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신앙

사랑의 성찬 2003. 4. 13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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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1-30 00:00 조회3,8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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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성찬













마태복음 26:26-29

교회의 최고 재산은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넓은 땅 멋진 예배당 건물이 아닙니다
수천 수만 명의 교인들 숫자가 아닙니다
훌륭한 목사님도 아닙니다
훌륭한 교인들도 아닙니다 .
측량할 수 없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 그 고난과 죽음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복의 근원이요 모든 행복의 시작입니다.

※.『돈이 당신의 능력을 말합니다
그래도 오늘 이 시간에

하나님이 내 능력』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는 통로 수단들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첫 번째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고,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지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 때마다,
성경 공부할 때마다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을 때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 지시하는 것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순결하게, 거룩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힘있게, 용기 있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혜롭게 신령한 젖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합니다

두 번째는 “성례”입니다.
말씀은
우리가 글을 읽거나 듣는 것으로 끝나지만, 세례나 성찬은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고,
우리의 감각으로 경험을 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례를 통해서 우리가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그 말씀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어진 은혜라는 것을 확증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직접 온 몸과 마음으로 신앙고백으로 참여하는 것

세 번째는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강력하게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실 때에 우리 지성과 마음이 성령의 빛으로 비추심을 받고 우리의 마음을 여셔서 말씀과 성례가 은혜롭게 우리 심령과 골수를 찔러 쪼개며 들어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단순히 우리 지식만 동원된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큰 은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성찬을
받을 때에 우리의 손과 눈과 미각만 동원된다면 우리에게 은혜 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찬을 받을 때에 성령께서 비추시고,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성령께서
감동 감화하시면, 그 말씀과 성찬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1. 유월절 만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유월절이라는 명절이 있었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에 다 모여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명절인데, 애굽 사람의 장자가 모두 죽어 가는 중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음에서 생명을
구원 받았고, ②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 받은 것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애굽의 종살이를 하면서 도탄 가운데에 빠져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서 종살이에서 해방되고, ③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새 삶을 바라보고 살게 된 것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명절이 바로
유월절입니다.
유월절 명절은 그래서 생명의 구원,
종의 생활에서 자유와 해방,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소망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나간다(pass over) 빠스카
16세기에 네덜란드가 스페인의 식민지이었습니다.
그 때 독립 운동가들이 어느 지하 창고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 때 악명 높은 알바장군의 수색대들이 이집 저집을 수색했습니다. 마침 죽음이 찾아오고 있을 때
한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양을 잡아서 피를 그 집 대문에 쳐발랐습니다. 그때
수색대가 와서 이 집은 벌써 누가 와서 다 죽였구먼 하고 그 집은 뒤지지 않고 그냥 지나가 버렸습니다
찬송가 199장 1
주 십가가를 지심으로 죄인을 구속하셨으니 그 피를 보고 믿는 자는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가리라
2. 흉악한 죄인 괴수라도 예수는 능히 구원하네 온몸을 피에 잠글 때에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가리라
3. 심판할 때에 모든 백성 행한 일대로 보응받네 죄있는 자는 피를 믿게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가리라
4. 구주의 사랑 크신 은혜 보혈의 능력 의지하세 심판의 불이 내릴 때에 주의 진노를
면하겠네 내가 그 피를 유월절 그 양의 피를 볼 때에 내가 너를 넘어가리라

