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시는 예수님 - 하나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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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준봉 작성일07-01-01 23:26 조회3,57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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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 요한 계시록 22:10-21.
다시 오시는 예수님 - 하나님
산밑에 상여를 태우고 있는 사람들...아마도 가족들의 한사람을 묻고 돌아오는 유족들. 묻고 묻히고...........사람들에게 죽음이 들어온 이후로우리는 그 일을 아주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계속해오고 있다.
자신이 죽음의 문턱 앞에 가본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실체를 생생하게 알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 종말. 마지막이란 말은 그 실체를 가지고 우리들 삶의 현실에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현란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일상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무수한 죽음의 모습들은 그림자처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는 수없이 볼 수있습니다. 세상의 끄트머리에 와있다는 인식은 이제 개인의 실존차원뿐 아니라문명비판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어 있습니다. 지구 자체가 영원하기는커녕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살아갑니다. 상식이 되었습니다. 일상에 대한 삭막함과 죽음에 대한 예감이 집과 거리와 사무실 등 일상의 곳곳에서 짙게 까려 있습니다.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늘상 일어나는 일상사로 우리의 곁에 있습니다.삶의 흔들리지 않는 지점을 찾으려는 노력. 그 노력의 벼랑끝에서 만난 막막함.삶과 죽음의 관계. 많은 사람들은 이 삶과 죽음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끝을 모르는 마지막을 안고 어딘지 모르게 하나 둘씩 떠나갑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사실 모르고 살아갑니다.내일이 있는 것인지. 다음이 있을까? 다른 세상이란 것이 있을까?이 문제를 속시원하게 말해준 분은 예수님말고는 내게 안 보인다.자기도 모르는 뜬 구름잡는 이야기는 나에게 아무 흥미가 없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도 만만치 않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일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하루의 마지막은 차라리 쉼을 위해 집으로 가는 시간으로 발걸음이 무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년의 마지막은 그것이 아닌 것 같아서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이렇게 인생이 내리막길로 가는 것인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Carpe Diem이란 말이 있습니다Seize The Day! - 이날을 붙잡아라. Enjoy The Present! - 오늘을 즐겨라.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참 괜찮은 좋은 말입니다. 참 좋은 생각이요 현실에 활력을 불어넣는 영감입니다그러나 종말을 잊어버린 현실의 화려함은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되는 것입니다방향감각을 상실한다는 것은 곧 생의 방황입니다. 종말을 잊어버린 현대인들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인사는 "Maranata였습니다만날 때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인사를 주고 받았다. "마라나타 : 주께서 곧 오십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가 그대로 쓰면서 번역하지 않아도 그 뜻을 알 듯이마라나다는 일상의 언어였습니다. 종말을 이미 안고 살아가는 성도들이었습니다이러한 종말에 대한 긴박감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깨어있는 사람으로책임있고 능력있게, 자기의 인생을 불태울 수 있는 열정을 가지고 삶을 살게 했던 것이다. 마라나다를 잃어버린 체 아멘 할렐루야만 외치면 어리석어집니다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빠질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입니다
유럽에 가면 지금도 수도원이 많다. 그 수도원이란 곳은 참 놀라운 것 두 가지 있다. 가보지 않고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다. 하나는 수도원이라는 데는 한 번 들어가면 나오는 일이 없다. 우리처럼 들어가서 기도 많이 하고 은혜받고 복받고 내려오고, 언제든지 또 다시 들어가고 다시 나오고 하는 게 아니다. 거기 들어갈 때에는 호적을 지우고 들어간다. 한 번 들어가서는 끝나는 것이다.거기서 죽는 것이다. 감옥처럼 만들었다. 한번 들어가서 하늘나라로 직행하고 마는 것이다. 그게 수도원이다. 정말 종말론적인 곳이다. 또 하나는, 그러면서도 계속 아무 바램도 소원도 없이 감사하는 곳이다. 행복한 곳이다. 그래서 어느 수도원에 써 붙여졌다.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Today is the happiest day for us.) - 인사를 하니까 "오늘은 행복한 날입니다"하고 인사를 받았다. 왜? 내세를 환하게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게 바로 수도생활이라는 것이다. 죽음 앞에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다. 집으로!세상이라는 인생의 허망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바로 천국에 들어가고 천국에 들어 온 것처럼 사는 생활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했습니다. 