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것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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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08-01-21 20:46 조회3,37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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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것도 즐겁다
서로 일하는 사무실이 가깝다는 이유로 업계선배 K씨와 가끔씩 점심을 함께 한다.
특별한 용무가 전제된 회동이 아니기 때문에 늘 그 자리는 서로 담담하다.
그러기를 벌써 여러 해째 해왔다. 한 때는 저녁 시간에 만나 고기를 구워 가며
허심 탄회한 소주잔도 가끔씩 나눴으나, 이즈음엔 내가 웬만하면 술자리를 피하는 처지가 된
까닭으로 언제부턴지 저녁의 술 약속이 그만 점심 약속으로 슬그머니 바뀌게 된 것이다
원래 내가 술이라고 하면 어떤 자리에서나 둘째를 서러워할 정도로 고래 였다는 사실을
그도 잘 알고 있기에 스스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나의 금주변절에 대해 은근히
의아해 하고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물론 그는 아직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술친구들과는 달리,
어느 날 무슨 얘기 끝에 내가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섬기기로 했다는 고백을 한 바 있고,
별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 때 만나도 자리가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다. 보다 바람직하기로 말하자면 그도 나처럼 흰 깃발로 하나님께 항복하는 중이어서
어느 때는 순간적으로 전도를 한번 시도해 볼까하는 충동도 없지 않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에게 신앙을 권하지 못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분의 신앙 여부와는 관계없이 예나 지금이나 나보다 열 배는
더 착한 사람으로 믿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신앙도 아직 변변치 않은 주제에 누가 누구에게 감히 전도를 한담?
쉰이 넘은 나이임에도 그 마음 순수하기가 마치 소년과 같고,
사는 모양이 어찌나 맑은지 나는 감히 그에게 전도를 해볼 꿈도 못 꾸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 다니고 안 다니고 이전에 그 마음 선량함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르실리
없다는 생각마저 내 마음 한 구석에 있다.
그는 등산광이다 주일이면 어김없이 조그만 배낭을 하나 둘러매고 근교의 산행을
빼놓지 않는단다. 산을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는 그가 등산말고는
그 어떤 취미도 달리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입증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술 마시는 일 말고는 그 어떤 취미 생활도 할 줄 모른다는 사실과
사뭇 흡사한 구석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따금 우리가 서로 만날 때는 그 첫인사가 으레 불문율처럼 정해져 있었다.
"요즘도 산행 여전하시죠?" 가 내 인사. 그러면 그는 내게 이렇게 묻는다. "요새도 재밌는 술자리 많이 합니까?"
내 주위에 그야말로 못 말릴 술친구들이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은
이미 소문이 나 있던 터이다.
그러던 게 이제 그의 인사말 내용이 달라져야 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내가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술을 끊어 버린 탓이다.
바로 그 K씨를 엊그제 또 만나 점심을 하게 되었다.
정해진 순서대로 내가 물었다. "요즘도 산행 재미 좋으시죠?" 이에 그가 내게 묻는다. "아참, 이형은 술 끊었댔죠. 그래, 요샌 무슨 낙으로 삽니까?" 그러자 내 입에서는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엉뚱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하하, 요샌 뭘 하든지 다 즐겁고 재밌습니다 숨쉬는 것도 즐겁습니다." 무심코 말을 하고 난 내 자신도 쿵 하고 놀랐으니
상대방의 의아해 하는 표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숨쉬는 것도 즐겁다, 숨쉬는 것도 즐겁다‥‥
이 밝은 대명천지에 멀쩡한 사람이‥‥
그야 아무튼, 요컨대는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것을 설명할 길이 묘연했던 것이다.
흰 깃발로 하나님께 나아와 모든 것을 다 항복해 버린 이후,
내 마음 거울 속에 예수님의 사랑 모습이 비치기 시작한 이후부터
내내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숨쉬는 것마저 즐거운 내 기분과
숨쉬는 매 순간 순간마다가 다 감사하고 즐겁기만 한 내 생활의 변화를
과연 이 세상의 어떤 말로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것을 설명하기에 합당한 어휘를 진정 갖고 있지 못하다.
그냥 다만 "즐겁다"는 말밖에 다른 말로는 어찌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그냥 즐거운 것을 어찌 한단 말인가. 새벽에 일어나 창을 열면 아파트 옆 언덕,
아카시아 숲 그늘로 빗금처럼 비치는 햇살모양부터가 우선 즐겁다.
그 숲속에서 지저귀는 바지런한 아침 새소리는 또 얼마나 즐거운가.
가벼운 운동화발로 대지를 밟고 뛰는 조깅의 숨소리가 왜 즐겁지 아니할 것이며,
때 맞춰 세끼 밥을 먹는 즐거움이 왜 예사롭다 할 것인가.
헌 자동차 주제에 고장이란 모른다는 듯 출근길을 털털거리며 잘도 달려줌이 고맙고,
내 일터인 조그만 작업실에 앉아서 내게 오는 또 하루치의 할 일이 주어져 있음이
또 얼마나 고맙고 즐거운 일인가.
어줍잖은 세상살이,
그 복잡한 바둑판 위에 어지러이 널려진 무수한 고민의 바둑알들은
이제 더 이상 골치 썩어 가며 내가 맡아서 두어야 할 몫이 아닌 것이다.
모든 운명의 바둑알들이 놓여지는 위치와 순서와 그 운행의 결과를
명인 중의 왕이시오 국수 중의 으뜸이신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 수 앞을
멀찍이 다 내다보시고 알아서 처리해 주실 터인즉,
내 알량한 급수로 어찌 그 난마처럼 얽히고 꼬인 판을 풀어나간단 말인가.
내가 할 일은 오직 주어진 삶 앞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내 비록 골프를 가지 못하고 등산을 가지 못하고 낚시를 가지 못하나,
홀로 온종일 타자기 앞에 쪼그리고 앉아 일하면서도
숨쉬는 매 순간 순간이 오직 즐거울 뿐인 것이다.
내 말이 믿어지지 않거든
저 위대한 휠체어 천재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를 보라.
그는 스스로 앉거나 서거나 말하거나 걷거나 하지 못한다.
숨조차도 제 힘으로는 쉬지 못하여 가슴에 구멍을 뚫고
어렵사리 기계의 힘을 빌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직껏 허락해 주신 건강한 허파를 통해
마음껏 숨쉴 수 있음이 어찌 즐겁고 감사하지 아니한가.
하나님의 그 사랑을 생각하면, 나는 숨쉬는 것도 즐겁다. 옛날처럼 술 마시지 않아도 그냥 맹숭 맹숭한 채로 다만 즐겁다.
카피라이터 이만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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