2. 최후의 만찬
그런데 이 유월절 명절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한 방에 앉아서 유월절 만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 만찬은 감격과 흥분의 즐거운 만찬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월절 기간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①가롯
유다의 배신과 그리고 한편 ②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은 모여서, 예수님을 잡아
죽일 음모
③.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고 누가 더 높은가 자리다툼하고 있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유월절 만찬이어야 하지만
12 제자들과 예수님이 함께 한
그 만찬 자리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이미 짙게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죽음과 이별의 두려움과 우울함이 가득 차 있을 수 밖에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더더욱이 제자들의 이해 부족으로 예수님은 답답하고 안타까울 수 밖에 없는 심정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개의치 아니하시고 『이후에는 알리라 이후에는 알리라』
하시면서 굉장히 긴시간 많은 말씀을 나누시고 제자들 발을 하나씩 하나씩 씻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어내 주시면서 이 것은 너희를 위해서 찢는 내 몸이다
잔을 따라 주시면서 이것을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죄사함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
약속의 피다.
벧전1:18-19 ,21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오늘 우리를 초대하신 하나님의 거룩한 성찬은
3. 예수님의 사랑의 표적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그저 죽는다는 것으로만 봤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그 외의 어떤 것을 생각할 수 있을 만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고 우울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무엇인지를 이 성찬 예식을 통해서 그림처럼 눈으로 보고 그리고 먹고 마시면서 명확하게 표현(연출)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미리 여러번 말씀해주셨습니다
①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②친구를 위해 죽으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너희를 친구라하겠다
③.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④.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⑤.내가 너희에게 주는 물은
⑥.내가 생명이요 부활이다 나를 믿는 자는
⑦.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가 곧 길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나눌 때에 떡과 잔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놀라웁게도 그것을 자신의 살과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바로 제자들에게 베푸는 사랑과 생명의 표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살과 피로 말씀하셨고
이제
내가 그것을 내 몸으로 먹고 마십니다.
내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접수? 먹고 마시겠다는 것은....빌1:20
이제부터는 자기 중심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육체가 떡과 빵이란 양식으로 살아지는 것처럼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생을 살겠습니다. 산 떡이신 주님을 인해서 내가 삽니다.
그래서 내가 이 떡을 받습니다." 이런 놀라운 고백을 내 행동으로 하는 것이
바로 성찬입니다.
나아가서 예수님의 성찬은
4. 죄 사함에 대한 약속의 표지
우리의 죄를 대속하셔서 인간의 죄를 사하시고 죄에서 구원하셔서 새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떡과 잔을 나누는 성찬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얻게 된다는 약속으로 주신 표지입니다.
성도는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내 자신이 죄에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약속으로 주어졌습니다.

내일 아침에 해가 뜨는 것보다 더 믿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 우리에게 더 크고 놀라운 것을 주시기 위해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는 생명나무를 주셨고, 노아에게는 무지개의 약속을
주셨고, 아브라함에게는 할례의 약속을 주셨고, 새 민족으로 출발시키실 때 이스라엘에게는 유월절의 약속을 주셨는데 이제 성만찬의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우리는 고백으로 받습니다. 날마다 고백으로 기념해야 됩니다.
성찬을 받을 때마다 ①. 죄용서함 ②. 모든 불의에서 깨끗이 씻음 ③. 성령충만을