이미 죽었다고 했는데 또 날마다 "날마다 죽노라"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날마다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매일 죽노라, 매일 죽노라 - 왜? 이것이 매일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 때 로마의 삼두 정치의 한 사람이었던 폼페이우스는 씨이저와의 대결에서패 한 후 그가 지배하던 로마 판도 안에서는 숨을 장소가 없었다. 부하 몇을 데리고 낮이면 숨고 밤이면 도망가서 소아시아에 있는 애인 코네리를 데리고 그는 이집트로 다시 향했다.생각해 보면 억울하고 서렵기 그지 없었다. 대 정치가요 대장군이던 자신이 도망가는 신세가 되다니.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을 진압했고 지중해의 해적을 소탕한 자신이 아닌가? 대 로마 제국을 지배하던 종신 집정관이 아닌가? 전날 이스파니아, 시리아를 정복했고 개선장군으로 입성하던 때의 만세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이 아닌가? 과거 이집트를 도와 준 일이 있으므로 그 인연을 믿고 이집트로 가는 길이었다. 거기서 다시 기회를 보자는 속샘이었다. 그는 베르샴에 배를 세우고 이집트 정부에 자기가 왔음을 통지하였다. 이집트 정부에서는 만약 그를 환영하면 씨이자의 적이 되고, 만일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면 후에 그가 다시 세력을 얻을 때는 불리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폼페이우스를 거짓으로 환영하여 죽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게됩니다.폼베이우스 일행을 맞으려오는 배에 탄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있었다. 아기를 안고 불안스럽게 바라보던 아내 코네리는 남편의 소매를 당기며 이집트 배로 내려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작별의 키스를 하고 이집트 배로 내렸다. 거기에는 옛날 자기의 부하였던 한 로마의 사관이 타고 있는 것을 보고 반가와서 "자네는 옛날 나를 따르던 부하가 아닌가?" 하니 그 사관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관은 해안에 상륙하자 번개같이 폼베이우스를 찔려 죽이고 동행하는 그 부하도 죽였다. 그는 폼베이우스의 목을 잘랐다. 가족들은 해안으로 가서 목 없는 시체를 안고 통곡하다가 화장하여 유골만 가지고 돌아왔으니 BC48년 9월 28일, 그의 나이 59세였다.뒤를 쫓아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한 가이사르 앞에는 폼베이우스의 머리와 원수의 도장인 반지가 운반되었다. 씨이자는 눈물을 흘렸다. 안토나우스와 가이우스의 싸움.옛날의 동지요, 사랑하던 사위였기 때문이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시저도 역시 비슷하게 또 당하고 역사는 반복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 시 39:4-7.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 73:25-2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 사 51:6
바벨론 페르시아 아수르 제국을 배경으로쓰여진 다니엘서를 보면 느브갓네살, 벨사살, 아하수에로, 다리오 고레스등..하늘의 임금이 되시는 하나님 발에 뭍은 먼지만도 못한 존재들
육신의 감각이란 것도 사실은 호르몬의 분비작용이요 신경세포의 작용일 뿐이다.거기다 인생의 낙을 다 건다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 인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3:16 -17
일본 히로시마에 가서 원폭 피해의 참상을 보는 자마다 그 당시의 참혹함을 상기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더욱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은 원폭의 희생자가 갑자기 생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기 전에 몇 번이고 경고를 했다. 작은 쪽지, 큰 전단등을 경고문으로 히로시마 전역에 뿌렸던 것이다. "히로시마에게 경고한다! 모든 시민은 8월 6일 아침 8시까지 50리 밖으로 대피하라! 투하되는 폭탄은 신형 원자폭탄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우리가 이기고 있는데..........미친놈들. 무시하기도 했고 비웃기도 했다. 미국이 지는 것을 은폐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성실성을 믿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피신을 했을 뿐이다. 결국 때가 되어 서쪽 하늘에 작은 점하나가 생기더니 점점 커져 다가온 비행기는 높은 하늘에서 폭탄 하나를 떨어뜨리고 갔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그 폭탄은 순식간에 3초만에 30만이 타 죽었다. 일본은 죄 값을 치뤘다. 그러나 히로시마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 1차적이 원인은 그들이 그 「경고문」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실성을 믿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천년을 하루 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 가라지를 다 뽑아버리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외치는 메시지. 대 자연의 이상을 통한 경고.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비행기가 진주만을 습격하였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어느 정도 짐작은 하였지만, 일본이 미국을 공격해 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하고, 더우기 그 날따라 주말인 까닭에 모두 술을 마시고 댄스 파티를 즐기며 놀았다그리고 아침까지 잠에 취하여 있었다. 바로 그 때 일본 항공모함으로부터 수 많은 비행기가 진주만을 향해서 공격을 개시하였다.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다. 모두 자고 있었다. 그런데 레이다 조종을 연습하던 어떤 견습병이 레이다를 보니까 태평양 쪽에서 벌떼같이 수 많은 점들이 날아오는 것이 보여 재빨리 상부에 연락을 취했더니, 응답이 오기를 "그것은 아마 아군의 연습기일는지 모르니 관계없다 "고 묵살해 버렸다.마침내 이른 새벽, 무수한 일본기들이 잠을 자고 있는 진주만을 폭격했다.눈뜰 사이도 없이 모두 다 기습을 당하였는데 진주만에 정박 중이던 기함 애리조나호는 단 십분만에 격침되었다. 그 속에 타고 있던 수병 천 이삼백명도 그대로 물 속에 수장되었다.
