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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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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08-01-13 17:50 조회3,4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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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라                            행1:1-14
새로 부임한 목사가 교인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목사가 다녀간 후에 남편이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내가 말했다."오늘 새로 오신 목사님이 다녀가셨어요."  "목사님이 뭐라 하셨는데?""목사님은 제게 묻기를. 이 가정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까?하시는 거예요. 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이 말을 들은 남편은 
 "아니, 그럼 당신은 우리가 점잖고 훌륭한 가문의 자손이라고 말하면 되잖아."
"저도 처음엔 그러려고 했지만, 목사님이 물으신 것은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아, 그러면 우리 식구들은 매일 기도하고 열심히 성경책을 읽고 있다고 그래야지.""그렇지만 여보, 그것도 목사님이 질문하신 것은 아니잖아요?"남편은 다시 말했습니다."그럼 당신은 우리 식구들이 매주일 항상 교회에 출석한다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단 말이야?" 
 "그것도 목사님께서  물으신 뜻이 아닌 것 같아요."
단지 그분은 "그리스도께서 여기 이 집에 거하시느냐"고만 하셨단 말이에요.
이 부부는 여러 날 동안이나
목사님이 물으신 이 심상치 않은? 물음의 의미가 무엇일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에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이 부부는 그리스도를  갈망하게 되었고,
지금 여기에 영원히 함께 하시는 부활의 주님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똑같은 질문을 드립니다여러분의 가정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십니까? 
여러분에게 그리스도가 계십니까?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어느 날 오후 온 집안은 조용하게 느껴졌습니다. 생명력이 있는 어떤 것이
떠나버린 것 같이 갑자기 주위가 죽은 듯이 조용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 전기가 나간 것입니다!
하루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우리들 생활의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고 그동안 익숙해졌던 일상생활이 휑하니 비게 될 것입니다. 
하루만 먹는 일을 중단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먹는 일로 메여있는지 알게 됩니다.
사람 입이 무섭다고 하는 말도 있습니다.
하루만 침묵해 보십시요. 다른 사람들의 말이 얼마나 잘 들리는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들 생활 속에 들와 있는지 우리가 알기 시작하면
우리는 야곱과 같이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28:16라고
외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임재에 대한 야곱의 이러한 인식 부족은 바로 우리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여기에 계시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감각이 생기 있게 살아난다면
우리들은 엄청난   변화들을 격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은 우리에 대한 그분의   가장 큰 선물이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특별한 체험들은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에 와 계신다는 사실을 아주 생생하게 알 수 있는 것이었죠마가의 다락방. 시내 산에서, 갈멜 산에서,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는 예배를 드릴 때,스데반이 순교할 때에..........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특정한 장소에서 특별한 시간에
한정되는 특별한 체험이 아니라 24시간 365일 일생의 문제입니다.
사람의 영혼과 생활 전체의 문제입니다. 
체험적 신앙은 아주 중요! 지식이나 사상이나 정신이나 철학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성의 영역을 꿰뚫고 나가면서 이성의 영역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체험적 신앙.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말은
상당히 제한 적인 범위에서 사용해야 합니다.태양의 표면 온도를 우리는 체험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일에
무슨 일을 하셨는지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어떤 계획들을 가지고 계시는지
우리가 믿고 그 믿음을 지켜갈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증거와 확신을 주십니다.
우리가 인생을 걸고 목숨을 걸 수 있을 만큼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충분한 영적인 체험을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예배란 것은 공식적인 시간의 공식인 예배만 예배가 아니라 생활 전체가 예배입니다. 잠자고 일하는 모든 일상 생활 자체가 예배입니다.
예배당만 거룩한 것이 아니라 가정도 거룩한 것이고 직장도 거룩한 것입니다.
사람은 예배하는 존재.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앞에 서는 것입니다.그러기에 떨림과 겸손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의 문화 속에는
예배를 황폐케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고속문화,  순간문화,  형식문화가 그렇다. 예배를 받으시는 분보다
예배자들의 요구가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이거나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거나
감정적으로 혹은 지적으로 치우침으로 영적인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또한 교회 밖에서 일상적인 개개인의 예배 생활이 부족하기 때문에 
성도들의 영혼이 메마르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우상인 금송아지  앞에서,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면 굿을 하고 있는 충격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하나님의 보여지고 들려지는 기적 , 구원, 능력, 인도하심 앞에서 어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들은 어쩌면 그렇게도 빨리 하나님을 떠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도 "이 백성이 속히 나를 떠나 우상을 만들고 섬겼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그들은 애굽의 우상문화를 벗어버리지 못하였습니다.스스로 신을 만들 수 있다는 이교적인 생각이 저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위하여, 자기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뛰놀 수 있는
자기들의 신을  자기들이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인간의 종교들입니다.우상숭배. 미신이나 이단에 빠지면 치유와 회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 신천지복음 방 → 신학원 초등, 중등, 고등반 → 시온 교회 성도로 체크카드가 발급이 됩니다. 