5.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예수님께서 떡과 잔을 주시면서, ‘받아 먹으라’(26)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떡과 잔을 받아 먹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죄용서함을 받은 것이고 나아가 예수님과 연합되고 하나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친밀하게 교제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만 그 가운데 가장 강력한 방법이 바로 성찬입니다.
그 떡과 잔을 받을 때에 예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그 사랑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이 내 안에 내가 예수님 안에 하나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6.성찬은 또한 영적인 생명의 양식입니다.
성찬은 아주 감동적인 지울 수 없는 영감의 한 장면입니다.
책과 글이 없던 시절은 참으로 더욱 그러하였습니다. 성찬을 통해서 성도들은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그리고
견고하고도 풍성한 영적 생명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자연의 모든 질서는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습니다. 씨 뿌린 데서 열매를 얻습니다. 심지 않은데서 거둘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구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원인이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그 분이 날 사랑하셨습니다. 아니 주께서 시작하셨고 완성하셔서
내게 주시기만 했습니다. 그 분이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받을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방적입니다 이 살을 먹고 이 피를 마시라
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는다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주셨습니다. 받아서 먹기만 하면 생명을 억고 더 풍성히 얻는 것입니다.
거저 받았기 때문에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잔치 밖에 없습니다. 성찬은 잔치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면서 하는 말이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품군의 하나로 돌아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분은 품군으로 써줄 주인이 아니라 아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였습니다 잔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성찬은 잃어버린 생명을 되찾는 잔치입니다
성찬은 죽었던자가 다시 살아나는 생명과 은혜의 잔치입니다
세상을 다 정복하고도,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데도 아무 부족한 것이 없어보이는데도
여전히 무언가를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이 인간에게는 있습니다 공허와 허무가..
성찬의 잔치는 우리 성도들에게 잃어버렸다 다시 찾은 자신의 생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죽었던 내가 다시 살아난 부활의 감격을 갖게해줍니다.
높은 신분으로 살아도 죽고, 부자로 살아도 죽고, 멋지게 살아도 죽고, 죽음이 인생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성찬은 자신이 죽은 자가 아니요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았다. 생명으로 살고 생명을 향해 살고 생명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성찬은 생명잔치입니다.

그런가하면 거룩에의 잔치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따라
세상의 헛된 자랑으로 이기적인 인생을 삽니다. 그랬던 우리가 성찬을 통해서 주님께서 완성하신 거룩의 식탁으로 나아갑니다. 거기서 주의 거룩을 사모하고 주의 거룩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갈 결심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성찬을 받을 때에 성령께서 여러분들 가운데에 영감과 감동과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밝히 비춰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찬을 받을 때에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성찬을 받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성찬을 받을 때에 영생의 삶이 풍성해지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성찬은
홀로 받는 것 아닙니다. 영원히 천국에 함께 살 우리 형제, 자매들과 함께 영광의 식탁에 둘러앉아 떡을 뗄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구속받은
자녀들이 사랑을 함께 나누는 잔치입니다. 홀로가 아닙니다. 같이 나눕니다.
교회는 나 홀로가 아닙니다 교회는 여럿이 함께 한 식구로 모이는 곳입니다

찬송가 403장
어찌 찬양 안할까>

한 어머니가 아들의 전사(戰死)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용감하게 싸우다가 적탄(敵彈)에 쓰러졌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무리 애써도 슬픔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아아,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단 5분만이라도..."
어머니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를 듣고 천사가 와서 말했습니다.
"아들을 5분 동안 만나게 해주마.
그런데 몇 살 적의 아들을 만나보고 싶은가?
군인으로서 훌륭하게 싸우고 있는 아들인가?
수송선을 타고 쿠웨이트로 떠나는 아들인가?
학교 단상에 올라가 우등상을 타던 아들인가?
아니면 당신 품에 안겨 있던 갓난애 적의 아들인가?"

어머니는 생각하다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언젠가 그 애가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고 나한테 용서를 빌려고
뜰에서 달려오던 그 때의 아이와 5분만 만나게 해주세요.
그 애는 아직 어려서 너무나 낙심하고 있었지요.
땟국으로 얼룩진 얼굴에 눈물이 자국을 내며 흐르고 있었어요.
내 품으로 온 힘을 다해 뛰어 들어왔기에
가슴이 무척 아팠던 것을 기억하고 있답니다."

어머니가 가장 감동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들이 자기를 필요로 하고 있을 때의 경험이었습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할 때처럼 보람 있는 순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나에게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 없이는 살아갈 수 가 없습니다."
우리의 일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기억하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언제
어떤 모습일까요?

"아름다운 의존(依存)"이란 말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과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연인들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우리가 여러 가지 자세로 연출할 수는 있겠지만
주제는 하나 "아름다운 의존(依存)"
하나님과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
믿고 사랑하며 함께 걸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과 피를 마시게 되는 이 성찬 예식은
사람이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 앞에서
겸손하게 받는다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믿음의 예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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