세상에 갑자기 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미 예고된 일일뿐입니다자기 욕심과 교만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만 모를 뿐입니다. 세상에 눈이 어두워 방심한 사람이 놓치는 것입니다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자기 영혼에 대하여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종말이란 언제나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 이미 들어 와 있습니다.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有心하리로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 전 7:4성경이 말하는 종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가짜도 있습니다. 너무 진짜와 똑 같다. 그리고 그 가짜가 아주 많습니다진짜는 하나이지만 가짜는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은 가짜 때문에 진짜가 가짜 취급받는다. 진짜를 아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명품과 똑같은 짝퉁. 예 예수님 다시 오십니다. 휴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1999년 시한부 종말론자들과 같은 그런 휴거는 아닙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 - 계 1:4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 1:7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계 1:8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 계 1:17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 계 2:8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 계 21:6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 계 22:13
요한 계시록에는 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죽었다가 살아나시고 영원히 살아계신분 . 장차 오실 분이란 단어가 반복됩니다성경의 종말은 그냥 끝났다. 끝이 있다하고 마는 것이라면 하나마나 한 말입니다그러나 성경의 종말은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날이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새 생명의 시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내세가 오는 세상이 있습니다
성경에 좀 이상한 말이 있습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전 7:1건강하고 살아 있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병들고 죽은 것이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파다닥하고 생기가 넘치는 물고기. 짐승들의 부르짖고 싸우는 모습도 살아있는 한 모습으로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생명이란 것이 그렇게 좋습니다.그런데 생명의 탄생보다 죽음이 더 낫다니.........죽음은 거룩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문에 불과합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 시 116:15
세 살 된 아이의 할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근처 병원으로 실려 가서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장례 후 몇 주가 지난 뒤 그 아이와 그 가족들이 차를 타고 그 병원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그 아이는 병원을 가리키며 엄마 엄마 "천국이 저기 있어요."할아버지 저기 가셨어요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그 병원으로 가셨기 때문에 아이는 거기가 천국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천국에 대한 아이의 순진한 생각은 엄마로 하여금 천국을 아주 실제적으로 느끼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그 아이에게 천국이 바로 거기에 있는 병원인 것처럼 사실은 더 생생하게 천국은 저기 있는 것입니다 한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시면서 만물의 마지막 결국이 어떻게 되는가? 또 내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시고 그 다음을 보실 수 있는 시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하나님」은 죄인들의 친구로 오셨고 죄인의 친구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친구들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시기 위해서 영광의 주님으로 다시 오십니다. 마라나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신약성경의 마지막 계시록 22:20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 재림에 대해서 300번 이상 언급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이 사실은 명백합니다. 매일 매일 우리는 이 결정적인 순간을 향해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역사와 그 시간은 이미 그 종말의 순간을 향해서 count down에 들어갔습니다오늘이 바로 그 날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이 어느 순간에라도 다시 오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의 축복 받은 소망이요 위안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18 ; 5:11 ; 디도서 2:13). 자기 영혼에 대하여 준비되고 깨어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준비하십시오! 주님은 오십니다! 시간의 진정의 의미를 아는 것이 연말과 연시의 의미입니다그것이 한해의 마지막에 서서 새 해의 시작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생각하는 송구영신.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 벧후 3:14
다시 오시는 예수님 - 하나님
산밑에 상여를 태우고 있는 사람들...아마도 가족들의 한사람을 묻고 돌아오는 유족들. 묻고 묻히고...........사람들에게 죽음이 들어온 이후로우리는 그 일을 아주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계속해오고 있다.
