거예요.
이 입맛이라는 말을 참 중요하게 들어야 됩니다.
사람의 입맛은 4살 때 결정이 난답니다. 그 입맛대로 일생을 사는 겁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사람은 40이 넘으면 4살 때 먹던 음식으로
입맛이 돌아간답니다. Original Point로 확 돌아갑니다.
그간에 뭐 양식이다 불란서식이다 뭐이다 하고 먹다가도 아닙니다 나
이가 4, 50 되면 다시 옛날 자기가 자랄 때에 먹던 그 음식으로
입맛이 돌아가 버립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 아내들은 남편에게 잘 하고 싶거든 이 사람이 4살 때 무얼 먹었나?
이걸 알아야합니다.
지금 좋은 음식을 내놓고 내가 정성껏 만들었는데
당신이 왜 이걸 못 알아보느냐? 그건 어리석은 여자입니다.
오늘 이후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문제는 어렸을 때 무얼 먹었느냐는 겁니다.
그 때의 입맛이 이제 내 한평생 나를 지배하는 거예요. 그래 입맛이란 뭐냐?
바로 가치관이요, 세계관이요, 행복관입니다.
내가 어떻게 행복하냐구요? 내가 가진 근본적인 이 가치관의 기준해서 행복한 겁니다.
거기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겁니다.
그래 우리가 옛날에 지질이도 못 살면서 그저 땅문서만 좋아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지금도 그저 땅문서만 손에 쥐고 있으면 행복한 줄 알죠.
그게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습니까 예? 바로 이런 것들이 다 바로 여기 문제예요.
어떤 때는 부모님이 좀 공부를 좀 못해 가지고 자기 가 못한 콤플렉스 때문에
"나는 못했지만 이놈아 너 공부해라." 공부해서 출세해야지
그리고 한평생 소리를 질러서 공부만 하면 될 줄 알고
그런데 해봤는데 별 것도 아니잖아요. 이것도 또 문제가 있더라구요.
어쨌든 이 가치관 이것은 어렸을 때 형성이 됩니다.
특별히 중요한 것은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교육과 명령에 따라서 이뤄지는 게 아니고
부모님이 하는 것을 보아서 모방하는 것이올 시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좋다. 이것을 먹어라. 저것 이 옳은 길이니까 저것을 행해라.
이건 나쁘다. 저건 좋다."
아무리 가르쳐도 말은 소용없습니다. 듣기보다는 보면서 배우는 것이고,
느낌으로 배웁니다. 부모님이 저렇게 말하고 있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음식으로 말하면 부모님 자신들이 맛있게 먹어야지요.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나도!"하고 먹는데 자긴 안 먹으면서 너만 먹어라.
이게 바로 문제라구요. 자, 공부도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하다못해 잡지라도 보면서, 책을 보면서
"공부해라." 그래야 공부지. 자기는 연속극 보면서 나는 tv보고 클럽에 가면서
"야 공부해라."
이게 되겠어요?
결국은 부모님이 무얼 즐기고 있나? 뭘 좋아하고
있나? 뭘 선호하고 있나? 그걸 아이들이 다 알고 있어요. 벌써... 눈치가 멀갑니다요
여기서 공부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가치관, 세계관, 행복관, 인생 철학이 형성이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한평생 산다는 말입니다. 자, 그러니 얼마나 중요합니까?
어렸을 때 너무 억압을 받으면서 자란 사람은 커서 독재자가 된답니다.
어렸을 때 너무 눈치를 보고 산 사람은 반드시 사기성이 몸에 베이게 됩니다.
그러니 이것은 다 어렸을 때 입맛이 형성되는 것 같이
어려서 거기서 다 결정되어 지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가장 큰 죄는 실족케 하는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누누히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 없으나 실족하는 일로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죄가 크냐?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먼저는 내가 죄 짓는 것이 죄입니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 죄짓게 만드는 것이 죄입니다.
죄 원인 제공 죄가 있는 거예요. 자기는 잘하는 것 같이 보이는데 남편 실족하게
만들고, 아이들 죄짓게 만들었단 말입니다. 자기는 뭐 다 잘난 것처럼 생각하지만
아니올시다. 죄 원인을 제공하고 있고, 실족케 하고 있고, 죄 짓게 만드는 죄를
지었어요. 이거 더 큰 죄요. 이보다 더 큰 죄는 어린 아이들을 실족케 하는 겁니다.
