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신앙

우리 주님은 겸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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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10-03-08 16:42 조회3,3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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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겸손 마태복음11:28-30

마른 나무 가지들을 봅니다. 무슨 소식들을 가지고 올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느다란 가지에 벌써 노란 소식을 알리는 개나리는 보았습니다
목련은 벌써 몽우리 머금고 있는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화사한 꽃을 터뜨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때가 이르면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줄 것을 알기 때문에
화내지 않고 종용히 기다리는 기쁨을 간직하며 그 옆을 오가고 있습니다.
봄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는 듯합니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기운도 곧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무거운 옷을 벗고 반팔차림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말씀을 수 없이 하십니다

잠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잠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11: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3:34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시149:4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시147:6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러뜨리시는도다

그러나 교만한자는 하나님을 적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일이 됩니다
잠15:25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잠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잠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21: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잠21:24 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잠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마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멍에는 크고 작은 십자가들입니다.
보기에는 무척이나 무겁고 힘들어보여도 정작 마음먹고 어깨에 메면 그렇게
무겁지 않고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십자가는 없습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겸손히 주님의 멍에를 메고 갈 수 있는 믿음과 은혜를 주십니다
이 믿음과 은혜라는 것이 겸손해야 받을 수도 있고 지속적으로 겸손해야 이 믿음과 은혜를 지켜갈 수도 없습니다. 初心 처음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많은 신비와 기적으로 가득하지만 온유하고 겸손한 인간성을 가질 때 온전해집니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는 다 담을 수가 없는 신비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신앙이 신비주의에 빠지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성과 경험 시간과 공간의 세계를 넘어서면서도 가장 보편적이고 인간의 본질적인 경험과 가치를 바탕에 가지고 있기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은 인간의 윤리. 도덕을 넘어서는 신비와 놀라움으로 가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완전하게 윤리적이고 도덕적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이 그러하시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도 겸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겸손하시다는 말 자체가 사실 불완전한 표현이지만.....그렇다
하나님의 자기 비하 하나님께서 한 없이 자신을 스스로 낮추시는 모습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십니다. 말구유에 가난한 자의 아들로 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섬기십니다. 세리와 창기들과 병들고 귀신들린 자들의 친구
제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으시고 저들의 발을 씻기시고 자기 살을 먹고 자기 피를 마시라고 하십니다.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람이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를 친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자원하여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처리하시는 방식이 원칙과 질서를 지키시고 정당하게 하시고자기 희생으로 하시고 그리고 겸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 마음은 엿장수 마음이 아니다

본을 보이시고 동기부여를 하시고 기다려주시고 스스로 일어 설 수 있도록 강하게 해 주셨습니다. 누구를 윽박지르거나 강요하거나 비난하시지 않습니다. 그런다고 엘리트 교육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수한 인재들만 뽑아서 하신 것이 아니다
믿음이 있는 자들은 누구나 예수님에게 다가올 수가 있습니다. 병든 자도 세리도 가난한 자도 못 배운 자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보고 기적을 체험하고 그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변화됩니다. 베드로를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로 세우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처음이고 시작인데 정말 잘 해야 하는데...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세우셨다.
이것이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입니다. 방식입니다.
지나가는 배들을 잡아다가 자기 침대에 눕혀놓고 길면 잘라버리고 짧으면 잡아당겨서 늘이고 자기와 같은 크기가 아니면 죽거나 병신이 되어야 합니다. 독재자입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각자가 자기 할 일이 있고 개성을 존중하고 재능보다는 사람의 자유. 자율성과 존엄성을 지켜줄 줄 알고 다수결로 결정을 하더라도 소수 의견을 존중하고 귀 기울이고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통합할 줄 아는 것이 민주정치입니다.
내편인가 네 편인가 어느 편인가가 중요하지 않고
어떻게 어떤 가치를 가지고 일하느냐 하는 행동이나 판단의 방식이 중요합니다.우리는 서로에게 예의와 겸손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예의.매너입니다
禮儀예의
미국 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어느 날 그의 집에 블란서 장군이 방문했다.
한참 음식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노예가 들어와 좋은 시간이 되시라는 인사를 했다. 그런데 이 말을 듣자마자 워싱턴이 일어나서 그 노예에게 정중히 답례를 했다. 그 장면을 본 블란서 장군이 궁금해서 물었다.
"아니 왜 집안의 노예에게 일어서서 인사를 하십니까?" 워싱턴의 대답은 이랬다.
"내가 노예보다 예의가 없는 사람이 되면 되겠습니까?"
아무나 워싱턴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매너가 이렇게 중요 합니다.