자신이 죽음의 문턱 앞에 가본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실체를 생생하게 알 것이다 죽음의 그림자. 종말. 마지막이란 말은 그 실체를 가지고 우리들 삶의 현실에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현란하고 풍요로워 보이는 일상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무수한 죽음의 모습들은 그림자처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우리는 수없이 볼 수있습니다. 세상의 끄트머리에 와있다는 인식은 이제 개인의 실존차원뿐 아니라문명비판의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어 있습니다. 지구 자체가 영원하기는커녕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살아갑니다. 상식이 되었습니다. 일상에 대한 삭막함과 죽음에 대한 예감이 집과 거리와 사무실 등 일상의 곳곳에서 짙게 까려 있습니다.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늘상 일어나는 일상사로 우리의 곁에 있습니다.삶의 흔들리지 않는 지점을 찾으려는 노력. 그 노력의 벼랑끝에서 만난 막막함.삶과 죽음의 관계. 많은 사람들은 이 삶과 죽음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끝을 모르는 마지막을 안고 어딘지 모르게 하나 둘씩 떠나갑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도 사실 모르고 살아갑니다.내일이 있는 것인지. 다음이 있을까? 다른 세상이란 것이 있을까?이 문제를 속시원하게 말해준 분은 예수님말고는 내게 안 보인다.자기도 모르는 뜬 구름잡는 이야기는 나에게 아무 흥미가 없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만이 아니라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도 만만치 않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일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하루의 마지막은 차라리 쉼을 위해 집으로 가는 시간으로 발걸음이 무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년의 마지막은 그것이 아닌 것 같아서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 갈수록 이렇게 인생이 내리막길로 가는 것인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Carpe Diem이란 말이 있습니다Seize The Day! - 이날을 붙잡아라. Enjoy The Present! - 오늘을 즐겨라.Make your lives Extraordinary! -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참 괜찮은 좋은 말입니다. 참 좋은 생각이요 현실에 활력을 불어넣는 영감입니다그러나 종말을 잊어버린 현실의 화려함은 방향감각을 잃어버리게되는 것입니다방향감각을 상실한다는 것은 곧 생의 방황입니다. 종말을 잊어버린 현대인들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인사는 "Maranata였습니다만날 때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인사를 주고 받았다. "마라나타 : 주께서 곧 오십니다" 아멘, 할렐루야 우리가 그대로 쓰면서 번역하지 않아도 그 뜻을 알 듯이마라나다는 일상의 언어였습니다. 종말을 이미 안고 살아가는 성도들이었습니다이러한 종말에 대한 긴박감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깨어있는 사람으로책임있고 능력있게, 자기의 인생을 불태울 수 있는 열정을 가지고 삶을 살게 했던 것이다. 마라나다를 잃어버린 체 아멘 할렐루야만 외치면 어리석어집니다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빠질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입니다
유럽에 가면 지금도 수도원이 많다. 그 수도원이란 곳은 참 놀라운 것 두 가지 있다. 가보지 않고는 깨닫기 어려운 것이다. 하나는 수도원이라는 데는 한 번 들어가면 나오는 일이 없다. 우리처럼 들어가서 기도 많이 하고 은혜받고 복받고 내려오고, 언제든지 또 다시 들어가고 다시 나오고 하는 게 아니다. 거기 들어갈 때에는 호적을 지우고 들어간다. 한 번 들어가서는 끝나는 것이다.거기서 죽는 것이다. 감옥처럼 만들었다. 한번 들어가서 하늘나라로 직행하고 마는 것이다. 그게 수도원이다. 정말 종말론적인 곳이다. 또 하나는, 그러면서도 계속 아무 바램도 소원도 없이 감사하는 곳이다. 행복한 곳이다. 그래서 어느 수도원에 써 붙여졌다. 오늘이 가장 행복한 날입니다(Today is the happiest day for us.) - 인사를 하니까 "오늘은 행복한 날입니다"하고 인사를 받았다. 왜? 내세를 환하게 바라보고 있으니까. 그게 바로 수도생활이라는 것이다. 죽음 앞에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사는 것이다. 집으로!세상이라는 인생의 허망함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이 아니라 오늘 바로 천국에 들어가고 천국에 들어 온 것처럼 사는 생활입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했습니다. 이미 죽었다고 했는데 또 날마다 "날마다 죽노라"하고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을 날마다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매일 죽노라, 매일 죽노라 - 왜? 이것이 매일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 때 로마의 삼두 정치의 한 사람이었던 폼페이우스는 씨이저와의 대결에서패 한 후 그가 지배하던 로마 판도 안에서는 숨을 장소가 없었다. 부하 몇을 데리고 낮이면 숨고 밤이면 도망가서 소아시아에 있는 애인 코네리를 데리고 그는 이집트로 다시 향했다.생각해 보면 억울하고 서렵기 그지 없었다. 대 정치가요 대장군이던 자신이 도망가는 신세가 되다니.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반란을 진압했고 지중해의 해적을 소탕한 자신이 아닌가? 