관리대상으로 철저하게 세뇌가 됩니다.①. 끊어내는 것 : 잘못됐다는 것을 아는 것. 한 번 발을 들여놓고 물들기 시작하면...
스스로 그것을 깨달아 알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②. 씻어내야 합니다. 세뇌된 것을 하나 하나 조목조목 공부하면서 씻어내야 합니다..
유물론적인 사회주의 사상에 깊이 빠지거나, 종교 다원주의에 빠지면
그러한 생각들이 왜 잘못되었는지 아주 분명하게
스스로 그 사상이나 교리의 오류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강요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③. 정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적응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건강한 자아형성과 영적으로 건강한 영혼으로 회복하기까지      시간과 훈련 사랑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전혀 예수님을 몰랐던 사람이
교회에 나왔다고 하루 아침에 무엇이 다 되 버린 것이 아니다. 양이 목자를 따라가는 것은 본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인 훈련의 과정을 통해서 자기치료와 회복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생각이란 강요될 수도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다 .
생각이야말로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기적도 있고 하나님의 능력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문제는 그런 능력이나 기적이 아니다. 임기응변이나 마술이 아니다.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그리고 그 만남이나 관계를 지속해 나가는 문제는
생각과 깨달음, 감동과 은혜, 확신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속적인
일생의 문제입니다. 한두번 은혜받았다고 다 된것이 아니다.
끊어내고 씻어내고 치유하고 회복하면서
하나님을 깊이 닮아가는 지속적인 변화가 일생동안 이어지는 것이다.하나님이 있는 사람.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단지 어떤 종교를 갖는 정도하고는 같이 이야기할 수 없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얼굴이 항상 내 눈앞에서 나를 바라보신다는 사실, Coramdeo !이것이 John Calvin이 일생토록 붙든 하나님 앞에서의 삶에 대한 인격적인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면전의식面前意識이 우리에게 진정한 담력과 성결을 가져다주게 되며
가장 정확한 자기발견의 길로 인도하게 되는 것이다.다윗은 "내가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라고 외쳤다. 베드로도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내가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4:19).라고 담대하게 외쳤다.루터는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Lord  I Stand Here.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마귀새끼들이 보름스 국회 기와장 수 만큼 많아도....바로 그 자리에서 화형을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자리에 나가면서도......
루터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그 자리에 서 있기를 원했습니다.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아니 그 분은 속지 않으신다.
☞.갈6: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사람과의 관계성을 가지다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들이 많은데
그 중에서 가장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은 부정직한 마음의 교제이다.
순전히 사기꾼들 마냥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현실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적인 방법으로서의 교제들이 너무 많다.
너무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마음들을 볼 때가 있다
우리들의 삶은 그저 그렇게 살고 가면 끝인 인생들이 아니다.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삶으로 이 세상을 마무리하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반드시 심판이 따르기 때문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9:27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사도신경 중에서
누가 살아 있는 자이고 누가 죽은 자입니까?
아들이-하나님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135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 시 119:135.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르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 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임재하심 속에서, 하나님의 면전에 서있습니까?
 
가인이 동생을 죽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빈 들판에서 죽였습니다.
정말 아무도 없는 들판이었습니까?
아니면 가인에게는 하나님의 임재같은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린 것입니까?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싸인 가인에게는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린 것처럼 하나님을 철저하게 경외하던 다윗은
남의 아내를 데리고 궁중의 밀실에서   통정했습니다.
치밀어 오르는 욕정 앞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많은 세월을 인내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살아왔던 다윗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애굽에 도망갔을 때 아무도   위협하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자기 아내를 누이 동생이라고 속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토 일가친척을 떠나는 용단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객지의 까닭 없는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 현존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의 임재하심 속에서 살아가는 영적인 감각이 무디어지면
우리들이 아무리 선교와 봉사 그리고 섬김의 행위를 아름답게 행한다 하더라도
우리들도 역시 치밀어오르는 감정 앞에서, 욕정 앞에서, 두려움 앞에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 시95:7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프랑스의 샤를르 푸코라는 군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카톨릭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하라 사막에 들어가 원주민들에게 선교했습니다.
그분이 쓴 <사하라의 불꽃>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쉽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까?
그런데도 왜 그리스도인들이, 왜 목회자들이 현실적인 삶 속에서
성경과 전혀 동떨어진 행동을 합니까? 그 순간 그 자리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대한
영적인 감각을 가지지 못하기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을 말하는   만큼
그 사실을 내가 느끼며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모든 경건은  현존자 되신 하나님께 집중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과 진리를 묵상하며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들어가면서
<하나님의 임재>로 옷을 입듯이 하는 것입니다. 예 옷을 입듯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면 소망 없는 나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해질 것입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3:6하나님을 인정한다의 의미는 임재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때 곤경에 처합니다.
그러면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믿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구나"하고 낙심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분은 당신 곁에 항상  임재하십니다.
당신의 처지를 아시고, 당신의 문제를 맡아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임재를 당신이   인정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십시오. 그리하면 그분의 인도를 확신할 것입니다.
그것이 "범사에 그를 인정하는것"입니다. ☞. 잠5:21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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