아무 것도 모르고 깨끗한 아주 깨끗한 백지와 같은 어린 아이들의 마음속에
거기에 먹칠을 하는 거예요.
이거 때문에 한평생 저들은 불행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을 실족케 하는 일은 가장 큰 죄라고 예수님께서 단죄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잘 아는 한때에 우 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라고 있습니다.
그 지존파의 대부가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그때에 되어졌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옛날을 회고했습니다.
17년 전에 초등학교 시절에 학교의 선생님께서 호되게 그를 꾸지람했답니다.
"왜 너는 그림 그리는 걸 알면서도 크레용을 가져오지 않았느냐?
왜 번번히 가져오지 않았느냐? 도대체 정신이 있냐 없냐
어디다 정신을 팔고 다니냐?"
아무리 나무래도 그는 말이 없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못 가져왔습니다."
그 말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그가 주의를 잘 못하는 줄 알고,
생각이 모자란 줄 알고, 혹은 반항하는 것처럼 생각을 해서
아주 충혈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면서 마구 때렸습니다.
때리던 끝에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이 새끼야! 도둑질을 해서 훔쳐서라도 가져와야 될 것 아니야.
준비물을 왜 안 가져와?"
그때에 이 아이는 빗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형장에서 최후 진술을 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그 한 마디가 내 일생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때부터 훔쳤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도둑질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오늘의 내 운명은 이렇게 됐습니다."
때로는 나도 모르게 한 말 한마디..내가 불쑥 내뱉은 말 한마디,
잠깐 보여준 사건 하나가 그 어린 아이의 일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고 만다 는 것이에요.
저는 모 대학의 여자교수 한 사람이 있습니다. 노처녀예요.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가 학교 다닐 때 아버지, 어머니를 보니까 한심하대요.
저렇게 살 바에는 왜 살아야 되나?"
아주 말도 없고 점잖은 것 같으나 문제가 있어요.
"도대체 저렇게 살 바에야 왜 결혼을 해야되나?"
그때부터 생각을 했대요.
"저렇게 살 바에는 안 하는게 좋지."
어느 사이에 세월이 흘러서 오늘은 자신이 노처녀가 됐어요.
지금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그래요.
여러분, 아이들의 마음 속에 그 좋은 인상을 주어서
아~~아버지 어머니, 참 행복하다. 저러니까 나도 커서 빨리 장가가야겠다.
빨리 시집가야 겠다.고 이런 마음을 가져야겠는데 ......
누가 설문 조사를해봤어요.
40명 학생 가운데 아버지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나는 전혀 결혼하지 않겠소.
하는 사람이 몇이냐 물어 보았어요. 그랬더니 그 가운데에, 40명 중에 38명이에요.
세상 남자가 다 내 아버지 같다면 영원히 시집 안가겠답 니다.
혹시라도 그보다 좀 나은 게 걸릴까 해서 기대해 보는 거지. 보세요,
이 정도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행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결혼하던 못하던 그 받은 인상이 그 모양이란 말이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인도해야 겠습니까?
가장 중요 한 것은 생명의 문제입니다.
뭐 효도해라 뭘 해라 뭘 해라 다 소용없습니다.
기본적인 것은 내가 어떻게 태어났느냐는 겁니다.
그 저 한 남녀의 사랑 행각으로 어쩌다보니까 원치 않게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생물학적 이해입니다. 아무 의미도 없이, 물론 바랬던 것도 아닌데
하나의 실수로 나는 세상에 태어났다. 아니면 어쩌다 우연히 그냥 생긴 것이지.
이것이 그 마음에 박혀 있는 동안 참으로 어렵습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히 문명 국가에서는 2/3가
이 모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실수다 우연이다
이거예요. 잘못된 것이었다. 근본적으로 잘못됐다. 이게 되겠습니까?
바꾸어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서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기도했는 줄 아느냐?
얼마나 정성을 들였는지 아느냐?
네가 세상에 태어날 때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렸는지 아느냐?