성 어거스틴(Saint Augustine, 354~430)에게 어느 날 한 제자가
"선생님! 크리스천들에게 최고의 덕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은 즉 스승이 답하기를
"겸손이니라" 하였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겸손. 겸손을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린다아무리 심오하고 깊은 지식을 가졌어도 아무리 굉장한 업적과 공로가 있어도
아무리 뛰어난 재능이 있어도 그리스도인은 겸손을 잃어버리면 마귀가 역사합니다

제자가 다시 묻기를 "그러면 겸손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물은 즉 답하기를 "교만이니라" 하였다. 제자가 또 다시 묻기를
"선생님 교만은 무엇입니까?" 물은 즉 스승이 답하기를
"나는 지극히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였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잊어버리면 교만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죄인.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가 필요한 죄인.
한 순간도 어떤 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죄인.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어거스틴이 평생에 잊지 않고 기억하려는 성경구절입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하든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든지
목사가 교인들에게 은혜받을 준비가 부족하다고 은혜받을 그릇이 안된다고...
한 주일에 한 번 예배당에 오면서 그 예배시간 하나를 맞추지 못하고
그런 정신 상태로 무슨 은혜를 받고 무슨 축복을 받겠냐?....
교인들하고 싸우면 일이 더 악화됩니다. 먼저 자신이 더 준비하고 자신을 고치고
더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임하시도록 교인들을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조금이라도 더 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누구를 탓하지 말고 겸손하게 내 탓입니다
누구한테 그런 말하지 말고 속으로만 자신과 하나님한테만 그렇게 말하고 말 없이 행동으로 자신이 먼저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교인들 보고 다 내 탓이지....그러면서 분위기 다운시키지 말고 생기를 불어 넣어야지 바람빼고 다니면서 바보같이 하면 안됩니다....

봄 같은 마음이 겸손한 마음
봄이 오면 만물이 생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일을 겸손하게 하셨습니다
영생을 주시고 천국을 주시면서도 도살 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겸손 이것이 예수님의 매력이기도 했습니다.
기적을 행하시는 능력만이 아닙니다. 겸손히 섬기시는 모습이 카리스마입니다.

독선과 고집 무례 편견과 오해 그리고 욕심
이런 잘못된 인간의 본성들이 신앙생활의 독이 됩니다
믿음만이 제일이고
충성하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열정을 갖고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충성하고 어떻게 헌신하고 어떻게 봉사하고 열정을 가지고 어떻게 일하느냐?
목사님들 목회하신다. 정말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하신다.
문제는 어떻게 목회하시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업. 회사 경영이 아니다
사람들 많이 모아서 큰 교회 만들면 만사가 덮어지고 성공한 목사 딱지가 붙는다.
겸손하게 덕을 끼치는 신앙생활이 중요하다.

생명 바치고 목숨 바치고 재산 다 바치고 순교자의 믿음가지고 죽으면 죽으리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가고 소돔같은 거리에도 가고 주님명하시면 어디든지 가오리다
이 열정의 불을 꺼뜨리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고 정말 중요한 영적인 싸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내 안에 있는 죄의 본성과 싸움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그 목적이 구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수행종교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수행종교 이상으로 자신을 먼저 다스려야 합니다.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자기 수행의 결정적인 표지는 겸손입니다.
겸손함 속에 자유가 있고 넉넉함 관용과 너그러움이 있습니다
따뜻함과 힘이 있습니다. 겸손함 속에 맑은 지혜와 영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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