대 로마 제국을 지배하던 종신 집정관이 아닌가? 전날 이스파니아, 시리아를 정복했고 개선장군으로 입성하던 때의 만세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이 아닌가? 과거 이집트를 도와 준 일이 있으므로 그 인연을 믿고 이집트로 가는 길이었다. 거기서 다시 기회를 보자는 속샘이었다. 그는 베르샴에 배를 세우고 이집트 정부에 자기가 왔음을 통지하였다. 이집트 정부에서는 만약 그를 환영하면 씨이자의 적이 되고, 만일 그를 환영하지 않는다면 후에 그가 다시 세력을 얻을 때는 불리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폼페이우스를 거짓으로 환영하여 죽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하게됩니다.폼베이우스 일행을 맞으려오는 배에 탄 사람들이 무장을 하고 있었다. 아기를 안고 불안스럽게 바라보던 아내 코네리는 남편의 소매를 당기며 이집트 배로 내려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작별의 키스를 하고 이집트 배로 내렸다. 거기에는 옛날 자기의 부하였던 한 로마의 사관이 타고 있는 것을 보고 반가와서 "자네는 옛날 나를 따르던 부하가 아닌가?" 하니 그 사관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관은 해안에 상륙하자 번개같이 폼베이우스를 찔려 죽이고 동행하는 그 부하도 죽였다. 그는 폼베이우스의 목을 잘랐다. 가족들은 해안으로 가서 목 없는 시체를 안고 통곡하다가 화장하여 유골만 가지고 돌아왔으니 BC48년 9월 28일, 그의 나이 59세였다.뒤를 쫓아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한 가이사르 앞에는 폼베이우스의 머리와 원수의 도장인 반지가 운반되었다. 씨이자는 눈물을 흘렸다. 안토나우스와 가이우스의 싸움.옛날의 동지요, 사랑하던 사위였기 때문이다. 세상살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시저도 역시 비슷하게 또 당하고 역사는 반복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만큼 되게 하시매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 시 39:4-7.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시 73:25-2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같이 해어지며 거기 거한 자들이 하루살이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 사 51:6
바벨론 페르시아 아수르 제국을 배경으로쓰여진 다니엘서를 보면 느브갓네살, 벨사살, 아하수에로, 다리오 고레스등..하늘의 임금이 되시는 하나님 발에 뭍은 먼지만도 못한 존재들
육신의 감각이란 것도 사실은 호르몬의 분비작용이요 신경세포의 작용일 뿐이다.거기다 인생의 낙을 다 건다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 인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3:16 -17
일본 히로시마에 가서 원폭 피해의 참상을 보는 자마다 그 당시의 참혹함을 상기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더욱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은 원폭의 희생자가 갑자기 생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시 미국은 일본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기 전에 몇 번이고 경고를 했다. 작은 쪽지, 큰 전단등을 경고문으로 히로시마 전역에 뿌렸던 것이다. "히로시마에게 경고한다! 모든 시민은 8월 6일 아침 8시까지 50리 밖으로 대피하라! 투하되는 폭탄은 신형 원자폭탄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우리가 이기고 있는데..........미친놈들. 무시하기도 했고 비웃기도 했다. 미국이 지는 것을 은폐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성실성을 믿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피신을 했을 뿐이다. 결국 때가 되어 서쪽 하늘에 작은 점하나가 생기더니 점점 커져 다가온 비행기는 높은 하늘에서 폭탄 하나를 떨어뜨리고 갔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그 폭탄은 순식간에 3초만에 30만이 타 죽었다. 일본은 죄 값을 치뤘다. 그러나 히로시마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게 된 1차적이 원인은 그들이 그 「경고문」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신실성을 믿으실 수 있기 바랍니다. 천년을 하루 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 가라지를 다 뽑아버리지 않으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외치는 메시지. 대 자연의 이상을 통한 경고.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비행기가 진주만을 습격하였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어느 정도 짐작은 하였지만, 일본이 미국을 공격해 오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하고, 더우기 그 날따라 주말인 까닭에 모두 술을 마시고 댄스 파티를 즐기며 놀았다그리고 아침까지 잠에 취하여 있었다. 바로 그 때 일본 항공모함으로부터 수 많은 비행기가 진주만을 향해서 공격을 개시하였다.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다. 모두 자고 있었다. 그런데 레이다 조종을 연습하던 어떤 견습병이 레이다를 보니까 태평양 쪽에서 벌떼같이 수 많은 점들이 날아오는 것이 보여 재빨리 상부에 연락을 취했더니, 응답이 오기를 "그것은 아마 아군의 연습기일는지 모르니 관계없다 "고 묵살해 버렸다.마침내 이른 새벽, 무수한 일본기들이 잠을 자고 있는 진주만을 폭격했다.눈뜰 사이도 없이 모두 다 기습을 당하였는데 진주만에 정박 중이던 기함 애리조나호는 단 십분만에 격침되었다. 그 속에 타고 있던 수병 천 이삼백명도 그대로 물 속에 수장되었다.