기도의 응답으로 너를 낳았고 기도와 함께 너를 키웠느니라.
그 생명이 하나님께로 와 내가 받은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이 너희들이다.
가장 큰 축복이 바로 너다."
이 한 마디만 그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면 어떤 환경에 놓아도 절대 잘못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이것이 없는 한, 행복하게 살 길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영접해야 됩니다.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주께로부터
오고, 주께로부터 온 선물이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요1:12-13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자녀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대로 예수님께로 인도할 것입니다.
예수님께 배우고, 예수님께 들어라. 예수님께 순종하라. 예수님을 따르라.
예수님을 닮으라.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라. 내 얘기가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라. 그래서 제가 오래 전에 읽은 책에 그런 말이 있더만요. 아이들이 실수할 때 이렇게 하라고..
예컨데 거짓 말을 했다면
"내가 말하는데 거짓말하지 마라. 내가 명령하는데 거짓말하지 마라."
그게 아니고 아이들은 거짓말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거든요.
재미있어서도 하고 싶은 거예요. 그럴 때 성경책을 딱 읽어주며
"자, 이 성경을 네가 읽어라."
그래 읽으면 거기에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얘기가 있고
이걸 다 읽은 다음에
"어떠냐? 내 말이 아니고 성경이 네게 말하는데 거짓말하지 말 것이다."
이렇게 가르쳐 놓으면 앞으로 큰 다음에 도,
어느 때라도 컬컬하고 답답한 일이 있을 때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해답을 얻게 된다고 합니다.
내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요. 내 뜻이 아니고, 성경 말씀이 네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교육의 기본 정신이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읽으면
이 어린아이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자가 누굽니까? 그래 부모님이요. 부모님이
예수를 믿고, 부모님이 예수를 사랑하고, 그리고 부모님이 저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한 것이에요. 유아세례 할 때에 그 신앙고백 문답하는 얘기가 있어요.
서약하는 문답이 있습니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이 아이와 함께 기도하겠느뇨?"
그랬어요. 이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며 이 아이와 함께 기도한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너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가 아닙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선한 일을 하는 것이에요. 선한 일하는 것을 본 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저 어렸을 때 기억입니다만 그때 거지가 많았지요. 많은 거지들이 뭐 먹을 것을 얻으러 오든가 쌀을 얻으러 오면 그것을 줄 때 얼마든지 어머니도 하고 할머니도
하시겠지만 제게 주어서 저로 하여금
"가서 그 자루에 갔다 넣어드려라. 조심스럽게 갔다 넣어 드려라."
그래요. 그 심부름을 많이 했습니다. 구제하는 것을 봉사, 선한 일하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함께 한다는 것, 이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로부터 축복을 받습니다. 복을 받아야 됩니다.
복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됩니다. 항상 주의 축복 가운데서 삶을 간증하며
살고 주를 찬양하며
살 아야 할 것입니다. 보세요 예수님을 보여 주면서
"자, 저분을 우러러 보라. 저분을 닮아라. 저분을 존경하고, 저 분을 사랑하라."
그것 이 바로 자녀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그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닮으라."가 아닙니다. "예수님 주님을 닮아라."
그 누구를 따라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 주님만을 본받고 따르라."
성경 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두살 때 성전에 올라 가셔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몰랐습니까?"
대단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이미 하나님을 아버지로 그렇게 믿고 있어요.
그리고 교회를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내 아버지 집
그 교회가 행복의 근본이었어요.
그런 모습으로 예수님께서 자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목회의 최종적인 목표는
예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 그것을 보여주고 싶다
예수님 믿는 것은 이렇게 믿고 이렇게 사는 것이다는 것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
큰 교회 큰 예배당이 아닙니다
한 도시를 감동시킬 수가 없을까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것이 이렇게도 초라하고 보잘 것이 없이
세상에서 맥도 못추고 사그러져 가는 것인가. 아니다 이것입니다
어느 교회. 그리고 그 교회 목사가 아니라
이 도시에 예수님을 소문내고 싶다 이것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전염병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전염병처럼
오늘 특별히 어린이 주일에 분명하게 짚어보고 정리하고 갑시다
먼저는 자신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내가 내 자신에게나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일한 선물이 있다면
무엇인가?
예수님 지체없이 바로 나와야 합니다
한참 생각해보고 대답하는 것은 그 일초가 지구를 7.5바퀴돈 것보다 더 멀어요 나하고 예수님하고의 거리가......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주셨어요 세상 영광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예수님이 아니라 세상을 주려고하고 있다
왜 예수님밖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할 것이 없는지
왜 내 아들 딸에게 예수님을 꼭 만나게 해주어야 하는지
그 의지 분명한지.
막연히 잘되고 훌륭한 사람되고 사회에 유익한 사람되고.........아닙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나에게 있는지
나도 없는데 ....
나한테 있는 것을 나눠줄 수 있는 것이지. 나도 없는 데 뭘 주기는 줘요
나도 잘 모르는데 뭘 가르쳐 줄 수 있어요 소경아 소경을 인도하는 거지요
이 아이가 예수님을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이 종을 치면은 무슨 소리가 나는지 알 듯이........
흔히 말하는 성공했다고 하는 존경받는 분들을 120명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결론을 이렇게 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많이 칭찬하라"고. 첫째가 칭찬하라고..
아이들은 칭찬 받는 수준에서 자기 가치를 발견한답니다.
그렇습니다. 칭찬받는 그것, 바로 그 수준에 도달하도록
그들은 노력하기 때문이에요. 칭찬받는 만큼 자라는 거예요.
그래서 열심히 칭찬하라. 그런거에요.
둘째는 "가르치기는 하되 나무라지 말라."
아이들을 나무래 보세요. 나무라고
딱 한번 나무라면 내 가 잘못했는가봐.
두번 나무 라면 난 머리가 나쁜가보다.
세번 나무라면 내가 세상에 있는 것이 귀찮은가봐. 나는 구제불능한가 보다.
어머니는 나를 키워가는 것이 짜증나고 고생스러운 가봐. 이래 생각합니다.
벌써 정신적으로 자살이 시작 된 것입니다. 그런고로 나무라지 말라는 거예요.
잘 못된 일이 얼마든지 있어도 아이를 나무라면서 키울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성공했던가 잘한 일이 있거든 그것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해 주라는 거지요.
그래야 자기를, 자기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니까요.
잘한 일에 대해서 오래오래
기억해요. 너는 이런 일 잘 한다.
그래서 장점을 계속 극대화하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의 원리라고
칭찬은 하되 부모가 자식 눈치보거나 아부하거나 뇌물성 선물로 접근하면 망치는 것
그런다고 공갈 협박 ?
자식으로서는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고 선물도 주고
그러나 일의 성과나
노동에 있어서는 공정하고
마지막으로
볼트모어의 빈민굴이 있는데 너무 형편이 어지러워서
어느 사회학자가 연구를 해보았답니다. 거기에는 아편 중독자요,
그저 뭐 알콜 중독자요,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굴이요.
너무너무 취약지구예요.
그래서 학자들을 보내 연구한 결과 보고서는 이렇습니다.
아무리 기대해 봐도 저 빈민굴은 구제불능이에요.
거기서 자라나는 어린 아이도 소망이 없음. 그래요.
기다렸다가 25년 후에 다시 사람을 보냈더니
"아니요."
바로 소망 없다고 하던 그곳에서,
아주 훌륭한 180명 중에 무려 176명이나 되는 많은 학자, 목사, 교육자,
그리고 훌륭한 과학자들이 나왔더랍니다. 대체 웬일인가? 하고
원인을 조사하니까 그 속에 그들을 위해서 희생한 한 여인이 있었어요.
한평생을 그들의 아이들을 모아놓고 가르쳤어요.
그리고 이제는 할머니가 됐는데 그 여인의 그 가르침으로 인해서
이 구제 불능한 빈민굴에서 훌륭한 인물들이
났더란 말입니다.
기자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느냐?"
그는 말했습니다.
"난 그 아이들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했다는 거요. 내 어머니가 아니라도 좋아요.
내 아버지가
나빠도 좋아요. 누구인가라도 단 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할 때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때
그는 참으로 귀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그 사람,
바로 그 한 사람이 그 아이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그 한사람.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의 믿음
당신의 눈물
당신의 기도가 천국에서 해같이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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