세상에 갑자기 되는 일은 없습니다. 이미 예고된 일일뿐입니다자기 욕심과 교만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만 모를 뿐입니다. 세상에 눈이 어두워 방심한 사람이 놓치는 것입니다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자기 영혼에 대하여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종말이란 언제나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 이미 들어 와 있습니다.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有心하리로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 전 7:4성경이 말하는 종말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가짜도 있습니다. 너무 진짜와 똑 같다. 그리고 그 가짜가 아주 많습니다진짜는 하나이지만 가짜는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은 가짜 때문에 진짜가 가짜 취급받는다. 진짜를 아주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명품과 똑같은 짝퉁. 예 예수님 다시 오십니다. 휴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1999년 시한부 종말론자들과 같은 그런 휴거는 아닙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 - 계 1:4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 1:7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계 1:8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 계 1:17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 계 2:8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 계 21:6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 계 22:13
요한 계시록에는 시작과 끝, 처음과 나중. 알파와 오메가죽었다가 살아나시고 영원히 살아계신분 . 장차 오실 분이란 단어가 반복됩니다성경의 종말은 그냥 끝났다. 끝이 있다하고 마는 것이라면 하나마나 한 말입니다그러나 성경의 종말은 심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날이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새 생명의 시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내세가 오는 세상이 있습니다
성경에 좀 이상한 말이 있습니다.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전 7:1건강하고 살아 있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병들고 죽은 것이 아름다울 수는 없습니다파다닥하고 생기가 넘치는 물고기. 짐승들의 부르짖고 싸우는 모습도 살아있는 한 모습으로 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생명이란 것이 그렇게 좋습니다.그런데 생명의 탄생보다 죽음이 더 낫다니.........죽음은 거룩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문에 불과합니다. 이 방에서 저 방으로!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 시 116:15
세 살 된 아이의 할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근처 병원으로 실려 가서 그곳에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장례 후 몇 주가 지난 뒤 그 아이와 그 가족들이 차를 타고 그 병원을 지나가게 되었을 때, 그 아이는 병원을 가리키며 엄마 엄마 "천국이 저기 있어요."할아버지 저기 가셨어요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그 병원으로 가셨기 때문에 아이는 거기가 천국이라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천국에 대한 아이의 순진한 생각은 엄마로 하여금 천국을 아주 실제적으로 느끼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그 아이에게 천국이 바로 거기에 있는 병원인 것처럼 사실은 더 생생하게 천국은 저기 있는 것입니다 한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시면서 만물의 마지막 결국이 어떻게 되는가? 또 내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하시고 그 다음을 보실 수 있는 시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하나님」은 죄인들의 친구로 오셨고 죄인의 친구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친구들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시기 위해서 영광의 주님으로 다시 오십니다. 마라나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신약성경의 마지막 계시록 22:20
신약 성경에는 예수님 재림에 대해서 300번 이상 언급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이 사실은 명백합니다. 매일 매일 우리는 이 결정적인 순간을 향해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갑니다. 역사와 그 시간은 이미 그 종말의 순간을 향해서 count down에 들어갔습니다오늘이 바로 그 날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이 어느 순간에라도 다시 오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의 축복 받은 소망이요 위안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4:18 ; 5:11 ; 디도서 2:13). 자기 영혼에 대하여 준비되고 깨어있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준비하십시오! 주님은 오십니다! 시간의 진정의 의미를 아는 것이 연말과 연시의 의미입니다그것이 한해의 마지막에 서서 새 해의 시작을 바라보는 성도들이 생각하는 송구영신.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 벧후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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